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류드밀라가 마리나에게 물었다.
"사격 점수는 어땠어?"
17살의 소녀 마리나가 대답했다.
"잘...못했어...하지만 나도 힘낼거야!"
류드밀라는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마리나를 류드밀라의 파트너로 붙여준 것은, 독일군 베테랑 저격수가 마리나를 저격할 동안에 류드밀라가 그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그 누구도 마리나가 독일군 저격수를 저격하는데 성공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 이다.
"마리나, 내 말 잘 들어. 넌 총 쏠 생각하지 말고 철모를 실에 묶어두고 조심스럽게 위로 올리는거야. 천천히 들여올려야 해. 살짝 움직이는 것도 잊지 말고."
마리나가 주변에 듣는 사람이 없는지 눈치를 보고는 속삭였다.
"하..하지만 나도 머리 내밀고 쏴야 한다고 들었어!"
류드밀라가 말했다.
"내 말 들어! 안 그러면 넌 죽는단 말야!"
그렇게 류드밀라는 자리를 잡고 엄폐했다. 무전기에서 마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철모 실에 묶어뒀어!"
"내가 신호하면 실을 조심스럽게 당겨! 알았지? 넌 쏠 생각 하지마!"
그렇게 지루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류드밀라는 스코프 속에서 눈을 굴리며 독일군 저격수가 엄폐할만한 곳을 살펴보았다.
'2시 방향 집 지붕...1시 방향 잔해 속...0시 방향 창문...'
밖에서는 포격 소리와 소총 소리, 기관총 소리, 수류탄 소리가 뒤섞여서 들리고 있었다. 이런 소음 속에서 뭔가 단서가 될만한 소리를 찾아야했다. 굳이 머리를 쓰지 않아도 류드밀라의 본능은 이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소리들을 통해서 하나씩 단서를 추적하고 있었다. 독일군 저격수는 아직 발톱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참 집중하고 있는데, 무전기에서 마리나가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 오줌 마려.."
"그냥 바지에 싸."
"싫어! 속옷 새로 보급 못 받는단 말야!"
류드밀라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또 다시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오늘은 안 온 건가?'
어쩌면 그 독일군 저격수는 수류탄이나 포탄 파편 맞고 죽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지금 유행하는 이질에 걸려서 안 나왔을 수도 있었다.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까부터 이 쪽으로는 독일군의 전차가 오지 않았다.
하지만 류드밀라는 사냥꾼으로서의 직감을 느꼈다. 류드밀라는 스코프에서 눈을 때지 않은 상태로 마리나에게 무전을 쳤다.
"마리나? 상황 어때?"
"졸린거 빼고 문제 없어!"
"마리나! 끈 당겨봐."
마리나는 조심스럽게 끈을 당기고 살짝 움직여 보았다. 4층짜리 건물의 한 창문에 작은 철모가 위로 올라갔다. 만약 저격수가 있다면 분명히 이 광경을 보았으리라. 류드밀라는 온 신경을 집중하고 조만간 날아올 총알에 집중했다.
'...'
하지만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았다. 마리나는 한숨을 쉬며 손을 끈에서 놓고 무전으로 말했다.
"저격수란거 지루하구나."
"28구역으로 자리 옮길까?"
"그러자."
"창문으론 총알 날아올 수 있으니까 기어가."
마리나는 무전기를 챙기고는 기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바닥에 유리파편이 너무 많아서 포복으로 가기에는 위험해보였다.
'아까 철모 올렸을때도 아무 일 없었으니까...'
그렇게 마리나는 무전기와 소총을 챙긴 다음 일어섰다. 그 순간
쉬이잇! 타앙!!!
엎드려있는 류드밀라의 눈이 커졌다. 이 총알은 마리나가 있는 건물을 향해서 날아갔다.
'4시 방향 300m!!'
류드밀라는 재빨리 4시 방향 벽에 망치로 구멍을 뚫어 자리를 잡고 무전으로 외쳤다.
"마리나!! 괜찮아??"
"마리나!!"
"아..아아...."
마리나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도...도와줘..."
"계속 엎드려 있어!! 27구역 5층 건물에 적 저격수!! 지원 바란다!"
대충 저 건물에 독일군 저격수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위치는 류드밀라로서도 알 수 없었다.
'아마 지붕이나 4층, 5층일거다..'
그 때 마리나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들렸다.
"류드밀라..."
지금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 마리나의 목소리는 성가시게 느껴졌다.
"류드밀라...밑에서 발소리가 들려..."
'!!!!'
"빠..빨리 숨어 있어!!"
'아군일 수도 있어!! 제발!!'
"너..너무 아파!!"
"빨리 숨어!!"
저격수가 적군한테 발견되면 어떤 꼴이 되는지 류드밀라는 잘 알고 있었다.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이 내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류드밀라는 어떻게던 독일군 저격수를 찾아내야 했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팬티에는 오줌을 지렸다. 하지만 류드밀라는 짐승같은 본능으로 자신의 사냥감을 찾았다.
잠시 뒤, 무전으로 마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싫어!! 꺄아아악!!!!"
류드밀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이 상황에서도 스코프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뒤, 오스카 바르크만의 목소리가 무전으로 들렸다.
"이봐! 거기 들리나?"
마리나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꺄아악!! 엄마!!! 살려줘!!! 아아악!! 으아아악!!!"
점차 비명 소리는 인간의 소리가 아니라 도축 당하기 직전 짐승의 울부짖음으로 변해갔다. 바르크만이 무전으로 류드밀라에게 말했다.
"다음엔 네 차례야. 로스케."
마리나의 비명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류드밀라는 맞은 편에 보이는 건물 유리창으로 얼핏 무엇이 지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마침 야포 소리가 들렸다.
쿠구궁!
류드밀라는 반사적으로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저격총이 발사되는 소리는 야포 포격 소리에 묻혔지만 근처에 있는 적 보병한테는 발각될 가능성이 높았다.
류드밀라는 소총과 무전기를 챙긴 다음 건물 밖으로 뛰쳐나와 미친듯이 하수구를 향해 달음박질쳤다.
'헉...허어억...'
하수구 저편에서 철퍽거리며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났다. 류드밀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듯이 소련군의 진영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류드밀라는 이 일을 보고하고 소련군 대피소에서 증오심에 눈물을 흘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 놈은 꼭 죽이겠어!!!'
한편 맥스는 엎드린 상태로 줄을 당겨서 마네킹을 일으켰다가, 류드밀라가 발사한 저격총 총알에 창문이 박살난 상태였다. 맥스는 유리 파편 밑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얼굴에 유리 파편으로 긴 상처가 나 있었다.
'지금쯤 이동했겠군...'
맥스 또한 무전기와 저격총을 챙긴 다음 빠른 속도로 독일군 대피소로 복귀했다. 한편, 오토와 전차병들은 전투를 거친 이후에 대피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게오르크가 지도를 펼치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도시를 우리가 먹으면 이 쪽부터는 개활지야! 개활지에서 전투는 티거와 판터에 엄청나게 유리하지!"
오토는 중위로 진급한 상태였고, 게오르크는 오토에게 경쟁심을 느끼고 있었다.
'나도 기사 철십자 훈장을 받고 말거다! 지금은 오토 네 녀석이 앞섰지만 말이다!'
그 때 누군가 경악했다.
"저...미친 놈들!!"
오스카 바르크만이 마리나의 참수된 목을 들고 대피소로 들어와서 형벌 부대 소대장에게 내밀었다. 한 독일 병사는 먹은 것을 모조리 토해냈다.
"우웩!!"
"니 슈탈헬름에 토해!!"
바르크만이 외쳤다.
"소련군 저격수를 해치웠습니다!"
형벌 부대 소대장이 말했다.
"보고에 올릴걸세."
바르크만이 성큼성큼 목을 들고 걸어나갔다. 군화에 박힌 징이 나무로 된 마루바닥을 울렸다.
쿵 쿵 쿵
형벌 부대 소대장이 생각했다.
'저...저 새끼는 어떻게던 전출시켜야 한다!! 아니 빨리 죽이는게 낫겠군!!!'
형벌 부대 소대장은 중대에서 내려온 명령서를 보며 작전을 짰다.
'그래...티거 전차 부대 엄호를 저 녀석들한테 맡기는게 좋겠다!! 그럼 빨리 뒤지겠지!!'
저격수 맥스는 얼굴에 상처가 난 채로 대피소에서 슈납스를 마시고 있었다. 한 장교가 맥스에게 담배를 권했으나 맥스는 거절했다. 그 장교가 말했다.
"아! 하긴 저격수는 담배를 피우면 냄새가 나니 담배도 피우면 안되겠군! 오늘은 몇이나 사냥했나?"
"잔챙이 밖에 못 잡았네."
한 시간 뒤, 오토는 형벌 부대의 호위를 받으며 전차를 기동시켰다. 여기저기 잔해더미와 무너진 콘크리트가 하도 많았기 때문에 전차 기동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형벌 부대원들은 저격을 받지 않았지만 저격수가 없을 것 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저격수들은 한 번 저격할 때마다 위치가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굳이 보병을 사살할 필요는 없을 것 이었다.
전투를 하다보면 귀를 통해 얻는 정보를 통해 적의 위치를 짐작해야하는데 시가전에서는 소리가 건물에 반사되며 울리기 때문에 방향을 알아내기가 힘들다. 뿐만 아니라 전차 내부에서는 엔진 소리와 궤도 소리가 뒤섞인다. 소련군은 이미 모든 표지판을 제거했거나 방향을 바꿔놓았기 때문에 표지판으로 위치를 가늠하기도 힘들었다.
오토는 레버를 세게 돌려서 해치를 오픈했다.
끼이익
머리를 해치 위로 내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토는 헤드셋을 귀에서 뺐다. 엔진 소리와 궤도 소리 속에 섞여 있는 적군 야포 소리와 기관총 소리, 소총 소리가 들렸다.
쉬잇! 쉿! 드르륵 드륵
오토가 다시 해치를 닫고는 헤드셋을 쓰고 외쳤다.
"좌측으로 선회해서 12구역으로 전진한다!!"
트으응 트드드등 트드등
그 때 오스카 바르크만이 전차 측면을 두드렸고 오토에게 보고했다.
"2시 방향에서 궤도 소리가 들립니다!"
오토가 외쳤다.
"선회하지 말고 그대로 전진! 주포 3시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철갑탄 장전!"
드으윽 드으윽
포탑이 돌아갔고 오토가 포수 에밀에게 외쳤다.
"적 전차 보이면 바로 자유 사격!!"
트으응 트드등 트드등
"저 사거리에서 잠시 멈춘다!!"
티거는 천천히 사거리로 나아갔다. 그리고 포수 에밀은 T-34를 발견하고는 즉시 포를 발사했다.
"발사!!!"
펑!! 쉬이잇 쿠과광!! 콰광!!!
그렇게 오토의 전차 소대는 소련군의 T-34와 야포를 격파하고 더 많은 구역을 점령할 수 있었다. 오토와 소대원들은 한 건물 안으로 형벌 부대원들과 우르르 들어갔다. 오토가 바르크만에게 말했다.
"자네의 정찰 덕분에 소련군의 T-34를 격파할 수 있었네!"
바르크만이 씨익 웃었다.
"보고서에 잘 좀 올려주십시오!"
"알았네."
오토로서는 영 마땅치 않은 놈이었지만 분명히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느 새 날이 어두워졌고 전차들은 잘 엄폐해둔 상태로 오토는 건물 커튼을 모조리 쳐 둔 방에서 전등을 켜두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오토는 보고서를 제출하기 위해서 건물 밖으로 나섰다. 그런데 옆에 있던 한 2층짜리 작은 건물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뭐지?'
오토는 권총을 들고는 조심스럽게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로스케인가?'
오랜 기간 씻지도 못한 병사들은 근처에 있을때 특유의 고약한 악취가 나게 된다. 그렇기에 오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서 청각은 물론이고 후각에도 집중했다.
'킁킁킁'
러시아 어로 말하는 울음 소리가 들렸다.
"사..살려주세요...으흑..."
'뭐지?'
오토는 권총을 겨눈 상태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오스카 바르크만이 씨익 웃으며 한 여자와 어린 아이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 어린 아이는 눈을 크게 뜬 상태로 바지에 똥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오토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물었다.
"무..무슨 일인가?"
바르크만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 작자들이 아군의 정보를 빼돌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오토는 이마에서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현재 오토는 권총을 들고 있었지만 오스카 바르크만은 MP40을 들고 있었다.
"만약 혐의가 있다면 이는 이후에 심문을 통해서 밝혀낼 수 있네. 일단 나가보게."
바르크만이 오토를 보며 말했다.
"지난 번처럼 재미라도 보고 싶소?"
오토는 권총을 들고 있는 손에서 식은 땀이 줄줄 나기 시작했다.
'저..저 자식이 그 일을 알 리가 없다!! 형벌 부대는 최근에 왔다!!'
바르크만이 여자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는 오토를 향해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난 신사라서 강간은 하지 않습니다!"
오토가 말했다.
"자네의 이런 행위는 명령 불복종으로 군사 재판에 회부될걸세!"
"그렇다면 중위님께서 하신 행동 또한 군사 재판에 동시에 회부될겁니다!"
'!!!'
그리고 바르크만은 여자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꼬맹이는 완전히 겁에 질려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상태로 이 광경을 보았다. 바르크만은 오토를 한 번 쳐다본 다음에 MP40을 이용해서 여자의 대가리를 으깼다.
퍽! 퍼억!! 퍽!! 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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