탈속 도사, 판타지 세계의 인과 연을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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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웨
작품등록일 :
2024.08.1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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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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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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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도령(1)

DUMMY

“납치하듯 불러 놓고선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거 같은데?”


끝이 보이지 않는 숲의 중앙, 거대한 나무에 귀를 댄 남성.

붉은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남성은 혀를 차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 힘 다 잃은 내가 어떻게 그걸 할 수 있겠어. 뭐? 그래서 이 시점에 부른 거라고? 넌 또 날 얼마나 부려 먹으려고 그러는 거야.”


남성이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거대한 나무였다.

남성은 나무의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귀를 때지는 않았다.


“800년이나 쉬었으면 많이 쉰 거라고? 겨우 800년이지, 내가 했던 일을 생각하면 더 쉬어도... 아니, 솔직히 쉰 것도 아니지. 그 좀생이들만 아녔으면 원래 속세를 벗어나, 신선놀음을 즐기거나, 새 삶을 살아야 했다고. 그리고 그런 사실까지 아는 거야?”


젊은 남성의 모습이었지만, 그의 나이는 834세로 억울한 게 많은 나이였다.

등선할 수도, 윤회의 길에 들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죽지 않는 건 아녔다.

죽으면 혼백 상태로 영원히 이승에 남기에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속세에서 세속적인 삶을 사는 게 훨씬 나았다.


“뭐? 일을 마치면 여기서 새 삶을 살게 해준다고? 에이, 여긴 커피도 없고 담배도 없잖아. 뭔 재미로 다시 살아. 비슷한 건 있다고? 흠...”


남성은 나무의 제안에 조금 솔깃한 모습이었다.


“정말 그 둘이 올 때까지 시간만 벌면 되는 거지? 자, 잠깐! 왜 또 요구가 느는 건데! 아, 알았어. 대신 나도 요구 조건을 늘릴 거야. 돈 많은 집에 다시 태어나게 해 줘. 그건 안 된다고? 에이... 너나 신단수나 뭐 이리 안 되는 게 많은 거야.”


남성은 귀를 때고 고개를 저었다.

“누구냐!”


그 순간, 한 여인의 목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화살을 겨누는 여인과 그 뒤에서 함께 화살을 겨눈 이들.

그들은 긴 귀에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엘프였다.


“이 세계의 주민인가 보군. 만나서 반...”


슈욱...

날아온 화살이 그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감히, 인간 주제에 세계수 님에게 접근하다니! 죽어 마땅하다!”

“그, 그게 아니라... 날 부른 건 이 녀석인...”

“불경하다!!!”


세계수에 향한 남성의 삿대질에 여인은 호통을 치며 다시 화살을 날렸다.

그는 목을 뒤로 젖히며 화살을 피했으나, 그 뒤로 다른 이들의 화살이 쏟아졌고 부채를 꺼내 휘두르며 화살의 경로를 뒤틀었다.


“세, 세계수 님!!!”

“세계수 님이!!!”

“이, 이건 실수인데...”


그가 뒤튼 화살이 세계수에 꽂히자, 그들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사문, 일단 피하는 게 좋겠는데?”

“맞아. 벌집이 되기 전에 튀자.”

“아니, 대화가 다 끝나지... 하, 그래. 일단 튀고 보자.”


뒤로 넘겼던 전립을 쓰며 그는 숲속으로 달아났다.


“내가 어쩌다 이런 곳에 보내져서 이 고생인지...”


그는 약 한 시간 전에 있던 일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


도심 한가운데, 고층 빌딩 사이에 위치한 한옥.

사문 도령, 사주, 궁합, 사업이 적힌 간판.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못해 이질적으로 보이는 그곳의 문 앞은 줄을 선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쯧쯧, 네 남편이 다른 여편네랑 놀아나는 줄도 모르고...”

“도령님, 그게 무슨...”


사문 도령은 담배 한 대 입에 물고 부채로 손바닥을 내려치며 한 여인을 나무랐다.


“지금, 남편 사업을 물을 때가 아니야. 돈 벌러 나간 사업장에서 여편네랑 놀고 있으니, 사업이 잘될 리가 없지. 그나마 조금 들어오는 돈도 그 여편네한테 쏟아붓는구먼, 그 뭐나, 요즘엔 그런 걸 오피스 와이프라 한다지?”

“예에? 도대체 누구랑...”


촤르륵...

사문 도령은 탁자 위로 쌀을 거두고 다시 흩뿌리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유심히 바라봤다.


“비서네, 비서. 진한 갈색 장발 머리의 여자가 비서 맞지?”

“네, 맞습니다... 서현 씨가...”


사문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인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주먹을 꽉 쥐었다.


“무,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쯧쯧쯧, 이미 마음이 떠난 남자를 잡아서 뭐 하려고.”

“그래도 애들 아빠인데...”

“증거 잡아서 위자료나 잔뜩 뜯어. 그게 맞아. 오늘 야근한다면서 그 여자 집으로 갈 거야. 한 번 따라가 봐.”

“도령님, 정말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평생 외로울 거야. 아이들이 장성해서 출가하면 더욱 그럴 테지. 차라리 위자료로 새로운 삶을 찾는 편이 좋을 거야.”

“네...”


여자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어깨 펴! 에휴... 불쌍해서 다 받지도 못하겠네. 복채는 반 만 내놓고 돌아가.”

“가, 감사합니다...”

“그래도 자식 복은 나쁘지 않으니, 힘내고. 이제 할 말 없으니, 그만 가봐.”

“예.”


여인은 가방에서 돈다발을 꺼내 놓고 자리를 떠났다.


“에이, 반 만두고 가라니까.”


사문은 그리 말하면서도 돈을 세며 점점 표정을 밝혔다.


“주인, 속세에 너무 물든 거 같은데?”

“맞아. 그러다가 신빨 떨어진다고.”


사문의 품속에서 두 목소리가 말을 걸었다.


“속세에 살면서 물이 들지 않을 수가 있나. 그리고 신빨은 무슨? 다 내 힘이지. 그놈들이 하는 거라곤 저 위에서 노니는 거밖에 더 있나?”

“그건 주인이 그렇게 만들었지. 그래도 아랫놈들은 열심히 뛰잖아.”

“됐고. 조용히 해. 다음 손님을 부를 거니까.”

“에휴... 알았어.”

“돈에 미쳐 가지고.”

“너희 계속 그러면 핑키 안 사준다.”

“아...”


품속의 목소리는 다시 조용해졌다.


“다음 들어오게!”


사문이 크게 외치자, 한 커플이 안으로 들어왔다.


“딱 보니, 결혼을 앞두고 있구먼.”


커플은 신기하단 듯이 사문을 바라봤다.

그렇게 자리에 앉은 이들은 궁합을 물어보거나, 신혼집의 위치를 물었고 사문은 그들의 질문에 차근차근 답해줬다.


“저, 도령님...”

“왜?”

“저게 왜 움직이죠?”


여성이 뒤를 가리키자, 사문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벽에 걸린 거대한 나뭇가지, 꺾여있음에도 달린 잎들은 푸른 모습을 유지한 채,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하... 젠장...”


사문은 반쯤 남은 담배를 한입에 다 빨아들이곤 재떨이로 던져 넣었다.


“너희, 결혼하고 4년 뒤에 고비가 찾아올 거야. 그거만 잘 넘기면 백년해로는 보장된 인연이니, 이만 가봐.”

“예? 벌써요? 그럼, 복채는...”

“... 됐어. 급한 일이 생겨 다 말 못 해 줬으니, 필요 없다.”

“아, 네!”

“그럼, 감사했...”

“빨리 가봐.”


사문의 말에 커플은 황급히 방을 나섰다.


“왜 또! 또, 무슨 일인데! 문을 닫을 때도 문제를 해결할 아랫놈들이 다닐 만큼의 공간은 열어 뒀잖아!”

“그들로 해결할 수 없나 보지.”

“300년 만인가? 그것들이 해결 못 할 일이 또 벌어졌나 보네.”


품속에 있던 목소리의 주인들이 옷깃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빛의 맑고 매끈한 비늘을 가진 뱀과 검붉고 거친 비늘을 가진 뱀이었다.


“내가 제명에 못 살지. 못살아...”

“명부에 이름도 지워진 주제에. 명은 무슨.”

“자기가 닫은 문 탓에 등선도 못 하면서...”

“지금 나 놀리냐? 됐다, 됐어. 일단 불렀으니, 가보는 수밖에.”


사문은 마루의 일부를 들어 올려 두 자루의 검과 담배 한 보루를 챙기고 나뭇가지를 뽑아 들고는 방을 나섰다.


“도, 도령님, 저희는...”

“예. 저희 새벽부터 기다렸는...”

“신이 찾으시는데, 어찌 내 길을 막으려는 것이야.”

“예에? 그럼, 언제 돌아...”

“하루가 걸릴지, 일 년이 걸리지, 십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지, 하지만 최대한 빨리 돌아오도록 하마.”

“아...”

“그럼, 모두 돌아가거라... 어이, 너! 그래, 너 말이야. 너는 가는 길에 차 조심하고.”

“아, 네!”


모두가 대문 밖으로 나가자, 사문 또한 나온 뒤, 문을 걸어 잠갔다.


“택시!!!”


사문은 택시를 타고 나뭇가지의 본체, 신단수가 있는 곳을 향했고 그녀의 인도에 따라 다른 세계로 건너오게 됐었다.


***


“다른 차원이 있고 이곳의 자신과 뿌리로 연결되어 있다니. 아무리 신단수라지만, 이런 비밀을 감추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신단수는 사문이 살던 차원에선 생명의 근원이며 침입자들로부터 세상을 보호하는 방어벽이었다.

그런 게 아녔어도 사문이 도사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한 계기 등, 여러 가지로 얽혀있었다.


그랬던 신단수가 도움을 요청했다.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미래를 봤고 그 원인이 다른 차원의 자신인 세계수의 죽음 때문이라고 했었다.

뿌리를 통한 죽음의 전파.

신단수의 죽음은 세계의 죽음을 의미했기에 막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렇게 다른 차원으로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아껴 펴야 하나...”


사문은 품속에 소중히 간직한 담배 한 보루를 바라봤다.


“인제 그만 끊어.”

“향은 좋더라.”

“넌 뭐든 타는 냄새면 다 좋아하잖아.”

“담배 망가져. 둘 다 들어가.”

“그게 우리보다 더 소중한 거야?”

“시끄러워.”

“너무하네.”


사문의 말에, 품속에 있던 뱀들은 그의 몸으로 스며들 듯이 사라졌다.


“일단 이곳을 여행하며 힘을 되찾으라고 그랬었지... 말년에 이게 뭔 고생인지.”

-주인한테 말년은 없잖아.

-노망이 들어서 헛소리하는 게 하루 이틀은 아니잖아.

“이것들이...”


몸에 스며들었음에도 두 뱀은 입을 다물지 않았다.


공중을 뛰어다니듯, 나무의 위를 밟으며 이동하던 사문은 팔을 거뒀다.

양팔에 각각 두 뱀이 그려져 있었다.

사문은 이어 자신의 양팔에 그려진 두 뱀을 한 대씩 주먹으로 내려쳤다.


-으... 이게!

-가, 감히!


평소에 주인이라 부르는 그들이었지만, 충성심으로 엮인 주종관계는 아녔다.

오히려 친구에 가까운 그들이었다.


“둘 다 낯선 곳에 버려지기 싫으면 조용히 해.”

-우리 덕에 힘을 얻은 주제에.

-은혜도 모르고 배은망덕한 주인 놈.

“따지고 보면 내가 이런 삶을 사는 게 신단수보다 너희 책임이 크잖아!”


두 뱀은 할 말이 없었는지, 입을 닫았다.


“어쨌든, 인종 차별자로 가득 찬 숲을 벗어나, 말이 통하는 자들을 만나봐야겠지.”


엘프 탓에 세계의 구성원과 분위기, 상황 등, 많은 것을 들을 수 없었다.

굳이 전투를 치를 필요도, 그럴 힘도 얼마 없었기에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나 같은 이들을 이곳에서도 인간이라 부르나 본데, 그럼, 인간이 사는 곳으로 가야겠네.”

-그게 어디인 줄 알고?

“모르지. 어디든 가 보다 보면 있겠지. 뭐 아니면 저들과 달리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이들을 먼저 만날 수도 있고.”


목적은 생겼지만, 계획은 없었다.

그저 하늘이 점지해 주는 대로 따라가고 흐르는 대로 흘러갈 뿐이었다.


-노답이네.

-인정.

“거, 속세에 물들긴 너희들도 마찬가지네.”

-인터넷도 없겠지?

“있게 생겼냐.”


푸른 뱀은 조금 시무룩해졌다.


많은 불만을 토했지만, 나름 새로운 일에 재미를 느꼈는지, 사문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그런데, 인간이 이곳에서도 인간이면... 그 녀석들은 엘프인가?”


소설이나 영화, 게임에서나 봤던 엘프.

외형은 확실히 그가 알던 엘프였다.


-신단수와 이곳의 세계수가 연결된 만큼 가능성이 없진 않을 거 같은데.

-주인처럼 오간 녀석이 있었거나, 생명과 함께 신단수에 영향을 받으며 상상이란 영역으로 퍼졌을 수도 있지.

“그건 좀 충격인데... 엘프가 인종 차별자였다니.”


그런 묘사가 없지는 않았지만, 예쁜 외모 탓에 그 점은 사람들에게 크게 부각되지 않았었다.


작가의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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