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산골제패
짧게나마 무림정점을 꿈꿨던 공도유 심삽세는 더는 없다. 소금이 생긴 이후로 해보고 싶던 일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실 전생 때는 소금을 이용해 무언가를 딱히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화전민촌때의 기억이 더 실용적이었다. 가난한 화전민촌에도 소금은 있었다. 물론 그 품질이 좋지 않아서 면보에 걸어두고 물을 살짝 뿌려서 간수를 뺀 다음에 써야 했다. 이 간수는 요긴하게도 두부를 만들 때 쓴다. 며칠에 걸쳐 소금창고를 만들고, 암염을 빻고 할 일이 많았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받아둔 간수를 쓸 수 있다. 맷돌에 불린 콩을 갈고, 면포에 콩물을 걸러내기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드디어 고운 콩물을 솥에 부었다. 그리고 간수를 조금씩 넣어가면서 천천히 젓기를 계속했다. 힘이 많이 드는 것보다 시간이 오래걸리는 일이라서 하고나니 꽤 지쳤다.
천천히 몽글몽글하게 올라온 두부를 다시 면보로 짜고 틀에 넣어 굳히니 두부가 완성되었다. 남은 콩비지는 으깬감자와 같이 반죽한 뒤, 토끼기름 바른 솥뚜껑에 전으로 부쳤다.
오늘도 아침먹고 삼정산 무림을 종횡하던 삼정삼절(三井三絕)께서 고소한 냄새를 맡고, 돌아왔다. 모처럼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는 동생들이 평소보다도 과식했다. 크으, 이 맛에 자연인한다요.
진짜 이 정도면 동생들 다 키울 때까지 산촌살이에 더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제발 관이든 산적이든 누가 됐든 사람들에게 들키지만 않기를.
소금은 늘 부족했기 때문에 매일같이 밍밍한 음식들을 먹어 온 동생들이 소금의 황홀한 짠맛에 넘어갔다. 감자도 찍어 먹고, 삶은 계란도 찍어 먹고, 국물에도 뿌려 먹고. 더는 소금과 함께 먹을 것이 없게 되자, 화하둥이가 결심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오라버니, 사냥을 다녀와야겠어요.”
“형아, 고기도 소금 찍어먹으면 더 맛있겠지?”
동생들의 날랜 움직임을 봤기도 하고, 실제로 몇 년간 여기 살면서 맹수를 본 적도 없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당부만 하고 사냥을 내보냈다.
이제 연말이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열세 살, 소화가 아홉 살, 도하가 여덟 살, 사냥을 나가기에는 어린 나이인 건 맞다. 그동안 사냥이라고 해봤자 그나마 나와 도구가 해왔던 것이 전부이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전에 동생들의 실력을 봤기 때문인지 걱정보다 기대가 되었다. 비장한 표정으로 죽창을 들고 나간 두 동생과 도구라면 꿩보다 큰 걸 잡아올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며칠 뒤 내 생각이 얼마나 안일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어쩌면 올 겨울, 삼정산 생태계가 바뀔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첫 날은 살아있는 토끼 다섯 마리였다. 세 마리는 바로 그날의 식사가 되었고, 남은 한 쌍은 토끼장에 새식구가 되었다. 어차피 삶이 잠시 연기되었을 뿐인데도 토끼의 눈망울에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가 보인 듯 했다. 비정해보여도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늘 최선을 다하는 삼정공가니까.
둘째 날은 꿩과 이름 모를 산새들이었다. 외공수련에 도움이 되는 고마운 단백질이 되어주었다. 덤으로 깃털은 베개에 바로 추가되었다.
셋째 날은 제법 큰 숫사슴이었다. 후추는 없지만 잡내를 잡을 약초가루들과 소금을 뿌려 직화구이로 먹었다. 남은 고기는 소금에 절여 육포를 만들었다.
넷째 날은 결국 이 산의 정점쯤이지 않을까 싶은 커다란 멧돼지였다. 이미 사흘을 연속 고기만 먹었더니, 나는 도저히 소화가 되지 않아서, 가죽과 지방만 따로 챙기고 부위별로 동생들에게 구워줬다. 이 날은 도구가 가장 포식했다.
남은 고기는 소금과 함께 훈연해서 보관했다. 그리고 창자와 내장부위는 순대를 만들어 볼 생각으로 깨끗하게 수십번 씻어냈다. 상상 이상으로 비위가 상했다. 냄새도 심하고.
그래도 끝내내장들을 손질한 뒤, 창자에 식감이 괜찮은 나물과 향을 내줄 약초를 같이 다져서 창자에 채워서 순대를 완성했다. 끓는 물에 삶아두고 다음 날 아침에 꺼내먹었는데 당면넣어 만든 순대와 다른 매력이 있었다.
이 기세로 가다가는 정말 곰이나 범이라도 잡아올 기세였기 때문에, 아무리 자격을 증명한 전사 화하둥이라도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삼정산의 생태계도 함께 걱정되었고 말이다.
염장과 훈연한 고기가 떨어질 때까지 사냥을 금지시켰다. 원대한 꿈이 좌절된 듯한 표정의 두 동생은 하루만 더 허락해달라고 했지만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내 생각에 이미 소화와 도하, 도구 셋은 삼정산을 제패했다.
동생들의 사냥 덕분에 생활은 더 윤택해졌다. 돼지기름을 따로 잘 보관해서 볶음요리에 쓸 수 있게 되었고, 가죽은 모포로, 깃털은 베개로 적재적소로 배치되었다. 염장된 고기도 많아서 아무 때나 소채를 곁들이고, 그때그때 두부를 만들어서 탕을 끓여먹으니 식사의 양질도 더욱 좋아졌다.
산꼭대기의 겨울은 추운 온도를 자랑하지만, 거기에 자리잡은 우리 삼정공가(三井公家)는 하루하루 더 풍요로워지고 더 따뜻한 날을 보내고 있다.
전생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홀몸으로 나를 키우신 어머니. 각박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했던 무색의 내 인생에 유일했던 온기.
'다른 세상에서 새롭게 살아가고 있지만, 저는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이번 생의 부모님도 떠올랐다. 군역에 차출되면서 마을을 떠나시던 뒷 모습. 아버지 없는 동안 내가 가장이니, 가족을 잘 지켜야 한다던 당부. 병세가 악화되어 언젠가부터 누워만 계셨던 어머니. 임종 때까지 내게 미안하다는 말만 하셨던 모습.
늘 내가 행복만을 바라던 전생의 어머니와 늘 어린 자녀들을 걱정하셨던 현생의 부모님.
'약속할게요. 더 행복해지기로. 동생들도 평생 잘 보살피기로.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습니다.'
다짐하고 나니까, 앞으로의 해야할 일들이 많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행복만을 지키기 위해서 여기서 안주할 수는 없다. 평생을 산꼭대기에서 삼남매끼리 살 수는 없으니까.
동생들도 언젠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세상을 더 겪고 배우며 느껴야 한다. 어쩌면 생존에 대한 걱정은 어느 정도 끝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삼정산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다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고아 삼남매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적어도 나 하나만큼은 어른이 될 때까지, 우리 삼남매는 타인에게 들키지 않고 이 곳에서 살아남으며, 다양한 방식의 힘을 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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