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속 도사, 판타지 세계의 인과 연을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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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웨
작품등록일 :
2024.08.16 16:11
최근연재일 :
2024.09.1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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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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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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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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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왕이 될 상(1)

DUMMY

“설령 몸을 빼앗겼었다고 해도 지우지 못할 죄를 지었습니다.”


영주실.

깨어난 영주와 그의 가족들 앞에 앉은 사문의 말에 웨슬로는 얼굴을 떨어뜨렸다.


“알고 있다네...”


웨슬로나 가족들은 악마에게 몸에 빼앗긴 동안의 기억을 지니고 있었다.

악마에 의해 자극받았던 욕망이 가라앉은 지금 그들은 정신적으로 피폐했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악마에게 몸을 넘긴 겁니까? 분명 전쟁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내기 위해 치료를 받은 거 아닙니까?”

“분명 그런 마음으로 사제를 찾아갔다네. 그러나 치료를 받고 나서 내면에 목소리가 들렸고 날 자극했지.”


악마를 퍼뜨리는 이가 있다.

웨슬로의 눈으로 보긴 했지만, 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잠깐, 그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까?”

“사제라면... 왜지... 잘 떠오르지가...”

“기억에 먹구름이 끼었네... 됐습니다. 악마는 계약을 통해야만 이쪽으로 넘어올 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계약을 맺은 기억은 없다네... 다만 치료 중, 잠에 빠져들었고 깨어나니 목소리가 들리더군. 내면의 목소리 주인이 악마란 것도 나중에 알았지.”


계약을 맺은 기억이 지워졌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계약을 맺게 되었구나, 둘 중 하나로 보였다.


“전쟁을 포기하지 않고 고통도 느끼지 않고 이길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하더군... 그 말을 믿었다네.”

“가족들은 왜 악마와 계약시킨 겁니까?”

“나와 같은 고민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안 악마가 속삭였지. 사제에게 보내라고.”

“그럼, 전...”

“그래. 넌 우리와 달랐으니까. 그리고 그런 너까지 이런 정체 모를 힘을 가지길 바라진 않았으니까. 악마에게 부탁했지. 당시에는 악마나 나나 내 몸을 비슷한 수준으로 다뤘으니, 그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단다.”


원치 않았던 웨슬로의 바람이 있었다.

다른 형제들은 웨슬로가 루디를 더욱 각별하게 생각함에도 불만은 없었다.


“어린아이들은...”

“처음에는 내가 잠들었을 때, 내 몸으로 어린아이를 납치하고 피를 빨아들이더군. 그 사실 또한 나중에 깨달았지.”

“막을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까?”

“이미 그 힘이 주는 달콤함에 취해있었다네. 그리고 그 달콤함에 취할수록 내 몸과 의지는 점점 그와 일치해 갔지.”

“확실히, 더 늦었으면 완전히 하나가 되었... 아니, 잡아먹혔겠죠.”


그 정도까지 가면 사문도 그들을 죽일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이번 같은 경우도 음양문진의 힘으로 영혼을 공격하지 않았으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사문은 웨슬로와 가족들을 보며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몸에서 악마를 내쫓긴 했지만, 이들의 처분은 결정 내리지 못했다.

악마에 의해 욕망이 자극받았다는 점이 있긴 하지만 그들의 지닌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아이가 죽었다.

그들에게 죄가 없다고 할 수 없었다.


‘하... 이럴 때 강림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한때 사문을 이용했고 힘을 보탰던 저승차사.

잘잘못을 따지는 건 그의 특기였었다.


‘아마, 그랬겠지.’


그를 떠올리자,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알 수 있었다.


“속죄하기엔 죄가 너무 큽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니까. 그냥... 평생 죄책감 속에 사세요. 괴로워하고 스스로를 죽이며 살아가시죠.”


너희의 잘못이 아니라는 등, 동정 어린 말을 할 차사가 아녔다.


“죽어버린다면 그거만큼 무책임한 짓도 없겠지. 해야 할 일도 있으니 더욱 죽을 수는 없다네.”


죄책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만, 무너져선 안 됐다.

악마와 몸을 공유했던 만큼 그들이 가진 계획의 편린을 알고 있었다.

그걸 막아야만 했다.


“알아서 잘하겠네.”


그들은 길을 찾았다.

위태로울 수 있는 길이지만, 걸어야만 하는 길이었다.


사문은 그들의 의지를 보고는 뒤로 돌았다.


“떠나는 거야?”

“왜? 더 있을까 봐?”

“아니, 넌 은인이니까.”


얼마든지 성대한 대접이라도 할 기세였다.


“이제 술은 끊... 그 좋은 걸 끊을 필요는 없겠지. 좀 줄이고 영주가 될 준비나 해. 평판 관리도 좀 하고.”

“내가?”

“얼굴을 안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


스스로에게 자격이 없다고 여길 것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다만, 루디가 아직 영주에 오르기에는 준비되지 않았기에 당장에 이뤄지지 않을 뿐이었다.


“그리고 네가 길잡이별이 되길 각오했다면 괜찮은 지위지.”

“그래, 그게 있었지. 더 해줄 말은 없어?”

“복채도 없이 바라는 것도 많네... 소문을 퍼뜨려. 어떤 형식으로든 상관없어.”


은빛의 별이 스스로를 단련해 모두를 지키는 방패가 되리라.

사문이 루디에게 전달한 말이었다.


“그걸로 뭐가 변해?”

“말은 오묘한 힘을 가지고 있어. 작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힘을 가졌지. 그런 말이 여럿의 입에서 나온다면 거짓도 진실이 될 수 있지. 원래 그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을 세계의 운명이 속아서 흐르는 방향을 틀어버릴 수도 있다는 거지. 단 너무 허무맹랑한 소리일 경우에는 운명이 속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알려준 말은 뭐...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운명이니, 그쪽으로 방향이 잡힐 거야. 아니면 뭐... 어쩔 수 없고,”


루디는 사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왜?”

“아니, 말이 너무 장황하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그럴 수 있는지 하는 생각도 드니까.”

“그게 도라는 거야.”

“뭐라는 건지.”

“그럼, 난 간다.”


사문은 가주실의 문을 열고 미련 없이 떠났다.

루디는 잡는다고 잡히지 않을 사문의 등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


“악취가 날아가니, 나쁘지 않은 냄새가 풍기네.”


도시를 벗어나, 바람에 실려 오는 냄새를 맡은 사문의 표정은 가벼웠다.


“앞으로 어떨 거 같아?”

“하나의 별은 길을 얼마나 잘 닦아놓고 안내할 이를 기다리는지, 다른 별은 얼마나 많은 힘을 모아 등을 밀어줄 수 있는지, 마지막 별은 얼마나 빛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


세계수가 말했던 위기 때문인지, 하늘도 너무 먼 미래는 가르쳐줄 수 없었다.

다만 현재를 살아가는 별을 보며 추측할 뿐이었다.


“방향은 잡아줬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할 일이지.”


물길을 막은 돌을 만나면 뚫어주거나, 치워주거나, 새로운 길을 터주는 거, 그게 사문의 삶이었다.

쉽게 말하면 제멋대로인 삶이었다.


“그런데 왜 별이 세 개야?”

“그러게?”


하나는 길잡이별이 되길 자처한 루디, 다른 하나는 사문이 밤하늘을 통해 본 은빛의 별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두 뱀도 알지 못했다.


“있어, 돈 많이 벌 여자.”

“아!”

“뭐야, 걔도 뭐가 보였어? 단명할 상이었잖아.”

“생각보다 괜찮은 상으로 변했더라고.”


마지막 인사를 나눴을 때, 갓 바뀐 상에서 짧지만, 나쁘지 않은 미래를 봤었다.


“뭔데?”

“돈 많은 상인의 미래를 위한 투자랄까?”

“그게 뭐야...”

“돈 많은 누나가 최고야.”


사문은 미소를 지으며 길을 걸었다.

바람을 타고 굳세고 맑은소리가 들려왔다.


‘단련하고 또 단련해라... 마음도 몸도...’


은빛의 별이 은은하며 아름다운 빛을 발했다.


크르르...

순간, 들려오는 소음에 사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들개 주제에 분위기 깨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늑대를 닮은 마물, 루푸스.

굶주린 루푸스 무리가 침을 줄줄 흘리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사문에게 들이밀었다.


사문은 한기를 담은 청실을 공중으로 던졌다.

공중에서 회전하다 땅에 박힌 청실 주변의 땅이 얼어붙으며 날카로운 가시가 루푸스를 향해 세워지며 파도쳤다.


상해창파(霜海滄波).

서리 바다의 파도가 루푸스의 몸을 찢고 얼리며 지나갔다.

조각난 몸은 얼어붙어 땅조차 피로 물들이지 못했다.


“겨우 들개들을 상대하면서 요란하게 굴긴.”

“그냥,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는 거야.”


강철이의 말에 사문은 고개를 저었다.


바다라 부르기엔 너무나 초라한 범위.

틈틈이 자연지기로 몸을 씻어냈지만, 아직 부족한 경지였다.


“확실히 지금 상태로는 그 녀석을 못 이기겠네.”

“그렇겠지. 아무리 축마를 사용하기 위해 힘을 조절했다 해도 그깟 것들을 제압하는 데도 시간이 그렇게 걸렸으니까.”


가르구와 악마들.

죽이는 일이었다면 쉽게 끝났겠지만, 제압하고 마를 분리해야 했기에 까다로웠다.

이전과 같았다면 제압할 필요도 없었기에 힘이 조금 아쉬웠다.


이시미의 말처럼 조각상을 통해 만난 악마에게서 느낀 분위기는 지금의 힘으로 상대하기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녀석은 뭐였을까?”

“글쎄다. 연이 닿아 만나게 되면 그때 가서 확인하지. 뭐.”


힘에 관해서는 아쉽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바람에 실어 날려 보냈다.

그 존재의 강림은 한 별에 의해 막힐 확률이 높았고 설령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때까지 지금의 수준에 머물러 있을 자신이 아녔다.


“그보다 누구를 그리 찾는 지, 저 별은 아직도 길을 잃어 헤매는구나.”


하늘에 한 별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


“으아아아아! 그 인간 놈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자연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긴 삶을 살아가는 한 엘프, 레이라이의 노성이 숲을 뒤흔들었다.

잠자던 새들은 놀라 달아났고 풀잎을 뜯어 먹던 벌레들도 놀라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설마 내가 반대로 온 건 아니겠지? 아니, 그 요란한 옷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건... 젠장!”


그녀가 뒤로 돌자, 바람은 불어오며 등을 떠밀어주었다.


꾸에엑!

순간, 그녀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괴성.

돼지의 머리에 인간과 닮았지만, 좀 더 거대한 몸을 지닌 마물, 오크가 도끼를 든 채, 모습을 드러냈다.


“찾는 인간은 안 나오고 이딴 녀석들이나 만나게 되네.”


바람이 그녀의 등을 밀었으나, 그녀는 부정한 것들을 향해 다시 몸을 돌렸다.


레이라이의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오크의 미간을 꿰뚫었다.


“아니지, 괜히 길을 돌아갔다가 또 아니면? 내가 모든 곳을 돌아다닌 건 아니잖아. 가다 보면 그 옷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겠지.”


레이라이는 오크의 미간에 박힌 화살을 뽑고는 다시 그 방향으로 걸어갔다.


***


“왕의 상태는 어떠하지?”

“심장 소리가 날이 갈수록 미약해져 갑니다.”

“그렇군... 하하하! 드디어 그 한심한 자의 시대의 끝이 다가오는 구나.”


왕의 상태를 물었으나, 자신이 왕이라도 되는 거처럼 거만하게 높은 곳에 앉아, 내려 보는 자.

귀 밝은 자의 말에 오만한 자의 웃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네가 보기에 앞으로 얼마나 남은 거 같으냐?”

“길어야 보, 보름으로 보입니다.”

“그렇군. 이만 돌아가서 평소처럼 왕의 옆을 지켜라.”

“예.”


귀 밝은 자는 오만한 자의 말에 방을 떠났다.


“행하려는 것은 옳지만... 차라리 다른 자가...”


귀 밝은 자는 고민을 중얼거리며 점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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