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천재투수가 메이저리그를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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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빵소년
작품등록일 :
2024.08.1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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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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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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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화. 그걸 왜 이제 말해주는 건데!

DUMMY

어릴 적 나는 허약하고 소심한 아이였다. 백호라는 이름이 아까울 정도로 말이다.


아, 성이 백, 이름이 호, 외자다.


아버지를 닮아 또래들보다 체격은 컸지만 잔병치레가 끊이질 않았고, 거기에 겁까지 많아 체육시간이 곤혹스럽기만 했던 그런 소년이었다.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이자 도장을 운영하는 내 부친 백 관장님께서는 그런 아들을 질질 끌고 가 반강제로 무술을 가르치셨다.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체격과 이름에 걸맞는 운동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인생을 살았다.


운동을 하고, 아마추어 대회에서 입상도 몇 번 하고,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도장을 물려받게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생각보다 꽤 재미있었다.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인생을 보내던 어느 날,


정확히는 서른 살 생일을 맞은 11월 30일 날의 아침,


처음 그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야구팀 타이거즈를 우승시키시오>


소름이 쭈뼛 돋을 만큼 음산한 목소리였다.


환청이라 생각했다. 그 당시 날 힘들게 했던 이명이 심해져서 되도 않는 소리가 들린 거라 생각했다.


신경 쓰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여느 때처럼 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친구들을 만나 술도 한 잔 하고, 얼굴에 케이크도 좀 뒤집어쓰고,


그렇게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정말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하루였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나를 맞이한 건 아버지의 무뚝뚝한 목소리,


그리고 열다섯, 고등학교 첫 등교일 날로 돌아간 내 모습이었다.


“밥 먹어라.”


그 순간,


내 귓가에 또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이거즈를 우승시키시오>


서른 살에서 열다섯 살로 돌아온 나는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했고, 회귀를 인정하게 된 후에는 공포에 덜덜 떨었다. 공포에서 벗어난 후에는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긴 건지 죽어라 머리를 굴려야 했다.


하지만 고민해봐야 나오는 건 없었다.


유일한 단서라고는 회귀하기 바로 전, 그리고 회귀 직후 내 귓가에 들려온 그 환청과도 같은 목소리,


<타이거즈를 우승시키시오>


나는 두려움에 떨며 두 번째 인생을 살았다.


다행이도 내 공포심은 시간이 가면서 점점 옅어졌다.


어찌어찌 살다 보니 첫 번째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되었다. 운동을 하고, 아버지에게 도장을 물려받고, 이전 삶에서 얻은 단편적인 기억으로 주식에도 좀 투자해 적지 않은 돈을 만지기도 했다.


평온한 일상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회귀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가끔은 내가 꿈을 꾼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서른 살 생일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잊고 지내던 회귀에 대한 공포가 불쑥 찾아왔다.


도장 문을 닫고 내 방에 처박혔다. 전화기마저 꺼버리고 외부와의 연락을 모두 차단해버렸다.


그렇게 나는 두려움에 떨며 밤을 맞이했고,


다음 날 아침,


다시 열다섯으로 돌아왔다.


“밥 먹어라.”


“......”


<타이거즈를 우승시키시오>


그제야 나는 이게 환청이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신, 혹은 악마, 그게 무엇이든 절대적인 존재의 손아귀 속에서 내가 발버둥치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몇날 며칠 계속된 고민 끝에 결심했다.


일단 해보기로, 그 말도 안 되는 목소리를 따라가 보기로.


“저 운동은 그만둘게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부? 갑자기?”


내가 공부를 선택한 건 타이거즈를 우승시키기 위해서였다.


광주 타이거즈의 우승,


이때만 해도 한 번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야구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알았다.


참가 팀이라봐야 고작 10개 밖에 안 되는 리그, 거기에 타이거즈는 나름 명문 팀이었다. 적어도 10년에 한 번 정도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팀이었다.


지난 두 번의 삶에서 그 팀이 우승하는 걸 본 적은 없었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알고 있는 내가 끼어들면 어찌어찌 가능할 것도 같았다.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그 팀에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야구 글러브 한 번 껴본 적 없는 내가 프로선수가 될 수 있을까?


아버지의 강제주입식 교육 덕에 그럭저럭 사람구실은 하게 됐지만 운동재능하고는 거리가 먼 내가? 어느 세월에 야구를 배워서?


뭔가 더 빠른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한참 고민 끝에 찾았다. 그 구단에 들어갈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꼭 선수로 우승시키라는 말은 없었잖아? 안 그래?”


결심을 마치자마자 죽어라 공부를 파고 들었다.


졸업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전문대를 택한 대신 세이버매트릭스를 포함 야구단 프런트 업무에 필요한 공부들을 미친 듯이 파고 들었다. 졸업 후 군대문제까지 완벽하게 해결한 후 곧바로 타이거즈 구단의 공채시험에 도전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세이버매트릭스를 공부했고, 야구단에서 일하기 위해 아마추어 심판학교와 야구기록원 교육과정까지 모두 통과했습니다. 꼭 뽑아주십쇼!”


“호오...”


채용시험에 합격해 타이거즈 프런트의 막내가 되었다. 서른 살 생일까지는 아직 7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타이거즈에 입사하는 날부터 뭔가 조짐이 좋지 않았다.


모기업의 경영권이 둘째 동생에게로 넘어가며 야구단에 대한 지원규모가 확 줄어들었다. FA자격을 얻은 선수들과 고액연봉자들이 하나 둘 팀을 떠났고 2군에서 올라온 무명 선수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야구에 별 관심 없었던 지난 삶에서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일단 열심히 일했다. 어찌어찌하다보면 운 좋게 우승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을 품은 채


그리고 7년 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봤다는 걸, 모기업에게 버림받은 야구단이 우승하는 게 정말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광주 타이거즈, 5년 만에 진출한 가을야구에서 서울 매지션스에게 완패>


<자신들이 팔아먹은 선수들에 발목 잡힌 광주 타이거즈>


<한때 명문구단을 자처하던 광주 타이거즈, 왜 이런 처지가 되었나? 전문가들 “프로야구에서 모기업의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프런트로 일한 7년 동안 타이거즈가 기록한 최대 성적은 4위였다.


서른 살 생일이 돌아왔다.


다시 열다섯이 되었다.


“밥 먹어라.”


<타이거즈를 우승시키시오>


오기가 생겼다. 다시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나는 그 짓을 총 세 번 되풀이했다.


하다 보니 요령도 붙었다. 회귀 전의 기억을 바탕으로 대성할 선수들을 스카웃하고, 부상위험이 있거나 기량 저하가 예정된 선수들을 팔아 더 좋은 선수를 데려왔다.


외워둔 로또 번호로 목돈도 만져보았다. 어차피 타이거즈를 우승시키지 못하면 휴지조각이 될 돈이었기에 나 개인이 아니라 구단 업무를 위해 아낌없이 사용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프런트로 일하며 타이거즈를 우승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야구라는 게 얼마나 복잡한 스포츠인지만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모기업의 지원도 문제였지만 이 빌어먹을 야구에는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라커룸의 분위기, 선수들 간의 파벌싸움, 세대교체 타이밍, 모기업 인사들의 참견, 프런트와 코칭스태프들 간의 세력다툼 등등. 아무리 좋은 선수를 가져다 놔도 방해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모를까, 이미 암흑기에 들어간 팀을, 온갖 방해요소들이 득실거리는 환경 속에서 제한된 기간 안에 우승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나는 세 번의 삶 동안 4위 두 번, 3위 한 번을 기록한 후 프런트로 타이거즈를 우승시키는 걸 포기했다. 그 긴 시간을 허비한 끝에 내게 남은 건 머릿속에 담긴 야구단 운영에 관한 노하우뿐이었다.


“밥 먹어라.”


<타이거즈를 우승시키시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직접 선수가 되는 것.


한 가지 희망적인 건 지난 삶에서의 경험상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에 타이거즈가 1순위 지명권을 갖게 된다는 거였다.


즉, 고교최고가 되면 타이거즈의 지명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학교 야구부를 찾아갔다.


“야구가 하고 싶습니다. 아니, 꼭 해야 합니다.”


야구라고는 프런트 직원으로 일하며 캐치볼 몇 번 해본 게 전부였다.


지역예선 통과조차 어려운 약팀인데다 야구부에 선수가 부족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내가 들어갈 틈은 없었을 것이다.


적지 않은 활동비를 내고, 어머니를 졸라 후원활동에까지 참가시켜 결국 고교야구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KBO 신인드래프트에 신청서를 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타이거즈는커녕 어느 팀의 지명도 받지 못했다. 실망하지 않고 신고 선수 테스트에 도전했다. 2년간의 발버둥 끝에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는데 성공했다.


입단은 했지만 1군은 언감생심, 2군에서 데굴데굴 구르다 보니 어느새 서른 살이 되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야구에 재능이 없다는 것, 그렇기에 암흑기에 들어간 프로야구팀을 우승을 시킬 정도로 좋은 선수가 되려면 이 끔찍한 회귀를 몇 번이고 겪어내야 한다는 것.


또 다시 회귀가 찾아왔다.


아무리 야구에 재능이 없어도 지난 삶에서 고교 3년, 프로 12년, 총 15년 동안 배트를 휘두른 몸이다. 고교야구에 날 막을 놈은 없었다.


그해 신인 드래프트 최대어는 나였고, 1순위 지명권을 가진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2년차부터 팀의 주전 3루수로 자리 잡았고, 커리어 내내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팀은 우승 근처에도 못 갔다.


괜찮다.


이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또 한 번의 회귀, 야구 선수가 된 후 맞는 세 번째 삶의 아침,


“밥 먹어라.”


“네.”


<타이거즈를 우승시키시오>


지난 두 번의 삶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방망이를 휘두른 나는 마침내 타격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재능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던 내게 야구기술과 노하우가 강제 주입되었다.


애송이들 틈에 껴서 고교야구를 초토화시켰다. 팀 성적은 잘해야 중위권이었지만 나는 그런 성적 따위로 평가받을 선수가 아니었다.


날 보고 침을 질질 흘리는 빅리그의 제안을 다 까버리고 1순위 지명권을 가진 타이거즈에 입단해 주전 유격수가 되었다.


“어떻게든 타이거즈를 우승시키고 싶습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요.”


“오오!”


듣는 사람이야 당찬 신인의 각오 정도로 받아들였지만 나는 정말 심각했다.


수 없이 많은 삶을 반복하며 내 정신은 점점 마모되고 있었다. 가끔은 내가 정말 인간인지 스스로 의문이 들 정도였다.


내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건 오직 하나,


타이거즈를 우승시키는 것뿐.


나는 그 목표를 위해 작동하는 기계였다.


그렇게 나는 선수로서 세 번째 인생에서 타이거즈의 중심타자이자 주전 유격수로 뛰며 KBO를 박살냈다.


하지만,


<KBO 역대 최고의 유격수로 기록될 백호, 그럼에도 단 한 번도 들어 올리지 못한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


<빅리그의 제안을 뿌리치고 타이거즈에 남았던 백호, 그의 마지막 소원이던 한국시리즈 우승은 너무나도 멀었다>


<선발싸움에서 밀린 타이거즈... 전문가들 “우승을 위해서는 확실한 에이스가 필요하다. 하지만 타이거즈에는 그 에이스가 없었다”>


KBO에서 우승을 한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던가?


날 따라오지 못하는 동료들에 대한 원망, 팀의 에이스를 훌렁 팔아버린 프런트에 대한 증오, 그럼에도 이 짓을 되풀이해야 하는 거지같은 운명,


세상을 저주하며 다시 아침을 맞았다.


“밥 먹어라.”


“......”


<타이거즈를 우승시키시오>


“얼굴이 왜 그러냐, 혹시 남자 놈이 울기라도 한 거야?”


그냥 자살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건 그 자살의 끝이 또 다른 회귀의 시작일 거라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또 한 번의 삶이 시작됐다.


변화가 필요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고등학교 야구부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내일부터 당장 나와! 넌 야구를 해야 해! 무조건!”


“입단 조건이 있습니다. 투수가 하고 싶습니다. 어떤 경기라도 좋으니 최대한 많이 마운드에 올려주세요.”


“뭐? 혹시 투수 경험은 있고?”


“아뇨, 처음입니다.”


“......”


“당연히 투수만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필요할 때는 타자로도 뛰겠습니다.”


“안 된다면?”


“전학 가야죠 뭐.”


테스트가 끝나자마자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감독 앞에서 투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우승까지 가는데 가장 필요한 건 타자가 아닌 확실한 에이스였고, 아무리 회귀를 반복해 봐도 타이거즈에는 그런 에이스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그 에이스가 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죽어라 공을 던졌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고교 리그 3년 간 내 투구 성적은 엉망진창이었다. 타자로서 내 완성도가 90이라면 투수로서는 잘 해야 30, 아니 20이 될까 말까였다. 우리 학교가 지역 최약체 팀이 아니었다면 마운드에 올라갈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야구 천재가 아니니까.


하지만 투구 성적과는 상관없이 나는 고교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였다. 부업삼아 뛴 타자 쪽에서 나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빅리그 구단들이 달려들었다. 나는 그들과 협상하는 척하면서 타이거즈의 단장을 따로 만났다. 그리고 선언했다.


“마운드에 서게 해주신다면 KBO에 남겠습니다.”


“네?”


“부상당하지 않을 선에서 타자로도 뛰겠습니다.”


“그게 무슨...?”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계약금이 얼마든 무조건 타이거즈에 입단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전 투수가 되고 싶습니다.”


구단 내에서도 찬반이 엇갈린 듯했지만 결국 타이거즈는 나를 지명했다. 일단 입단부터 시킨 후 살살 달래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데뷔 첫 번째 등판에서 1과 1/3 이닝 5피안타 2볼넷 4실점을 기록한 광주 타이거즈 신인 백호, 하지만 다음 날 경기 대타로 출전해 만루 홈런 작렬!>


<고교 최고 타자의 쓸데없는 고집, 그는 왜 되도 않는 투수를 고집하는가?>


그 당시 나는 명백히 프로 레벨의 투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내 목표는 이번 삶이 아니었으니까.


세상이 뭐라 하던 귀를 닫고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졌다.


프로레벨에서의 투구 경험이 절실했기에 패전처리든 뭐든 기회만 되면 등판을 자처했다. 부상 위험 때문에 본격적인 투타 겸업을 할 수는 없었지만 대타와 지명타자로 나서며 타격에도 한 손을 보탰다.


그렇게 12년간 공을 던졌다.


그 과정에서 몰랐던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내게 저주를 건 빌어먹을 자식이 딱 하나 나를 위해 남긴 게 있다는 걸.


회귀를 거듭할수록 내 원래 실력을 되찾는 기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분명 새로운 육체인데 DNA 어딘가에 과거의 기억이 전승되는 듯했다.


어쨌든 이제 KBO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게 없어졌다.


또 다시 찾아온 회귀, 다시 시작된 삶,


나는 고교 최고 투수라는 타이틀을 갖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했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괴물들을 상대로 공을 던지는 건 꽤나 흥미로웠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야구에 대해 재미를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메이저리거로서 총 세 번의 삶을 반복했다.


첫 번째 삶은 중간계투로, 두 번째 삶은 선발투수로, 세 번째 삶에서는 에이스 겸 타자 역할까지 수행했다.


그 세 번의 삶을 마칠 때 쯤 나는 인간의 감정 대부분을 잃었다.


대신 메이저리그 역대 어떤 선수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야구 그 자체라 불리는 선수가 되어 있었다. 무한한 시간이 내가 가진 재능의 한계를 뛰어넘어버렸다.


또다시 찾아온 회귀, 열세 번째 맞는 삶,


내 방 침대에서 눈을 뜨는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드디어 이 망할 놈의 저주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는 걸.


<메이저리그 직행이 유력하던 청진고등학교 3학년 투수 백호, 하지만 그의 선택은 광주 타이거즈>


<백호 “내 유일한 꿈이자 목표는 타이거즈를 우승시키는 것” 팬들과 전문가들조차 “아니, 그러니까 왜?>


그라운드에 발을 딛는 순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이 세상에, 적어도 야구로는 날 막을 존재가 없다는 걸.


나는 최고다.


- 백, 백, 백, 백칠십이! 백호가 던진 초구가 172km/h를 기록합니다! 맙소사! 스피드건이 고장 난 건 아니겠죠?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따아아아악!


- 광주 구장의 좌측 외벽을 넘기는 거대한 장외홈런! 단번에 경기를 뒤집는 만루 홈런이 터졌습니다! 맙소사... 이런 큰 홈런은 정말 처음 봅니다


- 다시 한 번 의문이 드네요. 백호 선수는 대체 왜 국내에 남은 걸까요?


왜긴, 이 빌어먹을 저주를 끝내기 위해서지.


광주 타이거즈의 에이스 겸 3번 타자로 뛰며 내가 가진 모든 걸 퍼부었다.


다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렸던 메이저리그 때와는 달리 선발투수 겸 중심타자로 전 경기 출장을 강행했다. 구멍 난 포지션을 찾아다니며 내 몸으로 그 구멍을 메웠다. 몸이 아플 때면 진통제를 먹고 버텼다.


어차피 한 번만 우승하면 되는 거다.


부상?


우승만 할 수 있다면 이깟 어깨,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려도 상관없다.


어떻게든 우승을 하고, 그래서 이 좆같은 저주에서 벗어나면 야구 같은 건 집어치우고 남태평양 한가운데 섬이라도 사서 한 10년 틀어박힐 생각이었니까.


- 네!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 백호가 이끄는 광주 타이거즈는 너무나도 강력합니다! 23연승! 23연승! 올 시즌 열두 번째 완봉승을 기록한 백호 선수의 활약에 힘입어 타이거즈가 KBO 최다연승 기록을 갈아치웁니다!


바로 직전 삶, 메이저리그를 박살냈던 선수가 KBO 팀의 우승을 위해 온몸 비틀기를 시전 했다. 침몰하려는 타이거즈를 내 두 어깨로 받쳐들었다.


그리고 결국,


서른 살 생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가을,


<야구 명문가의 부활! 한국시리즈 챔피언 광주 타이거즈!>


<세 번의 한국시리즈 도전 끝에 마침내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린 광주 타이거즈!>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초의 퍼펙트게임! 그 주인공은 광주 타이거즈 백호!>


<포스트시즌에서만 7승, 평균자책점 0, 홈런 15개, 32타점을 몰아친 백호 “이제 나는 자유다” 무슨 뜻?>


누군가 건네준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집어던지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에게 큰 절을 올리고 내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만족감이나 성취감 따위는 없었다.


그저 이제야 이 지긋지긋한 짓을 그만둘 수 있는 건가 하는 허탈감뿐이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다 간신히 잠이 들었다.


내일 아침, 열다섯이 아닌 서른 살의 나로 깨어나길 바라며,


하지만,


“밥 먹어라.”


장난해?


또 회귀라고?


왜?


타이거즈 우승시켰잖아?


설마 선수로 우승시키면 안 되는 거였어?


오랜 동안 잊고 있던 분노라는 감정이 활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그 분노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일단 밖으로 나가 부모님과 식사를 하고, 무술 대신 야구를 하겠다는 선언을 한 후 방으로 돌아왔다.


기다렸다는 듯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이거즈를 우승시키시오>


“꺼져. 안 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가 튀어 나왔다.


그 순간,


내 진심을 읽은 걸까, 아니면 뭔가 특이점이 찾아온 것인가.


십 수번의 회귀를 하면서도 한 번도 듣지 못한,


누군지 모를 빌어먹을 존재의 다음 대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타이거즈가 아니다>


“...뭐?”


<타이거즈는 태평양 건너에 있다>


“바다 건너? 그게 무슨... 혹시 일본? 한신 타이거즈?”


<그보다 더 멀리 있다>


“...더 멀리? 더 멀리... 설마...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우승시키시오>


“야, 이 미친 새끼야! 그걸 왜 이제 말해주는 건데!”


**


작가의말

본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단체, 사건 등은 현실이 아닌 가상으로 재구성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너무 과몰입하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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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030화.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되거라 +20 24.09.15 6,465 234 14쪽
30 029화. 이대로 돌아가라고? +15 24.09.14 7,131 240 19쪽
29 028화. 못할 일 같은 건 없다 +25 24.09.13 7,431 246 17쪽
28 027화. ...하기 딱 좋은 날씨네 +31 24.09.12 7,645 268 16쪽
27 026화. 피해라 +18 24.09.11 7,792 23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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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018화. 약속대로 박살내주지 +23 24.09.03 9,058 242 19쪽
18 017화. 팔꿈치를 붙여야 +16 24.09.02 9,023 259 17쪽
17 016화. 나는 천재가 아니니까 +16 24.09.01 9,214 239 17쪽
16 015화. 기대, 그리고 두려움 +25 24.08.31 9,600 245 25쪽
15 014화. 해보려 한다 +23 24.08.30 9,495 235 18쪽
14 013화. 보는 눈의 차이 +26 24.08.29 9,568 244 14쪽
13 012화. 삼대장 +23 24.08.28 9,750 252 17쪽
12 011화. 나는 행복합니다 +24 24.08.27 9,770 247 15쪽
11 010화. 백호 등장 +21 24.08.26 9,768 275 17쪽
10 009화. 그냥 제가 치겠습니다 +27 24.08.25 9,763 234 16쪽
9 008화. 주말리그 개막 +17 24.08.24 9,841 237 14쪽
8 007화. 내가 터트려준다고 +18 24.08.23 9,946 225 13쪽
7 006화. 너 진짜 야구 안 할 거야? +12 24.08.22 10,350 215 13쪽
6 005화. 이번 삶은 흥미롭다 +16 24.08.21 10,914 214 14쪽
5 004화. 청진고 야구부 +15 24.08.20 11,430 229 14쪽
4 003화. 인터넷 보고 배웠는데요 +14 24.08.20 11,822 239 16쪽
3 002화. 분노라는 감정 +15 24.08.19 12,740 248 14쪽
» 001화. 그걸 왜 이제 말해주는 건데! +83 24.08.19 14,273 338 20쪽
1 000화. 프롤로그 +17 24.08.19 15,597 236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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