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천재투수가 메이저리그를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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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빵소년
작품등록일 :
2024.08.1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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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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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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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화. 약속대로 박살내주지

DUMMY

<고교야구 중부권역에 부는 청진고 돌풍, 청주중앙고와 대전대부설고, 충주성진학교에 이어 전주IT고와 공주제일고까지 차례로 격파하며 파죽의 5연승>


<창단 후 5년 간 최고성적이 6위에 불과했던 청진고, 지역 최강 남일고와 함께 중부권역 공동 1위에 랭크되다>


<청진고 돌풍의 핵심은? 마운드에서 4승 무패, 1세이브, 타석에서 타율 5할, 홈런 3개, 6타점을 기록한 1학년 에이스 백호(15)>


<백호의 등장에 환호하는 국내 야구계... 전문가들 “올해 1학년들 중에는 정말 좋은 투수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전우수고의 조상혁과 청진고의 백호는 당장이라도 성인무대에 도전할 만한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다”>


“조상혁.”


“네, 감독님.”


“저 기사들을 보니 무슨 생각이 들지?”


“우습네요.”


“우스워?”


“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기자들이 갑자기 저렇게 태도를 확 바꾸는 게 웃깁니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에 불과한 놈이 감독에게 하는 대답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만했다. 감독의 눈썹이 일순간이나마 찌푸려졌다.


하지만 조상혁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린 감독이 빠르게 표정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마음과는 전혀 다른 말을 내뱉었다.


“이틀 전에 너희 아버님하고 통화를 했다. 걱정이 많으시더구나.”


“늘 그러시죠. 저희 아버지는.”


“아들을 생각하시는 거지. 한국야구계를 위해 많은 일을 하시면서도 언제나 자식 걱정을 하고 계시는 거야.”


정태식 감독의 말에 조상혁이 미간을 찡그렸다 폈다.


분명 아버지의 그늘이 필요하긴 하지만 가끔은 간섭이 지나칠 때가 있다. 심지어 그 간섭이 자신을 지도하는 감독의 입을 통해 전해지니 영 성가시다.


“남일고에게 진 건 잊자.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딱 하나야. 청진고를 박살내는 거. 그래서 빼앗긴 1위 자리를 되찾아오는 것, 조상혁이라는 이름 옆에 백호라는 어중이떠중이의 이름을 올리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저 기자들에게 알려주는 것.”


감독의 말에 조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마지막 말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알겠습니다. 감독님.”


“좋아, 청진고 전 선발은 너다.”


“네.”


“그래, 그럼 나가봐. 아, 아버님에게 조만간 서울에 찾아갈 일이 있으니 그때 꼭 뵙자고 말씀드리고.”


대화를 마친 조상혁이 감독실을 빠져나왔다.


언제나 우승이 목표인 대전우수고는 지난 주말 열린 라이벌 남일고와의 경기에서 4대 2, 두 점차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주포인 백준성이 감기몸살로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되자 감독은 조상혁 대신 다른 투수를 선발로 등판시켰다. 일종의 희생양이었다.


벌써 10년 넘게 지역 최강자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여온 대전우수고와 남일고지만 두 팀의 팀 컬러는 확연히 달랐다.


전국구급 좌완투수 김서율을 중심으로 끈끈한 팀플레이를 펼치는 남일고가 전통의 강호라면 조상혁이 속한 사립 대전우수고는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선수들을 끌어 모은, 등록된 부원만 70명에 달하는 신흥강호다.


다만 대전우수고에는 확실한 에이스가 없었다.


조상혁이 남일고 대신 대전우수고를 선택한 건 그런 이유였다. 입학과 동시에 에이스 자리를 꿰찰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파앙


파아앙


불펜에 도착한 그가 천천히 연습투구를 시작했다.


얼마 후 열릴 주말리그 전반기 여섯 번째 경기 청진고등학교 전,


그 경기에서 조상혁은 다시 선발로 복귀할 예정이다.


생각할수록 짜증이 치솟는다.


백호라고? 이제 막 야구를 시작한 애송이를 고작 공 좀 빠르다고 자신과 비교한다고?


거슬리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강유찬과 최승우, 중학교 때 주제도 모르고 자신에게 대들다 그라운드에서 쫓겨났던 놈들이 다시 야구를 시작했단다.


파앙


파아앙


박살내버릴 거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다시 그라운드로 기어들어온 두 머저리들,


감히 자신 옆에 이름을 올린 백호라는 애송이까지.


차라리 잘된 일이지도 몰랐다.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 몽땅 한 바구니에 담겨있지 않은가? 청진고라는 바구니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나,


그 바구니를 완전히 박살내서 다시는 아무 것도 담을 수 없게 만드는 것.


파앙


파아앙


조상혁의 공에 점점 더 힘이 실렸다.


**


“혹시 가고 싶은 팀이 있으신가요? 역시 지역 팀인 대전 팔콘스...?”


“전혀요.”


“음, 그럼 가장 존경하는 야구선수는 누구인가요? 플레이 스타일만 놓고 보면 예전 대전 팔콘스 투수였던 정...”


“굳이 꼽자면 잭 모리스?“


“잭 모리스요? 왜 하필 그 선수를?”


“디트로이트를 우승시켰으니까요.”


“네?”


“그보다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하나요? 저 별로 시간이 없는데.”


주말리그 전반기 여섯 번째 경기를 며칠 앞둔 청진고 야구부 훈련장,


백호를 취재하기 위해 청진고를 찾은 기자가 난감한 표정으로 동행한 카메라맨을 돌아보았다.


‘이놈 제정신 아닌 거 같지?’


‘아무래도 도라이 같은데’


예전에 비해 위상이 많이 낮아지긴 했지만 어쨌든 장래 한국프로야구를 책임질 새로운 스타들의 등용문이 바로 고교야구다.


156km/h를 던지는 고교 1학년생, 그것만으로도 이미 화제성은 충분하다. 그 선수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서 대전까지 내려왔다.


그런데 뭐 하나 건질만한 대답이 없다.


“지난 다섯 경기 중 어느 경기가 가장 힘들었나요? 역시 1대 0으로 승리했던...”


“충주성진학교와의 경기가 좀 힘들긴 했죠. 그날은 제가 선발이 아니었거든요.”


“...상대해본 투수들 중 가장 까다로운 공을 던지는 투수는 누구였습니까?”


“글쎄요. 딱히 없었는데... 볼넷을 많이 당해서 그게 좀 힘들긴 했죠.”


“......”


뒤에 서 있던 카메라맨이 발로 기자를 툭툭 쳤다. 더 이상 해봐야 시간낭비일 것 같으니 대충 정리하고 가자는 뜻이었다.


살짝 한숨을 쉰 기자가 준비했던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다음 경기에 조상혁 선수와 선발 맞대결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동 나이대 최고 유망주로 평가받고 있는 선수와의 대결이 부담되지는 않으신가요?”


“부담이요?”


백호가 스파이크 끈을 조여 매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주구장창 볼만 안 던져댔으면 좋겠네요.”


“......”


아무래도 기사가 아니라 소설을 써야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기자들이 훈련장을 떠났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백호의 인터뷰를 엿듣고 있던 감독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백호야...”


“네.”


“하아, 아니다... 훈련해.”


저런 놈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인터뷰는 싫다는 놈을 억지로 잡아다 앉힌 내가 미친놈이다.


한숨을 내쉰 감독이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저기, 기자님. 네, 저 서광수입니다. 아이고... 저랑도 인터뷰 좀 하시지.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십니까. 네, 지금이라도 차를 돌리셔서, 여기 학교 근처에 아주 유명한 삼계탕 집이 있는데, 어떻게 식사라도 같이...”


**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열다섯 살을 연기하는 게 지겹고 따분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


하필이면 딱 그런 날에 맞춰 기자가 찾아왔다.


솔직히 뭐라고 말했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답했던 거 같다.


뭐, 그쪽에서 알아서 잘 편집하겠지. 아니어도 상관없고.


따악!


따아악!


“...오늘따라 더 굉장하네.”


“쟤 진짜 우리랑 같은 고등학생 맞지?”


“백호야! 웬만하면 그물망은 넘기지 마! 그러다 또 자동차 유리 깨질라!”


“다음 경기에서도 꼭 그렇게 쳐야 한다! 야! 약속 잊지 마!”


“약속? 무슨 약속? 유찬이 너 백호랑 무슨 약속했어?”


“앗, 아뇨. 주장. 그냥 개인적인 일입니다.”


마지막 질문은 특히 웃겼다.


조상혁이랑 붙는 게 부담되지 않느냐는 그 질문 말이다.


대전우수고 조상혁...


그래, 괜찮은 선수다. 소위 말하는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야구천재,


내가 살아온 삶들 속에서 어떨 때는 대전 팔콘스의 레전드로, 또 어떨 때는 부산 타이탄즈의 에이스로 군림했던 선수다. 인성과는 별도로 실력하나는 인정해야 할 놈이다.


그런데,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그놈은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야구천재, 나는 1년에도 수십, 수백 명씩 나오는 범재 중의 범재.


스타트라인만 놓고 보면 비교도 안 되겠지.


하지만 나는 남들이 한 번밖에 달려보지 못하는 트랙을 수도 없이 반복해 달렸다. 그 트랙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해야 최적의 루트를 찾아낼 수 있는지 연구하며 수많은 시간을 보냈다.


따아아악!


따아아아악!


“...결국 그물망 넘어갔네. 주장, 저기 좀 더 올려야 할 것 같아요. 제가 한 번 가볼게요. 혹시 차 유리 깨졌는지 확인해봐야 할 거 같아요.”


“아냐, 내가 다녀올게. 너는 훈련 하고 있어.”


강유찬과 최승우가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저 녀석들에게는 다음 경기가 너무나도 중요할 것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저 두 녀석이 그라운드로 돌아온 건 조장혁, 아니, 조상혁을 잡기 위해서니까.


녀석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과 별개로 다음 경기는 내게도 정말 중요하다.


감독이 말해줬다. 누군가를 통해 들은 모양이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그 망할 놈의 팀 스카우트가 드디어 한국에 들어왔단다. 그리고 이번 주말 우리 팀의 경기를 보러 온단다.


오랜만에 의욕이 마구마구 솟는다.


따아아아악!


“우와... 저거 어디까지 가니...”


“백호야, 그만 하면 안 될까? 나중에 그물망 보수하면 더 하든지.”


“네, 안 그래도 다 했습니다. 선배님.”


컨디션은 최고다. 손가락, 발가락 하나 아픈 곳 없고, 행여나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습도와 온도까지 세밀하게 조절하고 있다.


다음 경기,


무조건 박살낸다.


잘 봐둬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이 망할 자식들아.


**


- 2027 고교야구 주말리그 전반기 일정도 어느덧 6주차로 접어들었습니다. 오늘은 중부권역에 속한 청진고와 대전우수고 간의 경기를 라디오가 아닌 TV로 생중계해드리겠습니다. 제 옆에 최영식 해설위원님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위원님


- 안녕하세요, 최영식입니다


- 일단 중요한 일전을 앞둔 양 팀에 대한 소개가 필요할 것 같군요


- 알겠습니다. 먼저 대전우수고는 전국대회 우승 7번, 준우승 3번에 빛나는 신흥강호로 대전 팔콘스 출신 정태식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리그 전반기에서는 남일고와의 맞대결에서 아깝게 패배하며 5승 1패로 중부권역 3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 대전우수고를 대표하는 선수로는 누가 있을까요?


- 네, 주목할 만한 선수로는 오늘 경기 선발로 등판할 조상혁 선수를 꼽고 싶습니다. 중학리그를 재패하고 대전우수고에 입학하자마자 에이스 자리를 꿰찬 유망주입니다. 이제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140km/h 후반대의 포심과 커브볼, 심지어 스플리터까지 던질 줄 아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완성도를 자랑하는 투수입니다


- 대단하네요. 스펙만 놓고 보면 당장이라도 프로로 보내야할 것 같습니다


- 맞습니다. 백호 선수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2029년 드래프트 1픽은 무조건 조상혁이라는 말까지 나왔었죠. 어쨌든 조상혁 외에도 대전우수고에는 눈여겨볼만한 선수들이 많습니다. 올해 고교야구 최고 타자후보 중 하나인 백준성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타격이 아주 좋습니다. 3년 연속 중부권역 팀 타율 1위 팀, 그게 바로 대전우수고입니다


-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청진고에 대해 살펴보죠


- 창단한지 5년 된 신생팀으로 주말리그 6위가 최고 기록입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어? 그런 팀이 어떻게 현재 1위지? 하실 텐데요. 네,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저기, 그라운드 위에서 몸을 풀고 있는 등번호 18번, 저 선수 때문입니다. 백호, 네, 올해 처음 야구를 시작한 신입생이 청진고를 저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 조상혁 대 백호, 백호 대 조상혁, 두 학교를 대표하는 1학년 에이스들이 오늘 경기에서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대전우수고로서는 어떻게든 오늘 경기를 잡아 1위 자리를 탈환하려 할 것이고, 청진고 역시 쉽게 물러나려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잠시 후 청진고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


“빌어먹을 단장 놈.”


어디서 술 한 잔 걸치고 온 것인지, 아니면 피부색이 원래 그런 건지, 얼굴에 홍조를 띈 중년 백인남자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이슨 브라운,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극동아시아 담당 스카우트다.


“젠장, 눈이 다 뻑뻑하군. 이걸 나 혼자 다 만들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군.”


노트북 가득 저장된 선수 파일을 뒤적거리며 제이슨이 투덜거렸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는 스몰마켓이다. 도시의 크기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야구단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관심과 소비능력, 그리고 구단의 투자 의지를 기준으로 하면 2027년의 타이거즈는 명백히 스몰마켓 팀에 속한다.


스몰마켓 팀의 첫 번째 덕목이 무엇인가? 당연히 신인선수를 발굴하는 거다.


어차피 FA같은 대형계약이 힘드니 싼 값에 어린 선수들을 발굴해 잘 키워 다시 비싸게 팔아먹는 게 바로 스몰마켓 구단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팀은 글렀어’


얼마 전 새로 경영권을 잡은 구단주 그룹이 프런트 조직에 손을 댔다.


삼분의 일 가까운 인력이 날아갔고, 그 중에서도 특히 스카우트 팀의 인원이 가장 많이 감축되었다. 야구가 뭔지조차 제대로 모르는, 그저 숫자로만 모든 걸 판단하는 머저리들다운 짓이다.


그런 이유로 이제 극동아시아 지역의 선수들을 발굴하는 업무는 제이슨의 독차지가 되어버렸다. 좋게 표현하면 권한이 강화된 거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독박을 쓰게 된 거다.


‘애슬레틱스에서 사람을 뽑는다고 했던가...’


제이슨의 머릿속에 이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하지만 고개를 털어 그 생각을 날려버렸다.


타이거즈의 직원이기에 앞서 열렬한 팬인 그다. 철이 들 때부터 이 팀을 응원해왔고, 그동안의 흥망성쇠를 함께 해왔다. 자신이 뽑은 선수들이 주축이 되었던 이 팀의 마지막 전성기,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어딘가가 울렁거린다.


“빌어먹을 베이스볼.”


자신이 아무리 투덜거려도 타이거즈는 계속 이럴 것이다. 투자의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구단주, 덩달아 의욕을 상실한 직원들, 성적이 어떻든 자기 연봉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태도의 선수들, 그 틈바구니에 끼어 미처 꽃을 피지도 못하고 사그러드는 유망주들.


자신이 왜 이딴 팀의 팬이 된 것인지 저주하던 제이슨이 파일 몇 개를 화면에 띄웠다.


대전우수고의 조상혁과 백준성, 청진고 백호,


오늘 체크해야 할 한국 고교야구의 유망주들이다.


“어디 한 번 보자고. 소문처럼 그렇게 대단한 녀석들인지.”


**


그라운드에 선 이상 목표는 승리다.


하지만 오늘 내게는 그보다 더 큰 목표가 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스카우트 앞에서 내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한눈에 완전히 반해버리게, 눈만 감으면 내가 생각날 정도로 만들어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저기 마운드 위에서 적개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조장혁, 아니, 조상혁, 저 얼간이는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잘 됐다. 저런 눈빛이면 최소한 도망은 안 가겠지.


“플레이 볼!”


경기개시가 선언되고 타석에 최승우가 들어섰다.


조상혁이 마운드에 있어서 그런지 녀석의 눈빛이 평소와 많이 다르다.


언제나 반쯤 눈을 감은 채 졸린 표정을 하고 다니는 녀석이 두 눈을 번득이며 마운드를 노려보았다. 그 순간 조상혁의 초구가 날아왔다.


뻐엉


“스트라이크!”


- 초구 스트라이크! 네, 몸 쪽 낮은 코스에 완벽하게 제구된 149km/h 포심이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생이 던진 거라고는 믿기지 않는 묵직한 공입니다


- 네, 조상혁 선수의 주 무기 중 하나가 바로 저 포심입니다. 구속 자체는 아직 150을 넘지 못하지만 구위가 아주 좋고, 거기에 제구까지 완벽합니다. 나이에 비해 완성도가 높아요. 2년 후에 과연 어떤 선수가 되어 있을지 정말 기대됩니다


어떤 선수가 되긴, 팔콘스의 에이스, 혹은 타이탄스의 공 던지는 노예가 되겠지.


아, 내가 메이저로 갈 테니 타이거즈의 선수가 될 수도 있겠군.


인성 문제는 제쳐두고 순수하게 실력으로만 평가하자면 저놈은 육각형에 가까운 투수다. 구속, 구위, 구종, 제구력, 경기운영능력까지, 투수에게 필요한 모든 걸 갖춘 녀석이다.


그런 투수를 상대로 1년 간 공백기가 있었던 최승우가 안타를 때려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바깥쪽 낮은 코스로 날아오다 뚝 떨어지는 139km 스플리터에 최승우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부웅


“스윙! 아웃!”


“그렇지! 조상혁 잘한다!”


“대전우수고 파이팅!”


- 이야, 방금 공은 정말 좋았습니다. 포심과 거의 구분이 힘들었거든요. 아마 최승우 선수도 스윙을 하기 전까지는 패스트볼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 그렇죠.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거 같습니다. 지금은 KBO에서 일하고 계시죠. 네, 조완용 전 팔콘스 단장도 아들을 보면서 흐뭇해하시겠네요


무슨 일이 있어도 조상혁의 공만큼은 반드시 치겠다던 녀석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나는 강유찬, 최승우, 저 둘과 조상혁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조상혁의 아버지 조완용에 대해서는 잘 안다.


이전 삶에서 나와 별 접점이 없었는데도 지나칠 정도로 나를 못마땅해했지. 내가 벤클이라도 벌이면 엄벌을 내려야 한다고 헛소리를 지껄이기도 했고, 그 부인이 운영하는 스포츠 언론사에서는 매일 나에 대한 찌라시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내가 자기 아들을 처절하게 박살냈던 게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 그게 맞는 것 같다. 그동안은 내 목표와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라 신경을 안 썼는데 아무리 봐도 그것밖에는 이유가 없다.


조상혁을 상대로 한 내 타율이 6할, 아니 7할 정도 됐었나?


어차피 고교야구에 내 상대는 없었지만 특히나 조상혁 저놈은 이상할 정도로 내게 약했다. 대충 휘둘러도 배트에 공이 와서 맞았다. 가끔은 정말 공이 수박만 해 보일 때도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른다. 솔직히 별 관심도 없고.


따악!


“아웃!”


- 네, 최승우의 삼진에 이어 이번에는 정우진이 2루수 앞 땅볼로 물러납니다. 정말 좋은 공이었습니다. 네, 조상혁 선수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응원단을 향해 손을 들어 보입니다


어쨌든 저기 죽을상을 하고 나를 쳐다보는 최승우, 그리고 강유찬 놈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조상혁을 때려잡고 싶은 거라면 정말 제대로 찾아온 거라고.


<3번 타자 투수 백호>


애송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그리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스카우트의 눈에 들기 위한 내 첫 번째 타석이 시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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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031화. 그 인터넷이라는 거 나도 좀... +22 24.09.16 5,772 226 18쪽
31 030화.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되거라 +20 24.09.15 6,464 234 14쪽
30 029화. 이대로 돌아가라고? +15 24.09.14 7,128 240 19쪽
29 028화. 못할 일 같은 건 없다 +25 24.09.13 7,429 246 17쪽
28 027화. ...하기 딱 좋은 날씨네 +31 24.09.12 7,643 268 16쪽
27 026화. 피해라 +18 24.09.11 7,791 231 12쪽
26 025화. 애송이들 +24 24.09.10 8,122 236 21쪽
25 024화. 웃고 있는 거 맞지? +20 24.09.09 8,190 251 17쪽
24 023화. 동영상 강의 참조해서... +21 24.09.08 8,376 23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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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021화. 한 번 해보자고 +21 24.09.06 9,008 221 19쪽
21 020화. 박살 +15 24.09.05 9,051 266 16쪽
20 019화. 더! 더! 더! +24 24.09.04 9,123 273 18쪽
» 018화. 약속대로 박살내주지 +23 24.09.03 9,057 242 19쪽
18 017화. 팔꿈치를 붙여야 +16 24.09.02 9,018 259 17쪽
17 016화. 나는 천재가 아니니까 +16 24.09.01 9,208 239 17쪽
16 015화. 기대, 그리고 두려움 +25 24.08.31 9,598 245 25쪽
15 014화. 해보려 한다 +23 24.08.30 9,492 235 18쪽
14 013화. 보는 눈의 차이 +26 24.08.29 9,565 24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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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009화. 그냥 제가 치겠습니다 +27 24.08.25 9,759 234 16쪽
9 008화. 주말리그 개막 +17 24.08.24 9,839 237 14쪽
8 007화. 내가 터트려준다고 +18 24.08.23 9,942 225 13쪽
7 006화. 너 진짜 야구 안 할 거야? +12 24.08.22 10,348 215 13쪽
6 005화. 이번 삶은 흥미롭다 +16 24.08.21 10,907 214 14쪽
5 004화. 청진고 야구부 +15 24.08.20 11,426 229 14쪽
4 003화. 인터넷 보고 배웠는데요 +14 24.08.20 11,819 239 16쪽
3 002화. 분노라는 감정 +15 24.08.19 12,736 248 14쪽
2 001화. 그걸 왜 이제 말해주는 건데! +83 24.08.19 14,269 338 20쪽
1 000화. 프롤로그 +17 24.08.19 15,591 236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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