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음악 천재는 빌보드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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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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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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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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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LA 그리고 롱비치

DUMMY

LA 공항 밖을 나가자마자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났다.

이게 도대체 무슨 냄새지?

섬유유연제에 기름을 부은 치즈 냄새?

잘 모르겠다.


일렬로 서 있는 택시 중 하나를 탔다.


“코리아타운으로 가주세요.”


아, 물론 영어로 말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회귀 전 영어 공부를 빡세게 했다고.


“Okay, sir.”


택시 기사님이 대답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이 무척 생경했다.

회귀 전에는 미국은커녕 가까운 일본도 가본 적 없는데.


감상에 젖은 채로 오다 보니 익숙한 건물들이 보였다.

순두부, 설렁탕, 세탁소 등등.

큰 건물엔 자신의 이름을 건 내과나 산부인과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80-90년대 간판 느낌이 물씬 풍겼다.


기사님께 50달러를 내밀었다.

아, 미국이니 이 말 한번은 써봐야지.


“Keep the change.”

“Thanks. have a nice day.”


시작이 좋네.


차에서 내려 핸드폰 내비게이션 어플을 켜고 걸었다.

지금 어디 가고 있냐고?

전에 상아 누나와 나눴던 대화를 기억하는가?

그래, 프로듀싱 비 대신 부탁했던 거.

나는 라이온제이에게 프로듀싱 비 대신 LA에서 1년 정도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LA 원룸 한 달 렌트 비용이 최소 1,800달러부터니까.

원룸이 200만원이다.

투룸?

기본 3,500달러부터 시작.

베벌리힐즈나 산타모니카 같은 부촌은 4,000달러로 구하지도 못한다.


말 그대로 살인적인 물가.


하지만, 라이온제이는 내 요구를 흔쾌히 들어줬다.

덕분에 가장 큰 리스크를 해결했다.

수중에 있는 돈만으로는 6개월도 채 못 버티니까.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한인타운 외곽에 있는 5층짜리 빌라.

이 건물 3층에 라이온제이의 집이 있다.

라이온제이가 미국에서 생활할 때 사용하는 집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캐리어 두 개를 양손에 들고 계단을 올랐다.


3층 맨 끝에 있는 310호.


주머니에서 라이온제이가 준 키를 꺼내 열쇠구멍에 넣고 돌렸다.


-철컥


문이 열렸다.


내부 인테리어는 오래된 아파트 느낌이었다.

왜, 90년대 영화를 보면 나오는 아파트 있지 않은가.

누런색의 바닥 장판에, 천장에 있는 둥그런 등.

거실 하나의 방 두 개, 화장실 하나가 있는 전형적인 집.


방 두 개 중 하나는 작업실이었다.

스피커와 컴퓨터, 그리고 음악 장비들이 그대로 있었다.


‘아파트에 물건은 별로 없어. 생활용품은 마켓에서 사다 써. 렌트 비는 안 받을 테니까 관리비만 납부해 줘. 그리고 음악 장비는 중간중간 사용해 줘. 그거 안 쓰면 닳는다.’


넵, 알겠습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라이온제이 형님.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


* * *


마트에서 생필품을 사다 집에 놨다.

샴푸나 칫솔부터, 물과 상비약들.

상비약이 생각보다 너무 다양했다.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미국 병원비.

아프지 말자.


대충 물건을 정리해 두고 밖으로 나갔다.


거리에서 택시를 잡고 롱비치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택시비 80달러를 지불했다.

이번엔 ‘Keep the change.’라고 하지 못했다.

이미 택시비로 130달러를 태워버렸으니까.


‘아, 씨······. 이럴 거면 차라리 차를 빌리는 게 낫겠네.’


혹시 몰라 국제 면허증 발급도 받았으니, 금방 렌트할 수 있을 거다.

면허증은 언제 발급받았냐고?

2달 전에 땄다.

이래 봬도 운전 경력 5년이다.


면허 시험 담당관이 우스갯소리로 “음주운전 때문에 취소돼서 면허 다시 따러 온 거죠?”라고 하더라.


물론 음주운전은 안 했다.

앞으로도 안 할 거다.

어쨌든.


다운타운에 있는 루이스 버거에서 햄버거를 사 먹고 롱비치 시티 비치를 걸었다.


놀러 왔냐고?

그럴 리가.

캘리포니아는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동네다.

하루를 그냥 날릴 수는 없지.


이곳에서 찾아야 할 사람이 있다.


해변 가를 거닐고 있는데 저 멀리서 빨간색 맨투맨을 입은 한 남자가 붐박스를 들고 내게로 걸어왔다.


“헤이.”


그는 내게 가볍게 웃으며 인사했다.


“시간 있어?”

“바쁘진 않지.”

“괜찮으면 내 앨범 좀 들어볼래?”

“그러지, 뭐.”


그는 붐박스에 재생 버튼을 눌렀다.

곧 랩이 흘러나왔다.


“Grinding through the night, got these hoes on my team, Turning every struggle into gold, that’s my fucking theme······.”


붐박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그는 내게 CD를 내밀었다.

흰 종이에 검정 매직으로 오토그래프가 적혀있는 앨범 커버였다.

아마 본인의 오토그래프겠지.


나는 앨범을 손에 쥔 채로 노래를 들었다.


노래는 그냥저냥 들을 만한 붐뱁이었다.

뭐, 고개를 까딱일 정도는 아니었고.

솔직히 사운드가 너무 구렸다.

믹싱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대충 돈 받고 한 것 같았다.


음악이 끝났다.

나는 그에게 앨범을 도로 돌려주었다.


“잘 들었어.”

“아니, 이거 말고.”


남자는 손을 내게로 내밀고 검지와 중지를 엄지로 비벼댔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강매다.


큰 도시의 관광지를 걷다 보면 이런 사람들이 나타난다.

자신을 래퍼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의 음악을 들려준다.

음악을 듣는 동안, 마치 무료로 주는 것처럼 앨범을 건넨다.

음악을 다 들으면?

돈을 요구한다.

앨범값.


만일 당신이 관광객이고 큰 문제를 일으키기 싫다면, 그냥 하나 사라.

괜히 호구 잡히기 싫어서 안 산다고 하면 괜한 문제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관광지에서 산 관광 물품 어차피 1년 지나면 사라지잖아.

이것도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니면 가난한 인디뮤지션 지원해 줬다고 생각하거나.


나?

나는 허투루 돈 안 쓰지.

애초에 내가 음악 하는 사람인데.


“아니, 그냥 돌려줄게. 네 랩 그냥 그래서 살 마음이 안 드네.”

“지금 뭐라고 했어? 그냥 그래?”

“그래, 그냥 그래. 못 알아들었어? 알파벳으로 읊어줄까? 에스.오.에스.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렇게 했다간 총 맞는다.

상대가 괜찮은 놈이라면 상관없지만, 나사 하나 빠진 놈이라면 진짜 막 나간다.


“문제 일으키고 싶은 거야? Huh? 문제 좀 일으켜 줄까?”


그가 내 몸을 밀치며 말했다.


“워, 워. 기다려 봐. 왜 때리는 거야? 나는 내 랩이 그냥 그렇다고 한 거지, 구리다고 한 건 아니야.”

“그게 그거지, 이 새끼야. 나 널 죽일 거야. 이리로 와.”

“기다려 봐.”


나는 검지를 들고 남자를 막아 세웠다.

남자는 여전히 흥분한 채로 숨을 씩씩거렸다.


“나도 음악 하는 사람이거든? 나는 지금 프로듀서 입장에서 네 곡을 들은 거야.”

“네가 프로듀서라고?”

“그래. 내 비트 들려줄게. 아, 나 총 꺼내는 게 아니라 핸드폰 꺼내는 거야.”


나는 집게손가락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자, 봐봐. 핸드폰이지?”


남자는 여전히 씩씩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금까지 만든 비트 중 무작위로 하나를 골라 재생했다.

조그만 핸드폰에서 비트가 흘러나왔다.

아, 이건 트래비스 스캇을 레퍼런스 삼은 비트네.


잔뜩 찌푸려진 남자의 미간이 곧 천천히 펴졌다.

그러더니 목을 까딱거리며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오, 싯(Shit). 네가 만든 거야?”

“어, 내가 만들었어.”

“졸라 천재네, 너?”


남자는 해맑게 웃으며 내 비트에 랩을 하기 시작했다.


“This Asian guy's a beast, got the beats on repeat, Dropping heat with every track, make you move your feet.

He’s a king in the game, turning sound into gold, Every rhythm hits hard, got the crowd losing control······.”


그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랩을 읊조렸다.


비트가 끝나자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맞잡고 내 쪽으로 당겨 어깨를 부딪쳤다.


“노다웃. 내 랩 별로라고 할만하네. 내 이름은 타이론, 타이론 D야. 랩네임은 Lil D.”

“나는 류선율이야.”

“료······.쌩욜?”

“아니, 선율.”

“썽융?”

“그냥 선(Sun)이라고 불러.”

“오케이, 썬.”

“그렇다고 아들(Son)로 생각하진 말고.”

“오호우-. 싯(Shit). 너 재밌네.”


왠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인들은 이런 말장난을 좋아한다.


“아, 뭐 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말해 봐.”

“여기 혹시 너처럼 여기서 앨범 강매······. 아니 판매하는 다른 래퍼도 있어?”

“많지. 저기 봐봐.”


타이론은 후드티를 입고 돌아다니는 남자를 가리켰다.


“쟤는 데릴. 그리고 쟤.”


이번엔 반팔 티셔츠에 펑퍼짐한 반바지를 입은 여자를 가리켰다.


“쟤는 안젤라.”

“다른 애들은 없어?”

“많지. 내가 이 구역 소셜 버터플라이(마당발)거든.”


이런 행운이.


“잘됐네. 그럼 혹시 루이스 해리슨이라는 애 알아?”

“루이스 해리슨? 존나 백인 너드 같은 이름이네.”


타이론은 턱을 문지르며 허공을 쳐다봤다.


“여기서 앨범 팔던 백인 애 하나 있긴 한데, 걔가 루이스 해리슨인지 루이스 해리포터인지는 잘 모르겠네. 여하튼 백인 애는 걔 하나뿐이야.”

“그래? 고마워.”


내가 인사를 하고 가려고 하자, 타이론이 날 막아세웠다.


“아, 안 산다니까.”

“그게 아니고, 네 번호 좀 알려줘.”


그가 내게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내 번호?”

“그래. 나중에 네 비트 필요할 때 연락할게. 네 비트 완전 죽이거든.”

“내 비트 꽤 비쌀 텐데?”

“얼마인데?”

“3,000달러.”

“왓더퍽? 진심이야?”

“응. 나 한국에 있을 때 래퍼들이 내 비트 3,000달러에 사 갔어.”


정확한 환율은 생략한다, 이놈 시키야.


“3,000달러 아니면 안 팔아.”

“잠깐, 너 한국에서 왔어? 갱냄 스타일?”


강남스타일.

진짜 다들 아네.

작년에 발매됐지만 여전히 인기 있나 보다.


“맞아.”

“나 그 노래 좋아해. 오, 뻑(Oh, Fuck) 갱냄 스타일.”

“오, 뻑이 아니라 오빠인데.”

“뭐 어때. 어쨌든 번호나 넘겨.”

“그래.”


나는 그의 핸드폰에 내 번호를 입력했다.


“아, 혹시 루이스 해리슨이라고 하는 애 만나게 되면 나한테 알려줘.”

“알겠어.”


나는 타이론과 천천히 멀어졌다.


내가 찾고 있는 루이스 해리슨.

2013년 말에 데뷔한 백인 래퍼다.

2013년 11월에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 곡이 큰 인기를 끌어 12월에 유쓰 머니(Youth Money) 레코드와 계약을 맺게 되는 래퍼다.


그 뒤로는 말 그대로 승승장구.

2014년에 발매한 그의 싱글(사운드클라우드에 업로드했던 그 곡이다) 『Me, Myself & You』가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고, 그 후에 발매된 정규 1집이 초대박이 난다.


얼마나 대박이 났는지, 그 다음 해에 바로 월드 투어를 돌았다.


그 대단한 래퍼, 루이스 해리슨의 시작이 바로 여기, 롱비치 시티 비치에서부터 시작된다.


노을이 질 때까지 해변 가를 거닐어 봤지만, 루이스 해리슨을 만날 수는 없었다.

가끔 날 보며 눈을 양쪽으로 찢는 인간들은 있었다.

나는 가볍게 웃어주며 무시했다.

가진 게 인종밖에 없는 인간들에겐 화보다는 연민이 먼저 들었다.

저 사람들이 가진 것 중 가장 잘난 건, 자기가 이룩한 무언가가 아니라 인종이 전부니까.


나는 벤치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루이스 해리슨 인터뷰나 자세히 읽어볼걸.

회귀 전 몇 번 봤던 15분짜리 너튜브 영상으로는 부족했다.


뭐, 꼭 그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


미래에 대박 날 다른 로스엔젤레스 출신 가수를 찾으면 되니까.


“후우······. 퍽(Fuck).”


별안간 한 남자가 혼자서 욕을 내뱉으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하나도 못 팔았네······.”


남자는 허리를 굽힌 채 자신의 머리를 무릎에 파묻었다.


“퍽, 퍽, 퍽!”


갑자기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어?


이 사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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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 두 번째 작업 24.09.17 93 1 12쪽
21 21. 몸값이 올랐다. 그것도 5배나. 24.09.16 115 5 12쪽
20 20. 카밀라 그레이 24.09.15 129 6 13쪽
19 19. 돌아온 5,000달러 24.09.14 141 6 12쪽
18 18. 성공의 첫 단추 24.09.13 143 4 12쪽
17 17. 새로운 보석을 찾아서(2) 24.09.12 149 6 12쪽
16 16. 새로운 보석을 찾아서 24.09.12 166 5 12쪽
15 15. 루이스 해리슨(3) 24.09.11 175 6 12쪽
14 14. 루이스 해리슨(2) 24.09.11 187 7 12쪽
13 13. 루이스 해리슨 24.09.10 199 6 12쪽
» 12. LA 그리고 롱비치 24.09.09 214 7 12쪽
11 11. 미국으로 24.09.08 223 8 12쪽
10 10. 복수의 서막 24.09.07 232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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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첫 작업(4) 24.09.04 245 9 12쪽
5 5. 첫 작업(3) 24.09.04 264 9 12쪽
4 4. 첫 작업(2) 24.09.03 267 9 12쪽
3 3. 첫 작업 24.09.02 282 10 12쪽
2 2. 2013년 1월 1일 24.09.02 294 9 12쪽
1 1. 도둑맞은 인생 +1 24.09.02 310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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