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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탱이
작품등록일 :
2024.08.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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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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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 문명약진 (1)

DUMMY

감숙성 서쪽 끝 영정현. 그리고 그 현에서도 가장 서쪽의 작은 마을 삼정촌(三井村). 다시 마을의 서쪽으로 펼쳐진 산세 중에 가장 가까운 봉우리를 두고 삼정산이라고 부르곤 한다. 삼정산 중턱에는 마을과 교류가 제법 있던 화전민촌이 있었다. 지금은 역병을 잡는다는 이유로 모두 불에 타버렸지만···. 그 화전민촌에서 반나절을 더 오르면 나오는 산마루 바로 아래 비탈진 곳에 초옥 하나가 있다.


즉, 마을에서 한나절을 다 써야만 오를 수 있는 곳에 우리 남매만이 살고 있다. 이 초옥은 우리가 지은 게 아니라 우연히 발길 닿는 대로 오르다가 발견한 곳인데, 다행스럽게도 소탈한 수준의 가재도구가 있어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붕대를 칭칭감은 몸으로 일어나 마당에 나오니 작은 동생들이 화들짝 나와 붙잡는다.


‘아오 이것들아 붙지마, 아직 쓰라려.’


“오라비, 오라비 이제 괜찮아?”

“형아, 우리두고 죽으면 안돼.”


둘째 공소화, 셋째 공도하. 각각 나보다 네 살, 다섯 살 어린 연년생 동생들은 내 삶을 누르는 무거운 책임이자, 동시에 살고자 하는 의욕을 주는 피붙이다. 원래도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었으나, 전생의 기억까지 열리고 나니 더 자식같이 느껴진다.


“나 이제 괜찮으니 걱정 안 해도 돼. 그나저나 그 망할 똥강아지는 잘 묶어뒀어? 위험한 놈이었는데 해코지는 안했나보네.”


작은 나와 생사결을 나눈 적수였으니 더 작은 동생들만으로 위험했을 수도 있었는데, 괜히 살려서 데려왔나 뒤늦은 걱정이 든다. 시선을 돌려보니 단단한 밧줄로 동생들이 녀석의 목을 잘 채워놨다. 게다가 상처를 치료해 준건지 씻기고 고약을 바른 것이 눈에 띈다.


‘아오, 비상약을 저딴 똥강아지에 다쓰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패배를 인정한 것인지 몸을 바닥에 밀착한다. 다행히 서열정리는 된 것 같군. 그나저나 우리 먹을 것도 없는 판국인데, 보아하니 동생들이 뭐라도 먹인다고 밥그릇 비슷한 거에 남은 양식과 이것저것 말아준 것 같다. 뭐 밥값을 못하면 그 날 저놈은 소중한 양식이 되리라.


저놈을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화장실(?)부터.


전생의 기억이 생기고부터 불편한 것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이놈의 측간! 말이 측간이지 그냥 구덩이 파놓고 대충 세운 움막인데, 이건 결코 적응할 수 없을 거 같다. 이전까지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말이지. 그리고 뒷처리는 어떻고? 두루마리 휴지는 바라지도 않고, 빳빳한 신문지라도 이보다는 위생적이지. 대충 넓은 풀잎, 나뭇잎들을 챙겨 들어가서 처리한다. 이러니 사극 볼 때마다 역병이 창궐하지.


전생의 공도유는 아무리 없이 살았어도 현대인이었다. 전생의 기준으로만 보면 공씨삼남매 일상은 텔레비전 속 자연인들한테 뺨 한대 올릴 수준이다. 모를 땐 불편함이 없었으나, 현재로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오늘부터 가훈은 ‘문명약진’으로 정한다.


현대인의 지성을 가진 산골약초꾼으로서, 개선해나가야 할 문제를 짚어보니 총체적 난국이다. 원래도 궁핍하고 답없는 현생인데, 왜 굳이 전생 기억이 떠올라서 생활의 불편만 늘어나야 하는지 하늘이 밉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벌어진 일, 살아남고 보자. 전생이든 현생이든 공도유는 늘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까. 마루에 걸터앉아 고민하고 있는동안 동생들이 옆에 왔다.


“오라버니 나 배고파.”

“형아, 나도 먹을 거 해줘.”


동생들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눈 감을 때까지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하셨던 내 어머니. 동생들을 부탁한다는 그 마지막 유언이 떠올라서 갑작스레 복받쳐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래! 이런 환경에서 부귀영화는 못 시켜줘도, 배 안 곯고 아픈데 없이 건강하게 키우면 되지. ‘그렇죠? 어머니? 이제 하늘에서도 동생들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래, 뭐든 먹을 것 좀 차려보자.”


현대인의 감성이 돌아온 것은 지독하게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몸의 감각이 더 익숙한 것도 많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를 비롯한 우리 공남매의 소화기관은 우월하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판명되기도 전에 일단 입에 들어가면 그 것이 동물이든, 식물이든, 뼈째로, 뿌리까지 다 먹어치울 수 있다. 돌이켜보니 지난 몇 년간 동생들이랑 살아남겠다고 별것들을 다 잡아먹었는데, 가벼운 배앓이를 한 적도 없다.


지금도 그렇다. 각자 찾아온 식량이란 것을 나열하면 막내가 잡은 굼벵이들부터 내가 잡은 구렁이, 둘째가 빈집털이 성공한 새알 세 개. 전생이었으면 새알을 제외하고는 식량은 커녕 혐오부터 느낄 테지만, 현생의 내 몸은 정직하다. 불을 피우기 전부터 입안에 군침이 돈다. 이만한 구렁이를 잡다니, 오늘 운수 좋은데?


한 끼 든든하게 챙겨 먹었으니 다시 당면한 과제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가장 우선시 되는 건 효율적인 경제활동과 의식주 해결. 아버지께서 약초꾼이셨으니 당연히 약초를 캐고, 일부는 고약이나 단약으로 만들어 마을에 파는 것을 생업으로 이어받았다.



일부 신선도가 중요한 약초들 때문에 한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 매일 같이 쉬지 않고 마을을 오가야 했고, 이 문제로 한나절을 다 써왔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아는 것이 없어서 아버지 해오던 것만을 보고 배운대로 해온 것이 가장 크고, 당장 오늘 먹을 것이 없으니 약초라도 팔아서 식량을 구해오던 버릇이 이어진 것 같다.


이제는 사고의 폭과 질이 다르니까 극악의 효율이라는 것을 안다. 오늘도 아침부터 풍부한 단백질원(?)을 포함한 자급자족 식사를 하지 않았던가.


급할 것 없다. 작은 텃밭이라도 주식 삼을 수 있는 작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 우리가 화전민촌에 산 게 몇 년인데, 왜 작게라도 농사지을 생각을 안 한 건지 모르겠다. 이게 확실히 인식이 무서운 거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나물과 약초 몇 개 팔겠다고 매일 북한산 정상을 오르락내리락 한거나 다름없다. 그 시간과 체력으로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맞다.


두 번째로 입을거리와 주거공간. 무엇보다 망할 변소도 어떻게든 개선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전생에 각종 건설현장에 노동을 많이 뛰어봐서 깊은 지식까지는 없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좋게 바꿀 자신이 있다.


그리고 의류. 위생개선 차원에서도 필요하지만, 당장에 생존을 위해서 필요하다. 우리가 사는 곳은 산꼭대기. 한여름의 낮을 제외하고는 늘 추위가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세계의 옷감은 비싸다는 것. 이 부분은 다른 문제들에 비해서 자체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편이라서, 일단 동생들의 바느질 수준을 올리는 정도로 만족해야겠다. 당장 해야 할 것들은 감을 잡았으니 움직여볼까.


“공남매 집합!”

“집합~!”


늘 해오던 구령대로 동생들이 마당으로 나온다. 동생들과 역할분담을 하려고 불렀지만, 막상 이 작은 녀석들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대한민국이었다면 지금쯤 학교에 가서 급식먹고 친구들과 어울릴 나이일텐데···. 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구나. 나도 이제 열세살이니까. 그래 현생에 집중하자. 살아남아야지. 이녀석들 잘 키워서 시집장가도 보내고 말이야.’ 자꾸 딴생각으로 빠지는 의식을 다잡고 말한다.


“오늘부터 공마을 운동을 시작한다.”

“오라비, 그게 뭐야? 먹는거야?”

“난 뭐든지 다 먹을 수 있어.”


내 딴에는 양식의 질은 포기했어도 크게 굶기고 키우진 않았는데, 어느 단어도 연관이 없음에도 먹는 것부터 떠올리는 동생들을 보니 또 한번 가슴이 아리다.


어려서 이해가 부족할 수 있는 동생들을 상대로 가능한 쉽게 설명했다. 집을 고쳐서 더 깨끗하고 따뜻하게 만들고, 텃밭을 꾸려서 식량도 늘리고, 따뜻한 이불과 옷도 입을 수 있게 하나씩 만들어가자고 말이다.


구체적인 방법까지는 말할 필요도 없어서 해야할 것들에 대해서 말해줬다. 방법은 잘 몰라도 뭐든지 지금보다 좋아질 거라는 말에 동생들도 벌써 의욕충만한 눈빛이다.


“소화는 인근 대나무군락 중에 키가 크고 두께가 굵은 것들이 많은 곳을 찾아볼래? 그렇다고 너무 깊게는 다니지 말고. 막내는 망월엽초 알지? 물기적고 잎새가 둥근 풀. 그거 형아 손바닥보다 큰 것들로 가능한 많이 구해올래?”


둘째에게 지시한 대나무는 앞으로 하게 될 모든 공사에 배관으로 쓰게 될 것이라 많을수록 좋다. 벌목은 내가 하더라도 워낙 필요한 양이 많아서 위치파악부터 해둔다.


그리고 막내에게 시킨 망월엽초는 잡초나 다름없는데, 토란잎처럼 넓고 털이 많다. 그 잎을 잿가루와 솔잎을 끓인 물에 데쳐서 말리면 털은 다 없어지고 종이 비슷한 재질이 된다. 먹이 스며들지 않아서 종이 용도로 쓸 수는 없고, 약재를 감싸서 보관할 때 쓴다. 아버지 나름의 비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덕분에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휴지대용품이 쉽게 만들어질 것 같다. 이것도 많을수록 좋지 무조건. 할 일들을 다 알려주고 나니 뭔가 잊은 것만 같은데···, 아! 똥강아지!


목줄을 채워서 마당 가장자리 나무에 묶어둔 똥강아지를 보니, 동생들이 그새 아침먹고 남은 것들을 먹이로 준 것 같다. 바가지도 아껴서 쓰는 공씨 집안에서 개밥그릇도 사치이건만, 거기에 더해서 귀한 구렁이탕을 남겨서 먹이다니 개팔자가 상팔자다.


그런데 이거 개 맞나? 자세히보니 주둥이 긴것부터 이리나 늑대 그런 것 같은데 이렇게 둬도 되나. 일단 녀석과의 관계정리를 확실히 해야할 것 같다. 나는 나름의 위엄을 담아 녀석을 아래로 내려다봤다.


“풀어주면 또 덤빌거냐?”

“끠이이잉...”


사람 말을 알아들을 리도 없는 짐승을 상대로 질문하는 나나, 알아들었다는 듯이 힘빠진 소리를 내며 도리짓는 짐승이나. 그런데 정말 말을 알아듣는걸까? 한번 시험해본다.


“설마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거냐?”

“캉캉!”


놀랍게도 긍정하는 듯이 짖으면서 끄덕거린다.


“우측으로 두 걸음, 좌측으로 두 걸음.”


손짓하며 말하는 내 지시에 맞게 녀석은 오른쪽 왼쪽으로 정확히 두 걸음씩을 왔다갔다 했다. 와 신기해! 이거 진짜 영물인가본데? 전생에 없고 현생에서도 처음보는 지능 높은 동물이다.


“지난 일은 잊고 화해할 생각이 있다면 고개를 끄덕여라.”


역시 바로 끄덕끄덕. 아직도 왜 내게 죽일 듯이 덤벼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해치지 않고 데려와 동생들이 치료까지 해준 터라 마음이 풀린 것 같다.


“너도 기다리는 가족이 있을테니까 풀어줄테니 얌전히 돌아가라.”


녀석의 목줄을 풀었다. 하지만 이 똥강아지는 낑낑대는 작은 신음만 내고 그 자리에 주저 앉는다. 반응을 보아하니 이 녀석도 가족을 잃고 산속에 홀로 살고 있었나본데? 갑작스레 더 내적친밀감이 느껴진다.


“돌아갈 곳이 없다면, 우리랑 같이 살래? 다시는 공격하지 않는다고 약속해야 해. 그것만 약속하면 널 우리 새 식구로 받아들일게.”


내 말이 끝나자마자 놈이 좋다고 깡총대면서 긍정한다. 아무래도 지능 높은 영물인 것은 확실하고, 돌변해서 나와 동생에게 위해를 끼칠 것 같지도 않다. 갑작스레 군입이 늘었지만, 영물이니까 지가 사냥이라도 잘 해오겠지.


“좋아, 그렇다면 넌 오늘부터 공도구(公道狗)다.”

성씨와 돌림자, 그리고 개. 아주 완벽한 이름이다. 도구라고 부르면 아주 입에 딱 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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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 세상에 오롯이 서려 합니다. +3 24.08.29 680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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