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화. 백호 등장
- 아, 백호 선수가 그냥 타석에 들어섭니다. 투수 교체는 없습니다. 서광수 감독이 결단을 내렸습니다
- 이건... 네, 어려운 문제네요. 9회 초 수비를 생각하면 백호 선수를 빼면 안 되는 게 사실이지만... 어차피 다음 이닝이면 제한 투구 수에 걸릴 테고, 그렇게 연장으로 가서 승부치기를 하게 되면 선수층이 옅은 청진고가 무조건 불리해지거든요. 그럼 차라리 대타를 내서 득점을 노리는 게... 아, 이건 좀 아쉬운 결정이 될 수도 있겠네요. 괜히 익숙하지 않은 타격을 한다고 덤비다가 다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이제 백호 선수는 청진고 만의 선수가 아닙니다. 우리 야구계 전체가 나서서 보호해야 할 인재에요!
- 저기, 위원님, 일단 좀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 아뇨, 진짜에요. 저러다가 다친다니까요! 타격을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됩니다!
“플레이!”
그라운드 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린다. 이번에는 마운드가 아니라 타석이다.
오늘 경기에서 나는 단 한 번도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아니, 오늘 경기뿐 만이 아니라 회귀 후 단 한 번도 배트를 잡지 않았다.
투구를 위한 근육과 타격을 위한 근육은 서로 다르다.
이제 막 야구를 시작한 이 연약한 육체에 투타의 짐을 동시에 얹는 건 자살행위다. 재수 없으면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내 본래 계획은 1학년 일정이 끝날 때까지는 타격을 봉인하는 것이었다.
뻐엉
“스트라이크!”
- 네, 백호 선수가 초구 한 복판 스트라이크를 그냥 흘려보냅니다. 아니, 손도 못 댔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까요? 아무래도 타격 훈련은 한 적이 없어보입니다
- 잘 하는 거예요. 괜히 못 치는 거 치겠다고 덤볐다가 다칠 수도 있거든요. 얌전히 삼진 당하고 다음 이닝 투구를 준비하는 게 현명한 겁니다
- 하하, 위원님께서는 백호 선수의 열렬한 팬이 되신 거 같네요?
- 당연하죠. 우리나라 고교야구에 저런 투수가 나온 게 얼마만인데요. 보호해야 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제가 코치로 붙어서 관리해주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런 이유로 나는 회귀 후 단 한 번도 배트를 잡지 않았다. 감독과 코치 역시 내게 타격을 권하지 않았다. 오늘 경기 3타석 3타수 3삼진, 그게 내 성적이다.
방금 전까지도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괜히 배트를 휘두르다 몸 어딘가에 부하가 걸리면 괜히 내 본 실력으로 돌아가는 시간만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백호야! 긴장하지 말고! 괜찮아! 편하게! 편하게!”
“인마! 차라리 그냥 눈감고 휘둘러!”
“파이팅! 파이이이이팅!”
저기 덕아웃에서 날 바라보는 애송이들의 간절한 눈빛이 내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 많은 삶을 겪으며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았던, 그냥 NPC처럼 여겼던 사람들의 응원에 내 심장 근처 어딘가가 꿈틀거린다.
이상한 일이다. 내게도 이런 감정이 남아 있었던가.
그래서 한 번 마음 가는 대로 움직여보기로 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시키는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친다.
스륵
배트 그립을 길게 잡고 몸 쪽 공에 대응하기 위해 스탠스를 열었다.
회귀 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친 마지막 홈런이 생각난다. 그 홈런으로 나는 광주 타이거즈를 우승시켰었다. 물론 다 쓸데없는 짓이었지만.
이 몸은 아직도 약하고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내 스윙에는 지난 120년 동안 한국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쌓아온 타격의 기술과 노하우가 녹아있다.
그 스윙이 청주중앙고 투수가 던진 138km/h 포심을 강타했다.
따아아아아악!
- 이, 이, 이게 뭔가요! 뭡니까! 백호 선수가 친 타구가, 좌측으로! 좌측으로! 펜스를 넘어서! 관중석을 넘어! 맙소사! 경기장 외벽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장외홈런! 장외홈런! 이제 막 야구를 시작한 열다섯 살 소년이 타구를 경기장 밖으로 날려버렸습니다! 투런 홈런! 2대 0! 모두의 예상을 깨고 청진고가 2대 0으로 경기를 리드합니다! 정말 엄청난 홈런이었습니다!
- 으아아아아! 맙소사! 어쩌면 우연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저 1학년 선수에게 장외홈런을 칠 정도의 파워가 있다는 것 말이죠. 네, KBO 10개 구단 스카우트분들, 그리고 단장님들, 빨리 긴급회의를 소집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드래프트 전략부터 다시 세우세요. 한국 고교야구계에 괴물이 등장했습니다!
“우아아아아-!”
“백호야!”
“백호, 인마! 이게 뭐야? 너 타격 연습은 언제 한 거야?”
“미친! 시발, 진짜 미친!”
“야야야! 얘들아! 기쁜 건 알겠는데 이건 오버야! 갑자기 무슨 헹가래를 치려고 해? 아직 시합중이야! 내려놔!”
“아차차...”
만년 최하위 청진고 야구부에서 야구를 하며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기분,
같은 팀의 에이스가 상대 타자들을 완벽하게 압도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결승홈런까지 날리는 그 짜릿함,
치솟는 아드레날린에 반쯤 정신이 나갔던 청진고 학생들이 감독의 호통을 듣고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부웅
“스윙! 아웃!”
- 네, 청진고의 9회 초 공격이 끝났습니다. 백호 선수의 투런 홈런으로 스코어는 2대 0, 청진고가 두 점을 리드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청주중앙고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만이 남았는데요. 위원님, 고교야구가 원래 이렇게 재미있는 건가요? 오늘 경기,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네요
- 동감입니다. KBC 사장님께서 이 중계를 듣고 계신다면 앞으로 최대한 많은 고교야구 중계 편성을 부탁드리고 싶네요. 네, 중부권역 최약체 팀 중 하나인 청진고가 1학년 선수의 활약에 힘입어 첫 승을 올릴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투구 수 제한이네요
- 기록을 보니... 백호 선수가 8회까지 95개의 공을 던졌군요. 제한 투구 수까지는 단 10개만이 남았습니다
- 고교야구를 처음 보는, 아, 죄송합니다. 처음 듣는 분들이라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할 수도 있겠는데, 쉽게 말해 105개가 되면 볼카운트와 상관없이 투수를 교체해줘야 합니다. 어린 선수들의 어깨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죠. 이걸 청주중앙고 입장에서 생각하면 앞으로 딱 10개만 더 던지게 하면 저 백호 선수를 마운드에서 끌어내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 최대한 오래 공을 보겠군요. 커트 작전같은 게 나올 수도 있고요
- 그렇죠. 아무리 백호 선수가 빠른 공을 가졌다 해도 야구 초보인 건 변함없는 사실이거든요. 거기에 1회 같은 구속을 기대하기도 힘들 거고요. 백호 선수가 교체되게 되면... 조금 죄송한 말이지만 청진고 불펜에 청주중앙고 강타선을 막아낼 투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네, 신생팀의 한계라고 할 수 있죠
- 말씀드리는 가운데 백호 선수가 마운드로 올라옵니다. 이제 청진고의 첫 승은 모두 저 선수의 어깨에 달리게 되었습니다
**
“야, 편하게 생각해. 편하게. 정 안 되면 내가 마운드 올라가지 뭐.”
“너 마지막으로 공 던진 게 언제인데?”
“...한 1년 됐나.”
“퍽이나 잘도 던지겠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무튼 괴물, 넌 할 만큼 했어. 내일이면 프로팀 스카우트들이 너희 집이랑 우리 학교에 진을 칠 걸? 야, 뭐가 어찌 되든 너 약속은 지켜라? 조상혁 그 새끼 꼭 잡아줘야 돼. 유명해졌다고 나 몰라라 하고 그럼 안 된다?”
“알았다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서 앉아.”
“정나미 없는 놈. 기껏 격려해줄려고 했더니.”
감독도 그렇고, 강유찬 이놈도 그렇고, 다른 부원들도 그렇고,
다들 걱정되는 눈치다. 내가 투구 수 제한에 걸려 내려가면 그 뒤를 어떻게 막아야 하나, 그런 생각일 거다.
“자! 가자! 청진고!”
“파이팅!”
쓸데없는 걱정이다.
이제 10개밖에 안 남았다고?
아니, 10개나 남은 거다.
이 빌어먹을 그라운드에서 120년을 구른 놈이 공 10개로 고등학교 타자 셋을 못 잡으면 그냥 나가 죽어야지.
스륵
저놈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안 봐도 뻔하다. 투 스트라이크 전에는 절대 배트를 안 휘두를 것이고, 이후에는 배트를 짧게 잡고 커트 작전에 들어갈 거다.
그러니 일단,
뻐엉
“스트라이크!”
- 네, 초구 스트라이크. 138km/h, 아, 100개 가까운 공을 던져서 그런지 구속이 많이 내려왔습니다. 첫 타자 상대로 155km/h를 던진 후 줄곧 140에서 145km/h 정도의 구속을 유지하던 백호의 공이 138까지 떨어졌습니다
- 당연한 거죠. 이제 열다섯 살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열다섯 살 투수가 138km/h의 공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문제는 저 정도 구속으로는 청주중앙고 타자들을 누르는 게 힘들다는 거지만요. 그러니 승부는 이제부터입니다
예상대로다.
힘을 빼고 던진 한복판 공에도 전혀 미동조차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 더.
뻥
“스트라이크!”
- 1구에 이어 2구 역시 스트라이크! 이번에는 135km/h 포심이었습니다. 네, 정말 한계 투구 수가 다 왔다는 게 느껴집니다
- 아, 이러면 투수를 바꿔주는 게 나을 수도 있겠는데요. 물론 청진고의 남은 투수 중 누가 올라와도 막을 수 있는 보장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요
존 한복판으로 날아든 평범한 포심에도 역시 반응이 없다.
고등학교 선수들의 한계가 이런 거다. 아무리 감독이 기다리라고 했다 해도 프로 선수였다면 방금 그 공에 망설임 없이 배트가 나왔을 것이다.
덕분에 아주 쉽게 두 개의 볼 카운트를 잡아냈다. 제한 투구 수까지 남은 공의 개수는 여덟 개.
일단 이놈은 이걸로 처리하고,
뻐어어엉!
부웅
“스윙! 아웃!”
- 맙소사! 삼진 아웃! 아웃! 백호 선수가 던진 마지막 공의 구속이 150.1km/h! 네, 다시 구속이 올라왔습니다. 엄청납니다! 타자의 배트가 스치지도 못했습니다!
- ...지친 게 아니라 완급조절을 했던 건가요. 네, 갑자기 소름이 오싹 돋네요. 저 선수 정말 야구 초보, 아니, 열다섯 살 소년이 맞는 건가요?
마지막에 빠른 공으로 삼진을 잡았으니 다음 타자가 무슨 생각을 할지는 뻔하다.
그러니 여기서는 체인지업,
부웅
“스윙!”
- 또다시 헛스윙! 이번에는 132km/h 체인지업이었습니다. 스윙 타이밍이 너무 빨랐네요. 배트가 휘둘러지고 나서야 공이 들어왔습니다
- 지금 제가 청진고 덕아웃을 유심히 보고 있는데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 그게 뭘까요?
- 사인을 내는 게 감독이나 코치가 아니라 백호 선수라는 걸 알게 됐어요. 맙소사, 진짜 오늘 몇 번을 놀라는 건지. 상대 타자를 갖고 노는 저 볼 배합을 낸 게 백호 선수에요. 오늘 처음 마운드에 오른 투수라고요
150km/h 포심을 기다리던 놈이 132km/h 체인지업에 헛스윙을 하게 되면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게 마련이다. 경험 많은 프로라면 차라리 한 구종을 포기하고, 하나만 노릴 수도 있겠지만 이제 십대에 불과한 저 애송이들에게 그런 요령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
뻥
“스트라이크!”
- 아, 이번에는 무슨 공을 기다렸던 걸까요? 존 한복판에 들어온 138km/h 포심을 그냥 보냈습니다. 아, 청주중앙고 덕아웃에서 고함이 터져 나오네요. 감독이 화가 난 것 같습니다. 타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릅니다
멘탈이 바스러진 타자를 상대로 던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승부구는 이것.
뻐어어엉!
“스트라이크! 아웃!”
- 삼진! 두 타자 연속 삼진! 제한 투구 수까지 단 10개만을 남겨두었던 백호가 공 여섯 개로 두 타자를 처리합니다! 네, 이렇게 되면 해볼 만 해졌습니다! 이제 한 타자만이 남았습니다!
- 정말 놀랍네요. 저런 볼 배합은 말이죠. 프로에서도 정말 경험 많은 베테랑들이나 생각해낼 수 있는 그런 조합이거든요. 만약 오늘 이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들이 우연이 아니라면...
- 아니라면?
- 어쩌면 우리는 미래에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가 될 선수의 데뷔전을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엄청난 칭찬이군요. 네, 청주중앙고에서 대타가 나옵니다. 발가락 부상으로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던 팀의 주장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작년 대회에서 홈런 다섯 개를 쳤던, 일발 장타력을 갖춘 선수입니다
잘 아는 놈이다.
부상으로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던 저 팀의 주장이다. 정해진 운명대로라면 부산 타이탄스의 유니폼을 입게 될 선수다. SNS에서 쓸데없는 입을 털어대 구단과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하곤 하지만 실력 자체는 괜찮다.
회귀 초반이었을 때는 저 선수의 스윙을 부러워했던 적도 있었다. 타자에서 투수로 처음 전환했었을 때는 그 특유의 개잡는 스윙에 홈런을 얻어맞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완전한 고인물이 된 후에는 그냥 술 좋아하고 떠들기 좋아하는 인간으로만 인식하게 되었다.
팀도 다르면서 나만 보면 술 먹자고 질질 매달리던 게 생각난다. 타이거즈와 타이탄스 간에 벤클이 벌어졌을 때는 나를 꽉 끌어안고 자기네 애들 한 번만 봐달라고 했던 것도 기억난다.
이제는 모두 사라져버린 과거다.
- 자, 백호 선수가 이 마지막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이제 네 개 밖에 남지 않은 투구 수로 어떻게 강타자를 요리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어쨌든 내게 남은 투구 수는 네 개, 타석에는 일방장타력이 있는 타자.
아마 앞선 타자들과는 달리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배트를 휘두를 것이다.
그렇다면,
부웅
“스윙!”
체인지업으로 카운터를 하나 벌고,
뻐엉
“볼.”
바깥쪽 하이패스트볼로 시선을 흐트러뜨리고,
부웅
“스윙!”
반대 편 몸 쪽 낮은 체인지업으로 헛스윙을 유도하고,
- 네! 볼 카운트 원 볼 투 스트라이크! 아웃까지 필요한 카운트는 단 한 개뿐! 하지만 백호 선수에게 허락된 투구 수도 단 하나만이 남았습니다. 다음 공을 던지게 되면 청진고는 곧바로 투수를 교체해야 합니다!
마지막 공,
여기서는 굳이 잔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다.
내가 던질 수 있는 최선의 공을 던지고, 그 결과를 지켜보면 된다.
만에 하나 안타나 홈런을 맞더라도, 그래서 투수가 바뀌고 우리 팀이 역전을 당한다 해도,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다. 오늘 경기를 통해 백호라는 투수가 등장했다는 걸 알렸으니 이후의 일은 내 알 바 아니다.
하지만,
- 양 팀 선수들이 덕아웃 난간에 매달려 애타는 얼굴로 그라운드를 바라봅니다. 아, 정말 보기만 해도 절박하네요. 보는 제가 안타깝습니다. 지난겨울 동안 흘린 땀과 노력이 이 한 번의 승부에 결정 날 테니까요
그럼에도 난 이 한 구에 전력을 담아보려 한다.
동료들의 절박한 얼굴에도 내 마음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이런 작은 시도들이 언젠가는 바짝 말라버린 내 삶의 재미를 되찾아주길 바라며,
그런 변덕을 담은,
오늘 경기 가장 힘껏 던진 포심패스트볼이 포수 미트를 향해 날아갔다.
뻐어어어엉!
“스트라이크! 아웃! 게임 셋!”
- 배, 배, 배, 백, 백오십육! 백오십육! 맙소사! 백호 선수가 오늘 경기 가장 빠른 공을 마지막 타자와의 승부에서 기록했습니다! 156km/h! 대한민국 고교야구 역사상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1학년 투수가 혼자 힘으로 경기를 끝내버렸습니다! 9이닝 18K 완봉!, 거기에 승부를 결정짓는 장외 홈런까지! 오늘 이 경기의 주인공은 백호였습니다!
“우아아아아아아-!”
“이겼다! 이겼다고!”
“백호야!”
“미친! 이 괴물! 괴물같은 놈!”
내게는 숨 쉬는 것보다도 자연스러운, 수도 없이 경험한 승리일 뿐이다.
하지만 언제나 패배에 익숙해져있던, 혹은 타의에 의해 야구를 그만두어야 했던 애송이들에게는 의미가 조금 다를 지도 모르겠다.
“어깨는 치지 마라. 중요한 일을 해야 할 몸이니까!”
“이런 재수 없는 새끼!”
“팔꿈치는 만지지 마세요, 선배. 제가 좀 민감하거든요.”
“응? 어어, 그래, 알았어. 으아! 이겼다!”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외야 관중석을 바라본다. 멀리서 봐도 누군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남자가 허둥지둥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아버지,
그냥 커밍아웃하세요.
야구 좋아하는 게 무슨 죄입니까.
더럽게도 야구를 못하는 팔콘스 그 팀이 문제지.
그런 망할 팀은 잊어버리고 마음 편히 아들 야구나 보러 다니세요.
그럼 지는 게 뭔지 잊어버리게 될 겁니다.
**
- 작가의말
처음 제 글을 보게 되신 독자분들, 그리고 지난 작품들에 이어 또다시 찾아와주신 분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일부터는 오전 11시 20분으로 연재시간을 고정해보겠습니다.
추후 변동이 생기면 다시 공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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