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Kfz 251/16
그렇게 관심병사 제프는 소련군 8명을 이끌고 벌벌 떨며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왜...왜 날 따라오는거지? 난 그냥 내리라고 했을 뿐인데?'
소련군들 또한 양손을 든 채로 식은 땀을 흘리며 제프를 따라갔다.
'저 새끼가 항복하라고 한걸 봐서 이미 파시스트 놈들은 곳곳에 대전차포와 저격총으로 매복해놨을 거다!!'
'최대한 자극하지 말고 따라간다!!!'
제프는 겁에 질려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우벤 전차장의 4호 전차를 찾았다.
'으아아...아아아..'
소련군들은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가는 제프를 보고 생각했다.
'겉모습은 어리버리해보이지만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최고 정예병임에 틀림 없다!!'
그 때, 오토의 티거는 대전차포 격파를 마치고는 이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오토는 관측창으로 소련 전차병들을 줄줄이 이끌고 오는 제프를 목격했다.
"저..저거 뭐냐!!"
조종수 마티아스가 외쳤다.
"제프 저 녀석!! 포로로 잡힌건가!!"
오토가 외쳤다.
"제..젠장!! 사격 준비!!"
그 때 무전수 요하네스가 외쳤다.
"잡힌게 아닙니다!! 제프가 소련 병사들을 포로로 잡은 것 같습니다!!"
"그게 말이 되냐!!!"
제프는 이제 살았다는 표정으로 티거를 향해 걸어왔고, 그렇게 제프는 T-34의 정예 전차장과 전차병들을 포로로 잡는 전공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두 대의 T-34 전차도 노획하게 되었다. 우벤 전차장이 제프에게 말했다.
"T-34랑 티거 배기음도 구분 못하냐!! 엔진 소리가 명백히 다르잖아!!"
제프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외쳤다.
"하...하지만 그 덕분에 T-34 두 대를 총도 안 쏴보고 노획하게 되었지 않습니까!"
이 어처구니 없는 사태를 알게 된 T-34 전차장 한 명은 포박당한 상태로 고함을 치며 난동을 부렸다.
"으아악!!! 으악!!"
그 전차장은 참고로 훈장까지 받은 에이스였다.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바닥에 머리를 내려찢기 시작했다.
퍽!! 퍼억!!
"못하게 막아!!!"
그 전차장은 결국 임시 포로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었다. 오토가 제프에게 말했다.
"자네의 용감한 행동으로 인해 조만간 2급 철십자 훈장이 수여될 것 이라고 중대장께서 말씀하셨네."
제프가 외쳤다.
"소대장님! 질문 있습니다!"
"뭔가?"
"훈장 말고 다른 포상은 없습니까?"
결국 제프는 소대에 배급된 슈납스 한 병과 고기 통조림, 건조 무화과, 돼지 기름, 담배 등을 잔뜩 받았다. 제프는 고기 통조림을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고 다른 전차병들은 이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제 잠깐 비가 내린 터라 도시 곳곳에 흙탕물이 고여 있었다.
알프레트는 임시 포로수용소르 끌려가는 소련군 T-34 전차병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 녀석들은 이제 안 싸워도 되겠군.."
"부럽다.."
이 때, 소련군 진영에 정치장교 블라슈크는 독일군 항공기가 뿌린 삐라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었다. 이 삐라에는 소련군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말과 함께, 독일군 진영으로 넘어갈 수 있는 통행증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삐라는 손만 대도 즉결 처형이다!! 모두 수거하라!! 모두 수거해!!"
블라슈크는 일선에 병사들이 정치장교를 싫어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고참 병사들은 블라슈크가 지나갈 때마다 모두 굳게 입을 다물었다. 블라큐스는 이 새끼들이 자신의 뒤통수에 총알을 날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조국을 위한 충성심도 없는 벌레같은 자식들...'
블라슈크는 수거된 삐라들을 모두 불태우는 것을 확인하고는 발을 돌렸다. 그 때, 저격수 류드밀라가 하수구를 통해 나오는 것이 블라슈크 눈에 띄었다.
"류드밀라 동지!!"
블라슈크는 성큼성큼 류드밀라에게 걸어갔다.
"이 구역 밖으로 이탈하지 말라고 했을텐데 왜 듣지 않았지?"
류드밀라가 굳은 표정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블라슈크는 자신이 흠모하는 류드밀라가 독일군에게 잡혀 험한 꼴을 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따라오게."
여태까지 포격에도 무너지지 않은 2층짜리 석조 건물로 블라슈크는 류드밀라와 들어왔다. 블라슈크는 류드밀라에게 마호르카 담배를 권유했다.
"피울텐가?"
류드밀라가 고개를 저었다.
"담배 냄새가 나면 저격 임무에 방해가 됩니다."
"자네를 위해 공장 일자리를 알아봐주겠네."
"어..어째서 입니까? 저는 다른 동지들보다 월등한 전공을 세우고 있습니다."
"자네가 여태까지 많은 공을 세운 것은 맞네. 하지만 자네가 포로로 잡히게 된다면 군의 사기가 떨어질걸세. 스탈린 동지도 이념을 위해 자네 같은 어린 여성까지 희생하는 것은 원치 않을 걸세."
류드밀라가 필사적으로 말했다.
"그..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고르도, 안드레이도, 그 누구도 저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저만 돌아가야합니까?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블라슈크는 아직 소녀 티를 벗지 못한 류드밀라를 보며 생각했다.
'어리석군...'
"이봐 류드밀라. 우리가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가면 말일세. 여태까지 자네가 세운 전공의 십분의 1도 못세운 녀석들도 마을에서 영웅 대접을 받을걸세. 하지만 자네가 마을로 돌아가면 그런 환대를 받을 것 같나?"
사이즈도 안 맞는 헐거운 군복에 남성용 속옷을 입고 똥 닦을 휴지도 배급 못 받아서 고생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 류드밀라에게 블라슈크가 말을 이었다.
"마을로 돌아가면 모두들 자네를 남자가 좋아서 군에 입대한 창녀라고 말할걸세. 자네와 가장 친한 친구들조차 등을 돌릴걸세. 심지어 가족에게조차 외면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아나? 부모님들조차 자네를 부끄럽게 여길걸세."
"저는...가족이 없습니다."
류드밀라의 눈빛에는 그 어떤 두려움도 없었다.
"짐승도 가족을 잃고 영토를 빼앗기면 싸우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독일군 전차장들은 저격수를 큰 위협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시가지에서 해치 위로 머리를 내밀지 못하고 마네킹을 이용해서 저격수의 위치를 파악하는 수법을 쓰고 있습니다. 저 같은 저격수가 있어야 독일군 전차장들이 해치 위로 머리를 내밀지 못하기 때문에 놈들의 전차를 한 대라도 더 격파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류드밀라는 공장으로 가라는 권유를 거절하고는 다시 독일군의 전차를 격파시키기 위하여 동료 로가체브와 함께 하수구로 들어갔다. 로가체브는 화염병을 만들기 위한 유리병과 대전차용 수류탄을 들고 있었다. 류드밀라가 말했다.
"고립되어 있는 독일군 전차나 차량이 있으면 내가 기동륜을 저격할거야. 그렇게 전차가 기동중지되면 내가 엄호해줄테니까 화염병을 던지고 도망가. 알았지?"
로가체브는 공포와 기대감이 반반 섞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 때 하수구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첨벙 첨벙
'쉬잇!'
류드밀라는 재빨리 손전등을 끄고는 숨을 죽였다. 그 때 러시아어가 들렸다.
"이 쪽 맞지?"
류드밀라는 안심하고는 손전등을 키고 로가체브와 앞으로 나아갔다.
"동지, 이 쪽에 아군이다! 쏘지 마."
걸어오던 소련 병사들은 류드밀라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그 백발백중 류드밀라?"
"오오~~"
류드밀라는 이런 관심이 달갑지 않았다.
"가자, 로가체브."
한 소련 병사가 외쳤다.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아는거지? 그 쪽은 파시스트 전차가 우굴거리는 쪽일세!"
"저격수가 산채로 잡히느니 차라리 죽는게 나을거야!"
류드밀라는 그 말을 무시하고는 로가체브와 함께 조심스럽게 하수구를 걸어갔다.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손전등으로 반드시 바닥쪽을 살펴보며 걸어야했다. 류드밀라와 로가체브는 귀를 쫑긋 세우고는 혹시 독일군이 걸어오지 않는지 귀를 기울였다. 좌측, 우측으로 꺾을 때마다 뭐가 나올지 몰랐기에 주의해야 했다. 로가체브의 군화에 징 소리가 하수구에 작게 울렸다.
첨벙 첨벙
5분 뒤, 류드밀라와 로가체브는 주위를 둘러보며 하수구 밖으로 나왔다. 딱총 쏘는 것 같은 총알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쉬잇! 쉿!
드륵 드르륵
히틀러의 전기톱이라 불리는 독일군의 기관총 소리는 상당히 멀리서 들렸다. 류드밀라는 로가체브와 함께 잽싸게 한 건물로 들어간 다음 지붕으로 올라갔다.
'괜찮은 자린데?'
건물 지붕에는 포탄을 맞아서 U자 모양으로 패인 곳이 있었다. 류드밀라는 저격 소총을 이 쪽에 거치시키고는, 스코프를 30분 동안 바라보다가 로가체브에게 말했다.
"저기 외벽 으스러진 2층짜리 건물 보이지?"
"확인"
"저기서 대기해."
로가체브는 그 2층짜리 건물로 달려갔고, 류드밀라는 저격총으로 로가체브를 엄호해주었다. 로가체브는 잽싸게 그 건물 1층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류드밀라는 안심하고는 다시 저격 소총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격 임무는 아주 지루한 임무였다. 류드밀라는 오줌이 마려웠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 결국 최근에 배급받은 남성용 팬티에 그대로 오줌을 지려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드밀라는 스코프에서 눈을 때지 않았다. 어디서 소총 소리가 들리고 기관총 소리가 들리는지 온 신경을 집중했다.
드득 드드득
쉬잇!
탕! 타앙!!
쿠구궁! 쿠궁!!
그리고 류드밀라는 1시 방향에서 독일군의 반궤도 장갑차량 Sd.Kfz 251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트드등 트등 트드등
소리로 추정하건데 1대가 홀로 기동하는 것 같았다.
트으응 트드등
그 독일군 반궤도 장갑차량은 점점 류드밀라가 겨누고 있는 광장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류드밀라는 독일군의 Sd.Kfz 251를 확인할 수 있었다. 놈들은 저격수가 무서웠는지 장갑을 추가로 덧대어 저격수로부터 승무원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조금만...조금만 더...'
류드밀라는 전차가 앞으로 더 전진하기를 기다렸다. 로가체브는 지금쯤 건물 안에서 화염병을 준비해두고 있을 것 이다.
'하나...둘...셋...'
류드밀라는 Sd.Kfz 251의 바퀴를 조준해서 소총을 발사했다.
타앙!!
끼익!!
그 때 건물에서 로가체브가 화염병을 들고 뛰쳐나왔고, 독일군의 Sd.Kfz 251는 2초간 엄청난 화염을 뿜어냈다.
화르륵
'안돼!!'
로가체브는 화염병을 던지지도 못하고 불길에 휩쌓인 채로 미친듯이 땅바닥에 구르며 고함을 질렀다.
"으아악!! 으아아악!!!!"
Sd.Kfz 251은 화염 방사 기능이 있는 Sd.Kfz 251/16이었던 것 이다.
"로가체브!!!"
류드밀라는 온몸에 불이 붙은채로 뒹굴고 있는 로가체브의 머리를 향해 저격총을 발사했다.
타앙!!
로가체브는 저격총을 맞고는 다행히 더는 꿈틀대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독일군은 류드밀라의 위치를 알아챈 것 같았다. Sd.Kfz 251/16의 기관총은 류드밀라가 엄폐하고 있는 지붕 쪽으로 총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드륵 드르륵
탕! 타앙! 탕!!
잠시 뒤, 뒤늦게 달려온 독일군 기갑척탄병들이 류드밀라가 있던 건물 지붕까지 점거했다. 보병 분대장이 지붕에서 탄피를 발견했다.
'여기 저격수가 숨어있었군...'
한편 류드밀라는 총만 챙기고는 미친듯이 하수구 속을 달리고 있었다.
'으...으아아...'
첨벙!!
"꺄악!!"
류드밀라는 실수로 발을 잘못 디뎠고, 30센치 정도 물이 차 있는 곳에 빠지고 말았다. 류드밀라의 군화와 군복은 무릎 아래까지 완전히 젖어버렸다. 류드밀라는 소총이 물에 젖지 않게 위로 올리고는 재빨리 그 곳을 빠져나왔다.
"아...으아아..."
군화와 군복은 물을 흡수해서 잔뜩 무거워진 상태였다. 그리고 마침내 류드밀라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하수구에서 탈출했다.
"허...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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