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명백백한 마법사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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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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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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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초청

DUMMY

거처로 돌아온 아렐은 며칠 동안 마력을 회복하고, 치료하는 데 전념했다. 지금까지 먹어 치운 인간과 얻은 영혼 조각 덕분에 꽤 빠르게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원래라면 곧장 신전으로 가야겠지만, 조정에서는 분명 이번 사건에 대해 조사를 시작할 거고, 심하게 다친 그를 의심할 거다.


‘그래도 마지막 체크는 해야겠지? 전과 달리 신전을 이용할 수 있는 건 좋네.’


천 년 전, 인간과 제대로 대립하기 시작하면서 신전에는 발도 내밀지 못했다. 흑성으로 할 수 있는 치료도 좋긴 하지만, 역시 치료만큼은 신전을 이겨낼 수 없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대충 상황은 정리됐다. 현재 그의 힘은 이곳저곳으로 퍼진 상태. 인간이 가지고 있을지, 아니면 짐승이나, 괴물들이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생명체의 몸에 흡수되어 있을 거다.

이번에 얻은 조각을 시작으로 공명은 시작됐으니, 찾는 것은 더더욱 수월해졌다. 문제는 그동안 무얼 하고, 그 이후에 무얼 하냐이다.

세상이 평화로워진 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쟁 당시에 있던 피비린내와 살 타는 냄새, 그리고 사선을 넘는 싸움이 그립긴 하다. 하지만 평화로워졌기에 생겨난 여러 음식과 여러 방향으로 생겨난 마법에 흥미가 생겼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과자도 맛있었지. 흠... 역시 미룰까?’


천 년 전만큼 강한 실력자도 없고, 유일하다면 유일한 복수 대상인 용사도 죽었으니 딱히 싸울 생각도 이유도 없다. 물론 심심하거나, 상대 쪽에서 시비를 걸면 기분 좋게 죽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하고 있으니, 어느새 신전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기도실 한 가운데에 저번에 봤던 수녀가 앉아 있었다.


“어머, 당신은... 아! 아렐씨 맞죠? 오랜만이네요.”

“응. 오랜만.”

“어디 다치셨나요?”

“별건 아니고, 몸이 좀 이상해서. 마지막으로 검사를 받고 싶거든.”


수녀는 잘 왔다면 방긋방긋 웃었다. 과거 신전은 고위층만 갈 수 있는 특수한 장소였는데, 확실히 시대가 많이 바뀐 듯하다. 이제는 돈도 안 내고 무료로 치료 해주다니... 전쟁이 끝나고 윗대가리들을 한 번 갈아엎기라도 한 것일까?


“흠... 크게 다치신 곳은 없지만, 내상이 심하네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수녀는 등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흑성으로 치료는 했는데, 부족한 마력으로 역시 내상은 완벽하게 치료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부상이 심한지 한동안 신성에 몸을 담궈야 한다고 한다.


“그럼 전 밖에서 일 좀 처리하고 있을게요. 모래시계가 다 떨어지면 나오세요.”

“그래~.”


방을 나서기 전 수녀는 힐끔 아렐을 바라봤다. 아렐은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천진난만한 소년의 모습 같았지만, 칸데시아가 했던 말 때문에 꼭 그렇게 보이지도 않았다.


‘조심하라고 했었지.’


저번 키메라 사건이 끝나고 칸데시아는 수녀에게 당부했다. 아렐을 조심하라고.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무언갈 숨기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늘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몸에 있는 내상은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평범하게 입은 것이 아닌, 전투로 생긴 상처다. 게다가 직접 접촉한 후에야 알아차렸는데, 그때는 느끼지 못한 게 이상할 정도로 어두운 무언가가 몸속 깊숙이 자리 잡았다.


‘저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 아니, 애초에 두 사람 같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고민하며 발을 옮기니, 어느새 정문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무슨 우연인지 칸데시아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님?”

“...오랜만입니다. 인사는 여기까지 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혹시 저번에 봤던 아렐이란 분이 여기에 오셨습니까?”

“네. 지금 안쪽에서 치료 중이세요.”

“치료 말입니까? 혹시 상처가 어땠는가요?”


칸데시아는 저도 모르게 수녀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갑작스럽게 붙잡힌 어깨에 엄청난 힘이 느껴졌고, 수녀는 신음을 내뱉었다.


“아,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어서.”

“아니요. 괜찮아요. 근데 무슨 일이세요.”

“조사할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렐, 그 사람은...”


막 본론을 꺼내려는 순간 철퍽철퍽, 물기가 가득한 발바닥 소리가 들려왔다. 아렐은 어느새 치료를 끝냈는지 바깥으로 걸어나왔다. 칸데시아는 저도 모르게 곧장 검에 손을 댔지만, 일순 이상함을 느꼈다.


‘...뭐지? 저번처럼 기운이 달라졌어.’


공허했던 눈빛은 저번처럼 갑작스럽게 다시 생기로 가득해졌다. 아렐 역시 이상함을 느꼈는데, 저번에 치료받고 났을 때처럼 기분이 이상할 정도로 좋아졌다.


“병이라도 걸렸나? 왜 이러지.”

“여기 계셨군요, 아렐 씨.”

“뭐야, 날 찾았어? 무슨 일이야.”


부드러워진 말투에 저도 모르게 긴장이 풀어진다. 칸데시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정신을 부여잡았다.


“어디 다치셨습니까?”

“응. 몬스터랑 싸우다가 다쳤어. 내상을 좀 입어서 치료받으러 온 거고.”

“내상...이군요.”


조용히 아렐을 바라보니 그의 말대로 딱히 특별한 점은 없었다. 제3자, 그 누가 봐도 방금 아렐의 말을 믿을 것이다.

하지만 칸데시아는 확신하고 있다. 눈앞의 남자가 살주계에서 만난 소녀와 분명 어떠한 관계가 있을 거란 것을. 가족, 협력 관계 등등 여러 가설이 있지만, 가장 터무니없고, 그가 가장 확신하고 있는 가설은 아렐과 그 소녀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다.


‘성별을 바꾸는 마법은 있다. 흑성을 사용해서 치료할 수도 있고. 하지만 증거가 없어. 애초에 성별을 휙휙 바꾸는 게 쉽지도 않고 말이야. 흑성 역시 마찬가지고...’


직접 마주 보면 또 다른 방법이 생길까 싶었지만, 역시 방법은 이것뿐이다. 칸데시아는 한숨을 푹 내쉬며 아렐에게 편지지를 하나 건네줬다.


“뭐냐, 이건?”

“아카데미 초청장입니다. 아렐 씨, 당신은 지금부터 아카데미의 학생입니다.”


************


며칠 전 칸데시아는 화륜을 통해 아카데미 초청장을 하나 손에 얻었다. 이번 일을 도와준 대가로 구해주긴 했지만, 화륜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필요하시다기에 구해드렸습니다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으신지 의문이군요.”


대충 상황 설명은 들었다. 살주계를 소탕하러 갔을 때 만났던 소녀와 키메라를 잡을 때 만났던 소년의 기운이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정말로 둘이 같은 인물이라면 확실히 가만둘 수는 없지만, 굳이 아카데미에 입학시킬 이유를 알 수 없다.


“아렐...이라고 하셨었죠? 들어보니 저희 대장님이면 이길 수 있을 거 같던데. 대장님, 어땠습니까?”

“별거 없던데. 날 보자마자 무서워서 도망쳐 버렸잖아! 기사가 약한 거 아니야?”

“말 좀 조심해주시죠. 그런 발언이 어떤 일을 초래할지 알고 계시잖습니까. 그리고 얘기를 들어보니, 단순히 상성적으로 차이가 났던 거 같더군요.”


칸데시아가 당시의 전투를 되새기며, 상성적인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를 눈치채지도 못하니, 이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훌륭한 기사인지 알 수 있다.


“확실히 수성마법은 단순한 질량 공격에 약하죠. 역시 멧돼지같은 우리 대장님이네요.”

“죽고 싶냐?”

“상성도 있었지만, 정말 무서웠던 건 순간적으로 나오는 경험과 감을 섞은 공격이었습니다.”


나이는 열일곱도 안돼 보였지만, 확실한 승리를 위해 놓은 도박과 센스는 수십 년을 전장에서 구른 사람 같았다. 거기에 더해 적은 마력으로도 최대한의 효율과 출력을 만들어내는 조작 능력까지. 한 번 그를 놓치면 걷잡을 수 없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말했듯이 증거가 없다. 아렐을 투옥하고, 구속할 증거가 무엇 하나도 없다. 그래서 칸데시아는 아카데미를 택했다. 아카데미에서 일하고 있는 교수와 그 아래의 훌륭한 학생들이라면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걱정되시면 적당한 명목으로 그냥 없애면 됩니다. 그게 더 안전하고요.”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거 같더군요.”

“돌이킬 수 없다?”

“그냥 느낌상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의 깊은 곳에 무언가 남아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선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무언가가 말이죠. 그리고 애초에 실력으로 가능할지... 그런 인간은 최후의 패를 남겨두니까요.”


아무튼 이런 이유로 아렐은 칸데시아의 초청을 받아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됐다.

이 선택을 한 칸데시아는 몰랐겠지만, 이건 그가 잡은 인류의 마지막 기회였다. 아렐의 마음 깊숙이 숨어있는 무언가. 그 무언가를 잡아낸다면 미래는 말 그대로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현재.

아렐은 초청장을 받은 후 곧장 신전에서 나왔다. 선선한 바람이 부드럽게 머리를 스치며 지나가고, 평화로운 소음이 귓가를 맴돈다.


‘아카데미라.’


대충 의도는 알 수 있다. 아카데미에는 과거부터 여러 실력자가 교직을 맡고 있으니, 이건 일종의 감시인 거다. 원래 같았으면 그 의도 자체가 불쾌했겠지만, 어째선지 지금은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신성 때문인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인간의 몸에 악영향을 끼칠 수는 없는데...’


계속해서 붕 뜨는 기분에 어째 살주계와 싸울 때보다 머리가 복잡했다. 이래서 머리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프기만 하고,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아렐은 기분 내키는 데로 움직였다. 스스로가 불쾌하면 없애고, 기분이 좋으면 자비를 베푼다. 잘 포장하면 기분파, 나쁘게 말하면 싸이코패스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았다.


“뭐, 상관없으려나. 마침 다른 마법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고, 뭣보다 음식이 맛있으니까.”


음식이 없었으면, 진즉에 흥미가 떨어져서 눈에 보이는 모든 걸 학살하고 다녔을 거다. 이것이 그놈들이 목숨을 걸고 만들어낸 평화의 결과일까? 여러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진 것은 좋았지만, 그놈들의 손길이 닿았다는 걸 생각하니 불쾌감이 치솟았다.


“평화라...”


이름만 들어도 얼굴이 찌푸려진다. 그의 일생과 정반대되는 단어. 지금껏 느껴보지도 못했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된 거 한 번 즐겨보지. 그래봤자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말이야.’

-그럴까? 분명 마음에 들걸?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아렐은 뒤를 돌아봤다. 음파로 날아온 것이 아닌, 텔레파시처럼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덕분에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동시에 또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아니, 이번에는 단순히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이, 그렇게 싫어했던 평화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정신병이라도 걸린 것일까?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의 변화에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아렐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멈췄다.


“그래, 기분이 좋으면 좋은 것뿐이다. 그뿐이야. 생각할 필요 없어. 내가 기분이 좋으면 된 거니까.”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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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면초가 NEW 3시간 전 2 0 10쪽
29 약속 24.09.17 4 0 12쪽
28 과제 24.09.16 7 1 10쪽
27 용사의 마법사 24.09.15 8 1 10쪽
26 제2식 염시 24.09.14 8 1 11쪽
25 맹수 24.09.13 10 1 12쪽
24 초대 24.09.12 9 1 11쪽
23 진실의 저울 24.09.11 6 1 12쪽
22 티파티 24.09.10 8 1 11쪽
21 대회의 24.09.09 13 2 11쪽
20 동질감 24.09.08 12 1 13쪽
19 화폭 24.09.07 9 1 10쪽
18 천 년 전의 검객 24.09.06 9 1 11쪽
17 5분의 1 24.09.05 10 0 11쪽
16 제의 24.09.04 11 1 11쪽
15 아마츠키 24.09.03 9 1 12쪽
14 흥미로운 것과 습격 24.09.02 12 1 10쪽
13 천 년 후의 후손 24.09.01 12 1 13쪽
12 또 다른 부활 24.08.31 10 1 12쪽
11 건드리면 안되는 것 24.08.30 16 1 12쪽
10 천 년 후의 아카데미 24.08.28 13 1 12쪽
» 아카데미 초청 24.08.27 12 1 12쪽
8 살주계 4 24.08.26 12 1 13쪽
7 살주계 3 24.08.25 17 1 12쪽
6 살주계 2 24.08.24 16 0 11쪽
5 살주계 1 24.08.23 19 2 11쪽
4 조우 2 24.08.22 19 2 11쪽
3 조우 1 24.08.21 27 2 14쪽
2 몸 풀기 24.08.20 37 2 11쪽
1 부활 24.08.20 69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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