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씹어먹는 작곡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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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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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두 번째 작업(3)

DUMMY

나는 자신만만한 말투로 말했다.


“2013년 겨울의 눈을 뜨겁게 녹일 앨범이 될 거라······. 확신할 수 있습니까?”


엘리자베스가 물었다.


“같이 듣지 않으셨습니까? 곡만으로 봤을 때는 100프로 확신합니다.”

“만약, 성공하지 못한다면요?”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누가 성공을 장담하겠는가.


“그건 마케팅 팀의 탓 아닐까요?”

“···뭐라고요?”

“존 존슨이 말했듯이 PB R&B 장르의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앨범입니다. 상업성은 덤이고요. 전직 캡히들 레코즈 COO의 말이라면 꽤 신빙성 있는 발언 아닙니까?”


여기서 존 존슨의 말을 부정한다면?

자기가 앉힌 CEO가 사실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것과 같다.


“신빙성 있는 발언이죠.”


엘리자베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렇다면 음악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겁니다. 맞죠?”


엘리자베스는 이번에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거지 같은 티셔츠도 셀럽이 입으면 솔드아웃됩니다. 반면 좋은 품질의 티셔츠도 홍보가 안 되면 전혀 팔리지 않고요.”

“······.”

“앨범은 후작업 후 더 좋아질 겁니다. 장담합니다. 그 후 마케팅은 90210 레코드에게 맡기겠습니다. 오너와 CEO가 저에게 카밀라의 앨범 프로듀싱을 전적으로 맡겼듯이 말이죠.”


엘리자베스는 입술을 안으로 말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좋아요. 더 할 말 없네요. 마케팅은 사측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휴우······.

혹시 미운털 박히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다.

아니, 이미 박혔나?


여하튼 이번 논쟁으로 마케팅은 더욱 거세질 거다.

카밀라의 데뷔 앨범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지.


내 어깨에 있던 부담감은 이제 90210 레코드 쪽으로 넘어갔다.

한시름 놓았으니 앞으로 후작업에만 몰두하자.


마지막에 일을 그르치면 지금까지 해왔던 게 전부 무너질 테니까.


공든 탑을 무너트릴 순 없지.

2.25억 달러를 향해 가자!


* * *


엘리자베스는 존 존슨과 함께 작업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도착한 이곳은 엘리자베스의 개인 집무실.


“저 동양인 놈 어떤 거 같아?”


엘리자베스가 존 존슨에게 물었다.


“유능한 친구인 것 같습니다. 계약한 지 1주일도 안 돼서 앨범을 70프로나 마무리 지었습니다. 제가 캡히들 레코즈의 COO를 할 때도 저렇게 빨리 작업물을 내놓는 작곡가는 없었습니다.”

“그래?”


그녀도 알고 있었다.

8월까지 앨범을 완성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저 동양인 놈을 부려 먹으려면 일부러 데드라인을 가깝게 둬야겠어.’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실적을 내지 못하면 압박한다.

압박은 곧 가스라이팅이 되고, 가스라이팅이 지속되면 좋은 노예로 전락한다.


음악 노예.

그녀는 선율을 음악 노예로 쓸 예정이었다.

그래서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곡당 15,000달러라는 거금을 제안한 것이다.


‘그보다 더 큰 가치를 미스터 썬에게서 뽑아낼 거니까.’


허투루 한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6월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녹음이 끝나버렸다.


믹싱은 길게 잡아야 2주.

마스터링은 길게 잡아야 1주다.

이대로 흘러가면 7월에 앨범이 마무리될 것이다.


“그러면 계약금의 50프로를 꼼짝없이 줘야 하잖아.”


계획에 없던 지출.

엘리자베스는 꽤나 계산적인 인물이었다.

설령 그것이 딸의 작업을 위한 것이어도.


게다가 동양인이 감히 기어오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종적 계층.

부유한 백인 중 일부는 백인우월주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역시 그런 백인 중 하나였다.


“알겠어요. 나가 보세요.”


존 존슨을 내보낸 엘리자베스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녀는 방에 있는 빨간 호출 버튼을 눌렀다.


“헤일리 들어오라고 해.”


* * *


“요, 썬! 아까 그 아줌마 표정 봤어? 아주 똥 씹은 표정이던데?”


타이론이 운전을 하며 말했다.


“잘한 짓 같지 않아······.”


맞다.

잘한 짓이 아니다.


마케팅 팀의 탓이라고 말해버린 건 실언이다.

차라리 그냥 더 열심히 하겠다고 얘기할걸.

아니면 겸손하게 ‘모든 게 제 탓이겠지요.’라고 할걸.


클라이언트에게 밉보일 만한 짓을 하면 안 된다.

플라나리아보다도 못한 백장호가 항상 강조하던 말이다.


‘클라이언트가 내 원수여도, 일단 돈을 받은 순간 그는 내 의형제나 다름없어진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확실히 그 새끼는 미친 새끼가 맞다.


“왜 잘한 짓이 아니야! 할 말은 해야지, 안 그래?”

“할 때 안 할 때 가려서 해야지. 돈 줄 사람한테 반기를 드는 건 옳은 행동이 아냐.”


고개를 갸웃거리던 타이론은 곧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그래도 잘했어, 썬. 아, 참. 이제 녹음 끝났으니까 후작업 시작해야지. 언제부터 할 거야?”

“내일부터 바로 해야지.”


믹싱은 카밀라의 작업실에서 하기로 했다.

물론 엘리자베스의 허락도 떨어졌고.

그 좋은 장비들을 내버려 두고 어떻게 집에서 할 수 있겠는가.


마치 셰프가 5성급 호텔 주방을 내버려 두고 가스 끊긴 옥탑방에서 전자레인지로 스테이크를 굽는 것과 같다.


“앞으로 2주 동안 카밀라의 집에서 생활할 예정이야. 그동안 타이론 너는 루이스를 만나서 내가 보내주는 곡들을 들려줘. 랩 메이킹은 전적으로 루이스에게 맡긴다고도 말해주고.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네가 코칭 좀 해줘.”

“내가?”

“그래. 네 랩이 루이스보다는 나으니까.”


실력이 좋다고 인기를 얻는 건 아니다.

반대로 실력이 나쁘다고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실력과 인기는 정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루이스가 랩을 못 하는 건 아니지만, 타이론이 루이스보다는 랩을 잘한다.

그렇다면 랩 잘하는 타이론이 데뷔를 하면 되지 않냐고?


아니.


실력과 인기는 비례하지 않는다니까.


“그러니까, 랩 메이킹 프로듀싱을 나한테 맡긴다는 거지?”

“그래. 내가 바쁠 땐 네가 나서기도 해야지, 브라더.”


나는 힘겹게 ‘브라더’라는 단어를 끼워 넣었다.


“썬······.”

“감동하지 마!”


* * *


다음 날.

갈아입을 옷을 캐리어에 잔뜩 싣고 카밀라의 집 앞에 도착했다.


“2주 동안 대저택에서 부자행세 잘하라고!”


날 데려다 준 타이론이 차창 너머로 말했다.


“···나 가사 도우미야. 가사 도우미가 어떻게 부자 행세를 하냐.”


기생충에 나올 법한 스토리네.

아, 이때는 아직 기생충이 개봉하지 않았구나.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타이론이 운전석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간다!”

“그래. 내가 돌아가기 전까지 루이스랑 메이킹 잘 하고 있어!”

“걱정말라고, 브라더!”


타이론의 차가 멀어졌다.


캐리어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문 뒤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짠!”

“으헉!”


···진짜 놀랐다.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자세히 보니 카밀라였다.


“나 놀래키려고 거기 숨어있던 거야?”

“헤헷-.”


카밀라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네 방 안내해 줄게. 따라와.”


카밀라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니 침대와 책상, 그리고 화장실이 붙어 있었다.


되게 넓은 고시원처럼 보였다.


나는 짐을 풀자마자 작업실로 향했다.


“오자마자 작업부터 시작하는 거야?”

“그럼. 캘리포니아는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곳이잖아. 하루를 아끼는 게 돈을 아끼는 거야.”


카밀라는 딱히 동의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뭐, 어쨌든.


“나는 뭘 하면 돼?”

“아무것도. 심심하면 2집 앨범이나 구상하고 있어봐. 어떤 장르의 어떤 컨셉으로 하고 싶은지.”

“아직 데뷔도 안 했는데?”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는 법이니까. 미리 준비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나는 작업실 앞에 멈춰 섰다.


“자, 그럼. 이따 보자고.”

“응! 저녁 먹을 때 말해줄게!”


* * *


믹싱은 순조로웠다.

녹음만큼이나.


뭐랄까.


좋은 장비와 스피커로 믹싱하니까 왠지 더 잘되는 느낌?

무거운 플러그인을 여러 개 걸어도 컴퓨터가 버벅거리지 않는다.


그간 100만 원짜리 자전거를 타다가 갑자기 5,000만 원짜리 자전거를 타는 기분이다.


그게 어떤 느낌이냐고?


그냥, 뭐······.

기분 째지는 거지.


한 타임(3시간 30분)에 한 곡씩 마무리되었다.


“저녁 시간!”


카밀라가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벌써 두 곡 믹싱을 끝낸 상태였다.


와······. 이거 밤새 하면 일주일 만에 끝내겠는데?


“카밀라.”

“응!”

“여기 방음 잘 돼?”

“그럼. 저 방 방음 공사만 50,000불 들었어.”


홀리 몰리······.

전문 스튜디오에서도 5,000만 원짜리 방음 공사는 잘 안 하는데.

밤새 해도 되겠네.


“너네 집 진짜 부자구나?”

“내가 부자인가, 우리 엄마가 부자지.”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침울함이 느껴졌다.


그 침울함 때문에 더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없었다.


그렇게 묵묵히 복도를 나란히 걷다 보니 벌써 식당이었다.


···와우.

이게 다 뭐야······.


“특별히 한국 요리로 준비했어.”


김치찌개에 불고기, 각종 반찬들(스팸구이에 계란말이라니)까지.

게다가 흰 쌀밥.


“···내일도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거야?”

“물론. 네가 원한다면.”


메이드 복.

까짓거 입지 뭐.


걸신들린 사람처럼 밥을 먹고 있는데, 저 멀리서 헤일리가 접시를 들고 다가왔다.


어머, 이거 안동찜닭 아니야?

LA에서 맛보는 경상도 음식이라니.

···메이드 복은 여기서 제공해 주겠지?

내가 사야 하나?


“미스터 썬, 이거 떨어트렸어요.”


헤일리가 내게 수첩을 내밀었다.


“응? 나 수첩···”


순간, 헤일리가 자신의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뒤로 사라졌다.


···뭐지?


수첩 표지엔 조악한 한국어로 [이따 일거바]라고 적혀있었다.


* * *


이 수첩 때문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대충 밥을 먹고 방으로 들어가 수첩을 펼쳐보았다.


[썬. 이 집엔 모든 곳에 CCTV가 있어. 시큐리티들이 항시 대기 중이기도 하지. 그래서 너와 내가 대화를 나누면 시큐리티들이 볼 거야.]


CCTV?


나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훑어봤다.


저기, 저 천장 구석에 빨간 불빛이 깜빡거렸다.


‘살벌하네.’


[엘리자베스가 내게 명령을 내렸어. 네가 믹싱을 끝내는 대로 컴퓨터를 망가뜨리라고. 그래서 데이터를 전부 날려버리라고 말이야.]


···응?

도대체 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내게 그런 명령을 내렸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난 그 일을 해야 해. 안 그러면 잘릴 테니까. 여기만큼 돈을 많이 주는 데는 찾기 힘들거든. 그렇지만 나는 네 가수잖아(일단은)? 그래서 네게 미리 알려주는 거야.]


흠······.


왜 컴퓨터를 망가뜨리라고 했을까.


짐작 가는 건 두 가지.


첫 번째, 내가 너무 까불어서.

두 번째, 계약금의 50%를 얹어주기 싫어서.


근데 헤일리, 너무 걱정하지 마.

컴퓨터로 먹고사는 사람들의 첫 번째 덕목이 뭔지 알아?

바로 백업이야.


작업 마치는 대로 내 클라우드에 백업하고 있어.

물론 서버 비용이 들긴 하지만, 곡 다 날려 먹는 거보다 서버 비용 내는 게 더 싸게 먹혀.


어쨌든 알려줘서 고마워.

내가 팔로워 세 번째 자리까지는 올림 해줄게.


“소화도 다 됐으니까 이제 다시 작업하러 가볼까!”


나는 괜시리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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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두 번째 작업(3) NEW 22시간 전 96 6 12쪽
24 24. 두 번째 작업(2) 24.09.18 93 5 12쪽
23 23. 헤일리 화이트 24.09.17 117 4 11쪽
22 22. 두 번째 작업 24.09.17 122 3 12쪽
21 21. 몸값이 올랐다. 그것도 5배나. 24.09.16 142 6 12쪽
20 20. 카밀라 그레이 24.09.15 155 7 13쪽
19 19. 돌아온 5,000달러 24.09.14 163 7 12쪽
18 18. 성공의 첫 단추 24.09.13 166 5 12쪽
17 17. 새로운 보석을 찾아서(2) 24.09.12 168 7 12쪽
16 16. 새로운 보석을 찾아서 24.09.12 187 6 12쪽
15 15. 루이스 해리슨(3) 24.09.11 198 7 12쪽
14 14. 루이스 해리슨(2) 24.09.11 210 8 12쪽
13 13. 루이스 해리슨 24.09.10 224 7 12쪽
12 12. LA 그리고 롱비치 24.09.09 238 8 12쪽
11 11. 미국으로 24.09.08 248 9 12쪽
10 10. 복수의 서막 24.09.07 254 8 13쪽
9 9. 우주소년(2) 24.09.06 244 8 11쪽
8 8. 우주소년 24.09.06 260 8 12쪽
7 7. 첫 작업(5) 24.09.05 266 10 12쪽
6 6. 첫 작업(4) 24.09.04 268 9 12쪽
5 5. 첫 작업(3) 24.09.04 287 9 12쪽
4 4. 첫 작업(2) 24.09.03 291 9 12쪽
3 3. 첫 작업 24.09.02 311 10 12쪽
2 2. 2013년 1월 1일 24.09.02 326 9 12쪽
1 1. 도둑맞은 인생 +1 24.09.02 342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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