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수집하는자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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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추상
작품등록일 :
2023.03.0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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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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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 시간의 파편

DUMMY

자라의 손에 쥐어진 수정이 떨렸다. 그 면들은 수은처럼 일렁이며 어스름한 방 안에 기이한 광채를 드리웠다. K 박사는 매혹과 열정이 뒤섞인 눈빛으로 다가갔다.


"하늘이시여," 그가 속삭였다. 감정에 휩싸여 카스티야 억양이 짙어졌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아름답군. 마치 우주의 파편을 품은 듯해."


마리안은 빛의 가장자리에 머물며 눈썹을 찌푸리고 팔짱을 꼭 끼고 있었다. "아름답긴 하지만 위험천만해. 우린 재앙을 자초하고 있어, K." 그녀의 손가락이 소매를 초조하게 두드렸다.


자라의 시선이 둘 사이를 오갔다. "이것은," 그녀가 낮게 속삭였다. 그 목소리에 담긴 무게감이 그들의 영혼을 짓눌렀다. "시간의 파편 그 자체예요."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피부를 찌르는 듯한 에너지로 가득 찼다. K 박사가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조심해요!" 자라의 목소리가 번개처럼 날카롭게 울렸다. 그는 흠칫 물러섰다. "그 힘은... 변덕스러워요. 한 번의 실수로 당신의 존재 자체가 지워질 수 있어요."


K 박사는 손을 거뒀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수정에 고정되어 있었다. "경이롭군," 그가 숨을 내쉬었다. "그 의미는 엄청나. 모든 역사가 우리 손안에 있다니..."


마리안이 가까이 다가왔다. 회의적인 기색이 그녀의 턱선에 새겨져 있었다. "어떻게 단순한 돌이 기억을 담을 수 있지? 말도 안 돼. 우린 과학자지, 주술사가 아니잖아."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뭐, 대부분은 그렇다고 할까."


자라의 눈이 반짝였고,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스쳤다. "이성이라고요? 우리가 향하는 곳에선 이성 따윈 통하지 않아요, 쏜 박사." 그녀는 눈을 감았고, 그 얼굴은 집중의 가면을 쓴 듯했다.


수정이 한 번, 두 번 맥동했고, 갑자기 방 안이 빛과 소리로 가득 찼다. 반짝이는 환영들이 공중을 채웠다 – 전설적인 전투들, 세상을 바꾼 혁신들, 인류 역사의 광활한 시간 속 승리와 몰락의 순간들.


K 박사가 숨을 들이켰다. 그의 시선이 사방을 휘둘렀다. "놀라워! 마치... 살아있는 인류 경험의 기록 보관소 같아. 우린 문명의 시작을 목도하고 있는 거야!"


마리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의 과학적 두뇌가 눈앞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려 분주히 움직였다. "이게 날조된 게 아니란 걸 어떻게 확신해? 고도의 홀로그램 트릭 같은 거 아닐까?"


"직감을 믿으세요," 자라가 눈을 감은 채 부드럽게 말했다. "진실성을 느껴보세요. 수정은 거짓말을 할 수 없어요 – 그럴 능력이 없거든요."


마치 소환된 것처럼, 소용돌이치는 영상들이 하나로 뭉쳐 고대 이집트의 생생한 광경을 만들어냈다. 햇볕에 달궈진 모래와 이국적인 향신료 냄새가 공기 중에 퍼졌다. 거의 맛볼 수 있을 정도로 실감 났다. K 박사가 손을 뻗어 돌에 정교하게 상형문자를 새기고 있는 장인의 홀로그램을 통과했다.


"먼지 맛이 거의 느껴지는 것 같아," 그가 경이로움에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치 우리가 정말 그곳에 있는 것 같아. 느껴지나, 마리안? 고대의 무게가?"


마리안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경험과 현실에 대한 이해를 조화시키려 애썼다. "너무 압도적이야.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물리학에 대해, 시간의 본질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에 위배돼."


자라는 눈을 뜨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투사된 장면들이 희미해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수정은 생각과 의도에 반응해요. 인류의 집단 무의식으로 통하는 통로예요 – 모든 기억, 모든 경험, 있었거나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요."


K 박사의 눈이 거의 광기 어린 흥분으로 빛났다. "가능성을 생각해 봐! 우리는 역사의 비밀을, 인간 의식 그 자체를 풀어낼 수 있어! 우리는--"


"욕망을 조심하세요," 자라가 날카로운 어조로 끼어들었다. "오래 노출되면 기억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져요. 많은 이들이 그 깊이에 빠져 과거와 현재, 잠재적 미래를 구분하지 못하게 됐죠."


투영된 영상이 바뀌어 전쟁과 기근, 파괴의 장면들이 번쩍였다. 마리안은 인류의 고통이 자신을 짓누르는 것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아름다움과 경이로움만이 전부는 아니에요," 그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여기엔 어둠도 있어요.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


K 박사의 눈빛은 수정에 집착적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이것으로 우리는 역사를 다시 쓰고, 미래를 창조할 수 있어! 전쟁을 막고, 질병을 싹부터 잘라낼 수 있다고!"


자라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게 바로 우리가 막으려는 거예요, 박사님. 수정의 힘은 한 사람이, 아니 소수의 손에 들어가선 안 돼요. 신의 역할을 자처하면 반드시 비극으로 끝나죠."


마리안느는 K 박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라 말이 맞아요, K. 이건 우리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이에요. 신중해야 해요. 알렉산드리아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세요?"


K 박사는 정신을 차리는 듯 눈을 깜빡였다. "물론 네 말이 옳아. 하지만 연구하고 배우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인류에게 줄 수 있는 잠재적 이익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야."


자라는 망설이며 갈등의 빛을 드러냈다. "방법이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엄청난 위험이 따르죠. 현실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그런 위험 말이에요."


수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맥동하며 방 안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마리안느는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한기를 느꼈다.


"어떤 종류의 위험인가요?" 그녀가 물었다.


자라의 눈이 그녀와 마주쳤다. "시공간의 틀 자체를 풀어헤칠 수 있는 그런 위험이에요. 그런 짐을 질 준비가 되어 있나요?"


K 박사가 눈에 불꽃을 띠며 똑바로 섰다. "지식을 추구하고 인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면? 당연하지. 이제 와서 물러설 순 없어."


마리안느는 갈등했다. "난... 확신이 서지 않아.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 같아. 일단 이 길로 들어서면..."


자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 망설임, 결과에 대한 인식 - 그게 바로 당신들을 균형 잡히게 할 거예요." 그녀가 수정을 내밀었다. "자, 어떻게 하시겠어요?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 건가요, 아니면 돌아서서 시간의 비밀을 그대로 묻어둘 건가요?"


방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인류의 운명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은 채 그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K 박사가 손을 뻗었다. "우린 이미 너무 많은 걸 봤어. 그냥 돌아설 순 없어. 협회가 이미 우리를 쫓고 있어.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그들이 이 힘으로 무얼 할지 누가 알겠어?"


마리안느는 입술을 깨물며 온갖 가능성을 저울질했다. "하지만 우리가 가져가면, 우린 표적이 돼요. 협회뿐만 아니라 이걸 아는 모든 이들의 표적이 되는 거죠. 그런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나요?"


자라의 시선은 흔들림이 없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순 없어요. 스페인에서 그 패턴을 발견한 순간부터, 당신들의 운명은 이미 수정과 얽혀버렸으니까요."


마리안느는 가능한 미래의 단편들을 보았다. 어떤 것은 경이와 진보로 빛나고 있었고, 다른 것들은 폭정과 혼돈에 빠져 있었다.


"두려움에 휘둘려선 안 돼," K 박사가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에게 더 밝은 미래를 만들 힘이 있다면, 그걸 시도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마리안느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당신 말이 맞아요. 하지만 우리 함께 해요, K. 혼자서 영웅 행세하는 건 없어요. 과거에 빠져들지도 말고요. 우린 서로를 현재에 묶어둬야 해요."


자라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결정된 거군요."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수정이 그녀의 손바닥 바로 위에서 떠올랐다. "두 분 다 손을 올려놓으세요. 수정의 에너지가 흐르게 하세요. 시간의 강과 연결되는 거예요."


K 박사와 마리안느는 긴장과 흥분이 교차하는 눈빛을 나누며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그들의 손끝이 수정의 매끄러운 표면에 닿는 순간, 세상이 빛과 감각의 소용돌이로 변모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데 어우러져 이미지와 감정의 불꽃놀이를 펼쳤다. 그들은 문명의 흥망성쇠를 목격하고, 무수한 생명체들의 영광과 비애를 느꼈다. 그 모든 것 아래에는 현실의 본질에 새겨진 거대한 설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환상이 물러나고 그들이 숨을 고르며 혼란에 빠져있을 때, 자라의 목소리가 정적을 가르며 들려왔다.


"시간을 초월한 세계에 온 걸 환영해요. 당신들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에요."


K 박사는 뒤로 비틀거리며 멍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나... 모든 걸 봤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로마의 멸망, 르네상스까지... 너무 압도적이야."


마리안느는 그를 붙잡으며 자신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려 애썼다. "정신 차려요, K. 우리의 약속을 기억해요. 현재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해요."


자라는 표정을 감춘 채 그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당신들이 경험한 건 수정의 힘의 극히 일부에 불과해요. 자아를 잃지 않고 역사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다루려면 시간이 걸릴 거예요."


주변의 공기가 일렁이며 현실이 파동쳤다. 마치 여러 겹의 시간층을 동시에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학자들, 중세의 연금술사들, 미래의 과학자들이 흐릿한 모습으로 방 안을 오가며 현기증 나는 시간의 춤을 추고 있었다.


K 박사의 눈이 다시 흥분으로 빛났다. "저걸 봐요! 과거와 현재, 미래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어. 우리는 시간을 초월해 소통할 수 있을 거야!"


마리안느는 눈살을 찌푸리며 과학자로서의 이성으로 목격한 광경을 이해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아는 모든 인과율을 위반해요. 그로 인한 역설만 해도..."


그녀의 말은 방을 뒤흔드는 격렬한 진동에 끊겼다. 자라의 손에 든 수정이 눈부신 빛을 내뿜었고, 한순간 현실 자체가 갈라지는 듯했다.


"무슨 일이죠?" 마리안느가 귀청이 터질 듯한 굉음 속에서 외쳤다.


자라의 표정이 굳어졌다. "협회예요. 우리를 찾아냈어요. 우리가 시간장을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그들이 강제로 진입하려 하고 있어요."


K 박사의 표정이 단단해졌다. "그들이 수정을 얻게 해선 안 돼. 그들의 의도를 알잖아."


방의 벽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시간의 에너지가 거미줄처럼 돌 위를 가로질렀다. 균열 사이로 무기를 든 채 검은 제복을 입은 가면 쓴 인물들이 보였다.


자라가 수정을 그들에게 내밀었다. "가져가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걸 지켜야 해요. 역사의 운명이 이것에 달려 있어요."


마리안느는 망설이며 빛나는 유물 위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당신은요?"


자라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스쳤다. "내 역할은 끝나가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들의 역할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에요."


마지막으로 눈부신 섬광과 함께 수정이 산산조각 났다. 결정화된 시간의 파편들이 K 박사와 마리안느, 자라의 몸에 박혔고, 그들의 피부는 이계의 에너지로 빛났다.


방이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 현실 자체가 풀려나가는 듯했다. 세상이 어둠에 잠기기 전 마리안느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혼돈 속에서 우뚝 선 자라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순수한 의지의 힘으로 협회를 저지하고 있었다.


어스름이 내리고 정적이 감돌았다.


마리안느가 눈을 뜨자 눈부신 햇살 아래 거리에 누운 자신을 발견했다. 향신료와 바다 내음이 코끝을 간질였다. 옆에서 K 박사가 신음하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여긴... 대체 어느 시대지?" 그가 지중해의 찬란한 태양을 향해 눈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마리안느의 눈이 커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하얀 건물들, 좁은 골목길, 그리고 멀리 고대의 등대가 선명히 보였다.


"K," 그녀가 경외와 불안이 뒤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린 지금 고대 알렉산드리아에 있어요."


이 난처한 상황의 의미를 깨닫자, 그들의 시간 여행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흩어진 수정 조각을 찾는 여정은 그들을 역사 속으로 이끌 것이고, 협회는 끈질기게 그들의 뒤를 쫓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진 세계에서 방향을 잡고, 시간이라는 위험한 물살을 건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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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화 : 미래의 그림자 24.08.13 10 0 14쪽
28 28화 : 시공간의 춤 4 24.08.10 7 0 16쪽
27 27화 : 시공간의 춤 3 24.08.10 7 0 14쪽
26 26화 : 시공간의 춤 2 24.08.09 4 0 15쪽
25 25화 : 시공간의 춤 24.08.09 4 0 15쪽
24 24화 : 기억의 미로 24.08.08 7 0 12쪽
23 23화 : 시간의 파편 2 24.08.07 6 0 14쪽
» 22화 : 시간의 파편 24.08.06 9 0 13쪽
21 21화 : 시간의 장막 너머 24.08.05 8 0 13쪽
20 20화 : 숨겨진 지식의 문 24.08.05 6 0 13쪽
19 19화 : 시간의 수호자들 24.08.05 5 0 12쪽
18 18화 : 시간의 균열 24.07.30 6 0 11쪽
17 17화 : 알렉산드리아의 비밀 24.07.24 8 0 15쪽
16 16편 : K 박사의 위험한 발견 24.07.18 10 0 15쪽
15 15편 : 폐허에 숨겨진 비밀 24.07.18 8 0 16쪽
14 14편 : 오메가7 23.03.16 1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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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편 : 비밀클럽 23.03.15 17 0 12쪽
11 11편 : 토레몰리노스 23.03.13 16 0 11쪽
10 10편 : 안나2 23.03.12 15 0 10쪽
9 9편 : 안나1 23.03.12 12 0 11쪽
8 8편 : 흐릿한 행성2 23.03.10 13 0 10쪽
7 7편 : 흐릿한 행성1 23.03.09 17 0 12쪽
6 6편 : 마법시계 23.03.07 18 0 21쪽
5 5편 : 오카방고 삼각주 23.03.04 16 0 9쪽
4 4편 : 단절된 남자 23.03.04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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