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천재투수가 메이저리그를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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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빵소년
작품등록일 :
2024.08.18 10:03
최근연재일 :
2024.09.1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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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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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017화. 팔꿈치를 붙여야

DUMMY

대량 득점이 날 것 같았던 경기가 4대 3에서 그대로 멈춰버렸다.


정우진의 2타점 2루타 이후 양 팀 선수들 중 누구도 홈플레이트를 밟지 못했다.


1년 만에 선발로 복귀한 강유찬은 6이닝 3실점이라는 썩 괜찮은 성적을 기록한 후 마운드를 내려갔다. 상대 선발 정태양 역시 7이닝 4실점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다음 투수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청진고는 물론이고 충주성진조차 제대로 된 중간계투를 보유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조금 더 점수가 날 거라 생각했지만 파이팅 넘치는 수비들이 계속 나오며 상대의 득점을 방해했다.


청각장애까지 갖고서 무슨 야구냐는 소리를 듣던 충주성진학교 선수들도, 취미로 야구를 할 거면 그냥 가서 공부나 하라는 소리를 듣던 우리 팀 선수들도, 뭔가에 홀린 듯 그라운드에 몸을 던졌다.


나는 투혼이라는 말을 상당히 싫어한다.


일 년에 140, 160경기나 되는 긴 일정을 치러야 하는 야구에서 순간의 감정에 못 이겨 자신의 몸을 함부로 던지는 건 미친 짓이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나는 야구가 좋아서라 아니라, 그저 해야 해서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내 사전에 투혼 따위는 없다.


“그렇지! 나이스!”


“할 수 있다! 청진!”


흙먼지로 더럽혀진 유니폼을 입은 동료들이 밝은 얼굴로 파이팅을 외치는 걸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이 저주에서 벗어나도 평범한 삶을 살긴 글렀구나.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열심히 하는지 조금도 이해가 안 가는데, 어떻게 남들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 어차피 내 인생은 외로워질 수밖에 없겠구나. 예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어디 남태평양 한가운데 무인도라도 하나 사서 늙어죽을 때까지 거기 틀어박히는 게 세상을 위해, 나를 위해 옳은 일이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


뻐엉!


“스트라이크! 아웃!”


8회 말 2사 2루 찬스, 어쩌면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를 우리 팀의 공격기회가 무산되었다.


스코어는 여전히 4대 3, 한 점 차의 리드, 이제 충주성진학교의 마지막 공격만이 남게 되었다.


“자, 괜찮아! 잘 했어! 아직 이기고 있어! 이제 한 이닝만 막으면 돼!”


“수고했어! 민수도 수고했고, 정진이! 아까 스윙은 좋았어. 다음부터는 조금만 더 타이밍을 빠르게, 내 말 이해했지?”


“네, 코치님.”


“좋아, 가자! 마지막 수비다! 다들 집중해서! 서로서로 협력 플레이 하고!”


벤치에서 일어나 글러브를 집어 들고 좌익수 자리를 향해 달려갔다.


수비수들이 자리를 잡자 정우진이 크게 파이팅을 외쳤다.


“파이팅! 청진고 파이팅!”


“파이팅!”


나도 따라 파이팅을 외쳤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는 최승우 놈이 중견수 자리에서 어깨를 떨고 있었고, 저 멀리 내야수들의 뒷모습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내겠다는 결의가 느껴졌다. 7회 수비에서 쥐가 났었던 정우진은 글러브 낀 반대편 손으로 계속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저들이 부럽다. 뭔가를 위해 저렇게까지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부럽다.


따악!


“파울!”


경기 결과가 어떻게 나던, 오늘 나는 목표했던 모든 걸 이뤘다.


좌익수로서 충분한 수비능력을 보여줬고, 타격에서도 홈런은 추가하지 못했지만 3루타 한 방과 홈스틸, 그리고 주루 플레이를 선보이며 스카우트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아마 지금쯤 저 사람들은 나를 투수로 써야 할지, 타자로 키워야 할지 고민 중일 거다.


따악!


“페어!”


- 네! 이번에는 파울이 아닙니다! 라인 안쪽에 떨어지는 타구! 한 점 뒤진 충주성진학교가 마지막 공격에서 무사에 주자를 내보냅니다!


때문에 이 그라운드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내 알 바 아니다.


내 앞으로 날아오는 타구만 잘 처리하면 그걸로 오늘 내 할 일은 끝이다.


아직 경기는 진행 중이지만 내게는 이미 끝난 경기나 마찬가지다.


딱!


- 잘 맞은 타구가 좌측으로! 아! 잡았습니다! 전력질주로 달려간 백호 선수가 타구를 잡아냈습니다! 2루까지 내달렸던 주자가 서둘러 1루로 귀루합니다!


- 정말 멋진 플레이네요! 저게 빠졌으면 무사 2, 3루, 어쩌면 동점이 되면서 무사 2루가 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네, 백호 선수가 팀을 위기에서 건져냈습니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네요. 백호 선수는 그냥 공만 잘 던지는 투수가 아닙니다. 강력한 타자이며 멋진 수비수입니다. 고교야구에 정말 엄청난 선수가 등장했어요, 정말로요


“잘 했다! 백호야!”


“파이팅! 파이팅!”


그러니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목이 완전히 쉬어 목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는 주제에 저렇게 계속 파이팅을 외치는 일 같은 거, 그만뒀으면 좋겠다.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벌써 2승도 거뒀고, 강유찬 저놈도 마운드에서 감을 찾았고, 정우진 당신도 추억으로 남을 역전타를 날렸고, 그 외 사람들도 큰 실수 없이, 아니, 인생에 남을 경기를 치렀잖아?


여기서 지면 뭐 큰일 나? 작년까지 꼴찌가 당연시되던 팀이 2승이나 거뒀으면 나머지 경기는 좀 편하게 가도 되잖아, 빌어먹을, 안 그래?


“볼, 베이스 온 볼스.”


- 아, 아쉽네요. 볼입니다. 볼넷, 이로서 주자가 두 명으로 불어납니다. 1사 1, 2루, 동점에 역전주자까지 루상에 출루했습니다


- 청진고로서는 어떻게든 다음 타자에서 끊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주자를 꽉 채운 상태에서 정태양과 상대하게 될 수도 있어요


투수 코치가 마운드로 올라오고, 배터리와 내야수들이 마운드 위에 모였다.


모이긴 했지만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그나마 마운드에 세울 만한 투수들은 다 올라왔으니 어떻게든 이 상태로 경기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청진고 선수가 아닌, 제3자의 냉정한 시각에서 보자면,


승부는 이미 넘어갔다. 저기 마운드 위 2학년 투수가 다음 타자, 그리고 그 다음 타자인 정태양을 막아낼 확률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30% 이하다.


귀에 문제가 생기기 전만 해도 전국 레벨에서 놀던 타자들이다. 운이 좋아봐야 동점이고, 그나마도 운이 안 따르면 역전이다.


“볼, 베이스 온 볼스.”


- 아... 오늘 경기, 잘 버텨온 청진고가 결국 최악의 위기에 몰렸습니다. 1사 주자 만루, 타석에는 충주성진학교의 간판타자 정태양이 들어섭니다. 위원님, 투수가 교체될까요?


- 아마 그렇겠죠? 그런데 청진고에 남은 투수가... 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좀 뭐하지만 지금 마운드에 있는 투수보다 좋은 중계투수가... 보이질 않네요. 워낙 선수층이 얇은 팀이라서요. 네, 이번에는 코치가 아니라 감독이 직접 마운드로 향합니다. 아무래도 교체를 할 모양이네요


이번에는 외야수까지 모두 마운드로 소집되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투수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그라운드 위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수고했다. 공 이리 줘.”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잘 했어. 그리고 다음 투수는 음...”


감독의 얼굴에 망설임이 떠올랐다. 이제 남은 투수라고는 딱 한 명, 마운드에 선지 1년이 넘은 2학년 투수 한 명뿐이다.


그럼에도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늘은 등판시키지 않을 거란 약속을 지키려는 것이다.


“일단 희철이가...”


이상한 일이다. 그 모습이 왜 나를 꿈틀거리게 만드는 걸까.


답 없는 전력, 핀치에 몰린 팀, 한 방이면 모든 게 끝나는 위기,


지난 삶에서, 지지난 삶에서, 수없이 되풀이되어온 내 삶에서,


수도 없이 보아온 이 익숙한 광경을 왜 예전처럼 못 본 척 넘기기가 힘든 걸까. 나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하고 외면하기가 힘든 걸까.


모르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을 깊게 생각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느니 그냥 이 상황을 빨리 끝내버리는 게 나을 거 같다.


“감독님.”


“응? 백호야, 왜.”


“제가 던지겠습니다.”


“뭐? 안 돼. 너 어깨도 못 풀었잖아. 괜찮으니까 선배들에게 맡...”


“조금만 시간 끌어주세요. 몸은 금방 풀 수 있습니다.”


어리둥절해하는 감독과 동료들을 그대로 두고 덕아웃으로 걸어 들어갔다.


투수 글러브로 바꿔 끼자 복잡하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


파앙


파아앙


- 아! 백호네요! 백호입니다! 청진고의 투수가 백호로 교체되었습니다!


- 의외네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기 내내 제가 유심히 살펴봤는데요. 잠깐이라도 불펜에서 몸을 푸는 걸 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오늘 백호의 등판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 연습 투구 몇 개만으로 어깨를 푸는 건 초보 투수에게는 무리일 거 같은데요


- 그럼에도 청진고 응원단, 그리고 프로팀 스카우트들의 눈빛이 기대감으로 물들어갑니다. 지난 두 번의 선발등판에서 18이닝 동안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은 투수의 등장에 관중석이 술렁거립니다


- 네, 저도 백호 선수가 던지는 걸 보고 싶긴 한데...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등판시킬 거면 차라리 미리 준비를 시켰으면 어땠을까... 너무 즉흥적인 결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러다가 결과가 안 좋으면 선수에게도, 팀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음, 부디 그런 일이 없길 바래야겠네요


파앙


파아앙


연습투구가 시작되었다. 그 사이 우리 감독은 주심을 붙들고 원래 등판하려 했던 투수가 갑자기 배탈이 나서 부득이하게 내가 나서게 되었다고, 그러니 조금만 더 연습시간을 달라 조르고 있다.


파앙


파아앙


외야에 서 있다 바로 마운드에 오르는 건 그 어떤 선수라 해도 힘들다. 등판할 계획이 있다면 중간중간 불펜에 가서 몸을 풀어두는 게 맞다.


하지만,


파아앙!


“공 좋다! 좋아!”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다.


광주 타이거즈의 우승을 위해 정말 안 해본 짓이 없다. 수비수로 뛰다가 바로 마무리로 투입되는 일 같은 건 수십, 수백 번도 더 겪어봤다.


투수 어깨 빨리 풀기 같은 대회가 있다면 무조건 우승은 내 차지일 거다.


나는 그 분야에서 이 세상 제일가는 전문가이니까.


파앙!


파아앙!


“됐습니다. 던지겠습니다. 코치님.”


“그래? 벌써? 괜찮겠어?”


“네.”


빠르게 투구 준비를 마쳤다.


계획에도 없던 마운드에 올랐으니 빨리 경기를 끝내야할 것 같다. 새로 이사한 집에 가서 내 방도 정리해야 하고, 이래저래 할 일이 많다.


“플레이!”


경기 개시사인에 맞춰 곧바로 초구를 뿌렸다.


어깨가 완전히 풀린 건 아니지만 나머지는 던지면서 마저 풀면 된다. 수도 없이 해본 일이다.


뻐어엉


“스트라이크!”


- 148km/h! 네, 자신의 최고 구속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충분히 빠른 공입니다. 타자가 채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존 한복판에 공이 날아와 꽂혔습니다


- 하, 정말 대단하네요. 어깨 풀 시간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실력만 좋은 게 아니라 몸까지 타고난 것 같습니다. 좋네요, 진짜 멋진 선수입니다


기왕 마운드에 오른 김에, 그리고 아직 완벽하게 어깨가 풀리지 않은 걸 고려해,


조금 다른 방식의 투구를 보여줄 생각이다.


뻐엉


“스트라이크!”


- 2구 연속 스트라이크! 아, 이번에도 배트를 내지 못했습니다. 존 한복판으로 날아온 135km/h짜리 평범한 포심이었는데요, 실투였을까요? 정태양 선수가 아깝다는 듯 허공을 바라봅니다


- 네, 제 생각에도 실투였던 거 같습니다. 손에서 공이 빠진 것 같아요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타이밍이다.


좋은 투수가 될 수 있는 조건에는 구속, 구위, 제구력, 다양한 변화구, 배짱, 내구성,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이 있지만 아무리 그런 조건을 모두 갖췄다 해도 상대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법을 모르면 말짱 꽝이다.


이걸 반대로 이야기하면 아직 몸이 덜 풀려 최고구속을 내기 힘든 상황이라 해도, 타이밍을 뺏는 법을 안다면 얼마든지 승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거다.


초구 148, 2구 135, 같은 폼에서 나온 두 가지 구속의 포심에 시야가 흐트러진 애송이 타자.


그런 녀석에게 필요한 건,


부웅


뻐어어엉!


“스트라이크! 아웃!”


- 152km/h! 152km/h! 나왔습니다! 백호 선수의 주 무기인 포심패스트볼에 정태양 선수가 꼼짝도 하지 못했습니다! 1사 주자 만루가 2사 주자 만루로 바뀝니다! 청진고 응원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옵니다!


- 이야, 이건 저라도 못 쳐요. 전성기 때 제가 돌아와도 못 치는 공입니다. 그러고 보니 두 번째 공이 실투가 아니었네요. 포심의 구속을 늦춰서 체인지업처럼 써먹은 거예요. 정태양 선수에게는 방금 마지막 공이 152가 아니라 160 이상으로 느껴졌을 겁니다. 저러면 절대 못 치죠


“Holy shit...!”


누군지 몰라도 빅리그팀 스카우트로 추정되는 감탄사가 내 귀에 포착되었다.


그래, 많이 감탄해라. 그래서 미국 가서 소문도 좀 내고, 응?


타이거즈 그 머저리들한테까지 들릴 정도로 크게 좀.


“자! 이제 진짜 다 왔다! 한 타자만!”


“가자! 청진고! 파이팅!”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정우진의 파이팅 소리.


듣기만 해도 힘들어 보인다.


그래, 이제는 이 경기를 끝내자.


앞선 타자가 빠른 공에 삼진을 먹는 걸 보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타자,


아직 머릿속에 타격에 대한 정의가 완전히 잡히지 않은 애송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방법은...


딱!


- 초구! 쳤습니다! 네, 투수 머리 위로 높이 떠오르는 공, 백호 선수가 위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 타구를 받아냅니다! 이야, 진짜 무슨 만화의 한 장면 같네요! 공 하나로 마지막 타자를 깔끔하게 잡아내며, 경기 끝났습니다! 최종 스코어 4대 3! 2027년 주말리그 전반기에서 청진고가 파죽의 3연승을 기록합니다!


- 아, 경기를 마친 양팀 선수들이 서로를 격려해줍니다. 네, 충주성진학교도 정말 잘 싸웠습니다. 누가 저 선수들에게 장애가 있다고 했습니까? 정말 멋집니다. 언제가 됐든 저 선수들을 프로 1군 무대에서 볼 수 있길 기대하겠습니다


“우아아아아, 백호야!”


“백호, 인마!”


“이겼다! 이겼어! 이겼다고!”


흥분한 동료들이 나를 둘러쌌다.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둥거리고 있는데 저 멀리 1루 관중석에 앉아 있던, 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빅리그 팀 스카우트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날 보고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보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템파베이의 스카우트였을 거다.


“백호야, 수고했다.”


“주장.”


하지만 웬일인지 지금 나는 빅리그 팀 스카우트의 관심보다 내 목표달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 사람의 표정이 더 신경 쓰인다.


그렇게 기쁜가. 겨우 이런 경기에서 이긴 게.


물론 그렇게 말할 생각은 없다. 감정을 좀 못 느낄 뿐 나는 바보가 아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주장.”


“그래, 내 안타가 결승타가 되게 해줘서 고맙다.”


이 선배는 곧 팀을 떠날 것이다.


오늘 그가 때려낸 역전 결승타, 그리고 창단 후 첫 3연승의 기억은 앞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될 그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뭔가 칭찬, 혹은 격려, 그런 게 하고 싶어졌다.


“아까는 미처 말 못했는데 스윙할 때 팔꿈치가 안 벌어졌으면 좀 더 쉽게 내야를 넘길 수 있었을 거예요.”


“뭐? 하하, 하하하. 그래, 네 말이 맞아. 다음에는 꼭 신경 쓸게.”


음, 이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닌데.


정상적인 대화 하는 법, 그런 거라도 배워야 하나.


학원에라도 가보면 될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늘 상대 선발이었던 정태양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너·진짜·잘·하는구나·오랜만에·진짜·야구·재미있게·했다.”


장애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덕분인지 어눌하게나마 대화가 가능한 듯했다.


경기에 지고도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싱글 웃는 녀석에게 수화로 대답했다.


<나도 잘 놀았다>


<어? 너, 수화 할 줄 알아? 어떻게?>


<그냥, 인생사는 게 너무 지겹고 따분해서 이것저것 배워본 적이 있거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잘 됐네. 혹시 SNS하면 아이디 좀 알려줄 수 있을까?>


<그딴 거 안 해. SNS는 인생의 낭비거든. 그보다 정태양>


<응?>


<타자는 때려치고 투수에 전념해. 그리고 육성선수 테스트 받을 거면 부산 말고 인천으로 가. 거기 구단주가 장애선수들을 위한 투자에 관심이 좀 있거든>


어리둥절해하는 녀석을 뒤로 하고 덕아웃으로 향했다.


오늘 내 조언이 정태양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냥,


프로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시간이 조금이나마 줄어들길 바란다.


내가 아는 정태양은 그 정도 행복은 누려도 충분한 녀석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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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030화.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되거라 +20 24.09.15 6,465 234 14쪽
30 029화. 이대로 돌아가라고? +15 24.09.14 7,131 240 19쪽
29 028화. 못할 일 같은 건 없다 +25 24.09.13 7,433 246 17쪽
28 027화. ...하기 딱 좋은 날씨네 +31 24.09.12 7,646 268 16쪽
27 026화. 피해라 +18 24.09.11 7,793 231 12쪽
26 025화. 애송이들 +24 24.09.10 8,129 236 21쪽
25 024화. 웃고 있는 거 맞지? +20 24.09.09 8,193 252 17쪽
24 023화. 동영상 강의 참조해서... +21 24.09.08 8,378 235 14쪽
23 022화. 구원투수 +12 24.09.07 8,603 217 13쪽
22 021화. 한 번 해보자고 +21 24.09.06 9,009 221 19쪽
21 020화. 박살 +15 24.09.05 9,052 266 16쪽
20 019화. 더! 더! 더! +24 24.09.04 9,124 273 18쪽
19 018화. 약속대로 박살내주지 +23 24.09.03 9,059 242 19쪽
» 017화. 팔꿈치를 붙여야 +16 24.09.02 9,026 259 17쪽
17 016화. 나는 천재가 아니니까 +16 24.09.01 9,215 239 17쪽
16 015화. 기대, 그리고 두려움 +25 24.08.31 9,600 245 25쪽
15 014화. 해보려 한다 +23 24.08.30 9,496 235 18쪽
14 013화. 보는 눈의 차이 +26 24.08.29 9,569 244 14쪽
13 012화. 삼대장 +23 24.08.28 9,750 252 17쪽
12 011화. 나는 행복합니다 +24 24.08.27 9,770 247 15쪽
11 010화. 백호 등장 +21 24.08.26 9,768 275 17쪽
10 009화. 그냥 제가 치겠습니다 +27 24.08.25 9,763 234 16쪽
9 008화. 주말리그 개막 +17 24.08.24 9,841 23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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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006화. 너 진짜 야구 안 할 거야? +12 24.08.22 10,352 215 13쪽
6 005화. 이번 삶은 흥미롭다 +16 24.08.21 10,914 21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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