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음악 천재는 빌보드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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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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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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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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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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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둑맞은 인생

DUMMY

-올해의 작곡가 수상자는!


하아......


-백장호입니다!


저 도둑 새끼.


-작곡가 백장호는 프로듀싱 회사 [J아카이브]의 수장으로, K-POP 계의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는 우주소년의 해외 진출에 포문을 연 곡인 『Short poem』,『TNT』를 비롯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Margarine』을 작곡, 현재는 해외 뮤지션에게까지 러브콜을 받고 있습니다.


미다스의 손?

직원들 곡 뺏어서 자기 이름으로 올리면서, ‘업계 관행’이라고 떠들던 저 개자식이 미다스의 손이라고?


-이런 영광스러운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오르니, 우주소년단의 『Short poem』을 작곡했을 때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지랄.

‘작곡했을 때’가 아니라 ‘갈취했을 때’겠지.

저 새끼가 지껄이는 『Short poem』은 내가 작곡한 곡이다.

멜로디와 비트 모두.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음해와 마타도어가 저를 진창에 빠트렸지만, 진실이 저를 진창에서 꺼내주었습니다.


진실?

어디서 감히 진실을 입에 담아?


-지금처럼 정의가 승리하는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기도하며, 이 영광을 하나님에게···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리모컨을 집었다.


“이 씨발 새끼야!”


-콰과광!


TV 정중앙에 모니터가 박혔고, 곧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간호사는 나와 화면이 박살 난 TV를 놀란 눈으로 번갈아 쳐다봤다.


“환자분! 진정하세요!”


내가 링거를 뽑으려 하자, 간호사가 내 앙상한 팔을 잡고 나를 저지했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폐암 말기로.

현대의 칠성신인 의사는 내게 3개월이란 수명을 부여했다.


내가 왜 암에 걸렸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보통, 암의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다.

술, 담배, 스트레스, 유전, 생활 패턴 등등.

하지만 내 경우엔 단순하다.

스트레스.

그리고 그 스트레스의 원인은 백장호 그 씨발 새끼 때문이다.


* * *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그 덕분(덕분일지 때문일지)에 난 고등학교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고, 만든 비트를 큐오넷이나 리드머 게시판에 올렸다.


내 비트를 들은 몇몇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은 내 비트를 자신의 믹스테잎에 써도 되냐는 연락을 받았고, 나는 흔쾌히 허락했다.

오히려 내가 영광이었다.

무명 래퍼든 유명 래퍼든 간에, 내 비트를 좋다고 해준 거니까.


인정욕구.

그땐 그것이 전부였다.


돈?

그땐 돈에 무지했었다.


그렇게 내 비트는 여러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에게 쓰였고, 몇 곡은 실제로 발매가 되기까지 했다.


그 덕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계속 음악을 했다.


그렇게 스무 살이었던 2013년 11월,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류선율씨죠?

“네, 맞습니다. 누구세요?”

-백장호입니다.

“배, 백장호요? [J아카이브]의 백장호?”

-패기 넘치네. 바로 말 놓고.

“아,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회사 내에 전속 프로듀서가 있는 SN, JIP, IG 같은 회사와도 간간이 작업을 할 정도로 업계에서 알아주는 프로듀싱 회사.

[J아카이브]의 대표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백장호는 나를 한국의 퀸시 존스라는 둥, 제2의 퍼렐 윌리엄스라는 둥 하며 나를 띄워줬다.


-내가 원석 감별사거든. 근데, 선율 씨 키워줄 수 있는 회사를 아직 못 만난 거 같아.

“그게 무슨 말씀인지······.”

-우리 회사랑 계약하자는 말이에요. 내가 선율 씨 대박 작곡가로 만들어 줄게.


심장이 마구 뛰었다.

호흡이 가빠져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J아카데미]의 대표인 백장호가 날 칭찬해 주는데,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있을까.

게다가 키워주겠다니.

아이돌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는 예술병 걸린 놈이 아닌 이상에야 이 제안을 거절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 정말요?”

-그러지 말고 만나서 얘기하죠. 주소 보내줄 테니까 시간 될 때 와요. 작업실 구경 시켜줄게요.

“지금 가도 되죠?”

-하하하. 이 친구 정말 마음에 쏙 드네. 그래요, 지금 오세요. 다행히 오늘 내가 잡힌 미팅이 없으니까.


전화를 끊자마자 백장호가 보내준 주소로 향했다.


도착한 작업실은 화려했다.

지하라고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쾌적했고, 주황색 간접 조명은 공간을 포근하게 만들었다.


“반가워요. 전화로 얘기 나눴었죠?”


백장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185는 되어 보이는 키에 떡 벌어진 어깨, 나이스한 인상의 남자였다.


“잘 생기셨네요.”

“대표님이 더 잘생기셨는데요.”


우리는 서로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작업실을 구경 시켜주던 그는 마지막으로 그의 개인 작업실로 날 데려갔다.

작업실을 본 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5천만 원 가까이하는 ATC 스피커와 2천만 원짜리 베어풋 서브 스피커, 10대가 넘는 아날로그 신시사이저, 일렬로 자리한 아웃보드 하드웨어까지.

부티가 흐르다 못해 넘치는 작업실이었다.


방의 방음 역시 완벽했다.

너무 고요해서 내 심장 소리가 들리는 착각까지 일었으니 말이다.


백장호는 그 적막을 깨고 내게 A4용지 서른 장 분량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여기에 이름을 쓰면 선율 씨도 프로 작곡가가 되는 거예요.”


프로 작곡가.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내가 계약서를 읽어보려고 하자, 백장호는 계약서 위에 손을 올렸다.


“어차피 다 형식적인 거예요. 어른들의 말장난. 예술가는 이런 글자에 휘둘리면 안 돼요. 중요한 건 영혼이잖아.”


그의 말에 나는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그가 내민 인주에 내 엄지를 파묻었다.

그곳이 내 무덤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 * *


회사에 들어가고 처음 썼던 곡, 『오딧세이』가 당시 활발한 활동을 하던 XO의 타이틀곡으로 발매되었다.


하지만, 작곡가엔 내 이름 대신 백장호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대표님.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뭐가?”

“제 이름이 안 올라오고 왜 대표님 이름만 올라와 있냐고요.”

“그렇게 하기로 했잖아?”

“···네?”


그는 내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여기 쓰여 있잖아.”


[계약 기간 동안 을의 작업물의 저작 인접권과 저작권은 회사에 귀속되며, 을은 회사에서 정해진 일정 금액의 월급만을 받는다.]


“아, 아니 이게······.”


나는 그 밑에 적힌 조항도 읽어 내려갔다.


[갑의 특별한 요구가 없을 시, 계약은 자동으로 갱신된다.]

[계약 기간 도중 해지를 요구할 시, 지금까지 을이 벌었던 수익금의 세 배를 갑에게 위약금으로 지불한다.]

[위약금은 한 해에 벌어들인 회사 수익금에서 계산한다.]


갓 스무 살이 된, 여전히 교복이 익숙한 나이가 뭘 알겠는가.

계약서를 보는 눈도, 읽는 방법도 모르거니와 사람을 의심하는 법도 몰랐다.

순진하게 당한 것이다.


“뭐해? 할 말 끝났으면 작업하러 가.”


그 후로 나는 하루 14시간씩 작업실에 갇혀 일했다.


회사를 나가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나.


“위약금 물고 그냥 나가고 싶으면 그냥 나가. 근데, 두 번 다시 이 바닥에 발 못 붙일 거야.”


실제로 [J아카이브]에 위약금을 지불하고 나간 작곡가들이 있다.

그들은 작곡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며 빚을 갚아나가고 있다.

터무니없는 위약금을 지불하기 위해 빚까지 진 것이다.


20세기도 아니고, 21세기에 이런 노예 계약이 말이 되냐고?


윤일병 사망 사건, 위디스크 양X호 사건, 남X 유업 대리점 상품 강매 사건.

이 모든 일도 21세기에 벌어진 일들이다.


180도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내 곡을 백장호에게 갈취당했다.

말 그대로 갈취였다.

내가 쓴 곡을 저작권 협회에 등록할 때, 내 이름이 아닌 백장호 이름으로 올린다.

그 저작권료는?

당연히 회사로 들어온다.

내가 낳은 자식이 다른 부모의 손에 농락당하는 걸 지켜보는 기분은······.


“업계 관행이야. 나중에 너도 네 후배들 들어오면 나처럼 할 걸?”


백장호는 당연하다는 듯 내게 말했다.


그래도 내 곡이 차트에서 1위를 했을 땐, 기분이 좋았다.

자식을 반으로 갈라 나눠 가지라던 솔로몬의 판결에, 눈물을 머금고 자식을 떠나보내려고 했던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반기를 들 생각도 못 했다.

나를 포함해, 회사에 소속된 모든 작곡가들은 족쇄에 묶인 코끼리처럼 체념의 사슬에 종속되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내가 쓴 곡이 계속해서 발매됐지만, 여전히 난 월급 180만 원을 받았다.


그리고 2019년, 내가 쓴 『Short poem』이 빌보드 차트에 올랐다.


빌보드 차트.


작곡가라면 한 번쯤 꿈꾸는 목표.


분명 나의 곡이었지만, 내 곡이 아니었다.

협회에 등록된 작곡가 이름은 백장호였으니까.


이건 아니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내 권리를 찾기 위해 백장호를 고소했다.

처음으로 든 반기였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음악을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내 권리는 챙기려 했다.


내 후임이었던 승진이는 날 만류했다.


“형. 그냥 위약금만 물고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고소까지 하면 앞으로···”

“평생 이렇게 살 바엔 그냥 저 새끼 죽이고 나도 죽는 게 나아.”


법정에서 마주한 백장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쫄지마. 내 권리를 찾는 거니까.’


내 권리는 나와 함께 고통받았던 작곡가들이 증인석에서 백장호의 편을 들었을 때 사라졌다.

마치 상장폐지가 된 주식처럼.


그 후,


1년간의 긴 재판 끝에 내려진 판결.


무죄.


법은 백장호의 손을 들어주었다.

나는 소송 비용과 위약금을 빚으로 떠안았다.


그 후로 나는 어떻게 되었냐고?

백장호의 말마따나 그 어느 엔터도 내 곡을 초이스하지 않았다.

줄어드는 건 잔고와 머리숱이었고, 늘어나는 건 흡연량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팔 수 없다면 미국으로 간다.

백장호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으로.


그렇게, 신인의 마음으로 미국 시장에 뛰어들었고, 다행히도 몇몇 로컬 가수들에게 곡을 팔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깜깜한 터널의 끝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이 보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그런 줄 알았는데······.


“폐암 말기입니다.”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억울했다.


이제야 내 길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제야······.


나는 내 인생을 통째로 도둑맞은 것이다.


백장호에게.


* * *


“환자분! 정신 차리세요!”


아.


내 앙상한 어깨를 잡고 나를 말리던 간호사다.


몸이 계속해서 쉬고 싶다고 말한다.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가.

내 수명은 아직 한 달이 남았을 텐데.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 맞다.

과거의 좆같았던 추억을 떠올리니 수명이 줄어들잖아.

그것도 한 달씩이나.


백장호······.


죽이겠다.


아니지, 아니지.

죽이는 건 너무 단순해.

지금 내 모습을 봐.

이 얼마나 하찮은가.

죽음이란 건 너무 쉽다.


내 복수는 그렇게 평범하지 않을 거야.

나는 너를 천천히 잡아먹을 거야.

아주 느긋하게.

내가 차가워지는 만큼, 너는 점점 달아오르겠지.

속에서부터 널 익힐 거야.

네 속이 네 분노로 맛있게 익을 때쯤, 네 배를 갈라 내장을 씹어먹을 거야.

뭉크의 절규보다 더 절망스러운 네 표정을 보며 네 피를 잔에 담아 음미할 거야.


백장호······.


백장호······.


“백장호!!!”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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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성공의 첫 단추 24.09.13 144 4 12쪽
17 17. 새로운 보석을 찾아서(2) 24.09.12 150 6 12쪽
16 16. 새로운 보석을 찾아서 24.09.12 167 5 12쪽
15 15. 루이스 해리슨(3) 24.09.11 177 6 12쪽
14 14. 루이스 해리슨(2) 24.09.11 188 7 12쪽
13 13. 루이스 해리슨 24.09.10 200 6 12쪽
12 12. LA 그리고 롱비치 24.09.09 215 8 12쪽
11 11. 미국으로 24.09.08 224 9 12쪽
10 10. 복수의 서막 24.09.07 233 8 13쪽
9 9. 우주소년(2) 24.09.06 223 8 11쪽
8 8. 우주소년 24.09.06 242 8 12쪽
7 7. 첫 작업(5) 24.09.05 246 10 12쪽
6 6. 첫 작업(4) 24.09.04 246 9 12쪽
5 5. 첫 작업(3) 24.09.04 265 9 12쪽
4 4. 첫 작업(2) 24.09.03 267 9 12쪽
3 3. 첫 작업 24.09.02 283 10 12쪽
2 2. 2013년 1월 1일 24.09.02 297 9 12쪽
» 1. 도둑맞은 인생 +1 24.09.02 313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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