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명백백한 마법사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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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1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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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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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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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DUMMY

아르카나의 상단이 붕괴되고 나서 한동안 꽤 시끄러웠다. 아무래도 대륙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상단이었고, 아렐이 워낙 거하게 질렀으니까.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고, 조용히 지나갈 수 없는 내용이었다.


“서대륙 측에서는 어떻게 대응하기로 했어?”

“아직 정확한 이야기는 못 들었어. 일단 여러 상단에게 유통을 맡길 거 같은데... 그것도 쉽지 않겠지.”

“우리 쪽도 마찬가지다. 모두 지들 이익 챙긴다고, 양보하지 않으니 원...”


세 공주는 들려온 소식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려운 경제 내용에 에덴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애초에 저 셋이 왜 자신의 옆에 붙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공주님들도 고생이 많네요.”

“해야 할 일이니까. 골치 아픈 일이긴 하지만, 마냥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어...”

“그러고 보니, 그 상단이 여러 범죄 조직과 연결됐다고 했죠. 특히 불법 노예 거래로 심각하다고 하던데요.”

“그러니까 말이야! 대체 어떻게 눈을 속였지?”


얀카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아르카나의 상단은 거의 모든 동대륙 나라와 연결됐고, 그건 아스카 제국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지금 전체적으로 조사 중인데... 이상한 행적을 보이는 내부인은 없더라고.”

“내부인 문제도 있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남아있는 장부를 보니 대량으로 무기나 살주계같은 조직을 어딘가와 연결시켰던데... 막상 그 대상을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 팔린 무기, 저주, 마법 주문서 등등을 보면 준비 기간과 그 수량이 상당하다. 대략적인 무기의 양만 봐도 거의 전쟁을 준비하는 수준이다. 아니, 실제로 전쟁을 준비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머리가 아프다~. 머리가 아파~.”

“도와줄 일은 없겠죠?”

“됐어. 너희같은 서민들은 그냥 일상을 보내는 게 일이야. 그러고 보니 만날 붙어 다니던 싸가지는 어딨어?”

“오늘 조금 늦게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뭐, 확인할 게 있다던데.”


아렐의 이야기에 글레시아는 문득 몸을 떨었다. 저번 파티 이후, 그녀는 여인이 아렐이라고 확신한 상태였다. 물론 그에 대한 증거가 하나도 없었고, 무엇보다 아렐의 협박이나 다름없던 말 때문에, 칸데시아와 묵지에게만 조용히 말해뒀다.


‘그러고 보니, 아카데미 습격 당시에도 여인은 불꽃을 사용했다고 했지. 설마 이번에도...’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일을 잘 모르겠어요. 뉴스라도 읽어야 하나?”

“잘 생각했어. 서민은 그렇게라도 교양을 쌓아야지. 마침 저기서 파니까, 신문이나 하나 사 와서... 어 그 녀석 저기 있네?”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아렐은 신문을 읽으며 조용히 코코아를 마시고 있었다.


‘그 엘프놈이 온 거면, 분명 내 조각 때문이겠지. 하지만 조용한 걸 보니, 역시 알릴 생각은 없는 건가?’


하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그의 조각이 분실됐다는 걸 알면 어떤 혼란이 생길지 모른다. 특히 아르카나의 장부에서 발견된, 그 녀석들이 가장 먼저 움직일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명분이니까.


**********


현재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겉모습일 뿐이다. 그 안은 여전히 썩어있다.


‘이 장부만 봐도 알 수 있지. 역시 시간이 흘러도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니까.’


아렐은 장부를 천천히 살폈다.

단순한 장부이기에 아렐로서는 여기에 적힌 놈들이 뭘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 대부분인 평범한 조직...이겠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몇 개가 보인다. 특히 20년 동안 무기와 저주, 그리고 마법 주문서를 모아온 한 조직, 규모만 보면 세상과 전쟁하는 수준이었다.


“아니, 이 정도면 거의 확실하군.”


아무튼 아르카나 덕분에 꽤 재밌는 걸 얻게 됐다. 그리고 동시에 상황도 재밌어졌다. 아르카나 상단은 말 그대로 모든 무기의 공급원. 갑작스럽게 그런 중간 지점이 사라지고, 일부 장부는 조정의 손에 들어갔으니 조직들은 꽤 불안할 거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조정이 그들의 체포를 선포하지 않으면,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세세한 내용이 적힌 장부를 가지고 있는 진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곧장 아렐을 쫓을 것이다.

게다가 엘프놈을 포함해서 여러 정부의 세력 역시 그를 쫓을 것이다. 현재 상황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 아직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옛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천 년 전에도, 늘 사방에서 적이 달려들었다.


“날 가장 먼저 찾아낼 놈들은 그 녀석에게 마력 억지 마법을 가르쳐 준 놈들이겠지.”


그 식을 알고 있는 걸 보면, 절대로 평범한 조직은 아니다. 아마츠키처럼 부활한 놈이 또 있는 걸까? 그렇다면 상황을 이해하기 쉽지만, 직접 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내 쪽에서 유인을 좀 해볼까?’


유인 방법은 쉽다. 한동안 좀 더 날뛰면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엘프년을 먼저 만나 버릴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건 하도 오랫동안 살아서, 조금이라도 마력을 흘리면 금방 찾아낼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피하면서 움직이려고 했건만...’


아카데미 안에 떡하니 서 있는 리니아. 이제는 완전 검게 물들어 버린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온다. 천 년 전에는 그래도 부분, 부분 하얀색이 남아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늘 느끼는 거지만, 이 녀석은 참 오랫동안 산다. 천 년 전 당시에도 상당히 살았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살아있다. 아무리 엘프라고 해도 그렇게 오랫동안 살지 못할 텐데,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건 아닐까?


“리니아님께서 니를 만나고 싶어 했다.”


홍련은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한테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안내역을 맡았다. 그래서 지금 모든 게 혼란스럽다. 리니아를 직접 만난 것도, 저 둘의 조합도 말이다.


“전 가넷, 리니아님의 제자입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죄송해요.”

“뭐야, 뭔데.”

“리니아님이 왜 여깄어...?”


아렐보다 주변이 더 난리였다. 어느새 모여든 구경꾼으로 복도가 가득해졌고, 웅성거림으로 시끄러워졌다.

이미 아렐은 아카데미에서 꽤 유명한 상태였다. 칸데시아의 초청, 얀카와의 전투, 글레시아의 관심 등등 유명인사들과 엮였으니 당연히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항상 아렐이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자리를 피했기에, 결정적인 사건은 없었다. 아니, 이제는 과거형으로 없었었다.


‘예전부터 참 귀찮게 하는군. 그때를 생각하면 백만 번 죽여도 모자른 놈인데... 기분이 왜 이러지.’


이상하게 짜증이 나지 않는다. 멀리서 봤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스스로의 감정이 의심될 만큼 이상하게 그리운 기분이 든다.

원래라면 그녀의 마력이 짙어질수록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투지가 불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오랜만의 동료를 만나는 거처럼 반가움이 먼저 들었다. 아마츠키처럼 단순히 아는 이를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 아니다,


“용건이 길지는 않으니 금방 가겠습니다. 스승님 어떠신가요?”

“....아니야. 전혀 다른 사람이야.”

“그렇군요. 그럼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 장소로...”

“조금만 이야기할까?”


리니아의 말에 가넷은 살짝 당황했다. 다름 아닌 그 스승이 먼저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권했다. 귀차니즘 만땅인 엘프를 그 누구보다 가까이 봐온 자였기에,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신기한 건지 잘 알고 있었다.


“스승님 시간이 많지 않아요.”

“조금 시간 낸다고 해서 지장이 생기지는 않잖아.”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분 친구분들과 이야기 좀 하고 있겠습니다. 브리엘도 만나면 되겠군요.”


가넷은 재빨리 홍련과 에덴을 데리고, 브리엘을 만나러 갔다. 마침 함께 있던 글레시아도 얼떨결에 가넷에게 끌려갔다.


“여러분들 좋아하는 간식 있으신가요?”


끌려온 네 명의 아카데미생은 자리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었다.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가넷이 먼저 말을 이었다.


“브리엘은 괜찮아 보이네요. 저번에 다쳤다고 하던데.”

“네... 계속 쉬어서 이제는 괜찮아요. 생각보다 상처가 심해서 요양 기간이 조금 늘어나긴 했네요. 글레시아님 파티에 가고 싶었는데.”

“어쩐지 저번에 아카데미에 갔을 때 없더라니. 요양이 길어졌군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둘을 보면서, 에덴은 글레시아에게 조용히 물었다.


“둘이 아는 사이인가요?”

“응. 제대로 말해주지는 못하지만, 브리엘의 특성 때문에. 그래서... 저 둘은 왜 만난 거야?”


글레시아는 멀리서 탁자에 앉아 디저트를 먹는 아렐과 리니아를 가리키며 물었다. 에덴도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뭐라 설명하지 못했다.

뜨거운 홍차를 마시며 리니아는 빤히 아렐을 바라봤다. 분명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는, 묘하게 불쾌감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런 기분이 전부 날아갔다.


‘나도 모르게 데리고 와버렸네.’

‘이 녀석이랑 티타임이라니. 내가 드디어 미쳤군.’


서로가 스스로의 행동에 의문을 표했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둘 다 감정에 충실한 편이었기에, 말없이 디저트만 먹었다.

묘한 반가움을 느낀 건, 비단 아렐뿐만이 아니었다. 리니아 역시 그에게 알 수 없는 반가움을 느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그보다 더 강하게 마음이 움직였다. 마치 과거의 동료를 만난 거처럼.


‘그래... 이 기분은 마치...’


문득 그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한 장면. 한 남자가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천 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기억나는 목소리, 표정, 숨결. 어떻게 그 광경을 잊을 수 있을까? 지금보다 시간이 더 지나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래. 눈앞의 남자는 그와 비슷한 기운을 가졌다. 빛바랜 그녀의 인생에 색을 칠해준 사람. 리니아의 마음을 움직였던, 세상의 모든 자들이 사랑했던, 현재의 평화를 만든, 평화의 존재.


‘용사.’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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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엘프 마법사 NEW 3시간 전 0 0 10쪽
» 사면초가 24.09.18 5 1 10쪽
29 약속 24.09.17 5 1 12쪽
28 과제 24.09.16 8 1 10쪽
27 용사의 마법사 24.09.15 8 1 10쪽
26 제2식 염시 24.09.14 9 1 11쪽
25 맹수 24.09.13 11 1 12쪽
24 초대 24.09.12 9 1 11쪽
23 진실의 저울 24.09.11 7 1 12쪽
22 티파티 24.09.10 9 1 11쪽
21 대회의 24.09.09 13 2 11쪽
20 동질감 24.09.08 12 1 13쪽
19 화폭 24.09.07 9 1 10쪽
18 천 년 전의 검객 24.09.06 10 1 11쪽
17 5분의 1 24.09.05 10 0 11쪽
16 제의 24.09.04 11 1 11쪽
15 아마츠키 24.09.03 10 1 12쪽
14 흥미로운 것과 습격 24.09.02 13 1 10쪽
13 천 년 후의 후손 24.09.01 12 1 13쪽
12 또 다른 부활 24.08.31 11 1 12쪽
11 건드리면 안되는 것 24.08.30 16 1 12쪽
10 천 년 후의 아카데미 24.08.28 13 1 12쪽
9 아카데미 초청 24.08.27 12 1 12쪽
8 살주계 4 24.08.26 12 1 13쪽
7 살주계 3 24.08.25 17 1 12쪽
6 살주계 2 24.08.24 17 0 11쪽
5 살주계 1 24.08.23 19 2 11쪽
4 조우 2 24.08.22 19 2 11쪽
3 조우 1 24.08.21 28 2 14쪽
2 몸 풀기 24.08.20 3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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