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명백백한 마법사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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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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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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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주계 3

DUMMY

살주계의 아지트를 조정에서 찾지 못한 이유를 알법했다. 개인이 만든 게 아닌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결계이기에, 있다는 걸 인지하고 찾아봐도 발견하기 힘들다.

겹겹이 쌓인 안갯길을 걷고 걸으니 커다란 건물이 하나 나왔다. 높은 건물은 거의 궁전이나 다름없었고, 잘 꾸며진 정원도 상당히 아름다웠다. 저주로 돈 좀 번 듯하더니, 이런 데에 쓰고 있는 듯하다.


“동대륙에서는 뭐라 하더라. 맞아, 이거지. 이리 오너라.”


아렐이 크게 외치니 저절로 문이 열렸다. 횃불로 가득한 길은 고풍스러운 돌로 잘 포장되어 있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동시에 눈동자는 바쁘게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마흔, 쉰. 역시 준비해놨군,’


도술로 몸을 숨겼지만, 역시 티가 난다. 그림자, 나무, 바위 등등 여러 곳에 자객이 숨어 있다. 대놓고 씨앗을 들고 왔다면, 그대로 공격당했을 거다.


‘이 정도야 당연한 거지. 근데 이 기운은 뭐지?’


커다란 대문을 넘는 순간부터 느껴지기 시작한 묘한 기운이 주위를 감돌았다. 저번부터 아렐의 감정에 나타난 이상함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기운이다. 덕분에 묘하게 감정이 고조된다.


“반갑습니다. 전 살주계의 부대장인 아연이라고 합니다.”


비단옷을 입은 남자는 조용히 차를 마시며 말했다. 아렐은 눈앞의 요깃거리를 하나 입에 넣었다. 다행히 음식에 이상한 짓은 하지 않은 듯싶었다.


“맛있네. 확실히 음식 발전은 좋아졌어. 어디서 산 거냐?”

“일이 원활하게 끝나며 알려드리죠. 그래서 씨앗은 어딨습니까?”

“일이 원활하게 끝나면 말해줄게.”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둘 사이에서 튀는 거 같았다. 아연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머리에 핏줄이 올라왔다. 하지만 지금은 굽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이죠?”

“일단 네놈 두목이나 데려와.”

“저희 두목님께서 얼굴을 비치면 안 되는 분이셔서요. 저로 만족하시죠. 정보를 원하는 거라면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씨앗을 어떤 놈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거냐?”


아렐은 과자를 하나 더 입에 넣으며 말했다. 아연은 잠시 눈을 감더니 조용히 웃다가 입을 열었다.


“전달이라뇨? 저희는 그저 비싼 값에 팔려고 한 겁니다. 씨앗을 알고 있다면 얼마나 중요한 물건이고, 원하는 인물이 많다는 것은 잘 아실 텐데요.”

“웃기고 있군. 너희 동대륙 말에 이런 말도 있지 않나? 구라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간다고.”


아연의 말대로 단순히 씨앗을 팔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자에 걸려 있던 서대륙의 봉인 방식, 그리고 살주계의 움직임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이상하다.

살주계는 조사 결과 엄청나게 조용하고, 경계심이 크다. 지금껏 조정이 꼬리도 잡지 못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생판 모르는 인물을 본진에 초대하다? 아무리 비싼 물건이어도 그렇게까지 리스크를 감수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서대륙 봉인으로 봉인돼 있다는 건, 서대륙의 누군가에게 받았다는 거겠지. 너희는 단순히 중간 지점에서 옮겨주는 짐꾼일 뿐이고.”

“....”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있지만, 지금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을 텐데.”


더 이상 변명할 것도 없는지, 온화하던 눈빛은 180도 변해있었다. 아렐은 침묵을 유지하며 조용히 차를 마셨다. 옛날부터 느낀 거지만, 차나 커피는 참 입맛에 안 맞았다.


“아무래도 더 이상 할 말은 없을 거 같군.”


한참을 유지되던 침묵을 깬 건 제3자의 목소리였다. 커다란 병풍 뒤에서 천천히 갓을 쓴 한 남자가 걸어 나온다.


“이제부터라 나랑 대화하지.”

“두목님.”

“괜찮다. 방금 ‘녀석들’과도 얘기가 끝난 참이니까.”


현재 조정에서 직접 현상금을 붙이고 쫓고 있는 살주계의 두목인 이영. 제대로 모습을 보인 적도 없어서, 몽타주도 만들어지지 않은 인물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뭐지 이 녀석. 이상하게...’

“뭐, 여기까지 온 이상 길게 말할 건 없겠지. 네가 원하는 걸 말해봐라.”

“네놈들의 거래 대상. 그것만 알면 충분하다. 내가 원하는 걸 들을 수 있을 거 같거든.”

“나도 가능하면 그러고 싶지만, 곤란해. 고객, 그것도 너무나도 강한 고객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도 없거든.”


이영은 조용히 눈짓을 보냈다. 씩 웃고 있는 얼굴은 음모를 꾸민다는 걸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지.”

“여기서는 돈으로 타협... 하는게 정상이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말을 끝내기 무섭게, 그림자에서 첩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척만으로도 느껴지는 건 건물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죽여도 된다고 하더군. 뇌만 멀쩡하면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나 뭐라나.”


어느새 날카로운 검이 목을 위협하고 있었다. 아렐은 마지막 간식을 입에 넣은 후 조용히 이영을 바라봤다. 그가 가까이 올수록, 심장이 빨라지고 감정이 고양된다.


‘뭔가 이상하군.’


감정이 고조되고, 눈에 남아있던 생기는 다시 없어지면서 공허해졌다. 익숙하고, 익숙한 기운이 눈앞의 남자에게서 나고 있다. 그래서일까? 마음에 있던 평화로움은 사라지고, 다시 투지가 불타오른다. 천 년 전부터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살의에 대한 투지가 말이다.


“아, 그런 건가. 어쩐지 요즘 이상하다 했어.”

“뭐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씨앗을 주면 고통 없이 보내주지. 미리 말하지만, 네놈을 얕보지 않아.”

“그래. 저번에 봤던 멍청한 네놈 부하와는 다르군. 씨앗은 여기 있다.”


아렐은 입을 벌리고, 그 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씨앗은 그날 바로 먹어버렸다. 혼을 담는 물건이니 어차피 쓸모도 없다. 지금 그가 씨앗으로 할 수 있는 건, 계약의 대가로 받쳐서 과거 그 불꽃의 일부를 재현하는 거다.


“이상하게 그 마법을 사용할 수가 없어서 답답했었는데, 마침 잘 됐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렐의 미리 새겨둔 마법진이 빛을 발한다. 과거 그가 사용했던, 그를 마법사의 왕으로 만든 마법. 원래라면 사용할 수 없지만, 씨앗과 상처로 몸에 마법진을 그려 넣어서 강제적으로 마법을 현현시켰다.


“■■ 1형태 열폭.”


순식간에 발하기 시작한 불빛, 살주계의 두목인 이영은 곧장 목을 베려 했지만, 한발 늦고 말았다. 거대한 빛이 먼저 주위를 감싸고, 폭발과 함께 커다란 굉음이 주변을 무너뜨렸다.


**********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가볍게 헤치며 아렐은 잔해에서 걸어 나왔다. 씨앗이란 대가를 줬음에도 식은 현현 자체가 불가능했고, 1형태의 절반밖에 출력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상관없다. 힘을 되찾을 방법을 대강 알았으니까.


“괜히 이름값 하는 게 아니군.”


폭발에서 살아남은 인원은 총 열 명이다. 아무리 출력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근거리여서 살아남기 힘들었을 텐데,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 살주계의 두목이 무언가를 했다.


‘술식? 마법? 뭐가 됐든 처음 보는 기술이었다.’

“하... 오랜만에 열받네.”


이영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천천히 내린 얼굴에는 분노가 한가득했다. 그가 살주계를 시작한 지 어언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보잘거없는 집단을 이렇게까지 키웠는데, 한순간에 다 날아가 버렸다.


“상품도 전부 날아가 버렸군. 가진 재산이 한순간에 사라졌어.”

“저런 불쌍하군. 그러게 좀 착하게 살지 그랬어.”

“게다가 씨앗도 없고 말이야... 전부 없어졌다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에 살아남은 잔당은 무기를 빼 들었다.


“사지를 뜯고, 내장은 개먹이로 던져주마.”


지금 힘으로만 보면 살주계의 두목은 아렐보다 강하다. 원래라면 상대를 파악하고 싸웠겠지만, 지금은 그딴 건 신경 쓸 겨를 없이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피어오르는 피 냄새와 살 타는 냄새가 잊고 있던 전쟁의 추억을 되살아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전보다 더 고양감이 넘치는 동시에, 전보다 더 마력의 조작이 간편해졌다. 아렐은 천천히 손을 들었고, 일순 마력을 방출했다.


“!”


이변을 눈치챈 이영은 재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간 보이지 않는 참격. 익숙한 기운을 가진 참격은 처음 보는 마법이었지만, 어째선지 막을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살아남은 나머지의 머리도 바닥에 떨어졌다. 아렐은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차며 주르륵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몸에 그린 마법진과 방금의 높은 랭크의 기술 때문에 과부화가 슬슬 오기 시작했다.


“역시 네놈은 알아챘군. 웬만한 녀석들은 피하지 못하는 공격인데 말이야.”

“이제 슬슬 궁금하군. 너 정체가 뭐냐? 아니, 그전에 우리 어디서 본 적 있나?”

“말해도 안 믿을 텐데. 나도 정확히도 모르고. 그래도 일단 알고 있는 걸 말해주지, 네 몸속에 내 조각이 들어있다.”


과거 전쟁의 마지막 시점인, 용사의 검이 아렐의 목을 베어내는 순간이었다. 만약을 위해 준비한 부활 마법. 정확히 부활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봉인해 오랜 시간 동안 자연적으로 마력을 모아 다시 깨어나는 거다.

하지만 어째선지 아렐의 힘은 전부 없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조각나서 이곳저곳으로 떨어진 거다. 그리고 랜덤으로 몇몇의 인간의 몸에 스며든 듯하다.

아마 이정은 동대륙 인간이면서 도술과 함께 마법도 쓸 수 있을 거다. 동시에 두 재능을 가진 재능아가 가끔 있지만, 적어도 이정은 그런 순수한 재능이 아니다.


“조각? 하, 웃기는군. 이건 그저 내 재능일 뿐이다.”

“그럼 더 맞혀볼까? 네놈 마력 조작은 가능하지만, 마법은 잘 사용하지 못할 거다. 그야 당연하겠지, 내가 사용하던 대부분의 마법은 흑성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니까 말이야.”


아렐의 말에 이정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확실히 그는 일부 마법 몇 개는 사용할 수 있고, 마력 조작도 가능하지만, 그 이상 마법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재능이 저 남자의 조각이라는 걸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뭐, 상관없어. 여기서 널 죽이면 의미 없으니까.”

“확실히 그렇지.”


뽑아든 검에서 일렁거리는 열기와 함께 일순 주위의 배경이 어지러워진다. 피부로 느껴지는 열기. 역시 아렐의 조각이라면 이와 관련된 건 당연했다.

-훅

흔들리는 배경 사이로 갑작스럽게 이정이 모습을 나타낸다. 그리고 동시에 늘어난 검신이 목을 노린다.

아슬아슬하게 피하니, 목에서 살짝 피가 흘러내렸다.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내고, 다시 숨는다. 덕분에 위치를 감지하기 힘들고, 공격의 범위는 예상치 못하게 늘어나기까지 한다. 이것이 지금껏 조정에서 그를 잡지 못하게 만든 기술. 주변의 온도를 올리고, 마력과 도술을 섞어서 만들어낸 아지랑이란 기술이다.


“기술이 여러 곳으로 발전하긴 했군. 나름 흥미가 생겨.”


예전에 있던 놈들과 비교하기엔 민망하지만, 여러모로 기술이 다채로워진 건 꽤 재밌다. 제왕전쟁 당시에는 강한 출력만이 모든 걸 지배했지만, 강자들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형식의 기술이 필요해진 듯하다.

아렐은 피가 흐르는 목을 살짝 어루만졌다. 상황 자체는 언제나처럼 아렐이 불리하다. 고랭크의 마법으로 내상이 꽤 심하고, 마력도 많이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살주계의 두목은 아렐의 힘의 일부를 가지고 있기까지 하니 기본적인 피지컬도 삳아할 거다.


‘하지만 질 정도는 아니지.’


아렐은 키킥 웃으며 손에 마력을 모았다. 마법은 단순히 힘이 전부가 아니다. 적은 힘으로도 이길 수 있다는 걸, 적은 힘을 가져도 사선을 넘어 강자를 이길 수 있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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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면초가 NEW 3시간 전 2 0 10쪽
29 약속 24.09.17 4 0 12쪽
28 과제 24.09.16 7 1 10쪽
27 용사의 마법사 24.09.15 8 1 10쪽
26 제2식 염시 24.09.14 7 1 11쪽
25 맹수 24.09.13 9 1 12쪽
24 초대 24.09.12 8 1 11쪽
23 진실의 저울 24.09.11 6 1 12쪽
22 티파티 24.09.10 7 1 11쪽
21 대회의 24.09.09 12 2 11쪽
20 동질감 24.09.08 11 1 13쪽
19 화폭 24.09.07 8 1 10쪽
18 천 년 전의 검객 24.09.06 9 1 11쪽
17 5분의 1 24.09.05 9 0 11쪽
16 제의 24.09.04 10 1 11쪽
15 아마츠키 24.09.03 9 1 12쪽
14 흥미로운 것과 습격 24.09.02 11 1 10쪽
13 천 년 후의 후손 24.09.01 12 1 13쪽
12 또 다른 부활 24.08.31 9 1 12쪽
11 건드리면 안되는 것 24.08.30 15 1 12쪽
10 천 년 후의 아카데미 24.08.28 12 1 12쪽
9 아카데미 초청 24.08.27 11 1 12쪽
8 살주계 4 24.08.26 11 1 13쪽
» 살주계 3 24.08.25 17 1 12쪽
6 살주계 2 24.08.24 15 0 11쪽
5 살주계 1 24.08.23 18 2 11쪽
4 조우 2 24.08.22 18 2 11쪽
3 조우 1 24.08.21 26 2 14쪽
2 몸 풀기 24.08.20 36 2 11쪽
1 부활 24.08.20 68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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