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명백백한 마법사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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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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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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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후의 아카데미

DUMMY

살주계와 아렐이 한바탕 한 곳은 말 그대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물론 살주계와의 전투보다는 칸데시아와의 전투 때문에 피해가 더 커졌다. 덕분에 조정에서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한 상태였다.

그렇게 제대로 된 경비가 세워지기도 전, 한 남자가 어스름한 달밤에 현장으로 향했다. 도착해야 할 씨앗이 오지 않아 먹고 튄거라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집단 자체가 궤멸했단 소식이 들려오니 당황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현장은 직접 보니 더 어지러웠다. 산 전체가 무너지고, 불길은 아직도 꺼지지 않아 간신히 번지는 것만 막아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결계를 그대로 찢어버린 엄청난 공격. 이런 마법은 들어 보지도 못했다.


“화염에 물, 게다가 연금술까지... 이정 놈은 마법은 사용하지 못했지.”


남아있는 잔해를 봐선 상대는 한 명이다. 하지만 역추적은 불가능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력에 손을 대니 전기가 오른 것처럼 자동적으로 몸이 떨어졌다.

확실히 범상치 않다는 건 지나가는 바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씨앗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이번 연구에 있어서 씨앗은 필수 요소다. 그게 없으면 실험 자체를 시작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뒤를 좀 쫓아야겠어.”


남자는 혀를 차며 발걸음을 돌렸다. 살짝 비친 그의 목에는 동그란 원 안에 그려진 나무 무늬, 즉 진리의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


아렐은 소매를 정리하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봤다. 이 망할 아카데미도 시간이란 건 흐르는지 교복 디자인이 많이 바뀌었다. 그때만 해도 긴 로브 때문에 덥고, 움직이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요즘 애새끼들은 편하게 사는군. 반바지라니...”


전통을 중시하던 모습이 바뀐 것도 아마 윗대가리가 바뀌면서일 거다. 새삼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는 게 느껴진다. 서대륙의 아카데미가 조선에 있고, 더 나아가 조정의 후원을 직접 받기까지 하다니, 옛날이라면 상상도 못 할 상황이다.

아무튼 대충 정리를 끝내고 바로 밖으로 나섰다. 칸데시아의 말에 따르면 보호자가 필요해 인원이 한 명 갈 거라 했는데, 문을 여니 곧바로 보호자와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 아니, 저희는 처음 만나는군요. 반갑습니다, 아렐 군. 화륜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이미 만난 거 같네요.”

“누구냐?”

“칸데시아 님의 친구... 아니, 직장 동료? 직장 동료도 아니죠. 흠... 뭐 그냥 아는 사이입니다.”


하하 웃는 남자는 능글맞게 웃음을 지었다. 아렐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남자를 한 번 훑어봤다.


“어라? 뭔가 신기하신가요?”

“아니, 그냥. 진짜배기는 오랜만이어서 말이자.”


도사. 그것도 이렇게 훌륭한 도사는 정말로 오랜만이다. 직접 겨뤄보지 않아 실력은 알지 못하지만, 다듬어진 기의 흐름과 느껴지는 유연함만 보면 천 년 전 도사들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흐음... 아무튼 오늘은 제가 당신 보호자로 가게 됐습니다. 싫지는 않으시죠?”

“싫은데.”

“아하하. 농담도 재밌군요. 그럼 어서 갑시다.”


전혀 농담이 아니었지만, 화륜은 알아서 넘겨버렸다. 만약 화륜이 과자를 가져와 그에게 주지 않았다면 버리고 먼저 갔을 거다.


“아렐 군은 이번에 1학년으로 입학하게 될 겁니다. 마침 딱 입학 시즌이죠.”

“입학시험은?”

“시험은 이미 끝났습니다. 당신은 추천서로 들어왔으니 시험을 칠 필요가 없죠.”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방법은 두 가지로, 하나는 들어오기 전부터 입학시험을 보는 것과 명망 있는 인물의 추천서를 받는 거다.


“아무튼 앞으로 열심히 해주시길 바랍니다. 칸데시아님의 명성도 관련이 있고, 뭣보다 이건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죠.”


어느새 도착한 정문 앞. 화륜은 이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인사를 하며 꾸벅 허리를 숙이고 올라오는 얼굴에서는 묘한 날카로움과 능글맞은 웃음이 섞여 있었다.


‘이래서 도사놈들이란.’


저것은 무언의 압박이다. 예로부터 도사들은 감정을 숨기는 것과 비꼬아서 말하는 거 하나만큼은 기깔나게 잘했다.

아렐도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함부로 움직일 생각은 없다. 전에 말했듯이 현대의 마법이 궁금하기도 했고, 아직 힘을 모아야 하니까. 한동안은 조용히 마법 연구나 하면서 시간을 때울 생각이다.


‘경계하고 있는 지금 진리 쪽 놈들이랑 접촉하기에는 위험하지.’


역시 그때 칸데시아의 목숨을 끊었어야 했다. 뭐, 덕분에 아카데미에 들어올 수는 있었지만,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다는 게 여간 불쾌한 게 아니다. 게다가 그런 감시역 중에 도사놈이 있으니 불쾌감이 배로 상승한다.

그렇게 한참 올라가는 짜증 지수를 가져온 간식으로 달래고 있으니, 서서히 신입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대륙뿐만 아닌, 타 종족도 자연스럽게 인간들과 함께하고 있는 건 확실히 진풍경이긴 했다.


‘그건 그렇고 뭐 저리 화려하지?’


기본 교복만 입으면 나머지는 자율 복장이라고는 했지만, 지나치게 화려했다. 장신구는 기본이요, 들고 있는 무기도 척 보기만 해도 상당히 품질이 좋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역시 과거부터 부익부는 바뀌지 않는 듯하다. 아렐도 한때는 저런 모습을 부러워하고,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했었다.


“기분 나쁘군. 이제 과자도 없는데...”

“자, 여기.”


빈 과자 봉지를 버리니, 다른 한 손에 과자가 올려졌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한 소년이 쭈구려 앉아있었다. 아렐은 고민 없이 받았고, 한입에 털어 넣었다.


“어때?”

“별로야. 설탕을 너무 많이 넣었어.”

“그... 내가 물어보긴 했는데, 너무 직설적인 거 아니냐?”

“돌려 말할 이유가 있나? 그래도 먹을만하군.”

“...칭찬이라고 생각할게.”


소년은 일어나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쭈구려 있고, 펑퍼짐한 옷을 입어서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잘 단련된 육체다. 단순히 재능이 아닌, 여러 노력을 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에휴~ 다들 부잣집 도련님이랑, 아가씨들 뿐이네. 젠장, 들어오는 것도 빡셌는데, 앞으로 더 힘들겠어.”

“재능이 없군. 기본적인 마력도, 기도 많이 떨어져.”

“누구 놀리냐? 애초에 어떻게 안 거야?”

“그런 쪽으로는 확실히 보이니까 말이다. 왜 이런 곳에 들어왔지?”


아렐의 질문에 소년은 고개를 푹 숙였다가 이내 하늘을 쳐다봤다. 표정에는 여러 감정이 마구 뒤섞여 처음 보는 색을 내고 있었다.


“몰라.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어. 그리고... 개인적인 사정도 있고 말이야.”

“네 재능이면 성장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계속 이곳에 있겠다는 거냐?”

“말했잖아.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고.”

“흠...”


아렐은 아무런 말 없이 소년을 바라봤다. 예로부터 이런 인간이 가장 재밌었다.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안 했네. 에덴이다. 넌?”

“지금은 아렐이라고 불러라. 그거면 됐어.”


그렇게 에덴과의 짧은 만남이 있고 난 후, 본격적으로 입학식이 시작됐다. 신입생들이 한곳에 모이고, 간단히 교수진들의 말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천 년 전과 똑같았는데, 교복 바꿀 시간에 이딴 거나 없앴으면 했다.


“안녕하십니까. 현 아카데미의 교장을 맡고 이종건이라고 합니다.”


관록이 있는 남자가 교탁에 올라서며 말했다. 아카데미의 규칙, 교사 소개 등 꽤 중요한 내용이 이어졌지만, 아렐은 하나도 듣지 못했다. 첫 마디를 뗀 순간 반쯤 잠들었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마지막 교사를 소개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이분이 연금술 담당 교수십니다.”


늘어지게 하품하며 별생각 없이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마치 찬물을 확 끼얹은 거처럼 가득하던 잠이 순식간에 달아난다. 멀리서도 보이는 문양. 동그란 원 안에 그려진 나무 문양이 연금술 교수의 손목에 확실하게 새겨져 있었다.


‘허. 이게 무슨.’


그렇게 찾고 있던 진리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쳤다. 천 년 전만 해도 거의 모든 마법사와 대적했는데, 화합이라도 한 것일까? 녀석들 특성상 절대로 물러서지 않으니 화합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저 문양 자체가 가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 어느 미친놈이 역사적으로 돌아이 취급받는 조직의 문양을 대놓고 손목에 그리고 다닐까?


‘설마 와해된 건가? 아니면 진짜로 화합을’


한 번 의문을 가지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이 생겨났다. 슬슬 아파지려는 머리에 아렐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을 떨쳐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입학식이 끝나고, 배정된 반으로 향했다. 아카데미의 내부는 동대륙과 서대륙의 건물을 적절히 배합해 놓은 모습이었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마법사나 기사처럼 다른 내용을 배워도 따로 반을 나누지 않는다. 이유를 들어 보니 각자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 위해서라 한다.

아렐의 반은 1-A반. 문을 열고 들어오니 이미 도착한 학생들로 가득했다. 그는 최대한 학생들이 없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말 걸지 말라는 의미로 학교에서 나눠준 커리큘럼을 다시 확인하기로 했다.


“아까 봤어? 이번 신입생 라인업이 이상하던데.”

“그니까. 교수진도 미쳤는데, 신입생이 더 미친 거 같아. 왕족만 몇 명이야.”


한참을 보고 있으니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듣기 싫어도 귀가 열려있고, 모두 한 이야기로만 떠들고 있으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서대륙 왕족에, 아스카 왕족, 조선 공주도 있다고 하던데?”

“그것뿐만이 아니야. 천재라고 불리는 녀석들도 다 여기로 왔다고. 황금 세대라고 부르더라. 격차가 엄청나겠지?”


학생들은 일제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왕족, 즉 혈통으로 전해지는 재능은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다. 마력, 기, 혹은 마법이나, 주술, 그리고 무투같은 기술도 특정 혈통만 배울 수 있는 게 존재하는 세상이니까 말이다. 말 그대로 스타트 지점이 다른 것이다.

-덜컹

그렇게 웅성거리던 교실은 문득 열린 문과 함께 일순 조용해졌다. 문을 열고 들어온 하얀 머리와 하얀 눈동자를 가진 소녀. 서대륙 브르타뉴 제국의 제3왕녀인 글레시아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긴장 안 해도 돼.”


학생들은 쭈뼛거리며 천천히 글레시아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몰려든 인파만 봐도 권력이 가지고 오는 힘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저게 공주님? 예쁘긴 하네. 눈 요정 같아.”

“브르타뉴 제국의 왕족은 과거부터 얼음 마법에 통달했었지. 그건 그렇고 네놈도 여기냐?”


에덴은 어느새 옆에 앉아있었다.


“아니, 왜 저런 재능아랑 붙인 건데. 차이가 너무 나잖아.”

“그렇긴 하지. 하늘과 땅... 아니, 벌레와 드래곤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이것보다 더 괜찮은 표현이 있을 거다.”

“그만해. 마음 아퍼...”


연속적으로 들어온 비수에 에덴은 책상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미 라이프 포인트가 제로인 에덴을 뒤로 아렐은 글레시아를 바라봤다. 눈에서부터 느껴지는 차가운 냉기. 확실히 저쪽은 제대로 타고난 듯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군. 뭔가가 더 있는 거 같은데...’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둘은 눈이 마주쳤다. 하얀 눈동자는 아렐을 본 순간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저 사람 어디서...’


글레시아의 머리에서 아렐이 생각날 뻔했지만, 몰려드는 학생들의 질문 덕분에 지워지고 말았다. 글레시아는 그저 찜찜하단 표정으로 힐끔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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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면초가 NEW 3시간 전 2 0 10쪽
29 약속 24.09.17 4 0 12쪽
28 과제 24.09.16 7 1 10쪽
27 용사의 마법사 24.09.15 8 1 10쪽
26 제2식 염시 24.09.14 7 1 11쪽
25 맹수 24.09.13 9 1 12쪽
24 초대 24.09.12 9 1 11쪽
23 진실의 저울 24.09.11 6 1 12쪽
22 티파티 24.09.10 7 1 11쪽
21 대회의 24.09.09 12 2 11쪽
20 동질감 24.09.08 11 1 13쪽
19 화폭 24.09.07 8 1 10쪽
18 천 년 전의 검객 24.09.06 9 1 11쪽
17 5분의 1 24.09.05 10 0 11쪽
16 제의 24.09.04 10 1 11쪽
15 아마츠키 24.09.03 9 1 12쪽
14 흥미로운 것과 습격 24.09.02 11 1 10쪽
13 천 년 후의 후손 24.09.01 12 1 13쪽
12 또 다른 부활 24.08.31 10 1 12쪽
11 건드리면 안되는 것 24.08.30 16 1 12쪽
» 천 년 후의 아카데미 24.08.28 13 1 12쪽
9 아카데미 초청 24.08.27 11 1 12쪽
8 살주계 4 24.08.26 11 1 13쪽
7 살주계 3 24.08.25 17 1 12쪽
6 살주계 2 24.08.24 16 0 11쪽
5 살주계 1 24.08.23 18 2 11쪽
4 조우 2 24.08.22 19 2 11쪽
3 조우 1 24.08.21 27 2 14쪽
2 몸 풀기 24.08.20 37 2 11쪽
1 부활 24.08.20 68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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