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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내리화
작품등록일 :
2024.08.17 21:54
최근연재일 :
2024.09.19 17:0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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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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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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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환자

DUMMY

플루토키아는 환자이니, 마땅히 병실 침대에 누워있을 거라 생각했다.


뭐 침대에 앉아 있거나, 창가에 서 있는 등의 바리에이션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 예상 속 플루토키아는 병실 안에 늘 있었다.


그런데 이건 뭐지?


나는 병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부직포 같은 이불을 걷어버렸다. 침대 한가운데, 거대한 검이 베개를 베고 조신하게 누워있다.


···뭐가 이렇게 크지? 나보다 이 검이 더 커 보이는데? 나는 이불을 완전히 걷어버리곤 윽, 하고 신음 소리를 냈다.


사이즈 작은 침대에 키 큰 사람이 억지로 누우면 발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검의 날카로운 끝부분이 침대 밖으로 훌쩍 나와 있었다.


반질반질 잘 닦인 칼날에 내 얼굴이 잘도 비친다. 생긴 게 꽤 투박한걸. 화려한 장식이 하나도 없다.


뭐어···, 생긴 게 뭐가 중요해. 칼은 잘 썰기만 하면 되지. 이게 음식을 써는 건지, 식재료를 써는 건지, 사람을 써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맨 후자 용도는 아니길 빌며 커튼 뒤나 구석에 놓인 정수기, 벽에 걸린 텔레비전 쪽을 눈여겨 살폈다.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난 쭈그려 앉아 침대 아래에 있던 간의 침대를 꺼냈다. 돌돌돌, 하는 바퀴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옷가지들이 함께 딸려 나왔다.


이거 어제 플루토키아가 입었던 옷인데.


나는 옷을 들고 병실 문턱에 서 있는 안 팀장을 향해 돌아섰다. 뒤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상사의 표정도 어리둥절해 보였다.


텅 빈 병실, 환자 대신 누워있는 장검, 숨겨져 있던 환자의 옷가지.


나는 이 밀실에서 나온 증거들로 추론할 수 있는, 최상의 결론을 안 팀장에게 제시했다.


“‒플루토키아 씨가 검으로 변한 것 같아요!”


“그 검, 플루토키아 거예요. 놓고 갔나 보네.”


안 팀장의 지적이 끝나자마자 분위기는 미묘하게 어색해졌다. 원래도 조용했던 병실에 완전한 침묵이 가득 채워졌다.


내 몸의 피부가, 특히 두피가 홧홧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김 나는 거 아냐? 나는 머리카락을 헤집어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은근슬쩍 가렸다.


“···그동안 플루토키아 씨가 이런 거··· 들고 다니는 거 못 봤는데요···.”


애초에 이런 살상 무기는 왜 지니고 있는 건데!? 기가 막힌다며 나 대신 널뛰는 심장 소리가 요란했다.


“너바나 씨가 오기 전까진 종종 들고 다녔어요. 아기들이 애착 인형 안고 다니듯이 몸에서 떨어뜨리려 하질 않았는데, 신규가 새로 들어오면 보고 겁먹을까 봐 빼놓고 다녔거든요.”


근데 이렇게 만나게 됐네. 안 팀장의 중얼거림을 듣자 몸에 힘이 한결 빠졌다.


본인 키만 한 검을 차고 다녔다는 것도 미치겠는데, 그걸 용인한 로맨스판타지과 상사들은 대체 뭐야? 이미 죽은 사람들이라 겁이 없나···!?


여기 진짜 뭐 하는 사람들이 모인 거야??


머리카락을 꼬며 괴로워하고 있자, 검 손잡이를 쥐고 가볍게 들어 올린 안 팀장이 내게 말했다.


“자세한 건 플루토키아에게 물어보세요. 그나저나 여기 없는 걸 보니 또 일하러 갔나 보네요, 이 환자 자식이?


애지중지하던 검까지 깜빡 놓고 갈 정도로 정신머리가 나간 거 보면, 아직 회복이 덜 된 것 같은데. 다시 만나면 정수리에 딱밤을 날려줄 테다.“


안 팀장의 각오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엘리베이터 버튼을 깨부수던 힘으로 내 몫까지 때려주세요.


“플루토키아 씨도 다음 빙의자 사례 업무를 시작한 걸까요?”


“에이, 다음 빙의자는 아직 준비 중이라 시작도 안 했어요. 지금 데이지 황녀의 외전이 펼쳐지고 있을 때니까, 아마 그쪽으로 갔겠죠.”


우리는 병실을 나와 뻔뻔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낙뢰 과장 책상에 대용량 커피가 놓인 것 빼고는 아까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검을 벽에 기대어 세워둔 안 팀장이 커피를 치웠다. 그리곤 재빠르게 종합 음료 세트 중 하나를 뽑아 책상에 올려두었다.


낙뢰 과장이 나라 잃은 표정을 지었지만 팀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제 이야기를 빠르게 늘어놓았다.


“키아가 병실에 없더라고요. 자기 검만 덜렁 놓고 사라졌던데. 데이지 황녀 쪽으로 갔나 봐요.”


“아이고, 언제 거기로 갔대? 그 녀석은 일을 좀 쉬엄쉬엄해야 하는데. ···하긴 여기 워커홀릭 아닌 사람이 어딨냐만은.”


그게 무슨 말씀인지···? 아닌 사람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신입은 일이란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감히? 워커홀릭이라뇨? 온 세상 워커홀릭 뒤집어지는 소리 들린다!


나는 떨떠름하게 입맛만 다시다, 안 팀장이 벽에 기대놓은 플루토키아의 검에게 다가갔다. 160cm 중반인 나보다 2~30cm는 더 컸다.


난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사탕 달라고 조르는 어린애마냥 두 손을 머리 위로 뻗어 간신히 검 손잡이를 쥐고 내 쪽으로 당겼다.


“어!”


“어어! 위험!”


내 단말마 같은 비명과 함께 낙뢰 과장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내 몸이 순식간에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뭐야, 이 검 왜 이렇게 무거워!?


검의 육중한 무게중심이 내 손아귀로, 나를 향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예상 못 했던 무게에 간신히 오른발을 뒤로 내디뎌 버텼지만, 검의 무게를 완전히 지탱하진 못했다.


이러다 진짜 넘어지겠어! 나는 빠르게 손잡이를 쥐고 검을 옆으로 틀어 바닥에 반쯤 눕혔다. 뒤에서 상사들이 놀라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다, 안 팀장은 한 손으로 가볍게 들고 다니던데? 맞다, 저 양반 힘이 장사랬지! 뒤늦게 진실을 깨닫자마자 귓불을 잡혔다.


“못 살아, 눈 떼자마자 사고를 치네! 칼 같은 위험 도구는 함부로 만지면 안 되요!”


“아아아아죄송해요!”


진짜 아프다! 설 팀장이 귓불을 꼬집던 거랑은 차원이 달라! 내가 소프라노급 고음을 내지르고 나서야 귓불이 풀려났다.


나도 모르게 찔끔 운 모양이었다. 손등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 있을 때, 낙뢰 과장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내 안색을 살폈다.


“플루토키아의 검은 규모가 큰 만큼 무게도 나가는 편이에요. 제가 알기로는 3kg가 넘을 텐데···. 조심히 다뤄야 합니다. 엔간하면 주인 허락 없이 만지지도 말고요.”


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별 생각 없이 만졌다가 이게 뭐람. 얼굴에 또 열이 오르는 것 같았지만, 창피함을 무릅쓰고 줄곧 의아했던 점을 질문했다.


아무래도 같은 직장에서 일하다보니 안 묻고 배길 수가 없었다.


“왜 플루토키아 씨는 이런 장검을 들고 다니는 거예요? 이것도 로맨스판타지 세계관에서 쓰는 도구 같은 건가요? 저희가 엑스트라로 분장하려고 평민 옷을 입는 것처럼?”


낙뢰 과장과 안 팀장이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그건··· 플루토키아에게 묻는 게 좋겠군요.”


···뭐 개인적 사연이라도 있나. 더 캐묻는 게 예의는 아닌 것 같아, 마지못해 알겠다고 했다. 대신,


“제가 이 검을 플루토키아 씨한테 가져다줘도 될까요?”


나는 검 손잡이를 쥔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사들이 첫걸음마 하는 아기 보듯 아슬아슬한 눈으로 보길래, 한 손을 들어 괜찮다는 신호를 줬다.


아까는 무게를 예상하지 못하고 건드렸다가 넘어질 뻔한 거다. 지금처럼 제대로 힘을 주고 들어 올리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어제 본 플루토키아 씨 상태가 많이 심해서 진짜 괜찮아진 건지 확인하고 싶어요. 데이지 황녀 결말도 제대로 못 본 것도 아쉽고요. 외전이라도 보고 오면 안 될까요?”


“안될 건 없죠. 안 그래도 외전 진행을 보고 오라고 할 생각이었지만···.”


낙뢰 과장이 내 손에 들린 검을 보며 말꼬리를 흐렸다.


“불안한데요, 검이 무거워서 들고 가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닐 수도 없고.”


“등에 묶어보죠?”


어느새 흰 끈을 들고 온 안 팀장이 내게서 칼을 가져갔다. 이어 칼날을 끈으로 돌돌 말아 뭉툭하게 만들고, 내 등에 덧댄 후, 남은 끈을 가슴 쪽에 엑스 자로 교차해 꼼꼼히 묶는다.


나는 그 신들린 손길과 빳빳한 끈을 보며 감탄했다.


“천이 엄청 튼튼하네요?”


“상여끈이거든요. 엔간한 무게는 다 버티죠!”


상여끈이 왜 여기에···? 내 눈빛이 마구잡이로 흔들렸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끈의 원래 용도가 사무실에서 쓰이는 일이, 아냐, 생각하지 말자.


안 팀장이 나더러 제자리에서 뛰어보라길래 콩콩 점프했다. 어린아이 무게만 한 검이 흔들리지도 않고 내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자, 상사들이 짧게 박수를 쳤다.


“유일한 단점은 칼에 비해 너바나 씨 몸집이 작아서 안쓰러워 보인다는 거네요. 이대로 보내야 하는 저희가 좀 쓰레기 같아요.”


무슨 그런 말을 엄지 치켜들고 하세요? 뭐라 대꾸도 못 하고 허허 웃자 낙뢰 과장도 부드럽게 웃었다.


“마감만 아니면 내가 따라가는 건데, 안 팀장도 다음 빙의 사례 준비하러 가야 하는지라. 혼자 보내서 미안해요.”


“아녜요, 괜찮아요. ···다녀오겠습니다.”


본가에서도 안 하던 말을 사무실에서 하려니 조금 쑥스럽군. 나는 괜스레 머리를 긁적이며 이동문을 어깨로 열었다.


어우, 이 미친 문짝은 플루토키아의 칼보다 무거운 게 분명하다. 이러다 어깨뼈 빠지는 거 아냐? 하는 순간, 문틈이 벌어져 재빠르게 빠져나왔다.


칼의 무게가 앞으로 쏠려 잠시 넘어질 뻔하다, 간신히 무릎을 잡고 멈춰 섰다. 잠시 숨을 고르며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와···.”


새파란 하늘에 뜬 뭉게구름이 너무나도 선명하다. 꼭 지X리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아.


공중에 무언가 반짝반짝한 것이 나풀나풀 노닐고 있었다. 손을 뻗어 하나 잡아보니 파티용 반짝이 종이 조각이다. 그 왜, 폭죽을 터뜨리면 한가득 쏟아져 나오는 그거.


사람들의 소음이 뒤늦게 고막으로 밀려 들어왔다. 나는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내가 있는 언덕배기 아래로, 시원하게 뻗은 도시 시가지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그들에게서 환호와 웃음소리가 쉴 세 없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음악이 울려 퍼진다. 길거리 음악단이 이름 모를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광장 중앙에서 두 명씩 손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병이 옮을까 봐 서로 모이지도 않았던 백성들이, 지금은 서로의 옷자락 하나 잡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었다.


‒이게 정말 전염병이 돌았던 제국이 맞나?


나는 잠시 넋을 놓고 축제를 내려다보다 뒤돌아섰다. 머릿속에 목적지 하나가 떠올라 언덕배기에서 슬그머니 내려갔다.


내가 아는 플루토키아는, 행복에 겨운 저 인파 사이에 있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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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환자 NEW 12시간 전 2 0 11쪽
24 23) 노인 24.09.16 3 0 11쪽
23 22) 생각 24.09.12 6 0 11쪽
22 21) 화재 24.09.11 10 0 11쪽
21 20) 영웅 24.09.10 9 0 12쪽
20 19) 친우 24.09.09 9 0 11쪽
19 18) 황자 24.09.06 10 0 11쪽
18 17) 간섭 24.09.05 9 0 12쪽
17 16) 서천 24.09.04 12 0 12쪽
16 15) 꽃밭 24.09.03 9 0 11쪽
15 14) 마석 24.09.02 9 1 11쪽
14 13) 간호 24.08.30 12 1 11쪽
13 12) 업무 +1 24.08.29 10 1 10쪽
12 11) 청춘 24.08.28 11 1 11쪽
11 10) 사진 24.08.27 11 1 11쪽
10 9) 사과 24.08.26 11 1 10쪽
9 8) 면담 +1 24.08.23 12 1 11쪽
8 7) 중립 24.08.22 12 1 11쪽
7 6) 조작 24.08.21 11 1 11쪽
6 5) 알현 24.08.20 11 1 11쪽
5 4) 조연 24.08.19 12 1 10쪽
4 3) 최악 24.08.18 13 1 11쪽
3 2) 작명 +1 24.08.18 15 1 10쪽
2 1) 면접 24.08.17 16 1 10쪽
1 프롤로그 +1 24.08.17 20 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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