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수집하는자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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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추상
작품등록일 :
2023.03.0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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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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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 시간의 장막 너머

DUMMY

시간의 장막이 걷힌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K 박사와 마리안, 그리고 신비로운 안내자 자라가 그림자의 춤사위 속을 걸었다. 발자국 소리가 상형문자 새겨진 벽에 메아리쳤다.


"조심하세요," 자라가 고풍스런 눈빛으로 말했다. "이 복도엔 세월의 무게가 스며있어요."


K 박사의 손이 조각을 스치자 전율이 온몸을 관통했다. 돌은 그의 손끝 아래서 맥동하며 무언의 메시지를 전했다.


"놀랍군," 그가 숨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돌 자체가 기억을 간직한 듯해."


마리안이 그의 팔을 잡았다. "K, 괜찮아? 얼굴이 창백해."


그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단지 역사의 무게에 압도됐을 뿐이야."


자라가 갈림길에서 멈췄다. 그녀의 손짓에는 고대의 의식이 깃들어 있었다. 마리안은 그들의 안내자가 보이지 않는 힘과 교감한다고 느꼈다.


"학자들의 시선이 늘 함께하죠," 자라가 속삭였다. "이 지식의 성소에선 조심스레 걸어야 해요."


"어떻게 그런 통찰력을 지니신 거죠?" 마리안이 의아해했다.


자라의 미소는 수수께끼 같았다. "빨리 배운다고 할까요."


그들은 거대한 방으로 들어섰다. 아치형 천장은 생동하는 어둠에 잠겼고, 두루마리로 가득한 선반이 끝없이 이어졌다.


"세상에," K 박사가 경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천 년의 지식이 여기 있어."


자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 있어요. 이 텍스트 중 일부는... 존재해선 안 돼요. 아직은."


마리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직은'이라니 무슨 뜻이죠?"


그때 한 인물이 기둥 뒤에서 나타났다. 빛나는 옷을 입은 학자가 그들을 응시했다.


"여행자들이여, 환영합니다," 학자가 신비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은 감춰져야 할 것을 찾아왔군요."


K 박사가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해를 끼칠 의도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학자가 손을 들자 K 박사의 말이 멎었다. "당신들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소. 문제는 이것이오: 당신들이 그럴 자격이 있는가?"


자라가 굳어졌다. "이건 계획에 없었어," 그녀가 날카롭게 속삭였다.


마리안이 그녀를 의심스레 바라보았다. "무슨 계획?"


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퍼즐 상자마냥 책장들이 스스로 재배열되었다. 두루마리와 고서들이 중력을 벗어난 듯 공중을 떠다녔다. 학자의 모습이 깜빡이며 흔들렸다. 때로는 현명한 노인으로, 때로는 젊은 얼굴로 보였다.


"여기선 시간이 다르게 흐르지," 학자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중얼거리며 여러 곳에서 동시에 들려왔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될 수 있는 것들 사이의 경계도 마찬가지야."


K 박사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당신은 단순히 지식을 보존하는 게 아니군요," 그가 천천히 말했다. 깨달음에 눈을 크게 뜨며. "훨씬 더 귀중한 것을 지키고 계시는 거죠."


학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어렸다. "현실 그 자체의 본질을 말이지."


자라의 가면이 완전히 무너졌다. "이럴 시간이 없어요," 그녀가 날카롭게 말했다. 목소리에 공포가 배어 있었다. "수정이—"


"침묵!" 학자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시간 자체를 통해 울려 퍼지며 공기를 진동시켰다. "넌 이미 너무 많은 걸 밝혀버렸어."


마리안느가 자라의 팔을 꽉 잡았다. "무슨 수정이야?" 그녀가 낮고 강렬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뭘 숨기고 있는 거지?"


방은 계속 변형되며 다른 시간과 장소의 유혹적인 모습들을 드러냈다. 빛나는 탑과 공중을 나는 차량들이 있는 미래 도시의 풍경. 오래전 멸종된 생물들로 가득한 원시림. 불에 휩싸인 세상, 그 표면은 용암으로 피 흘리는 상처였다.


K 박사의 눈이 커졌다. "모든 게 얽혀 있어," 그가 숨을 내쉬었다. 경외와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였다. "도서관, 수정, 시간의 변화... 이 모든 게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야."


학자의 모습이 안정되며 한 얼굴이 드러났다. 고대이면서도 젊고, 남성이면서도 여성인, 익숙하지만 완전히 낯선 얼굴이었다. "진실을 이해하기 시작하는군요," 그들이 말했다. "하지만 이해는 큰 위험을 불러오지요."


자라가 마리안느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우린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그녀가 주장했다. "시간선이 이미 균열됐어요.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떨림이 방을 뒤흔들었다. 책과 두루마리들이 책장에서 쏟아졌다. 학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당신들의 행동이 이미 사건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군요," 그들이 말했다. "문제는 이거죠: 당신들이 시간의 구원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파괴자가 될 것인가?"


K 박사와 마리안느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운명의 무게가 그들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필요한 일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K 박사가 단호히 말했다.


마리안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의심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자라, 우린 너를 믿을 수 있을까? 이 모든 일에서 네 진짜 목적은 뭐지?"


자라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난 단순한 수습 사서가 아니에요," 그녀가 인정했다. "난 시간 요원이에요. 당신들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도하는 임무를 맡았죠. 하지만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학자가 손을 들자 방이 고요해졌다. "시험이 지금 시작됩니다," 그들이 말했다. "시간과 운명의 위험한 물살을 헤쳐 나갈 지혜를 찾기를."


현실이 물결치며 뒤틀렸다. K 박사와 마리안느, 자라는 첫 번째 시련에 직면했다. 역사 그 자체의 운명이 저울에 걸려 있었다. 방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시간의 에너지로 소용돌이치는 와류가 나타났다.


"서로를 꼭 붙잡아요!" 자라가 소리쳤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절대 놓치지 마세요!"


시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채, K 박사는 결정체의 에너지가 온몸을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 이해를 뛰어넘는 지식과 힘이 그를 채우는 동안, 마리안느는 그의 손을 더욱 굳게 잡았다. 과거와 미래가 그의 의식을 삼키려 할 때조차, 그녀는 그를 현재에 붙들어 두었다.


소용돌이는 점점 더 빠르게 회전했고, 현실은 깨진 유리처럼 그들 주위로 산산이 부서졌다. 혼돈 속에서 K 박사는 무수한 미래의 파편들을 목격했다. 평화로운 세상, 전쟁으로 황폐해진 행성, 눈 깜짝할 사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문명들.


"집중하세요!" 자라의 목소리가 소용돌이를 뚫고 들려왔다. "우리의 목적을 잊지 마세요! 결정체와 시간선은 불가분의 관계예요!"


K 박사의 머릿속은 정신없이 돌아갔다. 압도적인 정보의 홍수를 처리하려 애쓰며 그가 헐떡였다. "이 결정체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야. 훨씬 더 거대한 무언가의 열쇠지."


마리안느의 눈이 커졌다.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집단 무의식이에요," 그녀가 숨을 내쉬었다. "모든 기억과 지식이... 단순히 책이나 두루마리에 담긴 게 아니에요. 그것은 살아있어요. 시간 그 자체를 통해 흐르고 있어요."


자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은 결연한 의지로 가득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균열되고 있어요. 여러 현실로 분열되고 있죠. 우리가 빨리 행동하지 않으면 존재의 실체 자체가 풀려버릴 수도 있어요."


소용돌이가 갑자기 잦아들었다. 그들은 순간과 순간 사이에 존재하는 듯한 빛나는 광활한 공간에 내던져졌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의 파편들이 깨진 거울처럼 그들 주위를 떠다녔다.


"봐," K 박사가 속삭이며 근처의 한 파편을 가리켰다. 그 결정체 같은 표면 안에서 그들은 생기 넘치는 고대 로마의 시장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조각에서는 미래의 실험실이 보였고, 과학자들은 그들의 현재 이해를 훨씬 뛰어넘는 기술을 다루고 있었다.


마리안느가 손을 뻗어 한 파편을 살짝 건드렸다. 그 안에는 익숙한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숨겨진 방에 서 있는 그들 셋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이 버전에서 K 박사의 눈은 이세상의 것이 아닌 빛으로 타오르고 있었고, 자라는 그를 보호하듯 앞에 서서 학자와 맞서고 있었다.


"대체 시간선이에요," 자라가 긴장된 목소리로 설명했다. "모든 선택, 모든 행동이 새로운 가능성의 가지를 만들어내요. 하지만 지금 그 가지들이 충돌하고 있어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방식으로 융합되고 있죠."


K 박사의 머릿속이 그 의미를 이해하려 애썼다. "그럼 지금 우리의 선택이 역사의 전체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거야?"


학자의 목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마치 어디에나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 이상이오. 당신들의 행동이 현실의 본질 자체를 결정할 것이오."


갑자기 파편들 사이의 공간에 균열이 생겼다. 악의에 찬 에너지로 맥동하는 삐뚤빼뚤한 어둠의 선이었다. 마리안느가 충격에 얼굴이 창백해진 채 뒷걸음질 쳤다. "저게 뭐죠?"


자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시간의 균열이에요. 현실의 틈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퍼지고 있어요."


마치 그녀의 말에 소환된 것처럼, 균열이 넓어졌다. 어둠의 촉수가 그들을 향해 뻗어 왔다. K 박사는 강한 끌림을 느꼈다. 그 공허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거의 저항할 수 없는 충동이었다.


"K, 안 돼요!" 마리안느의 목소리가 그 이상한 강박을 깨뜨렸다. 그를 현실로 돌려놓았다. 그녀는 그의 팔을 잡아 다가오는 어둠에서 멀리 끌어당겼다.


자라의 손이 복잡한 패턴으로 움직였다. 시간의 에너지 줄기를 엮어 빛나는 장벽을 만들어냈다. "이 지역을 안정화시켜야 해요.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그녀가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결정체예요. 이 균열들을 봉인할 열쇠예요."


K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 깊숙이 손을 뻗었다. 그의 존재와 하나가 된 결정체 파편의 맥동하는 에너지를 찾아 나섰다. 그 힘과 연결되자 이미지와 감각들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역사를 통틀어 무수한 삶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이었다.


마리안느는 경이로움에 빠져 지켜보았다. K 박사의 몸에서 부드러운 빛이 퍼져 나왔고, 빛줄기가 뻗어 나와 자라의 시간 직조물과 얽혔다. 균열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어둠이 물러났다.


"효과가 있어요," 자라가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희망의 기운이 깃들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나머지 결정체 파편들을 찾아 시간선의 균형을 되찾아야 해요."


균열이 완전히 봉해지자 주변의 빛나던 공간이 서서히 굳어들며 광활하고 초현실적인 도서관의 모습을 드러냈다. 끝없이 뻗은 서가들에는 시선이 닿을 때마다 변화하는 듯한 책들이 가득했다.


학자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이제 그 형체는 좀 더 뚜렷했으나, 여전히 윤곽이 아른거렸다. "첫 관문을 통과했군요," 그들의 영겁의 목소리에 옅은 인정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협회는 크리스탈의 힘을 자신들의 뜻대로 휘어잡으려 하고 있죠. 그리고 시간 너머에 존재하는 다른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현실을 제 의지대로 빚으려 합니다."


마리안느가 한 걸음 나섰다.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기자 본능이 불타올랐다. "그 존재들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나요?"


학자의 표정이 엄숙해졌다. "역사 속에서 그들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시간을 초월한 자들. 운명의 설계자들. 그들은 자유 의지가 현실의 결함이라 믿고, 시간의 흐름이 고정되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K 박사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만약 그들이 성공한다면요?"


"그렇게 되면 모든 존재가 미리 쓰인 각본에 불과해지죠. 성장과 변화, 진정한 자유는 사라집니다," 학자가 대답했다.


자라의 눈빛이 결의에 차 굳어졌다. "그렇게 되도록 두진 않을 거예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학자가 엄숙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준비하세요. 여정의 다음 장이 펼쳐집니다. 명심하세요. 당신들이 찾는 크리스탈 조각들은 단순한 힘의 물체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시간 자체의 파편이죠. 현명하게 다루세요. 모든 행동이 현실들을 가로질러 파문을 일으킬 테니까요."


그 말과 함께 거대한 도서관이 주변에서 사라지기 시작했고, 시간의 에너지가 소용돌이치는 와류로 변했다. K 박사와 마리안느, 자라는 다시 한번 손을 맞잡고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비했다.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가며,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다시는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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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화 : 시공간의 춤 3 24.08.10 7 0 14쪽
26 26화 : 시공간의 춤 2 24.08.09 4 0 15쪽
25 25화 : 시공간의 춤 24.08.09 4 0 15쪽
24 24화 : 기억의 미로 24.08.08 7 0 12쪽
23 23화 : 시간의 파편 2 24.08.07 6 0 14쪽
22 22화 : 시간의 파편 24.08.06 9 0 13쪽
» 21화 : 시간의 장막 너머 24.08.05 9 0 13쪽
20 20화 : 숨겨진 지식의 문 24.08.05 6 0 13쪽
19 19화 : 시간의 수호자들 24.08.05 6 0 12쪽
18 18화 : 시간의 균열 24.07.30 7 0 11쪽
17 17화 : 알렉산드리아의 비밀 24.07.24 9 0 15쪽
16 16편 : K 박사의 위험한 발견 24.07.18 10 0 15쪽
15 15편 : 폐허에 숨겨진 비밀 24.07.18 8 0 16쪽
14 14편 : 오메가7 23.03.16 12 0 14쪽
13 13편 : 점성술사 23.03.15 11 0 15쪽
12 12편 : 비밀클럽 23.03.15 17 0 12쪽
11 11편 : 토레몰리노스 23.03.13 16 0 11쪽
10 10편 : 안나2 23.03.12 16 0 10쪽
9 9편 : 안나1 23.03.12 12 0 11쪽
8 8편 : 흐릿한 행성2 23.03.10 13 0 10쪽
7 7편 : 흐릿한 행성1 23.03.09 18 0 12쪽
6 6편 : 마법시계 23.03.07 19 0 21쪽
5 5편 : 오카방고 삼각주 23.03.04 16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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