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음악 천재는 빌보드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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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0827
그림/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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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9.02 20:36
최근연재일 :
2024.09.1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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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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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1. 미국으로

DUMMY

백장호의 말이 맞았다.


‘앞으로 이 바닥에 평생 발 못 붙일 줄 알아.’


곡 의뢰 연락이 귀신같이 끊겼다.

하루에 적어도 다섯 통씩 오던 작업 의뢰가 진짜 뚝 끊겼다.

그 누구도 내게 연락을 주지 않았다.


확인차 전에 내게 곡 의뢰를 부탁한 중소 아이돌 회사에 연락을 해보았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류선율입니다. 전에 곡 의뢰해 주셨었죠? 제가 이제 작업이 가능해져서요.”

-아, 그게······. 이미 곡을 다 구했습니다. 미리 말씀 못 드려 죄송합니다.


한 번 더 떠보자.


“이번 앨범이 마지막은 아니잖아요. 다음 앨범에 참여할게요. 저번에 여자 아이돌이라고 하셨었죠? 그럼 제가···”

-아, 죄송합니다. 지금 급한 연락이 와서요.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네? 여보세요? 저기···”


뚝.


-뚜뚜뚜······.


그리고 곧, 내 곡을 사간 아이돌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네, 실장님.”

-작곡가님, 잘 지내시죠?

“그럼요. 근데 무슨 일로 전화를 다 주셨어요? 혹시 다음 앨범 일정이 나왔나요?”

-아, 그런 건 아니고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네, 말씀하세요.”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 덕분에 무슨 말일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죄송하지만, 작곡가님이 쓴 곡 매절 계약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요? 대신 곡 비는 더 얹어드리겠습니다.


매절.

저작물을 통해 얻는 수익을 모두 포기하는 대신, 돈을 한꺼번에 받는 것.


“매절 계약이요?”

-네. 그리고, 혹시 작곡/편곡에 크레딧도 회사 이름으로 올리려고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괜찮을 리가 있나.

내가 이제 막 데뷔한 작곡가라면 괜찮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의 원흉이 백장호란 사실을 안다.

그리고, 난 일부러 이 원흉을 유도했다.

어쩔 수 없지.

게다가 돈도 더 쳐주겠다는데.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네, 감사합니다.

“아, 저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제가 매절 계약을 승낙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하시려고 했나요?”

-어쩔 수 없으니 원래 하던 대로···

“에이,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앞으로 안 볼 사이도 아니고. 그냥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아, 그게······. 이번 앨범에서 빼려고 했습니다. 아, 물론 곡 비는 돌려받지 않고요. 이건 진짜입니다.


거짓말. 분명 곡 비도 돌려받으려고 했을 거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 입장 고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이렇게 빨리 답변 주셔서도 너무 감사합니다.

“네. 될 수 있으면 돈 좀 빨리 보내주세요.”


그 후, 내 곡을 사간 다른 아이돌 회사에서도 연락이 왔다.


내용은 마찬가지였다.

매절 계약으로 전환하자고.


대답은?

당연히 알겠다고 했다.

돈이나 빨리 붙여달라고 덧붙이고.


새삼 백장호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 새끼 힘 장난 아니네?


곧 각 회사에서 300만 원씩 더 입금됐다.

총 600만 원.


원래 이렇게까지 빨리 보내진 않는데.

어지간히 미안했나 보다.


잔고는 총 2,500만 원.

아니, 지금까지 전부 3.3% 떼고 받았으니 약 2,400만 원 정도.


내 비트를 사 간 래퍼에겐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 래퍼도 꽤 잘나가는 래퍼인데.

거기까진 입김이 닿지 않았나?


어쨌든.


백장호의 파워는 진짜 무시무시했다.

이 바닥에 평생 발 못 붙이게 한다는 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구나.


악인이 권력을 쥐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개새끼.


곧 방수현 PD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사람 입에선 무슨 말이 나올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PD님.”

-선율 씨. 지금 시간 돼요?

“네, 됩니다.”

-저번에 봤던 카페에서 뵐게요. 지금 출발하니까 금방 도착할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 * *


아이스 초코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물론 초코가 내 거다.


음료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수현 PD가 들어왔다.

왠지 표정이 격앙된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는 내 인사를 받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내게 물었다.


“백장호 대표 만났었어요?”

“네. 며칠 전에 만났어요.”

“백장호 대표한테 제 얘기했어요?”

“했죠.”

“뭐라고 했는데요?”

“방수현 PD님과 함께 일하고 싶었는데, 사정이 있어서 같이 못 하게 됐다고요.”


방수현 PD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알겠다.

백장호는 지금 방수현 PD와 나의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다.

방수현 PD에게로 돌아갈 수도 없게끔 하기 위해.


“왜요? 백장호 그 개새끼가 뭐라고 하던가요?”


내가 말하자 방수현 PD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아뇨. 무슨 말을 하긴요. 근데 지금 개새끼라고 한 거예요?”

“개새끼한테 개새끼라고 한 건데요, 뭐. 아니, 강아지한테 미안하네요.”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며칠 전 녹음했던 파일을 들려주었다.


백장호가 방수현 PD를 욕한 것과 우주소년을 욕한 것, 그리고 내가 말한 계약서의 내용까지 전부 들려주었다.


“재밌죠?”


방수현 PD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왜 그랬어요.”

“···네?”

“왜 이렇게 무모한 짓을 했어요. 그냥 계약이 마음에 안들면 안 하면 되지, 왜 백장호 대표랑 척을 졌어요.”


그는 나를 걱정하듯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척까지 질 필요는 없었다.

백장호가 이쪽 업계에 끼치는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하니까.


방수현 PD도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이 사람의 힘으로도 백장호를 어떻게 못 하나 보다.


“일단 우리 회사로 피신 와 있어요. 가명으로 곡을 쓰든, 다른 사람 명의로 곡을 쓰든, 다른 방법으로 계속 곡을 쓰게 해줄 테니까.”


오······.

이건 좀 감동인데?


“괜찮습니다.”

“앞으로 류선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어려울 거예요. 혼자서는 더더군다나.”

“이겨내야죠. 원래 영웅의 서사엔 탄탄대로란 없는 법이니까요.”


방수현 PD는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백장호란 인물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그가 내게 물었다.


잘 안다.

백장호.

백장호가 어떻게 이런 힘을 얻게 됐는지도.


4대 음악 방송 PD들과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으며, 높으신 분들의 성 접대는 물론, 스폰서까지 제공하는 인물.

고위층과 무명 아이돌을 연결해 주는 포주.

고위층이 남자, 무명 아이돌이 여자라는 편견은 버려라.

여자 고위층과 무명 남자 아이돌도 빈번하니까.

성별을 떠나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일이다.


[J아카이브]는 작곡 회사를 가장한 온갖 더러운 일들을 하는 회사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내가 회사를 나오고 나서 정확히 1년 뒤였다.


아, 그런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어떻게 백장호는 올해의 작곡가 상을 받게 됐냐고?


바지 사장을 앞세워 꼬리 자르기로 빠져나갔으니까.

온갖 죄는 그 바지 사장이라는 자가 뒤집어썼다.

백장호가 앞세운 바지 사장은 [J아카이브]의 작곡가, 나 대신 내 매를 맞던 선배였다.

그는 작곡만 하는, 진짜 작곡밖에 모르는 선배였다.

알리바이도 맞지 않았다.

그는 내 옆방에서 매일 곡만 써댔으니까.


백장호 대신 대중의 뭇매를 맞은 사람은 선량한 작곡가였다.


참, 세상이 이렇다.

악인이 더 잘 산다.


말이 안 된다고?


이 뒤에 터진 버닝X 게이트는 말이 되는 일이었나?

세상엔 말도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이 벌어진다.


“저야 잘 모르죠. PD님은요?”


일단 여기선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냥 업계에 힘 좀 있는 대표인 줄로만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


아무래도 방PD는 백장호가 어떤 일을 행하고 있는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기야 알 수가 없겠지.


“앞으로 어쩔 거예요?”

“앞으로요?”


계획은 있다.

하지만 아직 말할 수는 없다.


“그것보다, 약속 꼭 지키셔야 합니다. 몇 년 뒤에 다시 프로듀싱 맡길 기회 주신다는 거.”

“그건 꼭 기억할게요.”

“그거면 됐어요. 저, 약속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진짜 괜찮겠어요?”

“괜찮아요. 아직 이렇게 팔팔하게 살아있잖아요. 몸뚱이가 있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방수현 PD는 슬픈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힘내요.”

“PD님도요.”


인사를 마치고 카페를 빠져나왔다.


* * *


나는 상아 누나와 환희 형에게 백장호와 있었던 일과 녹음 파일을 들려줬다.


“앞으로 둘한테도 피해가 갈지 몰라. 그러니까 조심하고 있어요. 어디 가서는 나랑 아무런 관련 없다고 해야 해.”


상아 누나는 내가 전에 백장호에 대해 말했기 때문에 금방 받아들였지만(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은 표정이었다), 환희 형은 꽤 놀란 듯 보였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다 들었잖아요. 백장호가 나한테 개 같은 짓거리 하려다가 실패한 거지.”

“그럼, 너 앞으로 진짜 작곡가 생활 못 하는 거야? 백장호 그 새끼 때문에?”


상아 누나가 물었다.


“응. 안 그래도 곡 의뢰 연락이 뚝 끊겼어. 내 곡 사간 회사에서는 매절 계약으로 전환하자고 했고.”

“와아······. 백장호 그거 진짜 개새끼네.”

“선율이 너 앞으로 어떡하려고?”

“계획은 있어요.”

“무슨 계획?”

“야, 계획은 무슨. 내가 아빠한테 말해놓을게. 백장호가 아무리 힘이 있어도 SN엔터테인먼트보다 더 있겠어? 거기 작곡가로 캐스팅하라고 할게.”

“아냐 나 진짜 괜찮아.”

“선율아. 나는 괜찮으니까 우리 앨범 계속 프로듀싱해줘. 나도 점점 섭외 늘고 있고, 상아도 앞으로 더 잘될 거야.”


벌써 세 사람.


내 곁에 남아주겠다고 한 사람이 세 사람이다.


띠링-.


[선율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PD님한테 다 들었어. 그냥 우리 회사랑 계약하자. 우리 그룹, 앞으로 더 잘될 거야. 네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준까지 네 명이네.


“둘 다 너무 고마워. 마음 같아서는 형, 누나한테 빌붙어서 단물 쪽쪽 빨아먹고 살고 싶어. 근데, 그러면 평생 백장호 눈치 보면서 살아야 해. 나는 그러긴 싫어.”

“그럼 어쩌고 싶은 건데. 뭐, 그 새끼 잡아 죽이기라도 하게?”

“아니, 제대로 복수해야지.”

“어떻게.”

“미국으로 갈 거야.”

“미국?”

“나 꽤 오랫동안 미국에 있을 예정이야. 그러니까 형하고 누나는 빨리 성장해. 내가 돌아왔을 때 적어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어야 해, 알겠지?”


내 말에 둘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아니, 내가 뭐 죽으러 가냐? 나도 더 커져서 올 거야. 금의환향.”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환희 형의 작업실.

당분간은 오지 못할 것이다.


“선율아.”


입구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환희 형이 날 불러세웠다.


“너무 복수에 매몰되지 마. 네가 살고 싶은 삶, 네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아. 네 행복이 우선이야.”


형.

내가 행복해지려면 복수를 해야 해.

그게 내가 원하는 일이야.


차마 이 말을 뱉진 못했다.


“응. 고마워.”


나는 형과 가볍게 포옹했다.


“종종 연락할게.”

“연락 안 해도 돼.”


연락받으면 약해질 거 같으니까.


“연락은 무슨.”


뒤따라 나온 상아 누나가 말했다.


“저 새끼 대가리 하나는 아인슈타인 뺨쳐. 우리는 그냥 우리 일 열심히 하고 있으면 돼, 쟤 돌아오기 전까지.”

“누나 말이 맞아.”

“가라.”

“응. 잘 지내.”


그들과 인사를 마치고 며칠 뒤, 난 LA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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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 두 번째 작업(2) NEW 5시간 전 50 2 12쪽
23 23. 헤일리 화이트 24.09.17 82 2 11쪽
22 22. 두 번째 작업 24.09.17 93 1 12쪽
21 21. 몸값이 올랐다. 그것도 5배나. 24.09.16 115 5 12쪽
20 20. 카밀라 그레이 24.09.15 129 6 13쪽
19 19. 돌아온 5,000달러 24.09.14 141 6 12쪽
18 18. 성공의 첫 단추 24.09.13 144 4 12쪽
17 17. 새로운 보석을 찾아서(2) 24.09.12 149 6 12쪽
16 16. 새로운 보석을 찾아서 24.09.12 167 5 12쪽
15 15. 루이스 해리슨(3) 24.09.11 177 6 12쪽
14 14. 루이스 해리슨(2) 24.09.11 188 7 12쪽
13 13. 루이스 해리슨 24.09.10 200 6 12쪽
12 12. LA 그리고 롱비치 24.09.09 215 8 12쪽
» 11. 미국으로 24.09.08 224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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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우주소년(2) 24.09.06 223 8 11쪽
8 8. 우주소년 24.09.06 242 8 12쪽
7 7. 첫 작업(5) 24.09.05 246 10 12쪽
6 6. 첫 작업(4) 24.09.04 245 9 12쪽
5 5. 첫 작업(3) 24.09.04 264 9 12쪽
4 4. 첫 작업(2) 24.09.03 267 9 12쪽
3 3. 첫 작업 24.09.02 282 10 12쪽
2 2. 2013년 1월 1일 24.09.02 295 9 12쪽
1 1. 도둑맞은 인생 +1 24.09.02 312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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