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천재투수가 메이저리그를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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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빵소년
작품등록일 :
2024.08.1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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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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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화. 애송이들

DUMMY

주말리그 전반기에 우승했다고 해서 뭔가 대단한 일이 생기는 건 아니다.


그저 6월부터 열리는 황금사자기 진출권과 상위시드, 그리고 올해부터 도입된 약간의 상금과 상장, 모교의 우승에 흥분한 동문회에서 보내온 후원금, 기자들의 취재요청, 갑자기 늘어난 전학 문의...


어라, 모아놓고 보니 꽤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내 고교야구 역사상 가장 시끌벅적했던 주말리그 전반기가 끝났다.


<2027 고교야구 주말리그 전반기(중부권역) 우승 청진고, 준우승 남일고>


<주말리그 전반기 중부권역 최우수선수상 백호(청진고), 우수투수상 김서율(남일고), 감투상 강유찬(청진고), 수훈상 정우진(청진고), 타격상 백호(청진고), 타점상 최동선(남일고), 도루상 박충원(남일고), 홈런상 백호(청진고), 감독상 서광수(청진고), 공로상 문태수(청진고 교장)>


<신생팀의 반란, 22명의 선수들이 만들어낸 기적! 그 누구도 예상 못했던 7연승>


<최우수선수상과 타격상, 홈런상 등 세 개의 개인타이틀을 독식한 백호, 이번 주말리그 전반기가 배출한 최고의 선수>


<남일고 감독 “우리 선수들은 잘했다. 내가 지시한 대로 완벽하게 플레이했다. 거기서 백호를 걸렀어야 했다. 그 녀석이 마스크를 썼을 때 쉽게 보지 말았어야 했다. 청진고의 첫 우승을 축하한다”>


<대전우수고 정태식 감독 “백호가 1학년 중 최고라고? 동의할 수 없다. 하반기에는 조상혁이 훨씬 나은 선수라는 걸 보여줄 것”>


“백호야.”


“네, 감독님.”


야구부실 감독 자리 벽면에 스포츠신문 스크랩 액자가 잔뜩 나붙어 있다.


저건 어디서 사온 걸까? 이 근처에 종이신문 파는 데가 없을 텐데.


“고맙다.”


“네?”


“내 자리에 이런 것들을 붙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


그 말을 하던 감독이 히죽 웃으면서 액자들을 쓰다듬었다.


음, 아무래도 대전우수고 감독의 열폭한 인터뷰 기사가 가장 마음에 드나보다. 굳이 저딴 걸 정중앙에 걸어놓은 걸 보면 말이다.


“어쨌든!”


“네.”


“오늘 널 부른 건... 아무래도 네 포지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마. 투수, 좌익수, 포수... 또 뭘 할 수 있지?”


내가 인터넷 보고 야구를 배웠다고 말하면 뭔 헛소리를 하냐는 듯 쳐다보던 사람이 드디어 내 말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나보다.


포지션이라...


그러고 보니 대충 선발로 뛰면서 가끔 필요할 때 좌익수 알바나 하려던 계획이 많이 틀어졌다. 진심으로 던지고 치고, 달리고, 거기에 포수 마스크까지 썼다.


“제가 인터넷 보고 배운 포지션은...”


“그래, 인터넷에서 배운 포지션, 어디어디지? 내가 미리 알아둬야 널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안 해본 포지션 같은 건 없다.


가장 많이 뛴 건 유격수였고, 그 다음은 외야수다. 2루나 3루로 뛴 적도 많고, 체력이 떨어졌을 때는 1루에 배치되기도 했다. 포수 알바도 해본 적 있다.


차라리 못하는 포지션을 물어보면 좀 더 대답하기 쉬울 것 같은데.


“일단 외야는 다 가능할 것 같고, 유격수는, 네, 자신 있습니다. 3루수도 괜찮겠죠. 2루에 서도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1루도 가능하지만 굳이...?”


“흐음...”


내 대답에 감독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옆에 앉아 있던 최성준 코치가 입을 딱 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감독이 옅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너도 들었겠지만 지금 전학 문의가 엄청 오고 있거든. 우리가 성적은 냈는데 선수층이 얕다는 걸 들은 모양이야. 그 친구들이 가을에 전학을 온다 치면 내년부터는 정말 제대로 야구를 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올해는 아니야. 어쩔 수 없이 이 인원으로 대회를 치러야 하지. 백호야, 그러니 네가 수고 좀 해줘야 할 것 같다.”


“문제없습니다.”


“좋아,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포지션에 서게 될 지는 조금 더 생각해보자. 아,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부탁 하나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씀하세요.”


“다른 게 아니라 부원들이 너한테 많이 의지하는 거 같던데, 가끔 시간이 나면, 뭔가 다른 동료들에게 해줄 말이 있으면 우리 신경 쓰지 말고 해줘. 감독이나 코치가 지적하는 것보다 옆에서 말해주는 게 더 도움이 될 때가 있거든.”


글쎄, 그러다 애송이들 멘탈이 터질 수도 있을 텐데,


뭐, 원한다면,


“어렵지 않죠. 제 훈련에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신경 쓰겠습니다.”


“좋아,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대신 감독님.”


“응?”


“제가 봐주는 선수들은 제 마음대로 굴려도 될까요?”


“으응?”


**


“엄마.”


“왜, 아들.”


“말하는 타이밍이 좀 늦어진 거 같은데 승우네 집 망했데. 지금 고모네 집에서 산다네.”


“그래, 정확히는 몰라도 대충 짐작은 했다.”


“어떻게?”


“옷 입고 다니는 거 보면 알지. 아무래도 엄마 손이 안 닿으면 어딘가 티가 나거든. 더군다나 승우같은 부자 집 애들은 더더욱. 아무튼 그냥 모른 척하고 평소 하던 대로 해줘. 지금처럼 아침마다 계속 밥 먹으러 오라고 하고.”


“알았어. 그리고 나.”


“또 뭐?”


“야구 다시 할까봐.”


“지금도 하고 있잖아?”


“아니, 프로를 목표로 달려볼까 생각 중이야.”


“아들.”


“응?”


“엄마랑 아빠가 뭐라고 했지?”


“네 인생은 네가 알아서?”


“정답. 더 이상 길게 말할 필요 없지? 우리는 너 믿어. 그러니 하고 싶은 대로 해. 대신 나중에 결과가 안 좋아도 부모 원망은 하지 말고, 아, 승우도 같이 하는 거지? 너나 승우나 야구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하고. 우리가 그 정도는 해줄 능력 되니까.”


“고마워요, 엄마.”


“알면 니 방 정리나 좀 해. 엄마도 이제 나이 먹어서 뒤치다꺼리하기 힘들다.”


엄마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강유찬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혼자 등교한다. 최승우가 몸살 끼가 있다며 오전에는 집에서 쉰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침밥은 챙겨먹었을까, 친구를 걱정하며 교실로 향했다.


“자, 다음 지문에 대한 풀이로 가장 적절한 답을 골라보자.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주말리그 전반기에 우승했지만 일상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다. 오후 3시까지는 정규수업을 들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야구부로 가 훈련을 해야 한다. 앞으로 열흘 후에 시작될 주말리그 후반기를 위해 말이다.


조상혁, 그놈에 대한 원한과 기억은 많이 옅어졌다. 그날 백호에게 워낙 처절하게 당하는 걸 봐서 그런지, 아니면 그놈으로 인해 결과론적으로 주말리그 우승까지 맛보게 된 게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남의 바르지 못한 점을 탓하지 말라. 남이 무엇을 하든 참견 말라. 다만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만을 생각하라.


출가할 시간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점점 스님 같은 풍모를 풍기는 박정진 선배가 해준 말이다. 법구경이란 곳에 나오는 말이란다.


물론 그 말을 백 프로 따를 자신은 없다. 조상혁 그놈은 바르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애초에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인성이 삐뚤어진 존재니까.


하지만 마지막 구절은 꽤 도움이 된다.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만을 생각하라.


그 글귀를 되뇌이며 생각해본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수고하셨습니다!”


“오냐, 자율학습 할 놈들은 열심히 하고, 학원가는 녀석들은 차 조심하고, 아, 유찬이랑 승우는 훈련 열심히 하고. 하반기에도 기대해도 되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유찬이 야구부라는 걸 신경조차 안 쓰던 담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뭘 하든 일단 시작하면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최승우, 축하한다.”


“뭘.”


“아르바이트에서 벗어난 거.”


“난 또 뭐라고. 백호 덕분이지 뭐.”


창단 후 첫 주말리그 우승은 청진고 선수들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일단 학교 측의 대우가 완전히 달라졌고, 후원금이 늘어나며 훈련장비가 더욱 좋아졌다. 첫 우승에 신이 난 교장은 후원금 중 일부를 떼서 백호에게 주려고 했다. 정확히는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되는 활동비를 면제해주려 한 것이다.


하지만 백호는 그 혜택을 거부했다. 집에 돈이 많아서 굳이 안 그래도 된다며 차라리 형편이 어려운 선수에게 사용해달라고 감독에게 권한을 넘겨버렸다. 그리고 감독은 그 권한을 최승우에게 사용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해보자.”


“결심한 거야? 야구에 올인하기로?”


“일단은.”


“그래? 포지션은? 투수? 포수?”


“안 그래도 감독님하고 상의해봤는데 올해까지만 포수에 신경 써달라시더라. 내년에 신입생하고 전학생들 들어오면 억지로 마스크 쓸 일은 없을 거라고. 그래서 그때 결정하기로 했어. 전업 투수가 될지, 아니면 계속 포수를 할지. 그런데 내가 왼손잡이라 포수로 프로가 되는 건 힘들지 싶긴 해.”


“우와, 그걸 고를 수 있다니, 재능 넘치는 새끼들은 다르네.”


“재능 같은 소리 한다. 백호 같은 놈도 있는데, 이건 그냥 평범한 거지.”


“전업 외야수는 나가 죽어야겠는 걸.”


“됐고, 엄마가 너 주말 아침에도 밥 먹으러 오래.”


“아니, 주말에는 고모가 차려주셔. 일 안 나가시거든.”


“혹시나 필요하면 오라는 뜻이야.”


“오냐, 너희 엄마 장조림 생각나면 벌떡 일어나서 달려가마.”


그렇게 두 친구가 이런저런 잡담을 주고받고 있던 그때, 멀리서 백호가 등장했다. 그러더니 강유찬과 최승우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뭐야, 쟤 뭐라는 거야.”


“자기 쪽으로 오라는 거 같은데.”


“장난하나. 우리가 무슨 강아지도 아니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두 사람은 쪼르르 백호에게로 달려갔다.


“왜, 왜, 왜 부른 건데.”


“잠깐 따라와 봐.”


“나도?”


“심심하면 따라오든지, 마음대로.”


백호가 두 사람을 데리고 간 건 피칭랩이 설치된 불펜이었다.


자신의 몸에 센서를 부착한 백호가 시스템을 가동시켰다.


“뭐하는 건데?”


“잘 봐. 너랑 나랑 반대손이긴 한데, 원리는 똑같으니까. 일단 첫 번째, 지금 네가 던지는 팔의 각도와 스윙.”


짧은 설명을 마친 백호가 강유찬의 투구 폼을 따라하며 열 개 정도의 공을 뿌렸다. 그 모습을 본 최승우가 혀를 내둘렀다.


“야, 쟤 저렇게 던져도 148이 나오네.”


“......”


그렇게 기초 데이터를 쌓은 백호가 시스템을 리부팅하며 말했다.


“자, 이게 앞으로 네가 새로 배워야 할 투구 폼.”


“뭐?”


“일단 지켜 봐.”


쓰리쿼터에서도 한참 내려와 사이드암에 가까운, 아니, 사이드암이라 봐도 무방한 팔각도에서 또 열 개의 공이 뿌려졌다.


“쟤는 진짜 별 걸 다 하네.”


“......”


그렇게 두 개의 폼으로 각각 다른 데이터를 축적한 백호가 강유찬을 모니터 앞으로 불러들였다.


“잘 봐. 이게 원래 네 폼, 이건 새로운 폼. 그리고 공이 그리는 궤적, 어때, 뭔가 느껴지는 거 없어?”


“공이 안 떨어지네.”


“정확히는 덜 떨어지는 거지. 어깨에 무리도 덜하고, 구속도 빨리 상승할 거야. 너한테는 이 폼이 더 어울려. 애송, 아니, 고교 리그에서는 물론이고, 프로에 가서도 이게 훨씬 나을 거고. 그러니까 죽어라 연습해. 지난번처럼 마무리로 올라와서 똥 쌀 생각하지 말고.”


“또, 똥이라니!”


“똥 싼 거 맞잖아. 내가 3루 주자 못 잡았으면 그대로 경기 뒤집어졌을걸?”


“......”


“폼은 내가 봐줄 거고, 여기 피칭랩 투구는 코치님이 도와주실 거고, 아, 그리고 웨이트 프로그램도 새로 짜줄 테니까 그대로 따라 해. 무식하게 러닝만 하지 말고, 요즘 누가 러닝으로 하체 힘을 키워? 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중학교 때 감독님이...”


“쯧, 아무튼 꼰대들이란, 여튼 야구 제대로 할 거면 끝까지 싹 다 뜯어고쳐. 지금까지 배운 거 다 잊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그러면 너도...”


“너도 뭐?”


제법 쓸 만한 투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백호는 굳이 하지 않았다. 그냥 슬금슬금 도망가려던 최승우의 어깨를 움켜잡았을 뿐이다.


“어딜 가. 이제 아르바이트 안 해도 된다며. 따라 와. 너도 특별 프로그램을 짜줄 테니까.”


“아니, 난 지금도 충분히 만족하는데...”


“내가 만족 못해. 그러니까 따라 와. 제대로 훈련만 했어도 지난 번 그 타구는 잡을 수 있었을 걸? 네 수비에 내 평균자책점이 달려 있다고.”


“이해는 했는데 나중에 하면 안 될까? 지금은 급하게 가볼 데가...”


“닥치고 따라온다. 실시.”


최승우를 질질 끌고 그라운드로 향하는 백호를 보며 강유찬은 생각했다.


저놈은 대체 어떤 놈일까, 조금 알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아니었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좋은 놈인가, 나쁜 놈인가, 그 이분법적 사고를 기준으로 하면 분명 좋은 놈이라는 걸. 가끔은 로봇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사실은 웃을 줄도 아는 놈이라는 걸.


그리고 언젠가는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 가만, 그건 그렇고, 팔을 내려라... 흠, 그렇단 말이지’


**


왕왕!


“그렇게 크게 안 짖어도 다 들린다. 조용히 해.”


얼마 전 입양한 강아지다. 골든 리트리버 새끼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냥 누렁이다.


데려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주인을 알아본다. 문밖으로 지나가는 이웃주민이나 배달부를 대할 때랑 우리 가족을 대할 때랑 눈빛부터 몸짓까지 모든 게 다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개라는 동물은 대체 왜 이렇게 사람을, 주인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걸까? 혹시 저주에라도 걸린 걸까? 사람을 좋아해야 무한회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저주 같은 거.


“너도 고생이다.”


머리 한 번 쓰다듬어주고 집을 나서려는데 녀석이 같이 놀자는 건지 뭔가를 가져와 내 앞에 내려놓았다.


야구공이다. 누군가 한참 쓴 것 같은 낡은 야구공,


뭐지, 이 근처에 누구 야구하는 사람이라도 있나.


침이 잔뜩 묻은 공을 집어 마당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이딴 거 갖고 놀지 마. 저주받을라. 내가 오면서 다른 장난감 사다줄게.”


세상에 갖고 놀게 얼마나 많은데 야구공 따위를.


강아지에게 사다줄 장난감을 생각하며 학교로 출발했다.


뻐어엉!


“공 좋다!”


“내 공 좋은 거 나도 아니까 소리 그만 지르고 잘 받기나 해.”


“...말을 해도 꼭.”


생각보다 몸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회귀한 지 이제 고작 2달하고 절반 정도밖에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페이스가 쭉쭉 치고 올라온다. 공을 던지기 위한 근육들이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갈 길이 먼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좋아, 이제 교대.”


“오케이.”


던질 만큼 충분히 던졌다. 이제는 강유찬의 공을 받아줄 차례다.


자리를 바꿔 홈플레이트에 주저앉았다.


“던져봐.”


“간다.”


파앙


파아앙


“글러브 낀 손 너무 들어 올리지 마. 던지는 팔각도가 퍼지잖아.”


“내가 그랬다고?”


“얼리코킹 구간에서 팔이 몸에서 멀어지면 안 된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하냐.”


“아니, 그건 아는데. 흠... 오케이, 신경 써서 던져볼게.”


이놈 공을 받아주면서 새삼 느낀다.


세상에는 정말 천재가 있구나.


최고구속이 137km/h 남짓하던 놈이 투구 폼을 살짝 건드린 것만으로 138km/h의 공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겨우 며칠 세부 조정 작업을 진행한 것만으로 또 1km/h가 상승했다.


이제 이 녀석은 140km/h 가까운, 제법 공 끝이 날카로운 포심을 던질 줄 아는 좌완투수가 되었다. 내 생각인데 가을이 되었을 때쯤에는 확실하게 140km/h를 넘기게 될 것이다. 물론 140을 던질 수 있는 것과 그것을 존안에 넣을 수 있는 건 또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만약 이런 놈이 나처럼 열 네 번의 회귀를 겪었다면...


글쎄, 어쩌면 인류는 처음으로 180km/h를 던지는 투수를 보게 되지 않았을까?


아님 말고.


파앙


“그만, 오늘은 여기까지.”


“응? 벌써?”


“오른 발 내려놓는 위치가 자꾸 왔다 갔다 하니까 피칭랩 가서 그거부터 교정해. 현수 선배님한테 도와달라고 하든지.”


“그래? 오른발이? 흠, 그렇단 말이지.”


강유찬을 보내고 포수 장비를 해제했다. 하지만 쉴 시간 같은 건 없다.


이제는 타격훈련을 할 시간이다.


따악!


따아악!


“...그물망 높이길 잘했네. 점점 더 타구가 멀리 가는 거 같은데.”


“신기하네. 체격은 정진 선배보다 훨씬 작은데 대체 어디서 저런 파워가 나오는 거지?”


고등학교 1학년이 막 시작된 지금 내 사이즈는 186.5cm에 87kg이다. 회귀 직후 몸무게가 84에서 5 정도였던 걸 감안하면 느리지만 꾸준히 벌크업이 되고 있다.


이렇게 야구에 필요한 몸을 만드는 작업은 앞으로 3년, 아니, 프로가 된 후에도 계속 될 것이다. 내 육체의 성장이 20대 초반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아악!


따아아악!


“저 다 했습니다. 선배님.”


“그래, 이제 내 차례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박정진이 내 뒤를 이어 배팅케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그걸 본 코치가 피칭머신의 세팅을 랜덤으로 변경했다. 구속, 구종이 랜덤으로 결정되는, 박정진처럼 변화구에 대한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타자에게 꼭 필요한 기능이다.


따악!


부웅


따악!


안경을 새로 맞춘 후 박정진 선배의 변화구 대처능력은 꽤 많이 좋아졌다.


릴리스 포인트를 보고 구종을 예측하는 법도 배우고 있고, 지금처럼 피칭머신이 던지는 공을 때릴 때는 공이 튀어나오는 순간을 캐치하는 연습도 진행 중이다. 아직 멀고 멀었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저 노력들이 모여 포텐이 터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물론 그때쯤이면 저 사람은 야구선수가 아니라 스님이 되어있겠지만.


뭐, 듣기로는 스님들로 구성된 야구 클럽도 있다 하니, 어떻게든 써먹을 데가 있지 않을까?


“선배, 그렇게 앞으로 나오면서 치는 것보다는 그냥 처음부터 스트라이드 폭을 넓힌 상태에서 배트가 나가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이렇게?”


“아뇨, 이렇게. 이러면 타구에 반응하는 속도가 조금이라도 더 빨라지거든요. 어차피 힘은 충분하시니까요.”


“아하...! 그런데 백호 넌 어디서 이런 걸 배운 거야?”


“인터넷이요.”


뭐가 그리 좋은지 흐뭇한 표정으로 나와 박정진을 바라보던 감독이 박수를 짝짝 치며 선수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았다.


“좋아, 이번 주말리그 후반기 우리의 첫 상대는 대전우수고다. 지난번에 우리에게 졌으니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겠지. 솔직히 말하마. 다른 팀에는 다 져도 그놈들한테는 지고 싶지 않은데, 혹시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


그 말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손을 번쩍 들어 올린 강유찬과 최승우가 날 향해 무언의 눈빛을 보내왔다.


뭐, 왜, 나도 손 들라고? 지난번에 조상혁을 충분히 괴롭혀서 그런지, 솔직히 아무 생각도 안 드는데.


쯧, 그래. 뭐, 손 한 번 든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옜다.


“오오! 그래, 백호까지... 음, 나랑 같은 생각을 가진 녀석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그런데 얘들아. 사실은 농담이야. 어차피 이겨도 1승이고, 지면 1패다. 그냥 평소랑 똑같은 경기일 뿐이야. 그러니까 부담감 가질 필요 없다. 열심히 준비해서 전반기 우리의 우승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자. 알았지?”


“네! 감독님!”


“좋아, 최 코치. 너는 뭐 할 말 없고?”


“저는 딱히... 아, 얘들아. 너희 중간고사 성적 전달 받았는데... 음, 다행히 대부분은 커트라인을 넘어섰는데... 백호.”


“네?”


“너 한국지리랑 세계사 점수가... 음, 백호야. 중간고사는 그렇다 치고 기말고사 때는 이러면 안 돼. 커트라인 못 넘으면 2학기 때 시합 못 나가는 거 알지? 특별반 끌려가서 보충수업 받기 싫으면 조금만 더 열심히 해보자.”


“......”


빌어먹을,


국어 영어는 그렇다 치고 한국지리랑 세계사 같은 게 기억 날 리가 있냐고.


이상한 일이다. 육체의 퍼포먼스는 역대 급인데 공부와 관련해서는 역대 최악이다. 설마 밸런스 패치같은 거라도 당한 건가.


“아하하하, 아하하! 백호 너 어떻게 하냐.”


“최승우.”


“넵! 코치님.”


“뭘 그렇게 웃어? 니 점수가 백호보다 낮은데.”


“전 한 칸 씩 밀려써서 그런 건데요.”


“거짓말 하지 마. 니 답안지까지 보고 왔는데. 3번에 놓고 다 밀었더라? 나 때 하던 짓을 요즘 애들이 여전히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니가 우리 야구부 성적 꼴찌야. 아무튼 백호, 최승우, 파이팅이다. 응? 낙제만은 면해보자?"


“......”


하,


또 최승우랑 얽힌 거야?


아, 진짜 자존심 상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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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031화. 그 인터넷이라는 거 나도 좀... +22 24.09.16 5,772 226 18쪽
31 030화.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되거라 +20 24.09.15 6,465 234 14쪽
30 029화. 이대로 돌아가라고? +15 24.09.14 7,128 24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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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026화. 피해라 +18 24.09.11 7,791 231 12쪽
» 025화. 애송이들 +24 24.09.10 8,125 236 21쪽
25 024화. 웃고 있는 거 맞지? +20 24.09.09 8,190 252 17쪽
24 023화. 동영상 강의 참조해서... +21 24.09.08 8,377 235 14쪽
23 022화. 구원투수 +12 24.09.07 8,602 217 13쪽
22 021화. 한 번 해보자고 +21 24.09.06 9,009 221 19쪽
21 020화. 박살 +15 24.09.05 9,051 266 16쪽
20 019화. 더! 더! 더! +24 24.09.04 9,123 273 18쪽
19 018화. 약속대로 박살내주지 +23 24.09.03 9,057 242 19쪽
18 017화. 팔꿈치를 붙여야 +16 24.09.02 9,020 259 17쪽
17 016화. 나는 천재가 아니니까 +16 24.09.01 9,210 239 17쪽
16 015화. 기대, 그리고 두려움 +25 24.08.31 9,598 245 25쪽
15 014화. 해보려 한다 +23 24.08.30 9,493 235 18쪽
14 013화. 보는 눈의 차이 +26 24.08.29 9,567 244 14쪽
13 012화. 삼대장 +23 24.08.28 9,750 252 17쪽
12 011화. 나는 행복합니다 +24 24.08.27 9,770 247 15쪽
11 010화. 백호 등장 +21 24.08.26 9,766 275 17쪽
10 009화. 그냥 제가 치겠습니다 +27 24.08.25 9,759 234 16쪽
9 008화. 주말리그 개막 +17 24.08.24 9,839 237 14쪽
8 007화. 내가 터트려준다고 +18 24.08.23 9,942 225 13쪽
7 006화. 너 진짜 야구 안 할 거야? +12 24.08.22 10,348 215 13쪽
6 005화. 이번 삶은 흥미롭다 +16 24.08.21 10,908 214 14쪽
5 004화. 청진고 야구부 +15 24.08.20 11,429 229 14쪽
4 003화. 인터넷 보고 배웠는데요 +14 24.08.20 11,820 239 16쪽
3 002화. 분노라는 감정 +15 24.08.19 12,738 248 14쪽
2 001화. 그걸 왜 이제 말해주는 건데! +83 24.08.19 14,270 338 20쪽
1 000화. 프롤로그 +17 24.08.19 15,593 236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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