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음악 천재는 빌보드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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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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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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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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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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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첫 작업

DUMMY

“일단 나 레슨 좀 갔다 올게.”


환희 형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여기서 작업 좀 하고 있을게요.”

“바로 시작하는 거야?”

“쇠뿔도 단김에 빼야죠.”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나를 지그시 쳐다보던 환희 형은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밥 먹으면서 해. 배고프면 머리도 안 돌아가더라.”


작업비로 받기엔 너무나 큰돈이었다.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로.

당시 형에게 2만 원이란 돈은 꽤 큰 돈이었으니까.


“감사합니다.”

“이따 봐.”


형이 작업실을 나갔다.


나는 크게 기지개를 켜고 책상에 바짝 붙어 앉았다.


작곡 프로그램인 큐베이스.

진짜 오랜만이다.

이때만 해도 DAW(작곡 프로그램)는 큐베이스가 국룰이었지.

아마 내 자취방에 있는 컴퓨터에도 큐베이스가 깔려 있을 것이다.


마름모 모양의 빨간 아이콘을 더블클릭하자 익숙한 세션 창이 떴다.


시작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게 있다.

드럼 샘플 찾기.


구글에 ‘Trap Drum Kit Free Download’와 ‘808 Drum Kit Free Download’를 검색했다.


트랩(Trap)

힙합 음악이 메인 장르로 부상하면서 굳이 힙합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장르인 트랩.

하지만 이때는 아직 힙합이 언더그라운드 장르일 때다.

쇼미더캐시 겨우 시즌 1이 작년에 방영됐었으니까.

트랩이 부상하게 된 건, 쇼미더캐시 3의 영향이 컸다.

쇼미더캐시 3의 방영날짜는 2014년 여름.

1년 하고도 더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트랩에서 자주 쓰이는 건 808드럼이다.

Roland사(社)에서 출시한 드럼 머신인 TR-808······.

뭐, 이런 지루한 설명보다는 노래 가사 중 한 구절을 발췌하는 게 빠르겠다.


[808 베이스 소리!]


문제는 아직 트랩이란 장르가 대중들 귀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괜찮다.

화니 형의 앨범은 상업성 짙게 프로듀싱할 예정이지만, 대중들을 위한 앨범은 아니다.


샘플들을 다운받고 작곡을 시작했다.

리듬을 쌓고 그 위에 단순한 베이스 리프를 얹었다.


단순하고 자극적인 사운드.

마치 어제 먹었던 깐풍기의 지나치게 새콤달콤한 맛처럼, 짬뽕탕에 첨가된 캡사이신처럼.

이건 작품이 아니다.

상품이다.


* * *


컴퓨터 하단 바의 시간을 확인하니 5시간 정도가 흘러 있었다.

30분에 한 곡씩, 총 10곡을 만들었다.


너무 대충 만든 거 아니냐고?


그럴 리가.


내 머릿속엔 미래에 히트 칠 힙합곡이 적어도 이백여 곡은 들어있었다.

‘힙합’만 이백여 곡이다.

그 곡들을 토대로 작곡하는데 30분이면 충분하지 않나?


그건 표절 아니냐고?


물론 그대로 베끼진 않았다.

나도 양심은 있다.

레퍼런스 삼았다고 하자.


작업실 도어락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가 들리고 곧 문이 열렸다.


“형 왔어요?”

“밥은?”

“아직 안 먹었죠.”


나는 형이 건넨 2만 원을 흔들었다.


“형이랑 같이 먹으려고요.”

“먼저 먹지.”


형은 녹초가 된 듯 소파에 등을 푹 파묻었다.


“형. 피곤하니까 그냥 눈 감고 들어요.”

“곡 썼어?”

“네.”

“몇 곡이나 썼는데?”

“10곡이요.”

“고생했겠네······. 엥?”


별안간 형이 휘둥그레한 두 눈으로 날 쳐다봤다.


“10곡? 하루 만에 10곡을 썼다고? 아니, 12시간도 안 지났잖아. 몇 시간 만에 10곡을 썼다고?”

“네. 들려드릴까요?”


내 말에 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과 붙은 의자에 앉았다.

제대로 들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나는 형 옆에 서서 음악을 차례대로 재생했다.


강렬한 808베이스 위로 쪼개지는 하이햇, 그로테스크하다고 느낄 정도로 어두운 신시사이저 라인이 흘러나왔다.

전체적으로 트래비스 스캇의 2집 정규 앨범을 레퍼런스 삼았다.

물론 멜로디나 리프를 베끼진 않았다.

돈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 느낌, 그 느낌만을 고스란히 우라까이했다.


환희 형은 고개를 끄떡거리며 리듬을 탔다.

가끔은 미간을 좁히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oh, Shit!”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스피커에서 더 이상 노래가 나오지 않았다.

10곡의 재생이 끝난 것이다.


“시간 가는 줄 몰랐네······.”


환희 형은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앞으로 미국 힙합 씬은 이런 트랩 장르가 점령할 거예요. 지금도 스멀스멀 인기를 얻고 있구요. 하지만 형도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이런 비트에 랩하는 래퍼가 없어요, 아직은.”


그렇다.

이때까지만 해도 감성 힙합과 붐뱁이 주를 이루고 있을 때다.


“진짜 신선하고 좋아. 근데······.”


형의 표정이 곧 시무룩해졌다.


“사람들이 좋아할까? 아니, 사람들이 좋아할까는 둘째 치고 여기에 어떻게 랩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대중성은 차치해요. 일단 어떻게 랩하면 되는지 대충 느낌만 보여드릴게요.”


나는 5번째 곡인 『전화 받아』의 프로젝트 파일을 열고 오디오 트랙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연결된 다이나믹 마이크를 잡고 녹음 버튼을 눌렀다.


“Ring, Ring, 벨이 울려대-. 빙빙, 어지럽네-. 누가 나 좀 깨워줘 정신 차리게 딩동댕.”


대충 만들었는데 라인 좋네.

목소리가 녹음된 트랙에 오토튠 플러그인을 걸었다.


맞다.

그 오토튠.

앞으로 개나 소나 쓸 그 오토튠이다.


오토튠을 거의 Max에 가깝게 먹이자 그나마 들을 만하게 들렸다.


“이게 뭐야?”


형은 들을 만하지 않은가 보다.


“어때요?”

“어떠냐니, 가사도 이상하고 멜로디도 유치한데······. 그냥 장난한 거지?”

“장난 아닌데요.”


내가 진지하게 말하자 형은 눈을 끔뻑거렸다.


“진짜야?”

“뭐, 개꿀잼 몰카라고 생각해요?”

“개, 개꿀잼 몰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아, 이때는 이 말이 아직 유행하지 않을 때인가?


“어쨌든. 이렇게 하면 돼요.”

“진짜 이렇게 쓰라고? 가사는?”

“즐길 정도만 써요. 너무 진지하게 쓰지 말구요.”

“그래도 가사엔 메시지가 담겨야 하잖아.”


가사에 철학을 담는 형에겐 저런 가사는 용납되지 않겠지.


“형. 우린 고흐가 되진 맙시다. 다 죽어서 유명해지는 것도 좋지만, 일단 살아 있을 때 잘 살아야죠. 작품은 유명해진 다음에 만들어도 돼요. 일단 상품으로 유명해지자구요.”


내 말에 형은 잠시 바닥을 응시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번 해보자.”


형과 나는 손을 맞잡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T.I 음악과 구찌 메인 음악을 형에게 들으라고 말했다.


“일주일 뒤에 봐요. 그때까지 다 완성해야 해요, 알겠죠? 아, 그리고 저 마스터 키보드좀 빌려 갈게요.”


나는 구석에 세워진 61건반 피아노를 들고 말했다.


“그거 가져. 나는 한 대 더 있으니까.”


오호······.

이것도 곡 비로 퉁 쳐야겠다.


“고마워요, 형.”


형 옆에 붙어서 프로듀싱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았다.


* * *


집에 도착하니 저녁 8시였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이번엔 트랩 곡이 아닌 R&B곡.

형에게 빌려온 마스터키보드로 발라드스러운 피아노 선율을 먼저 작업했다.

그 아래 스네어(snare) 대신 스냅(Snap) 사운드를 얹었다.


꽤 서정적인 한국형 발라드 R&B 트랙이 완성됐다.


뭐, 이것도 뚝딱 만들었다.


이렇게 곡을 금방 만들 수 있게 된 이유는 백장호 때문이다.

적어도 하루에 한 곡씩 무조건 제출하라고 했으니까.

만일 써내지 못한다면 야구 배트로 엉덩이를 맞았다.

내가 맞았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내가 아닌 내 선배들이 맞았다.

물론 내 후배가 들어왔을 때, 나 역시 후배를 대신해 맞았다.


혹자가 본다면 그 회사를 뛰쳐나오지 않은 내가 미련하게 보일 테지.

멍청하고 아둔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공무원의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뉴스를 봤을 때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 뉴스를 보면서 ‘그만두면 되지 왜 자살까지 할까?’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 입장만으로 생각하니 당연히 의문이 생기는 거다.

누구나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법.

내 사정?


나는 계속 음악을 하고 싶었다.

소송을 한 이유는 음악을 포기해서였고.


세상엔 악인들보다 악인들에게 휘둘리는 범인(凡人)들이 더 많다.

그 비난의 화살을 범인이 아닌 악인들에게 돌려야 하지 않을까.


“됐어. 뭘 그렇게 깊이 생각해······.”


생각을 털어내려 고개를 마구 저었다.


완성한 R&B 트랙을 Wav파일로 추출한 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2시간 뒤, 나는 R&B 2곡과 트랩 3곡을 완성했다.


자, 협상을 위한 카드는 모두 완성됐다.


음원 파일들을 압축한 파일을 두 명에게 메일로 보내고 침대에 누웠다.


* * *


지이이잉-.


진동과 함께 울리는 벨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간신히 떴다.

주변은 아직 컴컴했다.


핸드폰을 집어 들자마자 벨소리가 꺼졌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같은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12통이나 와 있었다.


“뭐야······. 스토커야?”


지이이잉-.


전화가 다시 울렸다.


“여보세요······.”


잔뜩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류선율 씨죠?”


수화기 너머의 남자가 대뜸 내게 물었다.


“네, 맞는데요.”

“아, 자고 있었어요?”

“네.”

“죄송합니다. 제가 낮에 전화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요.”


목소리가 익숙했다.

혹시······.


“혹시 베일 씨세요?”

“아, 제 소개를 먼저 했었어야 했는데. 네 저 베일입니다.”


베일.

나는 트랩 곡 3곡을 내 핸드폰 번호와 함께 그의 메일로 보냈다.


2005년, 16살의 나이로 데뷔한 그는 2011년도에 동료 래퍼들과 함께 셋이서 레이블을 설립한다.

밀리어네어 레이블.

이 레이블은 앞으로 힙합계의 큰 획을 긋게 된다.

물론 지금은 신생 레이블에 불과하지만.

메일 주소는 밀리어네어 레이블의 사이트 하단에 나와 있었다.

매니저나 담당자 메일인 줄 알았는데, 베일 본인 메일이었나보다.


“선율 씨의 비트를 구매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역시.

스웩(Swag)이란 말을 유행시킨 래퍼답게 돈 얘기부터 꺼내는구나.


“돈은 괜찮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그럼요?”


그가 말했다.


“혹시 화니라는 래퍼 아세요?”

“화니? 화니······. 아! 작년에 믹스테잎 냈던 래퍼-.”

“맞아요.”

“근데 화니는 왜요?”

“곡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대신 이번에 나올 화니 앨범에 피처링을 해주세요.”


이게 내 협상 카드다.


“그건 해드릴 수 있죠.”

“거기에, 라이온J와 DY의 피처링도 원합니다.”


라이온J와 DY.

둘 다 한국 힙합 1세대 래퍼다.

한국 힙합의 물꼬를 튼 역사적인 인물.


“라이온J와 DY요?”

“제가 알기론 베일 씨하고 두 분은 가족과도 같은 사이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긴 한데, 제가 당사자가 아니라서 확답을 드리긴 어렵겠네요.”


당연히 그렇겠지.


여기서 ‘아, 그렇군요······.’하고 물러서면 협상 실패다.

아예 흥미를 더 끌어버리자.


“사실 그 3곡, 어제 급하게 쓴 곡입니다.”


이번에도 정적이 흘렀다.


“못 믿으시겠다면 직접 만나 뵙고 얘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흐음······.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뵙죠.”

“옙. 주소 보내드리겠습니다.”


나는 만날 곳의 주소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환희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안 자고 있죠?”

“응. 아직 작업실이야. 이제 집에 가려고.”

“형. 아직 가지 마세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여기로?”

“네. 베일이랑 같이 가니까 꼼짝 말고 있어야 돼요!”

“···베일이랑? 그게 무슨···”


백문이 불여일견.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르지.


전화를 끊고 패딩만 대충 걸쳐 입은 채로 집을 나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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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 헤일리 화이트 24.09.17 82 2 11쪽
22 22. 두 번째 작업 24.09.17 93 1 12쪽
21 21. 몸값이 올랐다. 그것도 5배나. 24.09.16 115 5 12쪽
20 20. 카밀라 그레이 24.09.15 130 6 13쪽
19 19. 돌아온 5,000달러 24.09.14 142 6 12쪽
18 18. 성공의 첫 단추 24.09.13 144 4 12쪽
17 17. 새로운 보석을 찾아서(2) 24.09.12 151 6 12쪽
16 16. 새로운 보석을 찾아서 24.09.12 168 5 12쪽
15 15. 루이스 해리슨(3) 24.09.11 177 6 12쪽
14 14. 루이스 해리슨(2) 24.09.11 189 7 12쪽
13 13. 루이스 해리슨 24.09.10 201 7 12쪽
12 12. LA 그리고 롱비치 24.09.09 215 8 12쪽
11 11. 미국으로 24.09.08 224 9 12쪽
10 10. 복수의 서막 24.09.07 234 8 13쪽
9 9. 우주소년(2) 24.09.06 224 8 11쪽
8 8. 우주소년 24.09.06 242 8 12쪽
7 7. 첫 작업(5) 24.09.05 247 10 12쪽
6 6. 첫 작업(4) 24.09.04 246 9 12쪽
5 5. 첫 작업(3) 24.09.04 265 9 12쪽
4 4. 첫 작업(2) 24.09.03 268 9 12쪽
» 3. 첫 작업 24.09.02 285 10 12쪽
2 2. 2013년 1월 1일 24.09.02 297 9 12쪽
1 1. 도둑맞은 인생 +1 24.09.02 313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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