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뇽의 과거 1
처음 라피스가 토토에게 붙여준 붉은 전사들은 모두 열 명.
하나같이 최고의 능력과 자질을 자랑하는 전사들이었지만 오트룸의 위명 아래 결국 네 명이 목숨을 잃고 여섯 명만이 살아남았다.
이마저도 아이스가 남긴 서신의 도움이 없었다면 반 이상이 죽었을 것이다.
서신에 적힌 내용대로 마물에 대한 준비를 단단히 하고, 길을 찾아 움직였기에 여섯 명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가까스로 이그니스 기사단을 발견한 토토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먼저 그는 은밀히 상대의 전력부터 살폈다. 그러자 곧바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황자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더불어 황자의 보호자 역할을 하던 기사단장 안토니와 황자의 수호기사들까지 보이지 않았다.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울 거라 여기던 자들이 모두 없었던 것이다.
토토는 기뻐하기보다는 현 상황을 유추하기 위해 빠르게 주변을 탐색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하나.
크레이뇽의 무덤일 거라 짐작돼는 삼각모형의 이질적인 건축물 안으로 황자와 그 일행이 들어갔을 거라 결론지었다.
그렇다면 앞서간 아이스 또한 마찬가지일 터.
토토는 라피스의 또 다른 지시를 떠올렸다.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스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녀석이 맡은 임무를 성공리에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라피스가 아이스에게 내린 지시는 램프를 손에 넣는 즉시, 스크롤을 사용하고 곧바로 돌아올 것.
황자의 목적과 일맥상통하니 분명, 두 사람은 싫어도 한번은 트러블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때, 이그니스 기사단은 분명히 귀찮은 걸림돌이 될 것이다.
생각을 마친 토토는 즉시 여섯 명의 붉은 전사 중 네 명을 왔던 길로 되돌려 보냈다.
그리곤 그들에게 숨지 말고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가라 지시했다.
기사단의 이목을 끌 속셈이었다.
기사단이 붉은 전사들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남은 자신들은 은신술로 접근해 결정적인 순간, 기습공격으로 기사단의 전력을 반 이하로 떨어트릴 계획이었다.
그리고···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토토는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주요 세력이 떨어져 나갔다지만 그래도 상대는 황자를 수호하는 황실 기사단이다.
그들의 명성이 그냥 저절로 탄생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아이스의 서신에도 없던 두 명의 마법사가 기사 단원과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토토는 마법사들이 바닥에 그리고 있는 것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혹여, 자신의 짐작이 틀렸대도 상대편에 마법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무조건 원치 않은 일이었다.
토토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마법사를 향해 즉시, 쇠침을 날렸다.
그리고 두 명의 마법사 중 한 명을 죽인 지금, 토토의 눈동자는 남은 한 명의 마법사, 알프레드에게 향해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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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는 쇠침 공격이 줄어들기가 무섭게 서둘러 마법진을 완성 시키기 위해 떨리는 몸을 애써 추스르며 움직였다.
먼저 마법진 양 사이드에 최고의 마나 석이라 불리는 ‘셀리나’를 올려놓았다.
이제는 마법진 정중앙에 남은 셀리나를 올려놓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다.
이때, 자신을 향해 적의 수장으로 여겨지는 자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알프레드는 이를 악물고 서둘러 진의 중앙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 페드로! 진이 발동되지 않잖나! 지원군들을 대체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인가 페드로! ≫
“······!”
얄궂게도 페드로의 품을 벗어난 수정구슬 속에서 존바르담의 다그침이 크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 마이 갓!’
상대가 마탑의 주인인 존바르담이라 할지라도 이 순간 알프레드에겐 덧없는 웬수덩어리에 불과했다.
자연, 알프레드의 눈동자가 흘깃 토토를 향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쐐에엑―――
푸욱――
“크악!”
뭔가가 날아오는가 싶더니 정확히 셀리나를 쥔 팔에 박혀왔다.
툭!
알프레드는 순간 밀어닥치는 극심한 통증으로 들고 있던 셀리나를 떨어트리고야 말았다.
그때 제프리가 다가오려 했지만, 어느새 주위를 장악한 붉은 전사들로 인해 누구도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저벅저벅······.
‘흠칫!’
알프레드는 자신을 향해 똑바로 다가오는 토토의 모습에 절로 어깨를 떨었다.
“마법사님을 놓아주시오!”
기사 제프리가 용기를 내어 한마디 내뱉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알프레드의 코앞까지 다가온 토토는 수하를 시켜 그의 몸을 묶으라 지시했다.
잠시 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알프레드의 앞에 선 토토.
토토는 푹 눌러쓴 알프레드의 후드를 거칠게 뒤로 젖혔다.
그러자 두려움에 떠는 알프레드의 얼굴이 환하게 드러났다.
반면에 토토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아는 얼굴이었던 것이다.
“너는 스팸의 왼팔이라 불리는 알프레드가 아니냐?”
‘움찔!’
또다시 알프레드의 어깨가 움찔했다.
언제나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마탑 안에서 두문불출하며 마법 연구에만 몰두하던 자신을 한 번에 알아보는 자가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것도 이런 곳에서······.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수정구슬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도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군.”
토토의 표정 없는 얼굴에 처음으로 짙은 미소가 깔렸다.
“너, 너희들은 누구냐! 날, 어찌 아느냐!”
팔에 박힌 쇠침으로 인해 고통이 엄습해왔지만, 알프레드는 이를 악물고 일부러 더 악을 쓰고 외쳤다.
그러자 이쪽 상황을 눈치챘는지 간간이 수정구슬 속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더이상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알프레드는 조심스레 마법을 쓸 기회를 엿보았다.
하지만 온몸이 꽁꽁 묶여 여의치가 않았다.
그때, 토토가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마법진의 용도가 무엇이냐? 무엇을 위한 마법진이냐?”
토토는 이제 황자가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크레이뇽의 무덤만 봐도 황자가 어디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수정구슬 속에서 존바르담이 말했던 ‘지원군’이란 단어가 신경이 쓰였다.
토토는 알프레드가 입을 다문 채, 눈알만 굴리고 있자 싸늘한 표정으로 붉은 전사들에게 어떤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산개해 있던 붉은 전사들의 몸이 일제히 바닥을 박차며 허공으로 치솟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눈 깜짝할 새에 이그니스 기사단원들 앞에 나타났다.
“비, 비겁한!”
느닷없이 붉은 전사들이 쇄도해오자 기사들은 화들짝 놀라며 검을 휘둘렀다.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된 주변.
입술을 살짝 들썩이며 주문을 외우던 알프레드의 얼굴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때, 토토의 은밀한 목소리가 알프레드의 귀를 뚫고 들어왔다.
“이런 곳에서, 이런 마법진이라면 어느 정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겠지. ······공간이동 마법진이란 것을.”
“······!”
넌지시 떠본 말에 눈을 희번득 부릅뜨는 알프레드의 모습에 토토는 확신했다.
‘풋, 바보 같은 놈.’
토토는 기사단과 싸우고 있는 붉은 전사들을 흘깃 한번 쳐다본 뒤, 이윽고 등 뒤에서 날 끝이 기이하게 휜, 두 개의 기형 검을 빼 들었다.
스르릉――
“히익!”
빼어든 기형검을 자신의 코앞에 갖다 대자 알프레드는 기겁하며 검을 바라보았다.
그런 알프레드를 비웃듯 토토의 쌍검이 허공에서 크게 엑스자로 교차하며 선을 그렸다.
휙, 휙!
동시에 알프레드의 다리에서 피 분수가 뿜어졌다.
“크아아악!”
삽시간에 피범벅이 된 두 다리로 인해 바닥을 구르는 알프레드를 향해 토토가 빠르게 한마디 했다.
“죽이지는 않겠다. 허나, 어디로 도망가면 곤란하지.”
그 말을 끝으로 토토의 신형이 잽싸게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소란 속으로 뛰어들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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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그그긍―――――
“······!”
“이게 무슨 소리지?”
제법 긴 시간 동안 랜턴과 라이트 빛에 의지에 터널과 터널 속을 헤매던 황자와 카이일행.
그들은 갑자기 들려오는 굉음에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길 잠시 후, 유심히 귀를 기울이던 카쿤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런 젠장, 누가 건드려선 안 될 것을 건드린 모양이오.”
처음 입구 부근과 달리 갱도를 방불케 하는 지하는 기관이 모두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아무리 떨어져 있는 거리라 해도 같은 층에서 기관을 건드리면 그 벌칙(?)을 고스란히 함께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끝까지 도움이 안 되는 새끼들이로구먼!”
바우의 신경질적인 투덜거림이 누구를 향한 말인지 알 수 있던 일행은 모두 공감 어린 시선을 주고받았다.
“이제 어쩌죠?”
존의 팔에 바짝 매달린 루이스가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카쿤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껏 일행은 자이언트 울프 퀸 시저의 도움을 받아 카쿤의 인도하에 열심히 미로 같은 터널을 제법 잘 빠져나가고 있었다.
중간중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석문과 위험해 보이는 기둥, 그리고 의문을 불러오는 수많은 기관장치와 조우했지만, 카쿤의 활약으로 일행은 무사히 그것들을 지나쳐왔다.
촤촤촤촤촤―――
끼익, 끼익······.
촤르르 촤르르―――――
지금껏 단 한 번도 들려오지 않던 기괴한 소리들이었다.
그것들이 위에서, 그리고 사방에서 동시에 들려와 일행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고 있었다.
“저쪽으로 갑시다.”
카이가 가리킨 곳은 이미 수 분 전부터 희미하게 불빛이 존재하던 곳이다.
어차피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던 터라 카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두의 발걸음이 불빛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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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 파이어볼!”
콰쾅!
쿵――
“대체 저것들이 어디서 기어 나오는 거야?”
하멜의 기겁하는 소리에 괴물을 향해 비명을 지르며 마법을 난사하던 멜라니가 빽 소리를 질렀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아!”
조금 전 로빈과 그 일행은 본능에 의지해 조심스레 미로 같은 터널을 누비고 있었다.
그러다 제법 넓은 공간을 발견해 쉬려던 일행의 시야에 음습한 기운이 잔뜩 느껴지는 관과 흙으로 뒤덮인 무덤이 들어왔다.
한 개의 관과 다섯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 무덤.
그 옆엔 친절하게도 마법 등불이 기둥에 꽂힌 채, 찬란하게 빛을 밝히며 일행의 시야를 밝혀주고 있었다.
일행이 처음 가진 의문은 저 등불은 과연 누가 켰을까 하는 것이었다.
설마 이백여 년 동안 지금까지 이곳을 밝히고 있었던 것일까?
일행은 얼마 가지 않아 설마 하던 자신들의 생각이 들어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관과 무덤 주변에 수십 개의 마나 석이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백은 되어 보이는 무수한 마나석이 빼곡히 있었지만 대부분 그 고유의 빛을 잃고 퇴색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이제는 쓸모없어진 마나석이지만 그로 인해 등불은 이백 년이란 세월을 넘게 지금껏 주변을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서른두 개나 남아있는데?”
탐욕에 젖은 얼굴로 하멜이 마나 석으로 가까이 다가가 그중 한 개를 집어 든 것이 화근이었다.
로빈이 황급히 하멜을 말렸으나 이번에도 한발 늦은 뒤였다.
그그긍――
“이 바보 자식!”
갑자기 들려오는 굉음과 동료의 욕설에 당황한 하멜은 그만, 더 큰 실수를 저지르고야 마는데······.
들고 있던 마나석을 던지듯 내려놓다가 석판 위에 세워져 있던 다른 마나석들을 건드렸던 것이다.
우르르르······.
- 작가의말
남은 주말 잘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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