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음악 천재는 빌보드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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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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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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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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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13년 1월 1일

DUMMY

“백장호!!!”

“뭐, 뭐야? 너 왜 그래?”


···응?


“환희 형?”


내 눈앞에 있는 남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이 남자.

래퍼 화니, 이환희 형이었다.


“아, 아니······. 이게 지금 무슨······.”

“근데, 이 새끼 방금 뭐라고 한 거냐? 백잔오?”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상아 누나?”


환희 형 옆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여자.

래퍼 타이니, 박상아 누나였다.


“뭐, 소주 백 잔 마시겠다는 거야? 꼴에 남자라고 허세는······.”


상아 누나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진짜 어디 아픈 거 같은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환희 형은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손이 이마에 닿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이었다.


“열은 없는 거 같은데.”


나는 멍하니 서 있다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베가 레이서라니······.


홀드 버튼을 누르자 날짜와 시간이 떴다.


[2013년 1월 1일 00:32분]


2013년.

내가 스무 살이 된 날이었다.


뭐지?

내가 지금 주마등을 보고 있는 건가.

주마등은 보통 어렸을 때부터 나오지 않나?

어렸을 때는 다 건너뛰고 스무 살부터 보여준다고?

게다가 이렇게 생생하게?

보통 주마등은 ‘스친다’라고 표현하지 않나?


“너 진짜 어디 아파?”


상아 누나도 그제야 내가 걱정스러웠는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아냐, 아냐. 나 괜찮아”

“쓰읍······. 그럼 다행이고.”


그래.

뭔지는 모르겠지만 주마등이라면 실컷 구경하고, 꿈이라면 실컷 꾸자.

어차피 죽었을 텐데.


죽었다.


순간, 가슴 속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올라왔다.


“누나.”

“뭐?”

“형.”

“어, 그래.”


나는 둘을 끌어안았다.


“이 새끼 진짜 왜 이래? 야, 뭐야. 너 울어? 왜 울어?”

“선율아 무슨 일이야. 안 좋은 일 있어?”


환희 형이 내 등을 토닥이며 물었다.


“그런 거 아냐······. 그런 거 진짜 아냐······.”

“그래. 마지막 응석이라 생각하고 맘껏 울어라. 어른 되면 슬퍼도 꾹 참아야 하니까.”


상아 누나도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 * *


“서, 선율아. 숨 좀 쉬면서 먹어. 그러다 체하겠다.”


환희 형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주를 집어 먹었다.


싸구려 냉동 탕수육에 조미료 잔뜩 들어간 짬뽕탕.

개당 5천 원짜리 안주가 하이패스 차량처럼 입 속을 통과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밥은커녕 죽이나 감자, 간이 안 된 채소나 삶은 고기가 전부였다.

그런 밥도 먹는 내내 게워내기 일쑤였다.


건강한 음식만 먹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니 혀가 춤을 춘다.

이 얼마나 자극적이고 달콤한 맛인가.

이 행복을 거세당한 채로 살았다니.

경험자로서 단언컨대, 암은 진짜 고통스러운 병이다.


“더 먹고 싶은 거 있어? 더 시켜줄까?”

“깐풍기, 깐풍기.”

“어, 어. 그래. 사장님 여기 깐풍기도 하나 주세요.”

“뱃속에 거지가 들었나······. 야, 안주빨 그만 세우고 짠이나 해.”


상아 누나가 잔을 내밀었다.


“짠.”


허공에서 글라스 세 개가 부딪치는 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잔에 담긴 소주가 목을 적시고 위까지 닿는 느낌이 들었다.

찌릿했다.


“크으아아-.”

“어때, 인생 첫 술 맛이.”

“너무 달아.”

“이 새끼 좆됐다. 백퍼 알콜 중독자 된다.”


상아 누나가 날 가리키며 낄낄거렸다.


“선율이 너 오늘 처음 술 마시는 거 맞아?”


환희 형이 채근하듯이 물었다.


“에이, 형 나 바른 생활 사나이예요.”


술잔이 돌고 얼큰하게 취했을 때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둘에게 말하고는 술집을 빠져나왔다.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술집보다는 덜 시끄러웠다.

한숨을 내쉬자 그 모양대로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대로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건 꿈이 아니다.

30년 동안 꿈을 꿨다.

꿈에 있어서는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정도로 경험이 풍부하단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생한 꿈은 꿔본 적이 없다.

이 생생한 미각과 배부름.

이 감각들은 절대 꿈일 수가 없다.


주마등도 아니다.

주마등이었다면 이 술집에 오지 않았을 테니까.

원래대로였다면 맞은 편에 있는 술집 ‘유도리’로 갔을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간 술집이니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반대편에 있는 ‘오공포차’로 왔다.

내 의지대로 행동해서 과거가 변한다면, 그 역시 주마등이 아닐 테다.


남은 것은 단 하나.


진짜 내가 과거로 돌아온 것인가?

10년 전의 나로?


툭-.


뭔가가 내 어깨에 올라온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환희 형이었다.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무슨 일은요. 아무 일도 없어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형은 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나저나 시간 진짜 빠르다. 너랑 처음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나랑 술 한잔 기울일 나이가 됐네.”

“그러게요.”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거 알아요, 형? 지금까지 직접 만나자고 했던 래퍼 형밖에 없다는 거.”

“블랙닷 형 만나지 않았어?”

“블랙닷?”


블랙닷······.


아, 맞다.

그 사람 정규 앨범에도 참여했었지.


“그 사람하고 직접 만난 적은 없어요. 그냥 비트만 보내달라고 했었어요.”


블랙닷.

내가 미성년자란 걸 알자마자 바로 말을 놓았던 사람이다.

미성년자이니 앨범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회가 될 거라며 곡비도 쌩깠던 인간.

직접 만나기는커녕 카톡 몇 번 주고받았던 사이.


그에 반해 환희 형은 내게 직접 만나자고 했었다.

비트가 너무 좋아서 그러니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고.


나보다 6살이나 많았지만, 형은 내가 편하게 말 놓아달라고 부탁하기 전까지 내게 존댓말을 했다.

나를 같은 음악인으로 대해줬던 첫 사람이 바로 환희 형이었다.


나는 환희 형의 믹스테잎 12곡 중, 5곡에 비트메이커로 참여했고, 신기하게도 12곡 중 내가 참여한 5곡만이 유명해졌다.

뭐, 물론 언더 씬에서만 한정된 얘기지만.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환희 형은 랩을 잘한다.

그가 유명해지지 못했던 이유는 아주 심플하다.

예술병으로 포장된 게으름.

만일 그가 게으르지 않았더라면, 쇼미더캐시 심사위원도 몇 번을 했을 것이다.


물론 그때의 나는 이 형이 게으르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녹음을 차일피일 미루고, 한 곡을 만드는 데 한 달씩 걸리는 게 예술가의 고뇌나 작품을 위한 사색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게으름이다.


찰싹-.


“아오! 뭐야!”


나는 손을 뒤로 꺾어 등을 마구 비벼댔다.


이건 꿈이 아니다.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꿈이야?


“술집에 숙녀 혼자 남겨두는 건 무슨 똥매너야. 둘 다 빠따 맞을래?”

“아, 씨. 더럽게 아프네, 진짜.”

“이제 들어갈까?”


환희 형이 말했다.


그 뒤로 우리는 술을 몇 병 더 마시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 * *


침대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얀 병실이 아닌 주방이 붙어있는 5평짜리 원룸.

스무 살까지 살았던 자취방이었다.


링거가 꽂혀있지 않은 팔을 들어 올려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집어 화면을 켰다.

2013년 1월 2일 오전 7시 42분.

하루가 지났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나는 과거로 회귀했다.


게다가 이 숙취.

이건 현실이 분명하다.


리모컨을 집어 방에 있던 TV를 켜보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이 약 두 달 정도 남은 이 시점에······.


맞다.

이때 대통령은 박근혜였지.


TV를 멍하니 보고 있는데,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사람이 과거로 돌아오는 게 말이 되나?

진짜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 아닌가?

혹시, 신이 내 기도를 들어준 걸까?

백장호에게 복수하라고?


백장호······.


지금이라도 칼을 들고 찾아가 백장호의 가증스러운 면상을 내려보며 도륙내고 싶다.


갑자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후우······. 아니야. 천천히 생각해.”


이런 기회를 그렇게 쉽게 날려버릴 순 없다.


보통 과거로 돌아오는 소재의 콘텐츠를 보면, 미래 지식을 이용해 돈을 번다.

주식이라든지 부동산, 로또 번호 같은 걸로.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는 문외한이다.

로또 번호는커녕 어떤 주식이 오르는지, 어느 지역의 부동산이 몇 배로 뛰는지조차 모른다.


비트코인?


물론 비트코인은 잘 알고 있지.

하지만 막연히 언젠가 오른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


내가 아는 건 오직 음악.

어떤 가수와 어떤 장르가 흥하고 망하는지는 마치 주식 애널리스트가 주식을 아는 만큼이나 꿰고 있다.


음악을 이용해서 내가 하고 싶은 건 단 하나.


복수.


‘정의가 승리하는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기도하며······.’


진짜 정의가 승리하는 사회가 뭔지 내가 보여줄게.


이 백장호 씹쌔끼야.


* * *


복수는 차갑게 요리해야 가장 맛있고,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길지 않다.


그 10년의 첫 단추는 바로 여기서부터다.


“어, 왔어?”


환희 형은 반갑게 날 맞이했다.


이곳은 형의 작업실.

허름한 건물 지하에 있어서 그런지 퀴퀴한 냄새가 났다.


이 형을 지상으로 끌어 올리는 게 바로 첫 목표다.


“어제는 잘 들어갔어?”

“그럼요. 형 덕분에 성인 기념 파티 제대로 했어요. 감사해요.”

“감사하긴. 더 좋은 데 못 데리고 가서 미안하지.”


언제 봐도 참 착한 형이다.


“형. 요새 바빠요?”

“나? 아니. 가끔 들어오는 공연이랑 랩 레슨 빼면 뭐 없어.”

“그럼 저랑 정규 앨범 작업해요.”

“정규 앨범?”


형은 잘못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형도 알잖아요, 믹테 반응 이 정도로 올라왔으면 후속타 쳐야 한다는 거.”

“그건 그렇지. 근데 지금 준비한 곡이 하나도 없는걸.”

“지금부터 만들면 되죠.”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잖아. 영감이 떠올라야···”


이 형의 게으름은 여기서부터다.

매일 영감 타령을 한다.

그렇게 매일 영감만 찾다가 결국 자신이 늙어 영감이 된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형.”


형한테는 미안하지만, 꼰대 같은 소리 한번 해야겠다.

지금의 형은 26살.

서른 살이었던 미래의 나보단 나이가 어리잖아.


“형도 알잖아요. 영감 그거 다 핑계란 거. 그냥 어느 날엔 잘 나오고 어느 날엔 안 나와서 영감이란 말로 자기 합리화하는 거잖아요.”


내 말에 형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다 평생 영감이 안 떠오르면요?”

“평생이라니, 언젠간 떠오르겠지.”

“만약 안 떠오르면요? 그럼 그냥 랩 그만둘 거예요?”

“그건 아니지······.”

“형도 알죠? 형 그 게으름이 형 발목 잡는 거. 예술 한다고 삐대다가 허송세월 보내고 싶어요?”


형은 빈정이 상했는지 턱에 힘을 주고 고개를 새침하게 저었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한 달 동안 저랑 곡 작업해요. 한 달 동안 앨범 완성하고 두 달 안에 발매.”

“한, 한 달? 한 달은 너무 짧은데······.”

“형. 힙합 사랑한다면서요. 목숨 걸었다면서요. 목숨 건 사람의 태도가 겨우 이거예요?”


일부러 더 모질게 말했다.

형은 단지 게으를 뿐이지, 귀 닫고 사는 사람은 아니니까.


환희 형은 입술을 안으로 말고 작업실 바닥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한 달이면 돼?”


그의 목소리에 다짐이 서려 있었다.


“네. 딱 한 달이면 돼요.”


무조건 된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앨범이 전부 구상되어 있으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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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 몸값이 올랐다. 그것도 5배나. 24.09.16 115 5 12쪽
20 20. 카밀라 그레이 24.09.15 130 6 13쪽
19 19. 돌아온 5,000달러 24.09.14 141 6 12쪽
18 18. 성공의 첫 단추 24.09.13 144 4 12쪽
17 17. 새로운 보석을 찾아서(2) 24.09.12 150 6 12쪽
16 16. 새로운 보석을 찾아서 24.09.12 167 5 12쪽
15 15. 루이스 해리슨(3) 24.09.11 177 6 12쪽
14 14. 루이스 해리슨(2) 24.09.11 188 7 12쪽
13 13. 루이스 해리슨 24.09.10 200 6 12쪽
12 12. LA 그리고 롱비치 24.09.09 215 8 12쪽
11 11. 미국으로 24.09.08 224 9 12쪽
10 10. 복수의 서막 24.09.07 233 8 13쪽
9 9. 우주소년(2) 24.09.06 223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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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 첫 작업(5) 24.09.05 246 10 12쪽
6 6. 첫 작업(4) 24.09.04 246 9 12쪽
5 5. 첫 작업(3) 24.09.04 265 9 12쪽
4 4. 첫 작업(2) 24.09.03 267 9 12쪽
3 3. 첫 작업 24.09.02 283 10 12쪽
» 2. 2013년 1월 1일 24.09.02 297 9 12쪽
1 1. 도둑맞은 인생 +1 24.09.02 312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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