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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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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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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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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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사장님이자 감독님이야.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충무로 극동빌딩 뒤편 건물 지하에 위치한 20평 규모의 시사실.

3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마련된 길 시사실은 지방 배급업자들을 위해 외화를 틀어주고 있었는데, 영화가 많을 때는 한 해 100편이 상영되기도 한다.

그런 ‘길‘ 시사실에 류지호의 부모님과 사인방 친구들이 찾아왔다.

류지호가 찍은 단평영화 <영정사진>의 기술 기사를 보기 위해서다.


“무슨 단편영화에 기술시사를 다 해?”

“감독이 사업을 해서 돈이 많대.”

“재벌집 자식이야?”

“개인 사업을 한다나 뭐라나....”

“길 시사실이 일반 극장보다 대관료가 싸다고 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을 텐데?”

“한 번 사용하는데 15만원이라나 봐.”

“단편인데 안 깎아 줘?”

“나야 모르지. 어떻게 쇼부 쳤는지.....”


잠깐 <영정사진>을 지원하러 왔던 조명부가 쑥덕거릴 때 오동성이 스크린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10분 후에 영화 틀겠습니다. 모두 착석해 주세요!”


길 시사실을 섭외 한 것은 바로 오동석이다.

유림영화사 시절부터 뻔질나게 드나들던 곳이라 영사기사 담뱃값 챙겨주는 수준의 금액으로 빌렸다.

<영정사진>에 참여한 배우와 스태프들 그리고 류지호의 지인들이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리가 모자라 고우찬과 김재욱, 연출부 등은 통로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팟.


실내등이 꺼졌다.


촤라라라~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WaW의 영화사 로고가 스크린에 떠올랐다.

W. a. W 영어 세글자로 된 심플한 디자인이다.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소리와 함께 영화 속 가족의 사진이 타이틀백으로 흐르고, 메인 스태프와 배우의 이름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박히는 감독의 이름.

류지호.

그 이름을 본 가족들의 감정은 각별했다.


“엄마, 큰오빠 이름 저기 있어!”

“쉿!”


재빨리 심영숙이 류아라의 입을 막았다.


콜록콜록.

흠.


여기저기서 기침소리와 헛기침 소리가 들리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음악소리가 서서히 잣아 들었다.

스크린에 근조(謹弔) 글자가 박혀있는 노란색 조등이 큼지막하게 보인다.


훌쩍.


스크린 왼쪽 스피커에서 소년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원근감이 느껴지게 담장 너머에서 곡소리와 웅성이는 소리가 섞여 들린다.


덜컹.


대문이 열리고 소년의 할아버지가 나온다.

열린 대문 너머에서 문상객들의 떠들썩한 소리들이 잠시 흘러나온다.


[우리 똥강아지 왜 울어?]


소년은 대답 없이 훌쩍이며 할아버지에게 안긴다.

그러다 끝내 엉엉 운다.

소년의 울음소리와 상갓집 안에서 새어나오는 웃음소리가 뒤섞인다.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거 들리지?]


끄덕끄덕.


[우리 똥강아지는 사람들이 왜 저리 웃고 떠드는 줄 알아?]


도리도리.


[사람들은 딸기코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간 걸 축하해주는 거야. 슬픈 일도 아니고 무서운 일도 아닌 거야.]

[딸기코 할아버지가 사는 집은 여긴데?]

[여기는 잠깐 머물다 가는 곳이야. 진짜 집은 따로 있어.]

[거기가 어딘데?]


할아버지가 하늘을 가리킨다.


으아앙.


소년은 다시 한 번 울음을 터트린다.


[할아버지 집은 우리 집이야. 하늘나라 아니야!]


소년은 울면서 달려간다.


어허허헐.


할아버지가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리며 소년이 달려간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할아버지가 주름지고 가녀린 손으로 더듬더듬 뚜껑을 따서 소년의 입에 요구르트를 물려준다.

소년은 소중한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무섭고 겁난다.

할아버지는 소년에게 죽는 건 무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잠드는 것하고 똑같은 것이라고, 누구도 잠이 어떻게 드는 줄도 모르고 잠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죽음 역시 어떻게 죽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무섭거나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드문드문 가로등이 켜져 있어 제법 운치가 있는 동네길을 조손이 손을 잡고 걸어간다.

할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소년을 겨우 달랠 수 있다.

정감 있고, 아름다운 밤풍경이 한동안 펼쳐진다.


“.....!”


확실히 영상미는 훌륭했다.

왜 김영복이 촉망받는 촬영기사인지를 알려줬다.

촬영부들이 소곤소곤 대화를 나눴다.


“때깔 잘 빠졌지?”

“유 기사님이 세방현상소에 신경 써달라고 당부했다더라.”


이들이 말하는 유기사는 김영복이 속한 촬영팀의 촬영감독이다.

현상소에서는 감히 충무로 최고의 촬영감독 말을 거스를 수 없었다.


일기를 쓰는 소년. 그 안에 담긴 그림.

집은 과장되게 그려져 있고, 하늘은 조그맣게 표현된다.

베개를 가지고 할아버지의 방으로 쳐들어온 소년은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잠을 잘 생각이다.


[할아버지 자?]

[아니, 안 자.]

[할아버지 자?]

[똥강아지 그만 물어보고 어여 자. 낼 학교 가야지.]

[할아버지... 내가 잘 때까지 잠들면 안 돼....]


할아버지가 잠을 자지 못하게 방해하리라 마음먹었던 소년은 어느새 새근새근 잠이 든다.

소년의 조막만한 손은 할아버지의 옷깃을 꼭 움켜쥐고 있다.

아침식사 자리에서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영정사진을 찍겠노라고 말한다.

소년이 지켜보는 어른들의 분위기가 묘하게 어색하다.


[할아버지 사진 찍어? 무슨 사진?]

[할애비 영정사진 찍어두려고. 똥강아지도 구경 해볼 테냐?]

[영정사진? 그게 뭔데?]

[생전에 가장 행복했던 때를 사진으로 찍어두는 거야.]


소년은 상반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빠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본다.


“아빠, 영정사진이 뭐야?


스크린 밖 현실에서도 류아라가 아빠에게 물었다.


쉿!


심영숙이 입술에 검지를 대며 재빨리 딸의 입을 막았다.


“할아버지가 그러는데, 살아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좋은 모습일 때 찍어두는 사진이래.”


류민상이 스크린 속 할아버지가 아니라 저만치 왼쪽 좌석에 앉아있는 김인륜 배우를 가리키며 류아라의 귀에 속삭였다.

류아라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빠~ 우리가 전에 살던 동네 같아.”


낮은 기와지붕 양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80년대 주택가.

빛이 바래다 못해 회색에 가까운 색깔의 아스팔트 삼거리.

정자 옆에 구부정하게 서있는 고목까지.

정겹고, 한가로운 동네 풍경이 스크린 가득 펼쳐진다.

바람이 고목의 나뭇가지를 흔들어 댄다.


솨아아아.


일반 모노 사운드다.

16mm는 스테레오 사운드를 지원하지 않는다.

바람소리가 서라운드로 극장을 한바퀴 돌았으면 더욱 풍경이 살았겠지만.

류지호의 욕심일 뿐이다.


솨아아아.


나뭇가지가 춤을 추며 시원한 바람소리를 낸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그 소리... 음악이 따로 없었다.

정자에 나란히 앉아있는 부자지간의 모습이 정겹다.

할아버지가 소년에게 요구르트 뚜껑을 따준 것처럼, 아들도 아버지에게 요구르트 뚜껑을 따서 건넨다.

부자가 나란히 앉아 요구르트를 마신다.

따뜻한 햇살, 간간이 불어오는 봄바람... 부자지간의 대화도 정겹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한다.

아들이 침착하게 늙은 아비를 들쳐 업고, 정자를 떠난다.

약봉지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할아버지가 접혀있는 약봉지를 펼친다.

그는 약을 입안에 털어 넣고, 물을 마시며 꿀꺽 삼킨다.

할아버지의 얼굴 위로 며느리의 음성이 들려온다.


[울어요?]

[울고 싶지... 근데 지금 울어버리면 아버지가 떠났을 때 울어줄 수가 없을 거 같어.]

[불길하게 그런 말을 왜 해요. 병원에서는 뭐래요?]

[심장이 약해져서 무리하지 말라는 말 밖에는... 매번 하는 얘기만 듣고 왔어.]

[당분간 사진관에는 못 나가시게 해야겠어요.]

[입원 하면 좀 좋아. 노인네가 고집만 쎄서는.]


언젠가는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 서글픔...

그런데 배경 음악은 슬프고 궁상맞은 음악이 아니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 중 제 7곡 트로이메라이(Traumerei)가 깔렸다.

독일어로 꿈, 환상, 공상이란 의미다.

한가롭고, 포근하고, 낭만적인 정서가 흐르는 피아노곡이다.

창문을 통해 쏟아진 따뜻한 햇살이 화목한 가정의 분위기를 잘 살려주고 있다.

할아버지는 늘어진 러닝셔츠위로 와이셔츠를 차려입고,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매보고, 몇 벌의 양복저고리를 번갈아 입어보기도 한다.

비죽비죽 흐트러진 흰머리를 빗으로 빗어 넘긴다.

바지는 추리닝. 상의는 와이셔츠의 양복저고리 넥타이까지 맨 할아버지.

소년은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쫑알쫑알 할아버지 곁에서 참견하고, 심술부리고.

영정사진을 설명할 때는 무섭다고 울음까지 터트린다.

소년은 학교에 가지 않고 사진관으로 가는 골목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린다.

학교를 땡땡이 친 것에 혼을 낼 줄 알았던 할아버지는 가만히 소년의 손을 잡아준다.

조손이 손을 잡고 동네길을 걸어간다.


[할아버지, 빨리 와 빨리.]

[할애비는 천천히 갈게.]


헉헉.


겨우 몇 발 내딛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할아버지의 호흡이 거칠다.

그걸 알 리 없는 소년은 할아버지를 재촉한다.


[빨리빨리.]

[인석아, 천천히 가. 할애비는 빨리 가기 싫어.]


소년은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끌기도 하고, 뒤에서 밀기도 한다.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고 여유를 부리는 할아버지가 야속하다.

그래서 심통이 난다.


[할아버지, 중국집에 먼저 가 있을게. 빨리 안 오면 할아버지는 불어터진 자장면 먹을지도 몰라.]


따르릉.


배경음악으로 흐르던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가 자전거 경적소리에 사라진다.

자전거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온다.

할아버지는 냉큼 소년을 품안에 안는다.

그리고 장면이 중국집으로 바로 바뀐다.

박수근 화백의 <할아버지와 손자>의 그림처럼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 소년이 앉아 짜장면을 먹고 있다.


하하.


스태프 몇 명이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짜장으로 얼굴이 범벅이 된 이경재의 모습이 스크린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입가가 짜장으로 범벅이 되어 어디가 입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지경이다.


호호.


할아버지는 냅킨으로 손자의 입 주변을 닦아주고, 물컵을 가져와 입에 대준다.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할아버지 맛있는 거 먹게 해줄게.]

[우리 똥강아지가 언제 할애비 맛있는 거 사줄 정도로 돈을 많이 벌까?]

[돈 많이 벌어야 해?]

[나중에 할애비가 하늘나라에서 우리 똥강아지 보러올 때마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차려주려면 돈이 많이 들걸.]

[얼 만큼? 이이이~ 만큼?]


소년이 할아버지 품안에서 두 팔을 벌려 보인다.


[이이이이~ 만큼.]


할아버지가 소년을 따라 팔을 벌려 보인다.

마치 날개 짓을 배우는 어린 새를 품에 안은 어미 새처럼.


[어허허헐.]


김인륜 배우의 바람 빠진 웃음소리가 씬 내내 푸근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영화 내내 기운 없지만 푸근한 미소를 잃지 않는 김인륜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자신들의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짠하면서도 그리운.


“사운드가 왜 이래?”

“그건 넘어가. 원래 길 시사실이 사운드가 후져.”

“세방현상소 시사실에서 본 때깔이 더 죽여줬어.”


기술 스태프들의 관심은 주로 영상과 소리 그리고 미장센에 있다.

기술시사의 목적이 그런 것이다.

극장 개봉 직전의 영화프린트를 헤드스태프들이 보면서 자기 분야에서 문제점은 없는지 보완해야 할 것은 없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어설픈 화장을 한 공다연이 등장한다.

우물쭈물 대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 없고 소심한 캐릭터를 잘 보여줬다.

촬영현장에 많은 NG를 내고 캐릭터를 살리지 못해 고생을 했지만, 편집을 해놓은 영화에서는 그런 미숙함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이 연출, 편집, 음향의 힘이다.


[누나도 영정사진 찍을 거야?]

[뭐?]

[영정사진 몰라? 고인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사진으로 쓰는 거래.]

[고인이 뭔 줄 알고 말하는 거니?]

[몰라. 그게 뭔데?]

[자, 아가씨 저기 의자에 앉아요.]


아버지가 절묘하게 대화를 끊고 들어온다.

공다연이 사진을 찍는 모습이 담담하게 보이다가... 화면이 전환되면서....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 할아버지가 앉아 있다.

추리닝 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상의는 깔끔한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양복저고리를 걸친 할아버지의 모습이 우습다.


[내 마지막 모습... 멋지게 찍어봐라.]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소년이 끼어든다.


[할아버지, 표정이 무서워. 좀 웃어. 김치.]

[김치.]

[어허허허헐.]


할아버지는 손자의 재롱에 웃는다.


찰칵.


사각의 프레임 안에 들어있는 늙은 아버지.

아들은 정성을 다해 촬영에 임한다.

소년이 지켜보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분위기는 매우 밝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사소한 걸로 말다툼을 벌이고, 잠시 삐지기도 한다.

며느리가 등장해 두 사람을 오가며 중재를 벌인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슬그머니 화해해 다시 사진을 찍는다.

할아버지와 아빠가 티격태격하는 광경에 소년이 질투심이 날 지경이다.


호호.


박인철의 능청스러운 연기 때문에 여자 스태프들이 간간이 웃기도 했다.


원격셔터 스위치에 올려놓은 소년과 아버지의 손.

두툼한 아버지의 손안에 들어있는 소년의 조막만한 손가락이 셔터를 누른다.


찰칵.


할아버지가 이를 한껏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다.

이 장면에서 몇몇 스태프의 눈가가 뜨거워 진 모양이다.

슬쩍 눈가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무거운 첼로 음악이 깔린다.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첼로 연주곡으로 편곡한 음악이다.

첼로라는 악기 특유의 무겁고 장중한 분위기가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든다.

소년이 살고 있는 동네가 몽타주로 스케치 된다.


드르륵.


할아버지가 사진관을 나선다.

화면을 등지고 점점 멀어진다.

할아버지의 걸음은 느렸고,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노을이 내려앉은 언덕길을 할아버지가 터덜터덜 걸어가며 멀어진다.

그리고 어느새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석양과 함께 언덕 너머로 사라진다.

화면이 페이드 아웃(F.O)되며 시사실이 어둠에 휩싸인다.

류지호의 눈에 아버지가 눈물을 슬쩍 훔치는 광경이 보였다.

<영정사진>은 슬픈 영화가 아니다.


‘아버지가 벌써 갱년기인가?’


당신의 미래 모습을 상상하며 할아버지에 감정이입했을지도 몰랐다.

영사기가 잘못 되었나?

스태프들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다시 화면이 페이드 인(F.I) 된다.

할아버지가 언덕 너머로 사라진 똑 같은 앵글과 구도, 사이즈다.

언덕길 너머에서 작은 점 하나가 점점 형체를 갖춘다.

책가방을 멘 소년이 신발주머니를 빙글빙글 돌리며 경쾌한 걸음으로 다가온다.


따릉.


김재욱이 자전거를 타고 빠른 속도로 달려오다가


꽈당!


소년 앞에서 자빠진다.

넘어진 자전거를 호들갑스럽게 살피고, 정강이를 비비며 난리를 피우는 김재욱이다.


킥킥.


소년이 김재욱의 유난 떠는 모습을 보며 웃는다.

김재욱이 소년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선다.

자전거를 끌고 가는 김재욱과 손자가 나란히 걸어가다가 사진관 앞에서 헤어진다.

소년은 사진관 밖에 걸려있는 다양한 사진 앞에 잠시 선다.

다양한 사람들의 사진들 가운데 할아버지의 사진이 걸려있다.

잠시 할아버지의 사진을 지켜보던 소년이 사진관으로 들어간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사진관 안에서 소년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허허허헐.]


환청인가.

할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다.

사진관 밖에 걸려있는 사진 안에서 할아버지가 활짝 웃는 것만 같다.


짝짝짝.


관객이 박수를 보냈다.

상업영화와 비교해 봐도 기술적으로는 매우 안정적이다.

일단 만듦새의 완성도는 기대 이상을 뽑아냈다.

이야기와 주제 전달 같은 연출적인 부분의 냉정한 평가를 기다려야 했다.

엔딩크레디트 마지막에 뜬 Special Thanks.

특별히 감사를 표하고 싶은 사람들.

류민상 심영숙 류순호 류아라... 사랑하는 가족들의 이름들.

크레디트를 보며 류지호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전 삶에서 류지호는 가족에게 단 한 번도 자신의 영화를 보여준 적이 없었다.

못 나고 못 나고 또 못난 태도였다.

감상에 젖어있는 류지호를 김영복이 놀렸다.


“너 우냐? 지가 연출한 영화 보며 우는 놈은 오랜만일세.”

“울긴 누가 울었다고 그래. 그냥 감회가 남달라서 그런 거야.”


시사회장에 모든 불이 들어왔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스태프들은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는 영화에서 부족한 걸 생각했고, 누구는 영화의 여운을 즐겼다.

상업영화였으면 메인 스태프들이 감독 주변에 모여 영화를 보고 보완하거나 수정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 해줄 테지만,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번에 상영한 프린트는 영어 자막까지 넣은 완성본이기 때문이다.

고치고 싶어도 못 고친다는 의미다.


“어떻게 보셨어요?”

“재밌더라.”

“네 아빠는 울더라니까.”

“눈에 뭐가 들어가서 비빈거야.”


류지호의 부모님이 티격태격했다.

스태프들이 류지호에게 다가와 영화 잘나왔다는 덕담을 건네며 시사실을 빠져나갔다.

그런 모습을 보며 황재정이 이죽거렸다.


“감독이라고 불러주니까 좋아? 아주 좋아 죽네?”

“부럽냐? 부러우면 지는 거야. 인마.”


류지호가 웃으며 받아쳤다.


“오빠가 왜 감독이냐? 사장님 아냐?”


류아라가 류지호의 다리에 매달려 궁금함을 드러냈다.


“사장님이자 감독님이야.”


류아라는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인제 연신 왜 그러냐고 물었다.

어쨌든 모두가 시사실을 빠져나와 회식장소로 이동했다.

류민상이 슬쩍 아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영화 보는 내내 사람들 반응이 나쁘지 않더구나.”

“오늘 온 사람들은 같은 편이에요. 같이 영화를 찍은 사람들이라 대놓고 재미없다고 말 할 사람이 없어서 그래요.”

“그래도 아빠는 재밌게 봤다.”

“재밌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류지호는 스태프들과 저녁을 먹으며 축하와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한 번 결과를 기대해 봐도 좋겠어.”

“영화제 몇 군데 보냈어?”

“다섯 개 보냈다고 들었어.”


영화제에서 수상한다면 더 없이 기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류지호는 크게 개의치 않을 작정이다.

예전의 감각을 되살리려는 의도 였기에 그저 출품한 것에 의의를 뒀다.

지인과 참여했던 스태프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출품한 이상 본선에는 올라가지 않겠냐는 믿음을 드러냈다.

류지호는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가 은연중 불편하기 까지 했다.

영화제 출품을 말하지 말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좋은 경험이었어.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경험이었고.’


류지호는 자신을 알게 되는 순간 발전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자신을 믿게 된 그 순간 모든 게 달라질 것이란 것도 알고 있다.

이번 작업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류지호는 과거로 돌아와 첫 단편을 20분짜리 애매한 러닝타임으로 찍었다.

다음에 단편을 찍게 된다면 단편의 이상적인 러닝 타임인 10분짜리를 찍게 될 것 같았다.

단편영화의 매력은 짧고 압축적인 것에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말

3월 첫 째 주.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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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영정사진. (8) +9 22.02.26 7,817 192 21쪽
93 영정사진. (7) +3 22.02.26 7,445 17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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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W.a.W Pictures. (2) +2 22.02.15 8,398 167 20쪽
82 W.a.W Pictures. (1) +4 22.02.14 8,589 184 17쪽
81 자네는 주식투자를 뭐라 생각해? +8 22.02.12 8,472 191 17쪽
80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3) +3 22.02.11 8,418 179 19쪽
79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2) +6 22.02.10 8,625 177 23쪽
78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1) +7 22.02.09 8,884 167 25쪽
77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가족뿐. +9 22.02.08 8,772 187 21쪽
76 미래를 사고 싶어요. (2) +5 22.02.07 8,873 188 21쪽
75 미래를 사고 싶어요. (1) +5 22.02.05 9,173 181 26쪽
74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3) +6 22.02.04 9,114 200 29쪽
73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2) +9 22.02.03 9,282 194 27쪽
72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1) +2 22.02.03 9,332 184 22쪽
71 10억 달러만 주세요! +11 22.02.02 9,499 205 25쪽
70 뉴욕 사교계 데뷔? +5 22.02.02 9,323 187 25쪽
69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3) +8 22.01.29 9,442 211 20쪽
68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2) +4 22.01.28 9,318 210 17쪽
67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1) +6 22.01.27 9,818 20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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