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명백백한 마법사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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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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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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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저울

DUMMY

티파티,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위로연인 파티는 바로 다음 날인 주말에 진행됐다. 원래라면 재료를 구하고, 초대 손님들에게 알맞은 디저트를 하나하나 생각해야 했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다. 덕분에 메이드들 사이에서는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 그들을 아껴주던 글레시아의 마음이 힘을 발휘하면서, 메이드들은 초월적인 힘을 발휘. 간신히 시간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하얗게 불타버린 메이드들을 바라보며 글레시아는 추가 수당을 꼭 약속했다.


“오우. 엄청 크네.”


기숙사가 아닌, 조정에 있는 가장 큰 호텔이 파티 장소로 뽑혔다. 평소 발도 들이기 힘든 신성한 장소에 에덴은 얼어붙었다. 갑작스럽게 티파티에 초대된 것도 긴장되는 데, 들어가기도 전에 기가 죽어버렸다.


“아카데미 습격 사건에 대한 위로연이라고 했지. 그래서 아카데미 학생과 교수, 결계에 들어왔던 장군과 기사까지 전부 초대하고. 의도는 좋은데,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니야?”

“약속했으니까 말이다. 시간은 지켜야지.”


글레시아가 아렐에게 한 디저트 대접에 대한 약속 기한은 최대 3일이었다. 그 이상 넘어갔으면 일단 처들어가서 불태울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눈치가 빠른 여자였다.


“이런 데서 입을 옷도 없는데.”


에덴은 후줄근한 옷을 보며 고민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으면 미리 옷이라도 준비할 걸 그랬다.


“그냥 대충 즐겨라. 남의 눈치를 신경 쓸 이유가 없지.”

“넌 경험이 있냐?”

“굳이 따지자면 있다고 해야겠지.”

“뭐라는 거야.”


과거 몇 번 이런 파티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당시 아렐을 어떻게든 자신들의 편으로 영입하기 위한 자들이 연 파티였지만, 당연히 그의 마음에 든 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음식은 늘 괜찮았기에, 파티장에서 소란을 피운 적은 많지 않다. 가끔, 아주 가끔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며 나대는 놈들이 있었는데, 그들 모두 한 줌의 재가 돼버렸다.

이번에는 부디 맛있는 디저트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아렐과 에덴은 문을 열었다. 고풍스러운 문이 열리자마자 보인 건 화려한 샹들리에와 그들을 반기는 여러 메이드, 그리고 커다란 초콜릿 분수였다.


“환영합니다. 아렐 군과 에덴 군.”


하얀 콧수염을 가진 집사의 환대를 받으며 아렐과 에덴은 홀로 들어섰다. 에덴은 화려한 장소에 입이 떡 벌어졌고, 아렐은 오로지 디저트만 보고 있었다.


“이건 괜히 가져왔네. 젠장, 쪽팔려.”

“그게 뭐냐?”

“엄마가 준비한 선물. 공주님께 드리라고 했는데, 괜한 짓이지. 이런 건 쪽팔리기만 하다...”


-빡!

아렐은 문득 에덴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에덴은 뭐라 반응하지도 못하고, 얼얼한 뒤통수만 어루만졌다.


“어머니는 네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길 바라서 그런 거다.”

“그건 알긴 하는데, 때릴 정도냐?”

“뭐야, 너희도 왔어?”


한참을 얘기하고 있으니, 문득 얀카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서대륙식 드레스로 치장한 그녀의 미모는 평소보다 몇 배는 빛나는 거 같았다. 저런 화사하고, 화려한 옷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이런 곳에 어울리는 예복을 입어야지. 이래서 서민들이란...”

“하하, 이런 곳에 올 일이 없어서요.”

“됐어. 파티 망칠 생각하지 말고, 드레스룸으로 가. 내가 준비해둔 예복 중에 마음에 드는 거 아무거나 가져. 어차피 너희가 입으면 다시 쓰지도 못하니까, 그냥 가지고.”

‘...착한 사람인가?’


어쩐지 모두가 깔끔한 드레스와 예복을 입고 있나 싶더니, 얀카의 배려 덕분인 듯하다.

겉모습은 오만한데, 배려심이 가득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이 있던데, 그 말의 표본인 듯하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아렐, 넌?”

“난 됐다. 빨리 가서 입고 오기나 해.”


그렇게 에덴이 옷을 입으러 간 후 아렐과 얀카 사이에서는 묘한 침묵이 흘렀다. 얀카는 부채로 살짝 입을 가리며 말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격식을 차려야 한다고. 서민이면 좀 배우는 게 어때?”

“네 모습을 보니 동대륙의 한 말이 떠오르더군. 뭐라고 했더라...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고 하던가?”

“둘 다 고마해라.”


어느새 검을 잡은 얀카의 팔을 중간에 끼어든 홍련과 아우룬이 제지했다.

홍련은 연회용 한복을 입고, 화장도 아름답게 했지만, 그럼에도 피곤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래도 조선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보니 그녀에게도 이것저것 일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기껏 이쁘게 해놓고, 싸우지 말래이. 글레시아가 싫어할기다.”

“맞습니다. 위로연인 만큼 조용히 지나가야죠.”

“흥. 글레시아를 생각해서 봐주는 거야.”

“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의 공주에게 말본새가 그게 뭐노.”

“내가 뭐라 말하든 상관없지. 왜? 존대라도 해야 하나?”


아렐은 디저트를 하나 먹으며 씩 웃었다. 달콤한 초코 몽블랑이 입안에 한가득 퍼지니 기분이 순식간에 좋아진다.


“아무튼 오늘은 싸우지 마라. 단순한 파티가 아니니까 말이다.”


홍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순 불이 꺼지면서 높은 단상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또각거리는 구두굽 소리와 함께 상당히 파격적인 드레스를 입은 글레시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가볍게 잔을 흔들며 입을 열었다.


“오늘 저희가 여기 모인 건, 불안을 잠재우고, 떠나간 이들을 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카데미 습격 사건으로 인해 이미 여론은 상당히 좋지 않다. 단순 조선뿐만이 아닌 다른 나라도 불안에 떨고 있다.

움직이기 시작한 진리와 부활한 천 년 전의 강자, 그리고 사라진 마법사의 왕의 영혼 조각. 이건 절대로 쉽게 넘길 수 없는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두려움에 떨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뭉쳐야 한다.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라면, 또한 두 번 다시는 희생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며. 떠나간 이들을 위해 잔을 들겠습니다.”


글레시아가 잔을 드는 동시에 일제히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렐은 간식을 하나 더 입에 넣으면 글레시아를 빤히 바라봤다.

저 어린 나이에 정신적으로 거의 성장했다. 아카데미 습격 때의 모습만 봐도 강한 의지로 흔들림 없이 곧게 나아갔다. 흔히 말하는 성군에 가까운 존재로, 나름 미래가 기대된다. 허나, 지금으로서는 부족하다.


“와씨, 이거 맛있다.”


돌아온 에덴은 이것저것 음식을 집어 먹었다. 평소 같으면 꿈도 꿀 수 없는 디저트에 반쯤 눈이 돌아간 상태다. 아렐도 수십 종류의 디저트를 하나씩 맛봤다. 커피도 쓰지 않고, 달달하니 딱 마음에 든다.


“어때? 맘에 들어?”


한참을 즐기고 있으니, 문득 글레시아가 다가왔다. 아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가득하던 심연 같은 짙은 어둠은 사라진 지 오래고, 어린애 같은 순수한 행복함이 가득하다.


“공주님, 이거 저희 어머니께서 주시라고 한 건데... 안 받으셔도 돼요.”

“아니야. 정말 고마워. 어머님께도 감사하다고 전해줘.”

“흐음~ 나름 예의가 있네. 하긴 내 등에 업힌 남자라면 그 정도 예의는 있어야지.”

“그러고 보니 니가 그때 약점을 발견한 아가? 덕분에 살았데이.”

“맞습니다. 그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집중된 시선에 에덴은 쑥스러운지 고개를 숙였다. 화목한 분위기. 글레시아는 슬쩍 아렐의 상태를 체크했다. 그 역시 기분이 좋은지 계속해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지금 타이밍이 딱 좋을 거 같았다.


“곧 있으면 댄스 시간도 있는데, 그전까지 우리끼리 간단한 게임이라도 할까?”

“게임? 좋다! 무슨 게임인데?”

“이 물건 혹시 알아?”


글레시아는 품에서 작은 저울을 꺼냈다. 이 마도구는 일명 진실의 저울이라는 마도구로, 이름 그대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한다. 질문에 대해 진실로 답하면 오른쪽으로, 거짓으로 답하면 왼쪽으로 기운다.


“진실게임이가? 재밌겠구만.”

“다른 사람들도 부르면 좋겠지만...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우리끼리 간단히 놀자. 에덴과 아렐도 같이 할 거지?”

“저는 상관없는데, 넌 어쩔 거냐?”

“디저트를 계속 먹어도 된다면 상관없다.”


그렇게 여섯 사람은 조용한 휴게실로 향했다. 한 가운데에 둔 종을 중심으로 얀카부터 질문을 시작해, 아렐에서 끝이 난다.


“그러면 나부터지. 글레시아! 혹시 약혼자는 있어?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이라던가.”

“약혼자는 아직 없어. 좋아하는 사람도 딱히 없고.”


-띵!

맑은 종소리와 함께 저울이 오른쪽으로 기운다. 얀카는 어째선지 만족스럽다는 표정이다. 그렇게 이어서 홍련이 질문했다.


“아우룬이라고 했나? 검술이 특이하던데, 어디서 배운 기고?”

“하하, 저희 스승님 검술이 조금 특이하죠. 저는 기본기만 배우고, 나머지는 제 마음 가는 대로 변형시킨 겁니다. 자, 진실을 말했으니 이어서 질문하죠. 에덴 씨는 이 세 공주님 중 누가 가장 아름다우신 거 같나요?”


갑작스럽게 훅 들어온 질문에 일순 에덴의 입에 들어갔던, 음료가 다시 바깥으로 나온다. 세 공주는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 그의 말에 집중했다.


“원래 이런 질문이 제일 재밌는 거죠. 진실게임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어... 음... 글레시아님?”


그의 대답에 글레시아는 살짝 미소를 지었고, 나머지 둘은 영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두 공주는 분노가 섞인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씩 했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다고 하니께. 뭐, 글래시아가 예쁘건 인정하지.”

“그래, 글레시아가 예쁘긴 하지. 난 옷도 선물해줬는데, 말이야.”


객관적으로 봐도 셋 다 상당한 미인이다. 그래도 글레시아가 이번 파티의 주최자니 고른 것인데... 에덴은 황급히 말을 돌렸다.


“제, 제 차례죠! 얀카님 기술이 무척 빠르던데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어머, 말 돌리기? 괘씸하지만 이번만 봐줄게.”


얀카는 후후 웃으며 조용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에 에덴의 숨이 턱턱 막혔다.


“내 기술이 빠른 이유는 번개 원소를 기본적으로 타고 나기 때문이야. 그래도 굳이 집중하는 곳이 있다면 다리이려나?”

“다리...군요.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은...”

“내 차례지.”


글레시아는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기우는 저울과 아렐을 번갈아 바라봤다. 저울은 제대로 작동한다. 지금이라면 그의 기분도 딱히 나빠 보이지 않고, 설사 나빠진다고 해도 더 맛있는 디저트로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난 아렐에게 질문할게. 아렐, 혹시 아카데미 습격 당시에 이런 가면을 쓴 사람과 마주친 적 있어?”


글레시아는 가면 그림을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이 가면을 직접적으로 목격한 것은 별관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칸데시아와 금나리, 그리고 그레이뿐이다. 학생이 가면을 보려면 문을 지키고 있던 아마츠키를 뚫고 지하로 내려가던가, 아니면 칸데시아와 금나리가 싸울 때 근처에 있어야 한다.

전자는 애초에 말이 안 되고, 후자는 칸데시아와 금나리가 전투에 들어가기 전, 길을 아예 통제해버렸기에 이 역시 말이 안 된다. 한마디로 평범한 학생이라면 절대로 볼 수 없는 가면이다.

질문을 고르는 것은 참 힘들었다. 대놓고 물어봤다가는 저번에 봤던 미래처럼 막 나갈 수도 있기에, 그가 변명할 수 있는 선에서 준비했다. 하지만 그가 뭐라 변명하든, 아렐이 이 가면을 봤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지하에서 싸우던 여인은 아렐로 확정된다.


“...난.”


아렐은 뜨거운 코코아를 쭉 마시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작 1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하지만 글레시아에게는 1년처럼 긴 시간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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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면초가 NEW 3시간 전 2 0 10쪽
29 약속 24.09.17 4 0 12쪽
28 과제 24.09.16 7 1 10쪽
27 용사의 마법사 24.09.15 8 1 10쪽
26 제2식 염시 24.09.14 8 1 11쪽
25 맹수 24.09.13 10 1 12쪽
24 초대 24.09.12 9 1 11쪽
» 진실의 저울 24.09.11 7 1 12쪽
22 티파티 24.09.10 8 1 11쪽
21 대회의 24.09.09 13 2 11쪽
20 동질감 24.09.08 12 1 13쪽
19 화폭 24.09.07 9 1 10쪽
18 천 년 전의 검객 24.09.06 10 1 11쪽
17 5분의 1 24.09.05 10 0 11쪽
16 제의 24.09.04 11 1 11쪽
15 아마츠키 24.09.03 10 1 12쪽
14 흥미로운 것과 습격 24.09.02 12 1 10쪽
13 천 년 후의 후손 24.09.01 12 1 13쪽
12 또 다른 부활 24.08.31 10 1 12쪽
11 건드리면 안되는 것 24.08.30 16 1 12쪽
10 천 년 후의 아카데미 24.08.28 13 1 12쪽
9 아카데미 초청 24.08.27 12 1 12쪽
8 살주계 4 24.08.26 12 1 13쪽
7 살주계 3 24.08.25 17 1 12쪽
6 살주계 2 24.08.24 16 0 11쪽
5 살주계 1 24.08.23 19 2 11쪽
4 조우 2 24.08.22 19 2 11쪽
3 조우 1 24.08.21 27 2 14쪽
2 몸 풀기 24.08.20 37 2 11쪽
1 부활 24.08.20 69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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