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음악 천재는 빌보드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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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0827
그림/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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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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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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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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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3. 루이스 해리슨

DUMMY

“너 혹시 루이스 해리슨이야?”


180은 안 되어 보이는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푸른 눈동자의 백인이 날 쳐다봤다.


“내가 널 알던가?”


그가 내게 물었다.

아니.

너는 날 당연히 모르지.

하지만 나는 널 알고 있지.


내가 그를 빤히 쳐다보자, 순간 그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갑자기 그가 들고 있던 앨범을 내게로 모두 던지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뭐야?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나는 그의 뒤를 쫓았다.


“아니, 왜 도망가는···”

“따라오지 마, 이 칭키(Chinky)야!”


치, 칭키?


“이 새끼야, 난 중국인이 아니야!”

“불싯(bullshit)!”


이 새끼가······.

갑자기 확 다 그만두고 집에 가고 싶어졌다.

타지에 온 지 하루 만에, 그것도 내가 찾던 사람에게 인종 차별을 당하다니.


‘아니. 나약한 생각 멈춰.’


나는 백장호의 얼굴을 떠올렸다.


순간 몸이 확 달아올랐다.

동시에 몸이 가벼워졌다.

그래, 끝까지 가보자.

일단, 저 루이스 해리슨부터 잡아서 사과를 받아내야겠어.

뭐, 칭키?

이 생키가.


롱비치 해변 가를 따라 한참을 달렸다.

20대의 내 체력은 가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병상에 누워 몸을 일으키는 것도 힘들어하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래, 복수를 하려면 일단 체력이 우선이다.

아프지 말자.


“그만 쫓아!”

“닥쳐, 이 양키 새끼야! 너 안 멈추면 죽인다!”

“퍽 유!”


저 새끼는 지치지도 않나.


루이스 해리슨의 뜀박질이 더 빨라졌다.


“나 돈 없다고! 내가 생기면 갚겠다고 했잖아!”


돈?


“무슨 돈?”

“모른 척하지 마! 네가 그 속임수에 두 번이나 당할 거 같아?”


말이 안 통하네.


“알겠으니까 일단 멈춰···”


별안간 그가 골목으로 쏙 들어갔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가 막다른 골목을 마주 보며 숨을 헐떡였다.


“야, 야. 네가 무슨 말 하는지 잘 모르겠거든? 나는 그냥 네 음악이나 좀 들어보자고 한 거야.”

“음악?”


그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음악 듣겠다는 놈이 이렇게 쫓아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네가 청키라고 했잖아, 이 새끼야!”

“중국인한테 청키라고 한 게 뭔 잘못이야?”

“일단 첫 번째, 난 중국인이 아니야. 두 번째···”

“넌 뭐야?”


뒤에서 험악한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팔에 문신을 한 백인 남자 둘과 흑인 남자 하나가 골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요, 루이스. 이 새끼 뭐야?”

“와챠오인 거 같아.”

“와챠오? 네가 돈 빌린 중국 갱 애들? 그거 아직도 안 갚았냐?”

“이 새끼들이 이자를 원금만큼 늘려놨다고! 그걸 어떻게 갚아!”


루이스가 소리치자 맨 앞에 있던 백인 남자가 내 쪽으로 가까이 걸어왔다.


“나 너네랑 문제 일으키고 싶지 않아. 돈은 금방 갚을 테니, 그냥 가라.”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네.


“다시 말할게. 일단 첫 번째, 난 중국인이 아니야. 두 번째, 와챠오도 아니야.”

“둘 다 아니면 그냥 가줄래?”

“난 얘 음악 좀 들으러 온 것뿐이야.”

“내가 말했잖아, 그냥 가라고.”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아, 이러면 완전 나가리인데······.


* * *


타이론은 한 손에 핫도그를 들고 나머지 한 손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해변 가를 걷고 있었다.


“아, 아까 그 비트 죽여주던데. 3,000달러 값어치는 충분히 하고도 남는 비트였어. 그나저나 한국인은 다 갱냄 스타일 부른 가수처럼 생긴 줄 알았는데, 썬은 전혀 다르게 생겼네.”


혼잣말을 랩처럼 내뱉으며 길을 걷고 있던 그때, 눈앞에 오래된 친구 한 명이 백인 두 명과 함께 골목 입구를 가로막고 서 있는 게 보였다.


“요, 자말!”


자말이 고개를 돌려 타이론을 쳐다봤다.


“요, 타이론!”


자말은 타이론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다른 백인 두 명도 타이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타이론은 자말에게로 걸어갔다.


“요새 통 안 보인다했더니, 얘네들하고 노는 거야? 노예 제도는 1865년에 폐지됐다고, 친구.”

“왓더퍽, 타이론. 농담이 맵네. 얘네 그냥 친구야.”

“알아, 농담이야. 너네도 나 알지?”


타이론이 백인 남자 둘을 보며 말했다.


“알지. 캘리포니아에서 널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소셜 버터플라이(social butterfly).

그의 말처럼 그는 롱비치의 마당발이었다.


“어? 잠깐만.”


타이론이 골목 안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헤이, 썬!”

“썬? 타이론 너 쟤 알아?”

“알지! 쟤 썬이야.”

“썬? 이름이 썬이야, 아니면 네 아들이야?”

“내가 DNA 생명 공학 과학자로 보여? 내가 어떻게 저렇게 말끔한 아시안을 낳아. 쟤 봐, 얼굴도 무슨 마시멜로처럼 허여멀겋잖아.”


타이론은 선율에게로 다가갔다.


“기다려 봐, 친구들. 일단 이게 무슨 상황인지 좀 찬찬히 들어봐야겠는데.”


* * *


그의 모습은 마치 나를 구출하려 불길로 뛰어드는 소방관 같았다.


덕분에 살았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나는 타이론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전부 얘기했다.


“아, 네가 찾는 루이스 해리스가 저 친구야?”


타이론이 내게 물었다.


“그래. 쟤야.”


나는 루이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헤이, 루이스 해리포터. 얘는 중국인이 아니야. 당연히 와챠오 멤버도 아니고. 얘는 한국에서 온 프로듀서야.”

“한국에서 온 프로듀서라고?”


루이스가 여전히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래. 일단 칭키라고 부른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할 거 같은데?”

“하지만, 저 새끼가 먼저 다짜고짜 쫓아···”

“헤이, 루이스.”


갑자기 타이론의 표정이 굳어졌다.


“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아?”


순간 루이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나 역시 타이론의 굳은 표정에 살짝 쫄았다.


겁나 살벌한 친구였구만······.


“기다려 봐. 난 억지로 하는 사과 따윈 필요 없어. 너도 진심으로 사과할 거 아니면 하지 마.”


내가 말하자 타이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그걸로 괜찮겠어?”

“응. 필요 없어. 대신 우리 둘 다 이 일은 없었던 일로 하는 게 어때?”


나는 루이스 해리슨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싹 다 잊는 거야. 레테의 강을 건넌 것처럼 말이야. 어때?”


루이스는 잠시 망설이더니 곧 내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오케이. 알겠어. 없었던 일처럼.”

“쏘 쿨. 이러지 말고 다 같이 술이나 한잔하러 가자고. 알고 보면 여기 있는 애들 다 뮤지션이니까.”


타이론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골목 밖을 가리켰다.


* * *


아까 내 뒤에 있었던 백인 두 명은 일이 있다며 집으로 갔고, 나와 타이론, 자말과 루이스가 차에 탔다.

자동차는 타이론의 차였다.


“그래서, 너네 집이 어디라고?”

“컴튼 외곽.”

“컴튼?”


힙합을 좀 들어본 사람이라면 컴튼이 어딘지 알 거다.


1987년에 결성한 전설적인 서부 힙합 그룹 N.W.A.

그들의 결성지가 바로 컴튼이다.

게다가 그들의 히트곡 이름이 『Straight Outta Compton』.

의역하자면, 『컴튼에서 왔다』다.


갱스터의 성지이자 LA의 대표적인 슬럼가.

1992년 LA 폭동의 첫 발화점으로 꼽히는 곳.

마약과 총기가 난무하는 도시.

하지만, 생각보다 안전한 동네.

그럼에도 혼자서는 올 엄두조차 못 내는 동네.

컴튼이다.


“저기가 닥터 드레가 살던 집이야.”


타이론이 파란색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 싯(Shit). 진짜야?”


루이스가 흥분한 말투로 되물었다.


“속고만 살았냐?”

“아니. 그냥 신기해서.”


해리슨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 그리고 너네 혹시 컨트릭 람 알아?”

“당연히 알지.”


컨트릭 람.

2011년 7월, 정규 1집 [Session 80]를 발매한 뒤로 힙합 씬의 떠오르는 신예가 된다.

1년 뒤에 발매한 2집 [Good boy, C.R.A.A.Z.Y City]는 제2의 [Illmatic]이란 찬사까지 받는다.


미래엔?


그는 서부의 왕으로 불린다.


“컨트릭 람이 저기 살았었어. 그의 엄마랑 우리 엄마는 꽤 친하다고.”


타이론이 차창 너머의 집을 가리켰다.

울타리가 처져있지 않은 하늘색 벽의 단층 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타이론의 집에 도착했다.


“나도 컴튼을 빛내는 래퍼가 될 거니까, 이 집도 잘 기억해 두라고.”


지금까지 봤던 집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집이었다.


울타리가 처진 구역 안에 있는 단층집. 노란 페인트로 칠해진 집은 꽤 오래되어 보였다.


길가에 차를 세운 타이론은 차에서 내려 대문을 열었다.


“들어와.”


우리는 타이론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저 왔어요.”


타이론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여인에게 인사했다.


“뭐야. UN회의라도 참여한 거야? 히스패닉 빼곤 다 모여 있네.”


50대 중반처럼 보이는 여인은 우리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래도 흑인이 2명이라 다행이네. 잠깐, 거기 너 한국인이야?”


여인이 날 가리키며 물었다.


“네. 한국인입니다.”

“나 그 영화 좋아해. 올드 보이.”

“우리 엄마가 한국 영화를 좋아해.”


타이론이 덧붙였다.


“아, 그래요?”

“그래. 얼마 전에 개봉한 스토커도 봤어. 그 감독 이름이 뭐더라······.”

“박찬욱이요?”

“맞아. 팍챈웍.”

“아니, 팍챈웍이 아니라······. 아, 네. 맞습니다.”


엄마한테까지 깐깐하게 굴 필요는 없지.


“엄마. 우리끼리 비즈니스 얘기를 나눠야 하니까 방해하지 말아줘.”

“제발 헛짓거리하지 말고 제대로 된 비즈니스 좀 해라. 엄마의 마지막 소원이다.”

“오케이, 맘.”


우리는 타이론의 방으로 들어갔다.


타이론의 방은 단촐했다.


책상 위에 올려진 MPC(드럼 머신)과 컴퓨터, 조그만 스피커와 콘덴서 마이크, 침대가 전부였다.


“혹시 홈 레코딩해?”

“오브콜스. 작업실 빌릴 돈이 어딨어.”

“아까 네가 들려줬던 음악, 비트는 누가 찍었는데.”

“그냥 인터넷에서 로열티 프리 비트(저작권 없는 비트) 가져다 쓴 건데.”

“믹싱은 누가 했고?”

“내가.”


그래서 구리게 들렸던 거구만.


“일단 앉아.”


타이론은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대충 바닥에 앉았다.


곧, 타이론이 6개 묶음 맥주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들어왔다.

버드와이저였다.


“자, 다시 얘기해 보자. 그러니까, 너는 루이스를 찾으러 돌아다닌 거잖아.”


타이론이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얘 음악을 어디서 들었는데?”


이때는 아직 루이스가 사클에 작업물을 올리기 전이다.

여기선 대충 둘러대자.


“롱비치에서 마주쳤었지. 처음 들었을 때는 좀 구린 것 같았는데, 계속 머릿속에 맴돌더라고. 그래서 제대로 프로듀싱해주고 싶어서 찾아다녔던 거야.”


나는 루이스를 보며 말했다.


“내 음악이 구리다고?”

“그래. 구려(Suck).”

“근데 왜 내 음악을 프로듀싱하겠다는 건데?”

“네 음악은 마치 밀크쉐이크에 찍어 먹는 감자튀김 같아. 졸라 구린데 졸라 땡기거든.”

“칭찬이야 욕이야?”


루이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제대로 된 프로듀서를 못 만났다는 뜻이야. 네가 제대로 된 프로듀서만 만나면 밀크쉐이크의 감자튀김이 아니라, 스테이크에 메쉬드 포테이토가 될 거야.”

“그럼, 네가 헤드 셰프란 말이네? 근데 난 아직 널 못 믿겠어. 네가 맥도날드 파트 타임보다 구릴 수도 있잖아?”

“네가 아직 얘 음악을 안 들어봤구나. 들려줘, 썬.”


타이론이 말했다.


“준비됐어?”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루이스에게 물었다.


루이스는 별 관심 없다는 표정을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하하-.


좀만 기다려라.


네 눈이 확 돌아갈 만한 비트를 들려줄 테니까.

어떤 게 좋으려나······.


아, 이게 좋겠네.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로 음악을 틀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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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 두 번째 작업(2) NEW 5시간 전 50 2 12쪽
23 23. 헤일리 화이트 24.09.17 82 2 11쪽
22 22. 두 번째 작업 24.09.17 93 1 12쪽
21 21. 몸값이 올랐다. 그것도 5배나. 24.09.16 115 5 12쪽
20 20. 카밀라 그레이 24.09.15 130 6 13쪽
19 19. 돌아온 5,000달러 24.09.14 141 6 12쪽
18 18. 성공의 첫 단추 24.09.13 144 4 12쪽
17 17. 새로운 보석을 찾아서(2) 24.09.12 150 6 12쪽
16 16. 새로운 보석을 찾아서 24.09.12 167 5 12쪽
15 15. 루이스 해리슨(3) 24.09.11 177 6 12쪽
14 14. 루이스 해리슨(2) 24.09.11 189 7 12쪽
» 13. 루이스 해리슨 24.09.10 201 7 12쪽
12 12. LA 그리고 롱비치 24.09.09 215 8 12쪽
11 11. 미국으로 24.09.08 224 9 12쪽
10 10. 복수의 서막 24.09.07 233 8 13쪽
9 9. 우주소년(2) 24.09.06 224 8 11쪽
8 8. 우주소년 24.09.06 242 8 12쪽
7 7. 첫 작업(5) 24.09.05 246 10 12쪽
6 6. 첫 작업(4) 24.09.04 246 9 12쪽
5 5. 첫 작업(3) 24.09.04 265 9 12쪽
4 4. 첫 작업(2) 24.09.03 267 9 12쪽
3 3. 첫 작업 24.09.02 284 10 12쪽
2 2. 2013년 1월 1일 24.09.02 297 9 12쪽
1 1. 도둑맞은 인생 +1 24.09.02 313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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