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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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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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책방
작품등록일 :
2024.08.2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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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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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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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거북섬을 향해

DUMMY




카이렌 녹스는 문어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성하고도 장엄한 순간이었다. 크라켄의 영혼이 문어의 몸에 강신하여, 그 작은 문어는 이제 단순한 생명체가 아닌, 신의 화신이 되었다.


그것은 신의 의지를 담은 채, 빛나는 보라색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촉수 하나하나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마치 심해의 깊은 어둠을 꿰뚫고 나아가는 빛줄기처럼 강력하면서도 위엄이 있었다.


카이렌 녹스는 가슴 깊숙이부터 밀려오는 감동에 숨을 삼켰다. 그는 손을 모아 가슴에 대며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악신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다짐하며, 펠라고스의 평화를 위해 싸워온 자신이었지만, 이 순간 신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느꼈다.


“크라켄님···.”


그의 목소리는 경외감으로 떨렸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그가 평생을 바쳐 기다려온, 그러나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신성한 순간이었다.


‘펠라고스는··· 구원받을 것입니다.’


카이렌 녹스는 속으로 다짐했다.


그의 가슴속에서 강렬하게 타오르는 신성은 크라켄의 기운과 합쳐지며, 이제 그가 해야 할 일과 지켜야 할 신념을 더욱 굳건히 다져주었다. 이 순간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온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당신을 지키겠습니다.”


그렇게 고개를 조아리며 무릎을 꿇고 있자, 뒤에서 성전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끄윽··· 크라켄이··· 크라켄이 부활했다··· 이 사실을 알려야 해···”


그는 구멍이 뚫리고 썩어가는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주머니 속 통신석을 찾는 팔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목에서는 피 고름이 끓는 소리만 새어 나왔다.


“티아···마트··· 다··· 당신··· 의··· 품··· 으로··· 갑··· 니···.”


중얼거림의 끝으로 성전사의 눈은 빛을 잃었다. 오랜 세월 수련하며 성전사로서 입지적인 위치와 힘을 가진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 * *


“~♩♩♪♫ ~♩♩♪♫”


어디에선가 감미로운 발라드가 들려왔다. 엄마가 생전에 자주 듣던 노래다. 어찌나 엄마의 마음에 들었는지 몇 달 동안을 수천 번을 들었다.


예전엔 지긋지긋했지만, 지금에 와서야 그리웠다. 과연 내가 살아있을 때 저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눈에서 눈물이 새어 나왔다. 눈물을 닦기위해 슬며시 눈을 뜨자 눈앞에서 기다란 해초가 춤을 추는 모습이 보였다.


“···해초가 움직여.”


외계행성이라서 그런가? 식물도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깨어나셨습니까?


제라하드의 음성이었다. 그런데 나한테 왜 존댓말을 쓰는 거지?


‘···제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죠?’


- 문어준님께서는 현재 아즈라 터틀을 타고 코랄리아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나의 촉수는 거대한 등갑에 흡착되어 아즈라 터틀을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저 멀리 거북이의 뒤통수가 보였다. 내가 지금 여기에 왜 있는 거지?


‘제가 왜 여기에 있는 거죠?’


- ···혹시 어디까지 기억이 나시는지?


그의 존댓말이 거슬렸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고대 신전의 천장이 열렸고 그곳을 향해 헤엄치던 중 괴인한테 납치를 당한 다음 어떤 남성과 괴인이 싸움을 벌였고···? 그래서 어떻게 됐지?’


기억이 희미했고, 더 이상 떠오르는 것은 없다. 마치 과음하고 필름이 끊긴 것처럼


- 문어준님은 크라켄의 사도한테 붙잡혀 교단으로 이송 중에 티아마트의 성전사와 사도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크라켄님이 문어준님의 몸에 ‘강신’ 하셨습니다. 크라켄님의 위대한 신성력으로 사도를 구했으며, 강신이 끝나자 힘이 빠진 문어준님을 아즈라 터틀이 발견해 이곳까지 모신 겁니다.


성전사? 강신? 그리고 아즈라 터틀?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투성이였다. 성전사와 아즈라 터틀은 그렇다고 치고 강신이 뭐란 말인가? 촉수로 어리둥절한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그 말은 저의 몸에 크라켄님이 들어왔다 가셨다는···?’


- 예


“···으윽.”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더니 당시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사도를 노리는 성전사의 망치가 멈추더니 곧이어 거대한 존재가 내 몸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그 힘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했으며 나는 그 힘에 매료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식을 잃었지만, 그 짧은 경험으로도 나는 거대한 힘을 엿볼 수가 있었다.


‘크라켄님의 힘은 정말 놀랍네요···. 스승님 그런데 왜 존댓말을 하시는 겁니까?’


- 당신의 몸에 강신한 크라켄님을 본 후부터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거라면 괜찮아요. 앞으로도 쭉 반말해 주세요 저는 불편하지 습니다.’


할아버지 목소리로 존댓말이라니 오히려 불편했다. 제라하드는 뜸을 들이더니 재차 강요하자 알았다고 대답했다.


나는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강신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었다. 마치 내가 신이 된 것만 같은 감각. 언제일지 모르지만 한 번 더 그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자, 어디선가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어님 일어나셨나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니 아즈라 터틀이 나한테 말을 걸고 있었다. 이 또한 텔레파시 스킬의 힘이겠지


“예 일어났습니다. 거북님··· 그런데 지금 저를 어디로 데려가고 계시는 겁니까?”


“우리는 지금 거북섬에 가는 중입니다.”


“거북섬? 갑자기 그곳은 왜?”


“그곳은 산란 축제에 맞춰 거북이들이 모이는 곳 입니다. 당신이 저를 꺼내주셨으니, 고마움에 답례하고 싶어서 그렇지요. 그곳에는 당신이 마음에 들어 하는 아즈라 해초가 한가득 자생합니다.”


내가 아즈라 해초를 원했던 것은 맞지만 더는 필요하지 않았다. 아즈라 터틀은 착각한 모양이다. 이거 골치 아프네


내가 내려달라고 말을 하기 직전 제라하드가 말을 걸었다.


- 거북섬이라··· 전설에서나 나오는 섬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존재하는 장소라니 그곳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네.


‘지금 해야 할 일이 한가득인데 거기까지는 왜요? 유령 가족과 만나는 일도 있고 크라켄의 맹독도 찾아야 하는데···?’


- 내가 전에 말한 적이 있지 않나? 고대 거북신에 대해서 말이지. 전설 속 섬은 거북신이 머무는 장소라는 소문이 있네. 그분의 지식이라면 크라켄의 맹독에 대해서 알수 있을 게야.


이상하다 들은 기억이 없는데? 하지만 상관없었다. 신비로운 섬과 거북신에대해 궁금증이 생겼고 크라켄의 맹독에 대한 실마릴 잡을 수도 있으니.


나는 주머니 문신에 마나를 흘려보냈더니 치아 형태의 지퍼를 지닌 작은 주머니가 나타났다.


“뱉어라!”


“궤에에엑──”


나의 명령에 주머니의 지퍼가 열리더니 음식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흉물스러운 게 보기가 힘들었다. 아니 무슨 이런 역겨운 디자인으로 만들었담?


토해낸 음식물은 크라켄의 신전에 있던 동결 건조 식품이었다. 물에 녹기 전에 얼른 입에 한가득 넣은 다음 오물오물 씹었더니 고소한 향이 입안을 맴돌면서 끝에 살짝 시큼한 냄새가 퍼졌다.


예전에 먹은 새우나 랍스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는 배고 고팠기에 꿀떡꿀떡 먹을 수 있었다.



* * *



“꺼억──”


위장이 위치한 머리를 촉수로 두드리자, 입에서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왔다.


- ···조금 체통을 지키는 게 어떻겠는가? 크라켄님이 볼까 무섭네.


“좀 보시면 어때요. 그냥 자연스러운 소화에 한 과정인데.”


나는 머리를 재차 두드리며 등갑에 퍼질러있었다. 그러고 보니 머리가 허전한 게 뭔가 잊어버린 듯했다. 아 맞다 미잘이! 그리고 타이슨?


오 마이갓 까맣게 잊고 있었다. 미잘이는 그렇다 쳐도 타이슨은 사도한테 제압된 후 전혀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큰일이다.


“스승님 큰일 났습니다! 타이슨이 보이지 않아요!”


-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그 녀석은 지금 잘 지낼 것이다.

크라켄의 사도가 쓴 ‘결박의 사슬’은 대상의 신체와 마나의 흐름을 구속하는 매우 어려운 마법이네 유지하기 위해서는 근처에서 적절히 마나를 공급해야 하지. 따라서 새우 녀석은 사도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구속에 풀려났을걸세.


나는 머리를 쓸어내리며 숨을 내뱉었다. 이곳에 와서 처음 사귄 친구인데 그를 잃어버린 줄 알았다. 아니 잃어버린 게 맞나? 헷갈렸지만 그는 심해생물이니 그곳에 사는 게 맞다. 사실 지금까지 끌고 다닌 게 살짝 미안할 정도였다. 나중에 다시 한번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나는 마나를 담아 촉수를 노려봤다.



[감정 스킬이 발동됩니다!]


► 종족 : 캐논 옥토퍼스 Lv 28

► 칭호 : 문어준, 무모한 도전자

► 스킬 : [감정 Lv 3], [이중 의식 Lv ?], [강신 Lv ?], [물어 뜯기 Lv 2], [먹물 발사 Lv 6], [에어 펀치 Lv 1], [위장 Lv 4], [암시야 Lv 3], [재생 Lv 5], [화상 내성 Lv 5], [충격 내성 Lv 6], [땅 파기 Lv 1], [초급 : 물 마법 Lv 3], [독 내성 Lv 5], [텔레파시 Lv 1], [유령 소환 Lv 1]



오랜만에 열어보니 새롭게 생긴 스킬이 있었다. 강신? 이름만 들어도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심해를 뒤덮는 보라색의 신성 불꽃은 감동적이었다. 만약 지구에서도 그러한 현상을 겪었다면 종교를 믿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스승님 스킬창에 ‘강신’ 스킬이 새롭게 생겼는데요?”


- 뭐라? 강신? 미쳤다! 미쳤어! 지금 당장 시전해보게!


제라하드는 뇌가 터질 정도의 강력한 텔레파시를 나한테 보내고 있었다. 그의 절박한 말에 나도 모르게 그때의 감각을 일깨웠다. 끝없는 힘이 흘러넘치는 감각··· 은 지금 없다. 스킬명을 외쳐도 보고 크라켄님을 불러도 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 안타깝구먼. 강신은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없는 스킬인 듯싶네. 그럼 그렇지 그렇게 간단하게 될 리가 없어 내가 너무 급했네 급했어.


그의 목소리에서 실망감이 흘러나왔다. 강신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웠지만 상관없다. 언제가 분명히 다시 한번 발동할 날이 올 테니까. 우선은 미잘이가 먼저다.


『유령 소환!』



[소환하실 유령을 정해주세요]


► 펫 말미잘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펫 말미잘이 목록에 떠올랐고 나는 마나가 빠져나가는 탈력감과 함께 머리에 반투명한 500ml 크기의 말미잘이 흡착되었다.


찹!


“오랜만이야 미잘아 몸은 괜찮아?”


“끄르으륵?!”


나는 그 소리 속에 담긴 불안과 떨림을 느꼈다. 왜 이러지?


그때 미잘이는 촉수들을 빠르게 흔들기 시작했다. 촉수 끝이 내 머리를 가볍게 톡톡 두드리더니, 이내 한 방향을 가리키는 듯한 동작을 반복했다. 처음엔 그냥 우연인가 싶었지만, 이내 미잘이의 촉수 동작이 일정한 패턴을 띠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치 그 촉수가 무언가를 경고하려는 듯한 느낌이었다.


"끄륵? 끄륵!"


미잘이는 끊임없이 촉수를 움직이며 소리를 냈다. 저번과 다른,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그의 행동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응? 무슨 일이야, 미잘아?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 거야?”


나는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며 물었다. 미잘이는 계속해서 촉수를 흔들고, 특정 방향을 가리키며 내 머리를 두드렸다. 그 방향은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았던 곳, 어딘가 멀리 있는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미잘이가 보내는 신호는 점점 더 강해졌다. 촉수는 이제 거의 떨리듯이 움직였고, 그의 끄륵 소리도 점점 더 강렬해졌다. 뭔가 매우 중요한 것이 그곳에 있다는 걸 미잘이는 전하려고 하는 듯했다. 나는 미잘이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저기에 뭐가 있다는···?”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저 멀리,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드러나는 어떤 그림자였다. 그 그림자는 분명히 우리를 향해 집중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확실히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긴장감이 감도는 속에서 천천히 몸을 낮췄다. 미잘이의 반응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미잘이는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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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멀록들을 향한 거북이들의 반격 NEW 17시간 전 5 1 12쪽
24 주말 점심에는 신성한 연못 스파! 24.09.16 8 1 11쪽
23 섬을 공격하는 멀록 24.09.15 10 1 12쪽
22 거북섬 탐험 24.09.14 10 0 12쪽
21 멀록 정찰병 24.09.13 14 1 11쪽
» 거북섬을 향해 24.09.12 12 1 13쪽
19 크라켄의 강림 24.09.11 17 2 12쪽
18 크라켄의 부름 24.09.10 17 2 11쪽
17 말미잘 유령 24.09.09 19 2 12쪽
16 올드 펫 말미잘의 최후 24.09.08 17 2 12쪽
15 거대 거북이의 피 24.09.07 21 2 12쪽
14 마나 운용법을 배웠더니 강해짐 24.09.06 24 2 12쪽
13 셸과 핀의 과거 24.09.05 16 2 11쪽
12 카이렌 녹스의 추적 24.09.04 22 2 12쪽
11 거대 말미잘과 한판 24.09.03 21 2 12쪽
10 댄스 신고식 24.09.02 23 1 13쪽
9 유령 3인방 24.09.01 31 2 11쪽
8 고대 크라켄 신전의 유령 24.08.31 31 2 12쪽
7 [초급 : 물 마법 Lv 1]을 획득하셨습니다. 24.08.30 31 2 11쪽
6 상남자들의 목숨을 건 대결 24.08.29 39 2 11쪽
5 첫 번째 진화!! 24.08.28 49 3 11쪽
4 초롱아귀는 무서워 24.08.27 49 3 12쪽
3 새우를 먹어보자! +1 24.08.26 61 3 12쪽
2 화산 폭발 +1 24.08.26 71 4 12쪽
1 문어가 되었습니다..? 24.08.26 89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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