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씹어먹는 작곡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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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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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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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두 번째 작업(2)

DUMMY

오늘 녹음한 카밀라의 목소리를 다듬었다.

살짝 낮아진 음은 올려주고 살짝 높아진 음은 낮춰줬다.

음정이 딱 맞지 않으면 노래를 못하는 것처럼 들리거든.

아무리 목소리가 성시경, 김동률이어도 음정이 맞지 않으면 코인 노래방에서 자주 들리는 잼민이 노랫소리처럼 들린다(잼민이들은 귀엽기라도 하지).


요새 사람들은 또 귀가 얼마나 좋은지, 일반인들도 음정이 나갔는지 어쨌는지를 다 안다.


더군다나 나는 한국에서 왔다.

한국인들이 마술 공연을 볼 때도 그냥 즐기지 않는다.

‘내가 트릭을 밝혀내리라.’ 같은 이상한 사명감을 가지고 마술을 ‘지켜본다’.


그런 한국인이 가수가 음정이 나가는 건 얼마나 잘 알겠는가?


그 때문에 나 역시 튠(음정)에 민감하다.

K-귀를 가지고 있으니까.

물론 작업할 때만 한정한다.


평소에는 뭐······.

나가든 말든.

어쨌든.


이런저런 생각을 떨쳐내고 다시 튠에 집중했다.

튠과 함께 박자도 다시 맞춰준다.

녹음된 VOX 파일을 잘라서 당기고, 잘라서 밀고.


후보정 작업은 뭐랄까······.

포토샵 같다고 해야 할까.

원래 뛰어난 외모를 가진 연예인도 후보정, 포토샵을 한다.

후보정을 마치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진다.


이미 좋은 녹음물에 후보정을 하면?

신이 내린 가창력으로 변하는 거지.


음원과 라이브가 전혀 딴판인 가수들은 엔지니어빨로 살아간다고 볼 수 있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어흐······.”


기지개를 켜고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12시였다.


“그래도 생각보단 빨리 끝났네.”


원 소스가 좋으니 후보정도 예정보다 빨리 끝났다.


나는 후보정을 마친 음원들을 카밀라의 메일로 보내고 뒤이어 문자를 보냈다.


[후보정 마쳤어. 메일 확인해 줘.]

[응! 들어볼게! 그런데 말이야······.]

[왜, 연습 안되는 부분이라도 있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너 정말 헤일리한테 관심 있어?]


참, 나.

아직도 그 얘기인가.


오해받긴 싫은데······.


[헤일리가 나한테 프로듀싱을 부탁······]


메시지를 적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괜히 이런 문자를 보내서 일이 이상하게 꼬이면 어쩌지?’


그럴 수도 있잖은가.

업무 외의 일을 한 헤일리가 잘릴 수도 있는 거고.

나는 메시지를 전부 지우고 새로 보냈다.


[그냥. 저번에 가사 도우미 해도 되냐고 물었었잖아. 프로듀싱 비용보다 많이 벌면 내가 하려고 했거든.]

[LOL. 뭐야. 그 말 진심이었어?]

[그래. 그 좋은 작업실을 보고 눈 돌아가지 않을 프로듀서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집안일을 할 테니 작업실만 공짜로 쓰게 해달라는 애들이 줄을 설걸?]

[아무리 그래도 가사 도우미 비용보다 프로듀싱 비용이 저렴하겠어? 어쨌든 알겠어. 보내준 음원 들어볼게. 잘 자!]

[그래. 듣고 너도 얼른 자. 내일 녹음하려면 컨디션이 좋아야 하니까.]

[예, 썰!]


어휴······.

사회생활 어렵다.

갇혀서 곡만 쓴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야.


* * *


그로부터 5일이 지났다.


5일.


단 5일 만에 모든 노래의 녹음을 마쳤다.


카밀라도 좀 놀란 눈치였다.


“더 녹음 안 해도 되겠어? 정말 이걸로 충분해, 썬?”


이미 충분하다.

아니, 이미 훌륭하다.


더 한다고 더 좋게 나올 거란 보장이 없고.

더군다나 나는 작업을 빨리 끝내야 한다.


그래도 이렇게 빨리 끝날 거라고 예상하진 못했는데.


“진짜 고생 많이 했어. 네가 노력해서 빨리 끝난 거야.”

“나야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서.”


카밀라가 턱을 들어 올리고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타이론이랑 같이 쭉 들어볼까?”


아직 믹싱은 시작도 안 했다.

후보정만 전부 마친 상태.


그래도 어떤 때는 이런 날 것의 맛이 듣기 좋을 때가 있다.

왜, 발매 음원보다 데모곡이 더 인기 많은 곡들이 있지 않은가.


타이론을 부르려 전화기를 꺼내려고 하는데, 카밀라가 막아 세웠다.


“기다려 봐. 타이론 불러달라고 부탁해 볼게.”


카밀라는 벽에 달린 빨간 버튼을 눌렀다.


곧 헤일리가 들어왔다.


“헤일리. 타이론 좀 데려와 줄래요?”

“네.”


곧 헤일리가 타이론과 함께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설마 내 랩 피처링이 필요한가?”


타이론이 별안간 프리스타일 랩을 시작했다.


“일을 더 벌리진 말자. 녹음 다 끝나서 들어보라고 불렀어.”

“오, 싯! 벌써 끝난 거야? 뎀, 썬! 뎀, 카밀라! 데엠!”


타이론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뭐 이리 빨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여기서 증명되네!”

“저기······.”


그때,


“저도 같이 들어봐도 될까요?”


헤일리가 물었다.


···내가 허락할 수 있는 일인가?

나는 카밀라의 눈치를 살폈다.


“정말? 그래 주면 너무 고맙죠! 괜찮지, 썬?”


나는 짐짓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헤일리도 이걸 들으며 많은 공부가 될 거다.

나 역시 다른 작곡가의 작업물을 어깨너머로 들으며 실력을 키웠었으니까.


“자, 이제 틀게.”


나는 스페이스 바를 눌렀다.


* * *


10곡의 러닝 타임은 42분.

3분짜리 곡도 있고, 5분짜리 곡도 있었다.

다만 그 모든 곡들이 유기적으로 이뤄져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가 되었다.


스페인의 정열, R&B의 섹시함, 일렉트로닉의 힘이 한데 어우러져 매끈한 홍옥처럼 느껴졌다.

빨갛고 매끈한, 아주 잘빠진 홍옥.


왜, 선악과도 사과라는 설이 있지 않은가.

그만큼 매혹적인 앨범이었다.


아······. 이거, 참.

자화자찬처럼 보이는 게 아닌가 싶네.


“뎀······. 나 지금 어디야? 여기 지금 이비자 아니야? 올라, 꼬모떼 야마스?”


천천히 눈을 뜬 타이론이 허공을 허우적대며 말했다.


옆에 앉아서 듣던 헤일리는 멍한 표정으로 살짝 입을 벌리고 있었다.


물론 제일 큰 리액션은,


“썬!”


나를 끌어안은 카밀라였지만.


“한 트랙 한 트랙씩 녹음할 땐 몰랐어. 이렇게 쭉 이어서 들으니까 이제 알겠어. 이 앨범은 곡으로 따로 듣는 게 아니라 앨범으로 들어야 하는 거구나!”


카밀라가 감격했다는 듯 입을 틀어막았다.


“잠깐 기다려 봐!”


별안간 카밀라가 작업실 밖을 뛰쳐나갔다.


“헤이, 썬. 솔직히 말해. 이제 더 없지?”

“무슨 뜻이야?”

“이것보다 좋은 앨범 만들 자신. 없지?”

“내가 고작 여기서 만족할 사람처럼 보여?”

“오, 싯! 싯! 그러니까 네 말은, 더 있다는 거야?”

“자신감도 있고, 곡도 있어. 창고가 터질 만큼.”


내 말을 들은 타이론이 허공에 대고 셰도우 복싱을 했다.


“후우, 후우······. 진정해, 나 자신.”


타이론이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얹고 호흡을 골랐다.


그 모습을 본 헤일리와 나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곧 작업실로 엘리자베스가 들어왔다.


“아, 계셨어요?”


엘리자베스를 데리러 간 거구나.

있는 줄 몰랐는데.


“계신 줄 알았으면 인사라도 갔을 텐데.”

“인사는 무슨. 서로 바쁜데.”


엘리자베스의 뒤로 깡마른 백인 남자가 들어왔다.


“저 분은 누구시죠?”

“90210 레코드 CEO인 존 존슨이에요.”


존 존슨이란 남자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CEO?

엘리자베스가 사장 아닌가?


“저는 사장님이 엘리자베스인줄 알고 있었는데.”

“아, 해외에서 살았으니 미국 기업 시스템을 모르겠군요. 미국은 오너와 전문 경영인이 달라요. 오너는 나, 레코드를 경영하는 CEO는 여기, 존 존슨.”


엘리자베스가 존 존슨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번에 계약할 때는 제가 출장 중이어서 만나 뵙질 못했네요. 존 존슨이에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존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맞잡았다.


“헤일리도 있었네?”

“제가 같이 듣자고 했어요.”


카밀라가 엘리자베스에게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인사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노래를 들어볼까요?”

“네.”


나는 컴퓨터 앞으로 갔다.


“아직 믹싱과 마스터링은 마치지 않은 음원이란 걸 감안해 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믹싱이니 뭐니 이런 거 잘 몰라요. 뇌가 아니라 귀가 판단할 뿐이죠.”


핑계 대지 말라 이거군.


“알겠습니다. 재생하겠습니다.”


나는 스페이스 바를 눌렀다.


다시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노래는 다시 들어도 좋다.


타이론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까닥거렸고(아무래도 CEO와 오너 앞이니 격렬한 춤은 좀 무리겠지) 카밀라는 옆에서 작게 자신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헤일리는 경직된 자세로 서서 음악을 경청했다.


존 존슨.

턱을 괴고 음악을 듣는 존 존슨은 마치 난공불락의 성 같아 보였다.


절대 고개를 까딱거리지 않을 것 같은 표정.


···흥.

좀만 기다려 봐.


『Ibiza』가 나올 때쯤이면 네 성은 모래성처럼 무너질걸?


내 예상대로 『Ibiza』가 흘러나오자 존 존슨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리듬을 탔다.


거 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마지막으로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입술을 삐쭉 내민 채로 고개를 까딱거리고 있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르겠는 표정.


···애매한데.


42분이 흐르고 노래가 모두 끝났다.


“아주 좋네요.”


존 존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양반 뭘 좀 아는 양반이네!”


타이론이 존 존슨에게 가 하이파이브를 요청했다.

존 존슨은 다만 안경을 고쳐 쓸 뿐이었다.


“하하하-. 예압!”


타이론은 멋쩍은 듯 박수를 쳤다.


“데뷔 앨범으로는 손색이 없습니다. 아직 후작업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라니.”


존 존슨이 엘리자베스에게 말했다.


“흐음······.”


엘리자베스는 여전히 아랫입술을 내민 채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래는 좋네요. 근데······.”


근데?


“좀 저급하지 않나?”


···읭?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특히 6번 트랙이랑 9번 트랙. 가사 내용이 성애가 짙지 않나요? 게다가 트랙 넘버 역시 69잖아요. 의도가 뻔한 거 같은데.”


아, 물론 의도했다.

이스터 에그처럼 말이다.


딱히 성적인 의미를 넣으려고 한 건 아니고, 바이럴을 위한 것이었다.


[카밀라 트랙 6번이랑 9번이 섹스에 관한 노래던데?]

[그래서 69인가?]


물론 이런 이유도 있고, R&B 자체가 성적인 음악이다.

외국 R&B 노래 유명한 거 아무거나 골라봐라.

10곡 중 8곡은 성에 관한 내용일걸?


“너무 가볍고 통속적이야.”


딸을 생각하는 마음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부모 마음 다 똑같으니까.


게다가 엘리자베스는 꽤 보수적인 타입.

인테리어만 봐도 느낌이 온다.


하지만, 지금은 보수적이면 아니지.


“그 말은 어머니의 입장입니까, 아니면 오너의 입장입니까?”

“뭐라고요?”


엘리자베스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존 존슨을 바라봤다.


“미스터 존 존슨.”

“예.”

“당신은 이 음반사의 CEO가 되기 전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전에는 캡히들 레코즈의 COO였습니다.”


캡히들 레코즈.

LA에 본사가 있는 유니버스 레코즈 산하 레이블이다.

꽤 큰 회사에서 일했었네.


“신인 가수가, 그것도 R&B 가수가 이런 성적인 트랙을 음반에 싣는 게 흔합니까, 아니면 드뭅니까?”

“장르의 특성상 성적인 부분이 들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카밀라의 앨범엔 단 두 곡을 제외하고는 성적인 음악이 전혀 없으니 저급하다고만은 볼 수 없죠.”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했을 때 이 앨범의 대중성과 상업성은 어떻습니까?”

“PB R&B 장르의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앨범이란 건 확실합니다. 확실히 상업적인 음반이기도 하고요.”


나는 고개를 돌려 엘리자베스를 쳐다봤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딸이 이런 음반을 낸다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너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 앨범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 앨범은 분명,”


그래, 분명.


“2013년 겨울의 눈을 뜨겁게 녹일 앨범이 될 거니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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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타이론의 협상 능력 NEW 2시간 전 40 2 13쪽
25 25. 두 번째 작업(3) NEW 22시간 전 96 6 12쪽
» 24. 두 번째 작업(2) 24.09.18 94 5 12쪽
23 23. 헤일리 화이트 24.09.17 117 4 11쪽
22 22. 두 번째 작업 24.09.17 123 3 12쪽
21 21. 몸값이 올랐다. 그것도 5배나. 24.09.16 143 6 12쪽
20 20. 카밀라 그레이 24.09.15 155 7 13쪽
19 19. 돌아온 5,000달러 24.09.14 163 7 12쪽
18 18. 성공의 첫 단추 24.09.13 167 5 12쪽
17 17. 새로운 보석을 찾아서(2) 24.09.12 168 7 12쪽
16 16. 새로운 보석을 찾아서 24.09.12 187 6 12쪽
15 15. 루이스 해리슨(3) 24.09.11 199 7 12쪽
14 14. 루이스 해리슨(2) 24.09.11 211 8 12쪽
13 13. 루이스 해리슨 24.09.10 224 7 12쪽
12 12. LA 그리고 롱비치 24.09.09 238 8 12쪽
11 11. 미국으로 24.09.08 248 9 12쪽
10 10. 복수의 서막 24.09.07 254 8 13쪽
9 9. 우주소년(2) 24.09.06 244 8 11쪽
8 8. 우주소년 24.09.06 260 8 12쪽
7 7. 첫 작업(5) 24.09.05 266 10 12쪽
6 6. 첫 작업(4) 24.09.04 268 9 12쪽
5 5. 첫 작업(3) 24.09.04 287 9 12쪽
4 4. 첫 작업(2) 24.09.03 291 9 12쪽
3 3. 첫 작업 24.09.02 311 10 12쪽
2 2. 2013년 1월 1일 24.09.02 326 9 12쪽
1 1. 도둑맞은 인생 +1 24.09.02 342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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