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수집하는자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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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추상
작품등록일 :
2023.03.0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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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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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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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 현실의 틈새에서 2

DUMMY

호텔 방이 일렁였다. 벽이 잔물결치는 연못처럼 흔들렸다. K 박사는 비틀거렸고, 그의 손이 실체와 허상 사이를 오가는 책상을 관통했다.


"마리안?"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 이 양자적 환영이 보여?"


마리안은 창가에 서 있었다. 그녀의 실루엣은 시대를 넘나드는 깜빡이는 불씨 같았다. 때로는 고대의 토가를, 때로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유물을 걸치고 있었다. "모든 걸 뒤덮고 있어, K." 그녀의 손바닥이 유리에 닿았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봐. 세상이 이성을 잃었어."


K 박사가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토레몰리노스가 그들 앞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에 숨이 멎었다. 현대 건물들이 로마 시대 별장으로 녹아내렸다가 미래의 첨탑으로 솟아오르고, 다시 고대의 폐허로 무너져 내렸다. 하늘마저 잊혀진 세기의 색채로 물들었다.


"우리가 무엇을 저질렀단 말인가?" 마리안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유리를 스쳐 지나갔다. "마치 시간의 비단을 찢어버린 것만 같아."


날카로운 탁탁 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오존과 오래된 양피지 냄새를 풍겼다. 자라가 나타났다. 그녀의 모습은 불안정한 신기루 같았고, 옷은 사서의 로브와 시간 여행자의 세련된 복장 사이를 오갔다. 하지만 그녀의 눈만은 변함없이 이세상의 것이 아닌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어리석은 자들," 그녀가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목소리에는 영겁의 세월이 담겨 있었다. "당신들이 풀어놓은 힘을 이해하긴 하나요? 그 수정은 결코-"


"우리라고요?" K 박사가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와 죄책감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당신이 그 수정을 차지하려 했잖아요! 설명만 해줬다면-"


"그걸 지키려고 한 거예요!" 자라가 반박했다. 그녀의 모습이 잠시 과거, 현재, 잠재적 미래의 삼중상으로 쪼개졌다. "이제 보세요-" 그녀가 격렬히 손짓했다. 그녀의 팔이 잠시 촛대로, 다음엔 플라즈마 구로 변하는 램프를 관통했다. "현실 그 자체가 풀어지고 있어요. 있었던 것, 있는 것, 있을 수 있는 것 사이의 경계가... 녹아내리고 있어요."


마리안이 그들 사이로 들어섰다. 그녀의 목소리는 혼돈 속의 등대 같았다. 밖에서는 로마 군단이 빛나는 고층 건물들 사이를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의 샌들이 흔들리는 물처럼 일렁이는 아스팔트에 자국을 남겼다. "다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우리도 산산조각 나기 전에 먼저 이해해야 해요."


K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정신을 차렸다. 그는 노트를 잡으려 했지만, 그의 손은 쓰이지 않은 글자들의 그림자를 움켜쥐고 있었다. "수정이... 깨졌을 때, 시간 에너지를 한 번에 재앙적으로 방출한 게 틀림없어.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그렇지? 마치... 영역 간의 장막을 뚫어버린 것 같아."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에요," 자라가 말했다. 그녀의 분노가 가라앉자 뼛속 깊은 피로가 드러났다. "지식이에요. 기억들. 시공간에 흩어진 인류의 집단무의식이 우주의 바람에 씨앗처럼 퍼져나간 거예요."


먼 곳에서 들려오는 쿵 소리에 방이 흔들렸고, 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다른 버전을 목격했다. 어떤 것은 익숙했고, 어떤 것은 전혀 낯선 모습이었다. K 박사는 자신이 로마의 정복자 장군으로 변한 모습을 보았고, 마리안은 선사 시대의 주술사와 먼 미래의 생체 강화 과학자 사이를 오갔다.


"우리가 진원지예요," 마리안이 깨달았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이 방이... 불안정해요. 모든 가능성이 수렴하는 연결점이에요."


K 박사가 의자를 잡으려 했지만, 그의 손은 나무에서 강철로, 다시 살아있는 덩굴로 변하는 물체를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현재와 동기화되지 않았어. 마치... 시간의 유령처럼 부분적으로 위상이 어긋나 있어. 존재의 상태 사이에 매달린 양자 관찰자 같아."


자라의 모습이 격렬하게 깜빡이며 그녀의 목소리가 왜곡되었다. "우리뿐만이 아니에요. 전체 시간선이 균열되고 있어요.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뒤섞이고 있어요. 그리고 그 균열은... 퍼져나가고 있어요."


침대 옆 탁자 위의 스마트폰이 다이얼식 전화기로, 그다음 미래의 홀로그램 장치로, 다시 쐐기 문자가 새겨진 점토판으로 변했다. 마리안이 조심스레 그것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잊혀진 지식의 무게로 저릿거렸다. 화면이 화면일 때는 불가능한 날짜들이 번쩍였다: 1692년, 2154년, 3077년, 기원전 42년.


"이걸 바로잡아야 해요," 그녀가 힘을 얻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정을 되찾을 방법이 있을 거예요. 시간의 흐름을... 다시 짜 맞출 수 있을 거예요."


K 박사가 머리를 헝클었다. 그의 손이 잠시 두개골을 관통하면서 그는 자신의 것이 아닌 기억들을 어렴풋이 보고 움찔했다. "수정 파편들. 그것들을 모을 수 있다면... 어쩌면 이 과정을 되돌리고 시간의 닻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말도 안 돼요," 자라가 날카롭게 말했다. 그녀의 확신이 강해지자 그녀의 모습도 선명해졌다. "조각 하나하나가 위험으로 가득 차 있어요. 협회가 그것들을 찾고 있을 거예요. 당신들도요. 그들은 무슨 짓이라도 할 거예요-" 그녀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너무 많은 것을 밝혀버렸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마리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깊은 눈동자에 새로운 강렬함이 깃들었다. "협회라고? 자라, 당신은 누구지?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거야?"


자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형체가 안정되며 결심한 듯했다. "시간 요원이야. 우리는 시간선을 감시하고 역설을 방지해. 적어도 그래야 하는데... 이건 전례 없는 일이야."


긴장된 침묵이 내려앉았다. 밖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만이 그 고요를 깼다. 어느 시대에서나 어울리지 않는 소리였다. 창밖으로 그들은 오토바이를 탄 갑옷 기사를 보았다. 그 부조화가 심각한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았다면 우스울 지경이었다.


K 박사가 서성거렸다. 그의 움직임에는 희미한 잔상이 남았다. 선택하지 않은 선택들, 걷지 않은 길들의 속삭임이었다. "요원이든 아니든, 현실이 무너지는 동안 가만히 있을 순 없어. 전략이 필요해. 시간의 흐름을 안정시킬 방법을... 다음 행동을 결정할 때까지라도."


마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은 멀리 보고 있었다. 주변의 부서진 현실 너머를 응시했다. "난... 뭔가를 느껴. 파편들이 우리를 부르고 있어. 마치 찾아지기를 갈망하는 것 같아. 아니, 그 이상이야. 반드시 찾아져야 한다는 듯이. 다시 온전해지기 위해서."


"너무 위험해," 자라가 주장했지만, 그녀의 결의는 흔들렸다. 그녀는 손목을 힐끗 보았다. 해시계와 양자 컴퓨터를 합친 듯한 장치가 깜빡이며 존재했다 사라졌다 했다. "시간선이 너무 불안정해. 한 번만 실수해도 역사에서 스스로를 지워버릴 수 있어... 아니면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야."


K 박사는 마리안과 눈을 마주쳤다. 말없는 이해가 오갔다. 그 순간, 그들은 수많은 버전의 자신들을 보았다. 어떤 이는 부서졌고, 어떤 이는 승리했지만, 모두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우리가 이걸 부쉈으니, 우리가 고쳐야 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당신들이 맞설 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자라가 경고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목격하고 방지한 수많은 시간의 재앙의 무게가 실렸다. "협회, 건축가, 현실의 구조 자체가 우리와 맞서 있어요."


"그럼 우리를 깨우쳐 주세요," 마리안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는 자라의 팔에 손을 뻗었다. 처음엔 손이 통과했지만, 이내 접촉했다. 부서진 시간선 사이의 다리였다. "우리에게 맞서지 말고 협력해요. 우리가 혼자 일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봤잖아요. 어쩌면 함께라면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


방이 흔들렸다. 순식간에 수세기가 지나갔다. 고대의 다성 음악이 빛나는 금속 벽을 장식했다가 먼지로 부서졌다. 로마의 몰락을 묘사한 프레스코화는 인류의 화성 첫 발자국을 그린 벽화로 바뀌었다가 순수한 시간적 잠재력의 소용돌이로 사라졌다.


자라는 눈을 감았다. 어깨가 패배감에 축 늘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눈에는 새로운 결의가 있었다. 어쩌면 희망의 빛도 깃들었을지 모른다. "좋아요. 하지만 내 방식대로 해요. 더 이상의 무모한 결정은 없어요. 우리는 비존재의 심연 위를 걷는 곡예사예요.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K 박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가능한 미래의 무게가 그를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동의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조각나고 있는 현실에서 이 파편들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우선," 자라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시간의 전략가로서의 역할로 돌아간 듯했다. "이 시간 거품이 완전히 붕괴되기 전에 탈출해야 해요. 내 시간 안정기로 일시적인 안전 지대를 만들 수 있지만, 오래가지 않을 거예요. 빠져나오면 우리는—"


그녀의 말이 끊겼다. 창문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져 방을 불가능한 황혼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돌아서서 태양을 가리는 거대하고 초현실적인 형체를 보았다. 빛나는 금속과 맥동하는 에너지로 이루어진 구조물이었다. 반은 기계였고 반은 살아있는 존재였다.


"저게 뭐지?" 마리안이 숨을 내쉬었다. 경외와 공포가 그녀의 목소리에 뒤섞였다.


K 박사는 힘겹게 침을 삼켰다. 그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집단 기억의 파편들로부터 인식의 끌림을 느꼈다. "저건... 저건 우리의 미래가 우리를 만나러 온 것 같아. 적어도 가능한 미래 중 하나겠지."


자라의 눈이 진정한 두려움으로 커졌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그들이 이렇게 직접 개입할 리가 없어. 만약에—"


공기가 시간 에너지로 팽팽해졌고, 고대이면서도 태어나지 않은 목소리가 그들의 마음에 직접 말을 걸었다. "시간의 용사들이여, 우리의 부름에 귀 기울이라. 넥서스가 다가오고 있다. 그와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운명이 다가온다..."


마리안이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마음은 정신적 침입에 휘청거렸다. "너희도... 너희도 들었어?"


K 박사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시간을 넘나드는 모든 나 자신이 동시에 말하는 것 같았어."


"넥서스." 자라가 속삭였다. 그녀의 모습이 과거와 미래를 오갔다. "신화 속 존재예요. 모든 가능성이 충돌하는 시간의 합류점이죠. 만약 그게 실재한다면..."


밖의 거대한 형체가 맥동하며 시간의 왜곡을 퍼뜨렸다. 가구들이 순식간에 수세기의 변화를 겪었다. 벽이 투명해지며 다른 시공간을 비추었다 - 원시림, 번화한 도시, 황폐한 벌판.


K 박사는 밀려드는 기억과 지식에 압도되어 비틀거렸다. "모든 것이 보여... 문명의 흥망성쇠, 별들의 탄생, 우주의 종말까지..."


마리안느가 그의 팔을 붙잡아 현재에 묶어두었다. "정신 차려요, K. 내 목소리에 집중해요. 지금 당신이 필요해요."


자라의 시간 안정기가 불꽃을 튀기며 고장났다. "시간이 없어요. 무엇이든 이미 왔어요. 지금 결정해야 해요."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엔 현실의 틈새를 가르는 빛나는 문과 함께였다. "선택하시오, 용사들이여. 넥서스로 들어가 미래를 만들거나, 아니면 여기 남아 시간의 물결에 휩쓸리거나."


K 박사는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천 개의 삶이 어린 광기가 서려 있었다. "들어가면 돌이킬 수 없어. 우리는 역사를 다시 쓰고 신이 될 수도 있지만... 아니면 존재 자체가 지워질 수도 있어."


마리안느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무엇을 선택하든, 우리는 함께예요."


자라는 망설였다. 수세기의 훈련이 전례 없는 상황과 맞섰다. 마침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함께. 미지의 세계로."


그들은 하나가 되어 문을 향해 돌아섰다. 주변이 사라지고, 현실이 숨을 멈춘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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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 현실의 틈새에서 1 24.08.26 9 0 16쪽
31 31화 : 미래의 그림자 3 24.08.23 7 0 12쪽
30 30화 : 미래의 그림자 2 24.08.17 8 0 15쪽
29 29화 : 미래의 그림자 24.08.13 11 0 14쪽
28 28화 : 시공간의 춤 4 24.08.10 8 0 16쪽
27 27화 : 시공간의 춤 3 24.08.10 9 0 14쪽
26 26화 : 시공간의 춤 2 24.08.09 6 0 15쪽
25 25화 : 시공간의 춤 24.08.09 6 0 15쪽
24 24화 : 기억의 미로 24.08.08 9 0 12쪽
23 23화 : 시간의 파편 2 24.08.07 8 0 14쪽
22 22화 : 시간의 파편 24.08.06 10 0 13쪽
21 21화 : 시간의 장막 너머 24.08.05 10 0 13쪽
20 20화 : 숨겨진 지식의 문 24.08.05 8 0 13쪽
19 19화 : 시간의 수호자들 24.08.05 7 0 12쪽
18 18화 : 시간의 균열 24.07.30 8 0 11쪽
17 17화 : 알렉산드리아의 비밀 24.07.24 10 0 15쪽
16 16편 : K 박사의 위험한 발견 24.07.18 12 0 15쪽
15 15편 : 폐허에 숨겨진 비밀 24.07.18 10 0 16쪽
14 14편 : 오메가7 23.03.16 14 0 14쪽
13 13편 : 점성술사 23.03.15 11 0 15쪽
12 12편 : 비밀클럽 23.03.15 19 0 12쪽
11 11편 : 토레몰리노스 23.03.13 18 0 11쪽
10 10편 : 안나2 23.03.12 17 0 10쪽
9 9편 : 안나1 23.03.12 14 0 11쪽
8 8편 : 흐릿한 행성2 23.03.10 15 0 10쪽
7 7편 : 흐릿한 행성1 23.03.09 19 0 12쪽
6 6편 : 마법시계 23.03.07 19 0 21쪽
5 5편 : 오카방고 삼각주 23.03.04 18 0 9쪽
4 4편 : 단절된 남자 23.03.04 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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