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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탱이
작품등록일 :
2024.08.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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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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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 문명약진 (3)

DUMMY

첫수확을 마치고 확실히 여유가 생겼다. 솔직히 말하면 심심하고 불편한 점은 많지만, 생계에 대한 걱정 하나만 해결하면 되는 세상이다 보니 전생보다 살만하다.


순수하게 사는 게 즐겁다는 생각을 얼마 만에 해본 지 모르겠다. 삼정공가의 터는 더 넓어져서 초옥과 마당말고 뒤뜰과 식량창고, 그리고 장작을 지펴서 온수를 쓸 수 있는 욕조도 만들었다.


잘은 몰라도 현내의 높으신 분들 포함해도 가장 잘 씻고 사는 사람들이 우리 공가일거라 확신한다. 이 시대에 매일 온수 목욕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이렇게 고품질로 안빈낙도 생활하고 있으니 필요조건에서 충분조건으로 지향점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간단히 말해서 측간도 가능하면 입식양변기에 더 가깝게 만들고, 이제 가을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옷도 이불도 두툼해져야 한다.


일단 입을 거리는 어느 정도는 해결이 가능할 거 같다. 그동안 사냥했던 동물가죽들은 어느정도 모아뒀다. 화전민촌에서 대충 익힌 가내무두질을 적용해서 품질이 그닥 좋지는 않지만 썩지 않고 관리된 가죽들이다. 그래봤자 가장 큰 사냥감이 어린 사슴이었으니까 다 모아봤자 큰 양은 아니다.


의외로 깃털의 양이 상당했다. 그동안 이름모를 산새들과 꿩들은 공가식량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 무림세계의 맹수는커녕 새끼 맷돼지 같은 짐승만 나타나도 사냥이 아니라 도망을 가야하는 처지의 공남매들에게 감당 가능한 수준이 산새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깃털을 이용해서 겨울이불을 미리 만들고, 남는다면 동생들 겨울옷으로 패딩 비슷하게 만들어볼 계획을 세웠다.


내가 파는 약초들은 대단한 것들이 없다. 지킬 힘이 없기 때문에 값비싼 영초같은 것들은 발견해도 무시한다. 비싸봤자 철전 몇냥받는 것에서 그치는 품목들로 현대로 치자면 편의점 상비약 정도 되는 수준이다.


대신 오늘은 양을 제법 크게 지고 내려왔다. 아무래도 이불이랑 옷감으로 쓸 천을 사려면 하품이어도 돈이 제법 나가기 때문이다.


아무리 문명약진해서 제법 살만해졌어도 그건 산 위에서 얘기고 마을에 내려오면 가난한 어린이 약초꾼에 지나지 않는 점이 참 씁쓸하다.


현대지식으로 돈벌 궁리를 할 수 있어도 지킬 수 없다는 점이 늘 착잡한 공도유 십삼세 되겠다.


어쨌든 그동안 모아온 철전 조금과 오늘 판 약초들로 마을에서 볼일은 대충 볼 수 있었다.


초가을에 심을 종자도 조금 사고 철로된 호미같이 작은 농기구도 몇 개 새로 샀다.


가장 큰 지출은 영계 암수 한쌍을 사가는 거다. 마을 분위기가 좋아서 그렇지, 흉흉한 곳이었으면 이조차 빼앗는 사람들이 흔하다. 진짜 이놈의 세상 살기 힘들다. 내가 빨리 커야지.


제법 큰 항아리와 그 안에 닭 한쌍을 넣어서 무거운 짐을 지게로 지고, 캄캄한 산꼭대기까지 가야 하는 소년가장은 오늘도 참 고생한다.


늦은 밤이 되어서 집에 돌아오니 도구가 가장 반겼다. 아마 소리로든 냄새로든 닭을 느낀 거 같은데 이거 먹을 거 아냐 키울 거라고.


이미 꿩이랑 토끼를 키우는 간이 축사가 있었지만 이 참에 제대로 양계장 비스무리하게 만들어 볼 생각이다. 겨울에도 애들 얼어 죽지 않게 벽이랑 천장도 치고 따뜻하게 덮을 건초들도 좀 넣어주고 말이다.


동생들에게는 시간날 때마다 바느질도 연습시켰기 때문에 옷감을 전부 넘겨줬다. 먼저 이불부터 먼저 만들고 그 다음에 자기들 겨울옷 만드는 것을 시켜볼 참이다.


다음날부터 나는 가축들 사육장을 토끼, 꿩, 닭 각각 새로 만들었고, 동생들은 추수하고 남은 텃밭을 쉬이는 동안 가내수공업에 매진했다.


이불도 만들고 새끼줄도 만들고. 작은 손으로 쉬지 않고 돌아올 계절을 준비한다. 기특한 내 새끼들. 오라비라고 해줄 것도 많지 않아서 어디 군것질거리라도 늘려줄 생각을 해본다.


부지런한 공씨 삼남매들의 분업과 전문화로 인해 삶의 질은 하루하루 더 나아지고 있다. 기존 키우던 꿩은 모두 식량이 되었고, 공터에 닭과 토끼 각각의 축사를 크게 새로 지었다.


토끼의 번식력이 엄청난 것을 실제로 확인했기에, 늘어날 가축을 먹일 건초창고도 새로 지었다. 그 와중에 동생들은 추위에 강한 채소류 몇 개로 가을 파종을 마쳤고, 넓어진 밭에 물주기 쉽게 대나무 수로도 확장했다.몇 달만에 몸집이 두배 이상 커진 도구를 위한 개집도 새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꿈꿔온 입식양변기도 점토와 석회석을 사용하여 비슷하게 만들어냈다. 말을 꺼내고 보니까 내가 한 일이 거의 다인 것 같긴 하다. 정말 성인이 감당하기에도 벅찬 노동량이었다.


그래도 봄날에 전재산을 써서 한 투자로 가을이 되어서 이 정도까지 왔다니 감격뿐이다. 구렁이를 잡고 둥지를 털어서 새알을 훔쳐먹던 공남매가 이제 주식으로는 감자, 부식으로 매일같이 닭장에서 계란을 꺼내먹을 수 있으며, 토끼 한정이지만 고기도 먹을 수 있다.


곧 다가올 추위에 이겨낼 온돌집과 깃털을 가득채운 이불도 있다. 어린이 삼남매가 산촌에서 고작 반년 만에 이룬 성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공마을 운동 대성공이라 할 수 있다.


이쯤되면 일개 마을의 촌민들보다 더 넓은 땅에서 윤택하게 살고 있다고 확신하는데, 왜 다들 산에서 안 살지?


산은 평지보다 계절이 빠르게 돌아온다. 그래서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것도 빠르고, 할 일도 많다. 두 동생들은 가축들의 사료가 될 건초와 이제는 생활필수품이 된 망월엽초를 모으는데 매일을 꼬박 소비했다.


나는 그동안 벌목과 점토운반을 계속했다. 폭설이 올 경우 초가집들은 눈과 비에 지붕이 내려앉는 경우도 흔했기 때문에, 공가네 건물들은 모두 대나무를 사용한 ㅅ자형 지붕을 올렸다. 그리고 벌목해온 목재와 점토로 건물들을 모두 보수했다.


정말 찬란한 발전이다. 집은 온돌 바닥에 튼튼한 기둥과 지붕으로 보강되었고, 흙벽으로 만든 축사가 둘에, 뒤뜰에 만든 온돌 욕조, 장작창고, 식량창고, 건초창고, 목재창고, 근대식 화장실까지. 정말 어느 세가 부럽지 않은 이 환경을 지켜나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한다.


건물 보수를 모두 마치고 남은 점토가 아직도 많았다. 이는 전부 옹기를 만들 예정으로 늘 해왔듯이 석회분과 잿가루를 섞어서 반죽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잿물과 귀신풀이라는 들풀의 즙을 바른다.


이 귀신풀이라는 것은 흔히 짐승의 사채 주변에서 자생하는데, 인식도 좋지 않고 실제로 약성도 없어서 잡초로 여겨진다. 다만 이렇게 즙을 점토에 발라 구워내면 유약처럼 윤기를 내주는데, 아는 사람이 적어서 몇몇 약초꾼들만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약초꾼들 중에서도 꽤나 박식한 편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손재주 좋은 동생들이 옹기를 빚는 동안, 나는 화재위험이 적은 계곡 인근에 가마를 만들었다.


산꼭대기를 통째로 쓰는 무단입주자(?)에게 공터는 넉넉했다. 열세살 내 키보다 높은 크기의 가마를 만들고 나니, 동생들도 제법 많은 옹기를 빚었다.


저장용 항아리들, 그릇, 냄비 등 모두 늘 부족했던 생활용품들이다. 실패를 생각해서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이 빚어뒀다. 도중에 재료가 부족해서 내가 몇 번 점토를 퍼왔다


대략 마을에 들를 때마다 구경했던 것을 그대로 흉내 낸 가마라서 제 기능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잘되기를 기도해본다. 가마에서 식히는 기간까지 며칠은 걸리니 동생들은 그동안 열심히 일한만큼 가을을 즐겼다.


반년 새에 몸집이 제법 커진 도구를 번갈아가면서 타고 산속을 다녔는데, 도구도 싫지 않았는지 해가 떨어질 즈음에서야 집에 돌아오곤 했다.


며칠이 지나서 가마를 열었다. 엉성한 가마에서 구워냈다고 하기에 옹기는 무척 좋은 품질로 완성되었다. 아마도 재료로 사용한 점토가 좋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구워진 옹기들은 부엌과 창고로 주로 배치되었다. 중요한 월동준비는 모두 마쳤으니, 나도 이제 쉬엄쉬엄 해도 될 것 같다.


“오라버니, 우리 오늘도 할 일 있어?”


아침 식사를 마친 소화가 막내의 손을 꼭 붙잡고 내게 묻는다. 식량과 생활용품들은 모두 창고 가득 채웠고 상비약들도 충분하다. 한참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고생만 동생들의 얼굴을 보니 다시 한번 마음이 아려온다.


“아니. 그동안 열심히 일해준 덕분에 우리도 겨울끝날 때까진 푹 쉴 수 있을 거 같아.”


“형아! 그러면 같이 놀면 안될까? 숨바꼭질도 하고 눈 가리고 술래잡기도 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동생들이 바라본다. 화전민촌 이후로 또래 친구들 하나 없이 늘 둘이서만 붙어 다녔고, 부모님도 안 계신 터라 늘 외로웠을 터다. 이런 점이 참 미안했다. 그나마 도구가 있어서 셋이 되어서 다행이었으려나. 겨울이 끝날 때까지는 가능한 동생들을 위해 시간을 보내기로 다짐한다.


동생들을 놀아주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세계는 아이들의 놀거리가 정말 부족했다. 마을처럼 아이들이 많기라도 하면 좀 다양해질 수 있겠지만, 우리같은 고아들에게 마을에 내려가는 것은 절대적으로 치안이 안 좋은 무림 세계에서는 시기상조이다. 그래서 겨우내 각종 놀거리를 만들기로 했다.


먼저 나무 판자와 목재를 이용해서 장기판과 장기말을 만들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가장 어린 막내 도하의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상대가 되지 않자 소화가 금방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야심차게 준비한 명작보드게임! 브루마블을 중원판으로 만들었다. 주사위 두 개는 소화가 만들고, 놀이용 화폐는 도하가 만들었다. 얇은 판자를 이용해 놀이판과 기연패, 함정패를 내가 만들어서 완성했다.


확실히 반응이 좋았는데, 혹시나 이것도 금방 흥미를 잃지 않을까 싶어서 사흘에 하루만 할 수 있게 제한을 뒀다. 동생들이 실내에서 노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풀이 죽은 도구를 위해 야외에서도 할 수 있는 놀이를 생각해야 했다.


처음에는 공놀이쪽을 생각했다가, 다가올 겨울 때문에 반경이 좁은 놀이로 고민하다보니 전통팽이를 기억나는 대로 만들어줬다. 도구가 꼬리를 팽이채처럼 사용해서 제법 잘 돌렸다. 동생들이 다른 일을 할 때도 혼자서 팽이를 돌릴 정도로 푹 빠졌기에 내심 다행이었다.


잘 먹고 잘 놀고. 앙상했던 동생들의 뺨이 여느 집 어린아이들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니, 날이 쌀쌀해져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가축 돌보기, 시설점검 등 기본적인 일상을 제외하고 남는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고 있었지만 오랜만에 대목을 준비한다.


바로 산밤줍기다. 식량에는 여유가 생겼다지만, 없이 살았던 근성이 어디 안 간다. 그래서 오랜만에 공남매는 채집에 나서기로 했다.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작년까지는 산밤이 가을, 겨울 주력 양식이었다. 다른 동네였으면 밤 줍는 일도 온 마을 사람들과 경쟁이 붙는다. 미신에 대한 공포가 강한 사회라서 다행이다.


중턱의 화전민촌의 역병발생 이후 삼정산 인근은 늘 인적이 없으니까. 관에서 마을 전체를 소각해서 실제로 내려가다 보면 을씨년스럽긴 하다.


우리가 화전민촌에 살 때만 해도 밤 주우러 입산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먹을거리가 필요한 건 가난한 화전민촌뿐만 아니라 평범한 민초들 다 마찬가지인 세상이니까.


올해는 그동안과 다르게 생존이 아닌 추가적인 비상식량을 확보하는 것인데도, 자라온 환경 때문인지 공남매는 최선을 다했다. 결국 공남매가 수일에 걸쳐 모은 밤이 이백 근을 넘어서게 되어 감자와 채소가 저장되었던 식량창고가 가득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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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 세상에 오롯이 서려 합니다. +3 24.08.29 681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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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 호구조사 +3 24.08.27 685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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