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가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강책방
그림/삽화
강책방
작품등록일 :
2024.08.26 11:56
최근연재일 :
2024.09.17 19:20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706
추천수 :
49
글자수 :
132,282

작성
24.09.10 19:20
조회
16
추천
2
글자
11쪽

크라켄의 부름

DUMMY




6층으로 올라가자, ‘스테판 마솔트’ 라고, 적혀있는 석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석판은 돌로 만들어진 책상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주변이 낡고 부서진 것으로 그간의 세월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여기도 많이 훼손되었네요.”


-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보존 마법 없이는 버티지 못하네. 그래도 살펴보면 멀쩡한 물건이 있을걸세. 한번 둘러보게나


주위를 둘러보자, 벽 곳곳이 무너져 내렸고, 원래는 화려했을 벽화와 조각들은 바닷물에 씻기고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져 있었다. 오직 벽에 정과 망치로 조각해 놓은 크라켄의 모습만이 형체를 그나마 유지하고 있었다.


책상 뒤에는 거대한 책장이 여럿 있었는데 그곳에는 수많은 책이 위태롭게 꽂혀있었다.


조심 조심


촉수를 부드럽게 움직여 책에 덮인 먼지를 닦아내자, 그 작은 물리력만으로도 커버가 찢어졌다.


‘어이쿠 도저히 읽을 수가 없을 것 같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찰나 촉수에서 단단한 감촉을 지닌 책 한 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심히 책을 꺼내 들자, 표지에는 ‘스테판의 일기장’이라는 고대 문자가 적혀있었다.


- 어디 보자 엘드라니어로 적혀있는 것 같네. 스테판의 일기장이라고 적혀있군.


“제 눈에도 그렇게 보이네요.”


- 엘드라니어를 알고 있는게냐?


“엘드라니어는 잘 모르지만, 어렴풋이 글자가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가 있습니다..”


제라하드는 황망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 크라켄님이 너에게 언어의 축복까지 내리신 모양이구나. 엘드라니어까지 알고 있다니 내가 살아있을 때 네가 있었다면 얼마나 편했을꼬.


그의 말처럼 정말 크라켄이 나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푸념을 들으며 나는 단단하고 고급스러운 표지를 넘겨 그의 일기장을 살펴봤다.


일기장의 첫 페이지에는 고대 크라켄 신전에서 나갈 방법이 적혀있었다. 나중에 나갈 예정이니 지금은 패스


그 다음 장부터는 여러 가지 내용이 적혀있었는데, 그곳에는 고대에 벌어졌던 신들의 전쟁에 관한 내용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외계에서 펠라고스를 침공한 ????는 단순한 유희로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 자 잠깐! 방금 이름이 뭐라고?


방을 울리는 나의 목소리에 제라 하드는 침을 삼키며 잠잠히 듣고 있다가 악신의 이름 부분을 나한테 재차 물어봤다.


“그러니까 외계에서 펠라고스를 침공한 ????는··· 어라?”


그 부분을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악신의 이름에 해당하는 부분을 읽을 수가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해당 정보를 세계에서 지워버린 듯하다.


- 고대의 악신이라는 놈은 우리의 생각보다 엄청난 힘을 지닌 것 같구나. 예전에 내가 찾은 고대 신전에서도 악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지···


나는 잠시 침을 삼킨 후 일기장을 다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는 따개비병과 바다를 붉은빛으로 물들이는 적화현상으로 인해 펠라고스의 많은 생명체가 목숨을 잃게 되었다. 또한 각국의 수뇌부와 핵심적인 인물을 조종함으로써 인류를 자멸하게 했다. 크라켄교 안에서도 수많은 배신이 일어났고 지금 이 일기장을 쓰는 나 또한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배신자에게 목숨을 잃기 직전이다···.』


이 말을 끝으로 일기장에는 더 이상 일기가 작성되지 않았다.


“일기장 대로라면 지금 펠라고스에서 일어나는 일이 악신이 인류를 멸망시키고자 벌인 일들인가요?”


-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생명체는 악신의 간악한 술수에 목숨을 잃고 있어. 티아마트 녀석들한테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코웃음을 치더군.


제라하드는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목소리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 내가 크라켄교를 부활시킨 이유는 악신에게서 펠라고스를 지켜내기 위함이야.


“악신을 이기기 위해서는 크라켄님이 필요한가요?”


- 크라켄 님의 맹독만 있으면 악신을 소멸시킬 수 있네.


크라켄의 맹독··· 실험실에서 잠시 언급되었던 그 이름이 이제는 모든 것을 좌우하는 열쇠로 들렸다. 크라켄이라는 존재의 무게가 점점 더 크게 다가왔다.


- 크라켄님은 오랜 세월 동안 이 세계를 지켜왔네. 악신이 다시 눈을 뜬 지금, 그분의 뜻은 더욱 강해졌지. 자네는 크라켄님의 힘을 이어받아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자네가 이곳에 문어로 온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네. 크라켄님의 인도 아래, 자네가 선택된 것이지.


“저 같은 평범한 문어가요?”


내가 선택되었다니, 믿기 어려웠다. 이 세상에서 나는 문어에 불과한데, 이젠 세상을 구하라니? 내게 그런 힘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제라하드는 나지막이 말했다.


- 크라켄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네. 자네가 여기서 무슨 일을 겪고, 어떤 결심을 하게 될지 말일세. 자네는 단순한 문어가 아니라, 크라켄님의 뜻을 따르게 될 중요한 존재라네.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존재지.


나는 제라하드의 말을 들으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동안 이 세상에서 내가 겪어온 일들, 구해낸 생명들, 만들어온 유대들··· 이 모든 것이 나를 이 자리로 이끌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요. 그저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에요.”


제라하드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의 목소리는 따뜻하게 이어졌다.


- 자네의 두려움을 이해하네.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세상을 구하라는 운명을 지게 되었다면, 누구라도 두려워할 테지. 그러나 자네가 이 세상에서 보여준 용기와 결심은 단순한 문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네. 자네는 이미 크라켄님의 길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야.


나는 제라하드의 말을 곱씹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의 눈앞에 펼쳐진 길은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그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임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정말··· 제가 그 길을 갈 수 있을까요? 크라켄님의 뜻을 따르며 악신에 맞서 싸울 수 있을까요?”


제라하드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의 목소리는 신뢰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자네는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네. 크라켄님은 자네가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네. 자네가 그 길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함께 이 세계를 지켜낼 걸세. 크라켄님을 따르고 악신을 멸해, 펠라고스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자네의 사명이라네.


그의 말이 점점 더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나는 이 세상에서 겪었던 모든 일들을 다시 떠올렸다. 내가 이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들을 위해 싸워온 시간들···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내 마음속에서 하나로 합쳐져 거대한 결심으로 다가왔다.


“···좋아요. 크라켄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 저 자신을 위해.”


훌륭하네. 자네는 이미 크라켄님의 사명을 이어받을 준비가 되었네. 이제부터는 자네가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할 차례일세. 나는 자네와 함께 끝까지 그 길을 걸을 걸세.


결국 나는 악신을 없애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이 선택이 나중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지금 펠라고스에는 큰 위기에 직면해 있었고 나를 불러들인 크라켄님을 따라 길을 걸어가다 보면 악신을 없애고 지구로 돌아가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결심을 굳히고, 촉수를 더 빠르게 움직여 주교의 방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덜컥!


한쪽 벽면에 직사각형으로 깔끔하게 갈라져 있는 흔적이 발견되어서 촉수로 살짝 밀었더니 주교의 비밀 금고가 열렸다.


그곳에는 작은 갈색 주머니가 있었는데. 주머니의 지퍼가 마치 사람의 치아처럼 생겼다.


- 귀한 물건을 발견했군. 워낙 비싸고 희귀해서 부르는 게 값인 물건이야.


나는 제라하드의 말에 주머니를 눈에 마나를 담아 자세히 관찰했다.



[감정 스킬이 발동됩니다!]


► 이름: 게걸스러운 주머니

► 효과: 아이템 보관

► 설명: 이 주머니는 평소에는 지퍼로 단단히 닫혀 있습니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 물건들을 보관합니다. 평소에는 주인의 몸에 문신 형태로 새겨져 있어 휴대가 간편하며, 필요할 때마다 주인이 원하는 아이템을 꺼낼 수 있습니다.



보관 아이템이라 지금 딱 필요한 스킬이었다. 주머니를 잡은 순간 사용 방법을 알수 있었다.


“먹어라”


짧은 시동어를 외치자 주머니에서 어설픈 팔과 다리가 자라나더니 이내 눈앞에 있는 스테판의 일기장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이거 굉장히 유용하긴한데 조금 징그럽네요.”


- 생김새는 조금 그렇지만 매우 유용하지.


나는 유령 일기장과 10일 치의 건조식품을 주머니에 추가로 넣을 수 있었다. 주머니에 마나를 흘려보내자, 주머니가 금빛의 가루로 허공에 흩뿌려지더니 이내 오른쪽 첫 번째 촉수 중간에 황금색 주머니 문신이 새겨졌다.


나는 스테판의 일기장에 적혀있던 대로 벽에 새겨진 크라켄의 눈에 마나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쿠쿠쿵!


곧이어 작동음이 들리더니 주교의 방에 있던 창문을 통해 밖에서 물이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천장에서 물이 새고 있는 건가?


나는 창문을 열어 고개를 위로 올리자, 천장이 두 쪽으로 갈라지고 있었··· 아니 열리고 있었다.


쿠쿵!


물이 어느새 바닥에서 주교의 방까지 차오르자 나는 천장을 향해 힘껏 수영하며 빠르게 차오르는 물을 헤쳐 나갔다.


드디어 천장이 완전히 열리자, 바닷물이 신전 내부로, 급속도로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전력을 다해 위로 향해 수영하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천장 밖으로 나가면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신전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천장을 통과해 바깥으로 나왔을 때, 갑작스러운 공포가 온몸을 감쌌다. 나는 그 느낌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곳에 그는 있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나를 노려보는 푸른색과 노란색의 고양이눈 그의 눈은 양쪽이 달랐다. 또한 그 눈빛은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그는 심해 가오리를 타고 천장 바깥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타고 있는 심해 가오리는 물속에서 마치 그림자처럼 어둡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푸른 눈동자는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미소는 나를 비웃는 듯했지만 동시에 나를 찾았다는 성취감이 담겨 있었다.


그는 천천히 가오리를 몰아 나에게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속에는 심연 같은 냉혹함이 깃들어 있었다.


“찾았다···”


그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입을 열었다. 그 단어는 마치 얼음처럼 날카롭고 차가웠다. 그의 목소리는 나의 온몸을 떨리게 했고, 나는 그가 어떤 일을 벌이려는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문어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후원 감사합니다! 24.08.30 41 0 -
25 멀록들을 향한 거북이들의 반격 NEW 17시간 전 5 1 12쪽
24 주말 점심에는 신성한 연못 스파! 24.09.16 8 1 11쪽
23 섬을 공격하는 멀록 24.09.15 10 1 12쪽
22 거북섬 탐험 24.09.14 10 0 12쪽
21 멀록 정찰병 24.09.13 14 1 11쪽
20 거북섬을 향해 24.09.12 11 1 13쪽
19 크라켄의 강림 24.09.11 17 2 12쪽
» 크라켄의 부름 24.09.10 17 2 11쪽
17 말미잘 유령 24.09.09 19 2 12쪽
16 올드 펫 말미잘의 최후 24.09.08 17 2 12쪽
15 거대 거북이의 피 24.09.07 21 2 12쪽
14 마나 운용법을 배웠더니 강해짐 24.09.06 24 2 12쪽
13 셸과 핀의 과거 24.09.05 16 2 11쪽
12 카이렌 녹스의 추적 24.09.04 22 2 12쪽
11 거대 말미잘과 한판 24.09.03 21 2 12쪽
10 댄스 신고식 24.09.02 23 1 13쪽
9 유령 3인방 24.09.01 31 2 11쪽
8 고대 크라켄 신전의 유령 24.08.31 31 2 12쪽
7 [초급 : 물 마법 Lv 1]을 획득하셨습니다. 24.08.30 31 2 11쪽
6 상남자들의 목숨을 건 대결 24.08.29 39 2 11쪽
5 첫 번째 진화!! 24.08.28 49 3 11쪽
4 초롱아귀는 무서워 24.08.27 49 3 12쪽
3 새우를 먹어보자! +1 24.08.26 61 3 12쪽
2 화산 폭발 +1 24.08.26 71 4 12쪽
1 문어가 되었습니다..? 24.08.26 89 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