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음악 천재는 빌보드로 간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새글

주연0827
그림/삽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품등록일 :
2024.09.02 20:36
최근연재일 :
2024.09.18 23:20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4,723
추천수 :
164
글자수 :
133,624

작성
24.09.03 22:10
조회
268
추천
9
글자
12쪽

4. 첫 작업(2)

DUMMY

작업실 건물 앞에 환희 형이 서 있었다.

그의 입에선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베일이 온다고?”


날 보자마자 환희 형이 다짜고짜 물었다.


나는 입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형과 함께 건물 밖에 서서 베일을 기다렸다.


“새벽 3시에 이게 무슨 일이야······. 무슨 일 때문에 온다는데?”

“형 앨범 피처링 부탁하려고 불렀어요.”

“잘됐네······. 엥?”


휘둥그레진 눈으로 날 쳐다보는 환희 형의 어깨를 두 번 토닥였다.

그러더니 별안간 머리를 매만졌다.


“어때? 추레해 보이지 않아?”

“멋있어요.”


환희 형은 잘생겼다.

아니, 잘생겼다기보다는 섹시하게 생겼다.

영화 콘스탄틴에 나온 키아누 리브스 스타일.

짙게 밴 담배 냄새가 잘 어울릴 것 같은 더티 섹시.


솔직히, 이렇게 생겼으면 게으를 만하다.


랩 하기 전엔 인터넷 쇼핑몰 모델을 했었단다.

그때 벌었던 돈의 1/5밖에 못 벌면서 지금 삶이 좋단다.


“어우, 떨린다.”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형의 얼굴을 보니 내가 다 기분이 좋았다.


“랩 메이킹은 좀 했어요?”


내가 묻자 금세 표정이 굳었다.


“하긴 했는데······. 잘 모르겠어. 처음이라 감도 잘 안 오고.”


그럴 만도 하지.

스타일을 하루 만에 바꾸는 건, 오른손잡이가 갑자기 왼손잡이가 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우니까.

비유하자면, 오른손잡이가 갑자기 왼발로 젓가락질하는 거랄까?


“녹음도 해놨죠?”

“응 가이드만.”

“그럼 됐어요. 이따 들려줘야 할 수도 있으니까.”

“들려준다고? 그거를?”


그때, 저 멀리서 차 한 대가 라이트를 밝히며 이쪽 골목으로 다가왔다.

벤츠다.

차에 크게 관심이 있지 않아서 모델은 잘 모르겠다.


골목 갓길에 선 차의 시동이 꺼졌다.

그리고 운전석에서 베일이 내렸다.


“요, 워럽.”


베일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드는데, 조수석 문이 열리고 어떤 남자가 내렸다.


···라이온제이?

라이온제이까지 데리고 왔다고?


나보다 더 놀란 건 환희 형이었다.


“라, 라, 라이온제이다······.”


장발 곱슬머리에 정갈하게 자른 수염, 깡말랐지만 포스는 여느 전사보다 강해 보였다.


라이온제이는 우리에게 다가와 고개 숙여 인사했다.


“밤늦게 찾아봬서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여, 영광입니다.”


환희 형은 입을 벌린 채로 말했다.


라이온제이의 뒤를 이어 베일이 다가왔다.


“류선율 씨 맞죠? 전화로 얘기 나눴던.”


그는 내게 주먹을 내밀었다.

나는 그와 주먹을 부딪쳤다.


“일단 내려가실까요?”


나는 건물 입구 문을 열며 말했다.


* * *


“마실 게 마땅히 없는데, 나가서 좀 사 올까요?”

“마시러 온 게 아니라 들으러 온 거라서.”


환희 형의 말에 베일이 대답했다.


“차 타고 오면서 만드신 비트 들었습니다. 하루 만에 그 3곡을 완성했다고.”


라이온제이가 내게 물었다.


3곡뿐이겠는가.


“지금 들려드릴 10곡까지 합쳐서 총 13곡을 어제 작곡했습니다.”


R&B 두 곡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13곡이요?”


라이온제이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일단 들어보죠.”


책상 앞에 앉아있던 환희 형이 노래를 재생했다.


라이온제이와 베일은 팔짱을 끼고 진중한 얼굴로 노래를 들었다.

처음엔 새침데기처럼 고고한 표정으로 듣더니, 곡이 지날수록 고개를 까딱거렸다.

이윽고 둘 다 자리에서 일어나 듣기 시작했다.


바운스를 타던 베일은 한쪽 귀를 막고 랩을 내뱉었다.


됐다!


옷 쇼핑을 할 때,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는가?

가격표를 본다.

가격이 합리적이라면 무엇을 하는가?

피팅룸에 가서 옷을 입어본다.


그렇다면, 래퍼가 마음에 드는 비트를 발견하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할까?

바로, 자신의 랩을 얹어본다.


베일은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고······.


고개를 돌려 라이온제이를 봤다.

라이온제이의 입은 아직까진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고개를 까딱거리며 리듬을 타기만 했다.

일단 자리에서 일어난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나?


10번 트랙까지 라이온제이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반면 베일은 비트가 끝났는데도 랩을 이어갔다.


“이게 하루 만에 쓴 비트들이라고요?”


드디어 열린 라이온제이의 입에선 랩 대신 질문이 나왔다.


“네.”

“믿을 수가 없네요. 이 정도 퀄리티의 비트를 열 곡이나 쓰다니. 그것도 하루 만에.”

“못 믿으시겠다면 한 번 보여드릴까요?”


나는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형. 잠시만 컴퓨터 좀 쓸게요.”


환희 형은 의자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섰다.


나는 의자에 앉아 큐베이스를 켰다.


오기가 생겼다.

라이온제이의 저 거대한 입을 열고 싶어졌다.

물론 이것은 치기 어린 객기다.

힙합계의 대부라고 불리는 사람의 입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열리겠는가.


그래도,

그래도 도전은 해볼 수 있잖아?


자, 어떤 스타일로 가볼까······.

아예 오리지널리티를 보여줄 수 있게 DJ 프리모 스타일로 갈까?


맞다.

1년 뒤에 발매되는 다이나믹 듀오의 음악 『AEAO』, 그 곡의 비트를 만든 사람이 DJ Premier다.

90년대 전설적인 힙합 프로듀서.


하지만, 라이온제이라면 90년대 힙합 스타일은 질리도록 듣지 않았을까?

차라리 연주력을 뽐내자.


일단 리듬을 먼저 찍었다.


그 뒤, 버추얼 신시사이저를 불러 Moog 느낌의 베이스 사운드를 골랐다.

2016년에 발매될 브루노 마스의 『24K Magic』, 이 곡에서 나오는 베이스 소리가 Moog 베이스 사운드다.

뭉툭하면서도 몽글몽글한 톤.


그 위에 별처럼 반짝거리는 EP(Eletronic piano) 사운드를 입히고, 마지막으로 이 곡의 하이라이트인 신시사이저까지.

섹시한 신시사이저 톤이 이 비트의 하이라이트다.


“G-Punk네.”


옆을 보니 라이온제이가 내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이 양반은 언제 온 거야.

놀랐네······.


라이온제이는 고개를 까딱거리더니,


“지금 이 4마디 루프(Loop)로 좀 돌려줄래요?”


내게 말했다.


루프.

내가 지금 만든 4마디가 끊기지 않고 반복 재생되게 해달라는 말이었다.


나는 루프 버튼을 누르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라이온제이는 내가 앉았던 의자에 앉더니 두 눈을 감고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Smooth talkin', lips lockin', feel the heat ignite, Whisper in your ear, babe, let’s dance all night···”


그의 입이 열렸다.


그의 입에선 한국어가 아닌 영어 가사가 흘러나왔다.

미국에서 살다와서 그런가.


그렇게, 한참을 앉아 랩을 하던 라이온제이는 스페이스바를 눌러 음악을 멈췄다.


“몇 분 만에 이런 곡을 써내는 거 보면, 하루 만에 10곡 썼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 거 같네요.”


라이온제이는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 세워줬다.


“지금 만든 곡과 아까 들었던 10곡까지 합쳐서 총 12곡을 정규앨범에 실을 예정입니다.”

“12곡? 우리 11곡 듣지 않았어요?”


베일이 되물었다.


“나머지 한 곡은 이 컴퓨터엔 없습니다.”

“아, 그래요?”


베일은 나머지 한 곡을 듣지 못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 이제 정식으로 제안 드리겠습니다. 래퍼 화니의 정규앨범 피처링, 참여하실 생각 있으십니까?”

“비트만 들으면 참여하고 싶은데······.”


베일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훅이 구리면 참여 못 할 거 같은데.”


깐깐하네.

뭐, 당연하긴 하지.

프로니까.


“형, 준비됐어요?”

“으, 느 즌쯔 믓 들르드를 그 긑은드······.(아, 나 진짜 못 들려드릴 거 같은데······.)”


환희 형이 이를 꽉 깨물고 복화술로 말했다.


나는 형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형. 여기서 형이 메이킹한 거 평가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애초에 평가 기준 자체가 아직 없는 장르라니까? 그러니까 그냥 질러요.”

“즌쯔즈?(진짜지?)”


나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이 형이 어떻게 메이킹 했는지 못 들어봤으니까.

어차피 확률은 50대 50.

참여한다, 안 한다.


“그럼, 틀겠습니다.”


의자에 앉은 환희 형이 프로젝트를 켰다.


그리고,


-딸깍


스페이스바를 누르자 노래가 흘러나왔다.


* * *


해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어두운 사위를 밝혀줄 때쯤, 환희 형과 나는 24시간 국밥집에 마주 앉아 소주를 기울였다.


“형. 받아요.”


형은 멍한 표정으로 메뉴판 쪽을 보며 빈 잔을 내밀었다.


내가 잔을 가득 채우자, 또 멍한 표정으로 소주를 마시고는 다시 잔을 내밀었다.


“정신 좀 차려요, 형.”

“어, 어? 아, 응······.”


형은 축 늘어트린 어깨를 세우고는 국밥을 먹었다.

여전히 표정은 멍했다.


“근데 베일이랑 라이온제이는 어쩌다가 이 새벽에 내 작업실에 오게 된 거야?”


문득 의문이 들었는지 환희 형이 물었다.


“제가 베일한테 곡 보냈거든요.”

“베일한테? 원래 친분이 있었던 거야?”

“아뇨? 밀리어네어 레이블 홈페이지에 메일 주소 있던데요?”

“거기로 보냈는데 연락이 온 거야?”


나는 깍두기를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곡 비는 얼마 받았는데?”

“곡 비 안 받았는데?”

“안 받았다고?”

“돈 대신 형 앨범에 피처링해 달라고 했죠.”

“···진짜로?”


별안간 형의 턱이 구겨졌다.

곧 형이 울먹거렸다.


“미안해. 괜히 나 때문에······.”

“미안해할 필요도 없고 고마워할 필요도 없어요. 형이 잘돼야 나도 잘되는 거니까.”

“그래도, 그래도 고마워.”

“고마우면 앨범 준비 더 빡세게 해요. 피처링도 승낙받았잖아요.”

“응. 진짜 빡세게 준비할게.”


형이 목빠지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승낙받았다.

놀랍게도 라이온제이와 베일 둘 다에게.


솔직히 형이 메이킹을 그렇게 캐치하게 해낼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애초에 생소한 음악이었으니까.

근데, 형은 해냈다.


방금 전, 형은 10곡 중 본인이 작업한 3곡을 들려줬다.


“훅 좋은데?”


형이 메이킹한 훅을 듣던 베일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웃었다.


베일은 3곡 모두 마음에 들어 했다.


남은 건 라이온제이.

솔직히 조금 걱정됐다.

혹, 가사가 너무 가볍다거나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할까봐.


하지만,


“이 정도면 지금 본토보다 사운드적으로나 리릭스적으로 앞선 거 아닌가?”


라이온제이는 감탄하며 말했다.


오······.

역시 1세대라 그런지 듣는 귀와 통찰력이 남달랐다.

이쯤 되니 그가 현자처럼 보였다.


“그 말은 즉······.”

“I’m in.”


라이온제이가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아직 손을 잡지 않은 환희 형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렇게, 둘의 피처링 허락을 얻어냈다.

그것도 무료로.


“근데, 나머지 한 곡은 뭐야?”


환희 형이 숟가락을 든 채로 물었다.


“아, 그거요?”


그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모르는 번호로 온 메시지였다.


나는 메시지를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참, 이 사람도 양반은 못 되네.


“나머지 한 곡은 이 사람이 피처링해줄 거예요.”


메시지 창을 띄운 채로 핸드폰을 형에게 내밀었다.


형은 느릿느릿하게 화면 속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다.


“안녕하세요, JND입니다. 보내주신 트랙 잘 들어봤습니다. 이번에 발매할 정규에 보내주신 트랙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잠깐······. JND? 내가 아는 그 JND?”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회귀한 음악 천재는 빌보드로 간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 변경했습니다. 24.09.13 103 0 -
25 25. 두 번째 작업(3) NEW 1시간 전 18 1 12쪽
24 24. 두 번째 작업(2) NEW 5시간 전 50 2 12쪽
23 23. 헤일리 화이트 24.09.17 82 2 11쪽
22 22. 두 번째 작업 24.09.17 93 1 12쪽
21 21. 몸값이 올랐다. 그것도 5배나. 24.09.16 115 5 12쪽
20 20. 카밀라 그레이 24.09.15 130 6 13쪽
19 19. 돌아온 5,000달러 24.09.14 142 6 12쪽
18 18. 성공의 첫 단추 24.09.13 144 4 12쪽
17 17. 새로운 보석을 찾아서(2) 24.09.12 151 6 12쪽
16 16. 새로운 보석을 찾아서 24.09.12 168 5 12쪽
15 15. 루이스 해리슨(3) 24.09.11 177 6 12쪽
14 14. 루이스 해리슨(2) 24.09.11 189 7 12쪽
13 13. 루이스 해리슨 24.09.10 201 7 12쪽
12 12. LA 그리고 롱비치 24.09.09 215 8 12쪽
11 11. 미국으로 24.09.08 224 9 12쪽
10 10. 복수의 서막 24.09.07 234 8 13쪽
9 9. 우주소년(2) 24.09.06 224 8 11쪽
8 8. 우주소년 24.09.06 242 8 12쪽
7 7. 첫 작업(5) 24.09.05 247 10 12쪽
6 6. 첫 작업(4) 24.09.04 246 9 12쪽
5 5. 첫 작업(3) 24.09.04 265 9 12쪽
» 4. 첫 작업(2) 24.09.03 269 9 12쪽
3 3. 첫 작업 24.09.02 285 10 12쪽
2 2. 2013년 1월 1일 24.09.02 297 9 12쪽
1 1. 도둑맞은 인생 +1 24.09.02 313 9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