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수집하는자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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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추상
작품등록일 :
2023.03.0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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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8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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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 기억의 미로

DUMMY

황혼빛 램프의 그림자가 마리안느의 얼굴에 춤을 추었다. 그녀의 표정엔 불안과 결의가 교차했고, 낡은 가죽 일기장을 쓰다듬는 손가락은 좁은 호텔방을 서성이는 발걸음만큼 불안했다.


"K?" 그녀의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한참 동안 넋이 나간 것 같아요."


K 박사가 흠칫 놀라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미동도 않은 채 앉아 있었고, 손바닥 위의 반짝이는 파편이 그의 눈에 비쳤다.


"왕조들이야, 마리안느,"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의 영광과 몰락을, 잿더미에서 일어서는 모습을 보았어. 순식간에 승리하고 패배하는 전쟁들을. 이건...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어."


그녀는 그의 곁에 무릎 꿇고 손을 뻗었다. "자신을 잃어가고 있어요, K. 우리는 이 수수께끼를 풀어야 해요."


그가 공허하게 웃었다. "풀다니? 그런 말은 저기엔 통하지 않아. 자아와 세상 사이의 경계가 안개처럼 사라져."


그녀의 턱이 굳어졌고, 눈빛에는 걱정과 짜증이 위태롭게 어우러졌다. "그게 바로 날 불안하게 해요. 전에 없던 식으로 말하고 있어요. 어제는 몽마르트의 술집 얘기를 했죠 - 파란 차양이 있고 고양이가 졸고 있는. 하지만 우리 거기 가본 적 없잖아요, K."


그의 눈이 커졌고, 얼굴에 두려움이 스쳤다. "나... 내가 갔었나? 맙소사, 그 기억은 대체 어디서 온 거지?"


마리안느가 벌떡 일어나 창가로 갔다. 밖의 도시 풍경은 시간의 중첩 같았다. 번쩍이는 옛 차가 미래의 광고판 빛을 받아 반짝이며 지나갔고, 전기 스쿠터가 마차들 사이를 비집고 달렸다.


"모든 게 풀어지고 있어요," 그녀가 속삭였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해요, K. 이건 우리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요."


그가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협회가 아직 우리를 쫓고 있어. 누구를 믿을 수 있겠어?"


그녀의 표정이 단호해졌다. "시계장이는 어때요? 그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 기계 같은 눈..."


"너무 위험해," K 박사가 중얼거리다 눈살을 찌푸렸다. "잠깐... 내가 어떻게 그걸 알지? 마치 이 대화를 전에 나눈 것 같아. 마치 시간의 순환에 갇힌 것처럼..."


그녀의 등줄기로 전율이 흘렀다.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가며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K, 우리는 그 수정이... 당신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그것도 좋지 않은 쪽으로요."


그가 벌떡 일어났고, 의자가 바닥을 긁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날 변화시킨다고? 날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의 눈에서 이상한 빛이 번쩍였다.


"당신이 완전히 당신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말을 가려 했다. "그게 어떤 음모보다 더 무서워요."


그의 표정이 누그러졌고, 이상한 빛이 사라졌다. "오, 마리안느. 용서해. 널 놀라게 하려던 게 아니야. 단지... 거기엔 너무나 방대한 지식이 있어. 엄청난 가능성이. 역사의 실타래, 인간 의식의 합류점을 볼 수 있어..."


그녀가 경계하는 야생동물에게 다가가듯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알아요, K. 하지만 대가가 뭐죠? 당신의 정체성? 인간성? 그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의 어깨가 축 처졌다. 수많은 기억의 무게가 그를 짓누르는 듯했다. "네 말이 맞아. 가끔 미끄러지는 것 같아. 다른 삶들, 다른 시간선들, 다른 가능성들의 바다에 빠져 익사할 것 같아."


그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조심스레 수정 조각을 피했다. 그 면들이 내면의 빛으로 맥동하는 듯했다. "그럼 내가 당신의 닻이 되어 줄게요," 그녀가 열정적으로 말했다. "당신의 생명줄이요. 우리는 늘 그래왔듯이 함께 이걸 풀어나갈 거예요."


그가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입가에 옛 미소의 흔적이 어렸다. "당신이 없었다면 난 어쩔 뻔했소, 내 사랑."


날카로운 노크 소리에 둘은 흠칫 놀랐다. 조심스레 눈빛을 교환했다. 오랜 추격의 세월이 그들의 본능을 날카롭게 갈고닦았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소?" 그가 속삭였다. 골동품 촛대를 급히 집어들며.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재킷 속 개조 전기충격기의 든든한 무게를 느끼며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다시 한 번 강렬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K 박사님? 마리안느? 저예요, 자라. 꼭 말씀드릴 게 있어요. 지금요."


그의 눈이 커졌다. "알렉산드리아의 견습생? 어떻게 우릴 찾아냈지?"


그녀는 무기를 꽉 쥐었다. "더 중요한 건, 그녀를 믿을 수 있느냐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봤을 때 협회의 술수에 빠져 있었잖아요."


둘은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긴장된 침묵 속에서 선택을 저울질했다. 공기는 잠재적 에너지로 팽팽했고, 시간의 흐름이 갈라지고 무너졌다.


마침내 K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여보내주오. 하지만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해. 시간 이상 현상이 악화되고 있어 - 어쩌면 그녀는 우리가 적이 된 미래에서 온 것일 수도 있소."


마리안느는 조심스레 문으로 다가갔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가다듬고 손잡이를 돌렸다. 문이 열리자 그녀는 다가올 혼돈에 대비했다.


자라가 복도에 서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과거와 미래가 충격적으로 뒤섞여 있었다. 왼팔은 반짝이는 사이버네틱스로, 오른팔엔 고대 이집트 여사제의 헤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관자놀이의 신경 인터페이스가 박동쳤고, 눈빛은 문명의 흥망성쇠를 목격한 이의 영원한 지혜를 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자라가 다급히 말했다. "건축가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현실의 구조 자체가 풍전등화예요."


마리안느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라?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자라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스쳤다. "그건 긴 이야기예요, 하비브티. 수세기와 차원을 넘나드는 이야기죠. 들어가도 될까요? 복도가... 시간적으로 그리 안정적이지 않거든요."


그녀의 말을 강조하듯, 엘리베이터 근처의 화분이 반짝이더니 고대의 꼬부라진 나무로 변했다. 가지가 천장을 긁고 있었다.


방 안에서 K 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여보내주오, 마리안느. 우리가 몇 가지 답을 얻게 될 것 같소...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질문도 생길 테고."


마리안느가 비켜서자 자라가 들어왔다. 그녀가 문지방을 넘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변했다. 현실이 돌멩이가 던져진 연못처럼 일렁였다.


"흥미롭군," K 박사가 중얼거렸다. 자라의 사이버네틱 팔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 기술은 우리의 현재 능력을 뛰어넘는군. 얼마나 먼 미래를 여행했소?"


자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언제 다녀왔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K. 제가 무엇을 목격했는지가 중요하죠. 건축가는... 단순히 시간을 통제하려는 게 아니에요. 인간 의식의 본질 자체를 다시 쓰려고 해요."


마리안느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집단 무의식... 그걸 말씀하시는 거죠? 우리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접근했던 공유된 기억과 경험의 원천 말이에요."


자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것이오. 수정 파편은 열쇠요. 시공간을 초월해 인간 정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열어줄 열쇠지."


K 박사의 눈에 흥분의 불꽃이 일었다. "그렇군! 그래서 내가 이런 섬광을 경험하고 있었어. 내 것이 아닌 기억들, 알 수 없는 지식들."


마리안느가 걱정스레 경고했다. "K, 이 힘이 당신을 바꾸고 있어요."


자라의 시선이 부드러워졌다. "경계하는 게 옳소. 수정의 영향력은 중독성이 있으니. 하지만 건축가를 저지하려면 K와 수정의 연결이 필요하오."


"건축가를 정확히 무엇으로부터 막는다는 거죠?" 마리안느가 날카롭게 물었다.


자라의 사이버네틱 손이 주먹을 쥐었다. "그가 꿈꾸는 완벽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오. 자유의지 없이 시간 속에 얼어붙은 정적인 유토피아 말이오."


방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K 박사는 수정 파편을 문질렀고, 그 면들이 황홀한 무늬를 만들어냈다.


"어떻게 그런 존재와 맞서 싸울 수 있을까요?" 마리안느가 조용히 물었다.


자라의 눈에 결의가 불타올랐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의 모든 인간 의식과 연결되어 있소. 그것이 우리를 건축가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하게 만들지."


K 박사가 물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힘을 다루죠?"


자라가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필요한 이유요. 나는 집단 무의식을 안내하고 형성하는 기술을 익혔소."


마리안느의 눈이 의심스럽게 좁아졌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그냥 믿어야 한다고요?"


자라의 얼굴에 고통이 스쳤다. "내가 본 것들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걸 믿으시오. 건축가의 비전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막아야 하오."


K 박사가 단호히 말했다. "보여주세요. 당신이 배운 걸 우리에게 보여주십시오."


자라가 눈을 감자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마리안느는 귓가에서 천 개의 파도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기억과 가능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살았던 삶과 살지 않은 삶의 파편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리안느는 수천 개의 다른 시간선 속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K 박사가 숨을 들이켰다. "이건... 너무나 아름답군."


자라의 목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 어디서나 들리는 듯하면서도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이것이 인간 의식의 화음이야. 우리의 모든 경험, 희망, 두려움의 총체지. 그리고 이건..."


소용돌이가 변하며 고동치는 어둠의 덩어리를 드러냈다. 주변의 기억들을 삼키고 난 뒤, 텅 빈 공허만이 남았다.


자라가 간신히 억눌린 분노를 담아 말을 이었다. "이게 바로 건축가가 만들려는 거야. 선택이 없는 세상, 인간 창의성의 복잡한 빛남이 사라진 세상. 완벽하지만 텅 빈 유토피아지."


마리안느는 속이 메스꺼웠다. 이 모든 것의 부조리함에 압도될 것만 같았다.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소용돌이가 다시 변했고, 그들은 어느새 넓고 반짝이는 빛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끝에 서 있었다. 각각의 빛나는 점들이 하나의 인간 의식을 나타내는 듯했다.


자라가 강렬한 결의를 담아 말했다. "우리가 그들을 모아야 해.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상기시켜야 해. 사랑하고, 꿈꾸고, 선택하는 것. 무엇이 위험에 처했는지 보여주고 그들의 영광스러운 불완전함 속에서 존재할 권리를 위해 싸우자고 해야 해."


K 박사의 눈에서 내면의 불꽃이 타올랐다. 이전의 이질적인 빛은 이제 깊이 인간적인 무언가로 순화되어 있었다. "그래," 그가 숨을 내쉬었다. "모두를 느낄 수 있어. 우리 모두를. 우리는 이 싸움에 혼자가 아니야."


마리안느가 손을 뻗어 K의 손가락과 얽었다. 수정 파편의 열기가 손바닥에 닿았지만, 더 이상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그것은 광대하고 아름다운 무언가와 그녀를 연결해주는 통로 같았다.


"그럼 함께," 그녀가 흔들림 없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모두를 위해."


자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결연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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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화 : 시공간의 춤 3 24.08.10 8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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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화 : 시공간의 춤 24.08.09 5 0 15쪽
» 24화 : 기억의 미로 24.08.08 8 0 12쪽
23 23화 : 시간의 파편 2 24.08.07 6 0 14쪽
22 22화 : 시간의 파편 24.08.06 9 0 13쪽
21 21화 : 시간의 장막 너머 24.08.05 9 0 13쪽
20 20화 : 숨겨진 지식의 문 24.08.05 7 0 13쪽
19 19화 : 시간의 수호자들 24.08.05 6 0 12쪽
18 18화 : 시간의 균열 24.07.30 7 0 11쪽
17 17화 : 알렉산드리아의 비밀 24.07.24 9 0 15쪽
16 16편 : K 박사의 위험한 발견 24.07.18 11 0 15쪽
15 15편 : 폐허에 숨겨진 비밀 24.07.18 9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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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편 : 점성술사 23.03.15 11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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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편 : 흐릿한 행성2 23.03.10 1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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