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수집하는자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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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추상
작품등록일 :
2023.03.0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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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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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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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 시간의 균열

DUMMY

양자의 핵심이 이계의 빛을 발하며 맥동했다. 그 진동은 광란의 정점으로 치솟았다. K 박사의 손가락이 콘솔 위를 날았고, 그의 눈은 마리안과 마주쳤다.


"마지막으로 다시 생각해 볼 시간이야," 그가 속삭였다. 입술에 미소가 번졌다. "이 장치를 가동하면..."


마리안의 눈빛이 굳건해졌고, 그녀의 목소리는 비단결 같았다. "이제 와서 주저할 순 없어요, K. 수수께끼 같은 환영들, 밤의 꿈들... 알렉산드리아가 우리를 부르고 있어요."


K 박사는 침을 삼켰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긴장감이 그의 목을 조였다. "공허 속으로 뛰어드는 거야."


그가 장치를 작동시켰다.


현실이 산산조각 났다.


그들 주변의 세계가 부서진 시간선들의 불꽃놀이로 녹아내렸다. 마리안은 K 박사의 손을 꽉 잡았고, 그녀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했다. "K! 무한을 보고 있어요... 무한을!"


"꽉 잡아!" 그가 무너지는 시대의 화음을 뚫고 외쳤다. "시간의 축에 가까워지고 있어!"


지진과 같은 균열과 함께, 그들은 햇살 가득한 대로에 나타났다. 향신료와 소금기 냄새가 공기를 채웠지만, 뭔가가... 어긋나 있었다.


마리안은 눈을 깜빡이며 눈앞의 불가능한 광경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K, 이게 보여요?"


K 박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과학자적 사고가 흔들렸다. "마치 서로 다른 시대가... 뒤섞인 것 같아."


로마 기둥이 중세의 아치길 옆에 당당히 서 있었다. 토가를 입은 사람들이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한 복장을 한 이들 옆을 지나갔고, 모두가 이 시간의 혼란을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놀라워," K 박사가 중얼거리며 장치를 꺼냈다. 화면에는 기존 물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치들이 깜빡였다. "시간 이동이 내 예상을 뛰어넘었어. 우리는—"


"K," 마리안이 낮은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었다. 그녀는 근처의 골목을 가리켰다. "저 고양이 눈을 봐요."


고양이의 시선은 불편할 정도로 지적이었고, 꼬리는 마치 그들을 알아본 듯 움직였다. 그들이 지켜보는 동안, 고양이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우아한 이집트 마우와 초라한 현대의 길고양이 사이를 오갔다.


K 박사의 눈이 커졌다. "우리가 완전히 과거에 있는 게 아니야," 그가 추론했다. "우리는 시대 사이에 매달려 있어, 일종의... 시간의 병풍 속에 있는 거지."


마리안은 따뜻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몸을 떨었다. "K, 우리가 무엇을 풀어놓은 거죠?"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림자 같은 형체들이 대로 저편에서 모여들었다. 그들의 형태는 안개처럼 흐릿하고 변화무쌍했지만, 그들의 주의는 분명 시간 여행자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서둘러!" K 박사가 마리안의 팔을 잡으며 속삭였다. "도서관은... 이쪽에 있을 거야!"


그들은 뒤틀린 거리를 통해 도망쳤다. 건축물들은 여러 시대와 양식이 뒤섞인 혼란 그 자체였다. 오래전 사라진 언어들의 속삭임이 울려 퍼졌고, 수세기 후에나 말해질 대화의 파편들과 뒤섞였다.


"저들은 누구죠?" 마리안느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무엇을 원하는 걸까요?"


박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알 수 없어. 하지만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려는 건 아닐 거야."


모퉁이를 돌다 학자 차림의 남자와 부딪혔다. 그의 눈이 둘을 알아보고 커졌지만, 놀란 기색은 없었다.


"당신들이 이곳에 온 것은 현명하지 못했소," 학자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의 실이 이미 풀리고 있소. 당신들의 도착이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소."


박사가 한 걸음 나섰다. 조심스러움보다는 과학적 호기심이 앞섰다. "우리를 아시는 건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학자의 모습이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젊음과 노년을 오갔다. "우리는 모든 시대의 지식을 수호하는 자들이오. 당신들의 도착은 예견됐지만, 이런 식으로, 이 시점에 올 줄은 몰랐소."


마리안느가 끼어들었다. 그녀의 직감이 학자의 말에서 긴박함을 감지했다. "우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대해 알고 싶어요. 수세기 동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에 대해서요."


학자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그 수수께끼는 열쇠요. 하지만 열쇠는 닫혀 있어야 할 문을 열 수도 있소. 그러나 당신들의 여정은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왔소." 그가 자체적으로 뒤틀리는 듯한 좁은 통로를 가리켰다. "이 길을 따라가시오. 목적지로 갈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명심하시오 - 지식의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비쌀 수 있소."


그들이 통로로 향하자 학자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려왔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강이 아니오. 바다요. 당신들은 그 광대함 속의 물방울에 불과하오."


통로가 눈앞에 펼쳐졌고,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현실이 왜곡되고 뒤틀렸다. 박사와 마리안느는 결의에 찬 눈빛을 교환했지만, 그 속에 두려움도 스며들어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박사가 속삭였다. "우린 함께 맞설 거야."


마리안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꽉 잡았다. "함께요. 영원히."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그들은 구불구불한 통로로 발을 내디뎠다. 알렉산드리아의 시간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면서 주변 세계가 다시 한 번 녹아내렸다.


통로의 벽이 숨을 쉬는 듯했고, 이세상의 것이 아닌 에너지로 맥동했다. 수많은 시대의 대화 파편들이 그들 주위로 속삭였다.


"...불길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구할 수 있는 건 다 구해야 해..."


"...히파티아에게 말해. 그녀의 계산이 정확했다고. 천체의..."


"...맹세코 내가 봤어. 어떤 사람보다도 뛰어난 사고를 할 수 있는 기계를..."


박사의 눈이 경이와 점점 커지는 집착으로 반짝였다. "들리나, 마리안느? 세월의 비밀이 우리를 감싸고 있어!"


하지만 마리안느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느꼈다. "박사님, 뭔가 이상해요. 마치...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는 것 같아요."


마치 그 말에 대한 응답처럼, 반짝이는 형체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아까 만났던 학자였지만, 이번엔 그의 모습이 반투명했고 실체와 허상 사이를 오갔다.


"알렉산드리아의 수수께끼를 풀려 하시는군요," 학자가 신비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명심하세요. 지식엔 대가가 따르죠. 그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셨나요?"


K 박사가 열정에 차 대답했다. "어떤 대가라도, 진실을 얻는다면 값진 교환이지요!"


마리안느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K, 잠깐만요! 우리가 무엇과 마주할지 모른다고요."


학자의 눈빛이 그들의 영혼을 꿰뚫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이 문턱을 넘으면 돌이킬 수 없어요. 여러분이 발견한 패턴들, 괴롭히는 꿈들... 그것들은 인류 의식을 아우르는 거대한 교향곡의 서막에 불과합니다."


그가 갑자기 나타난 문을 가리켰다. 문에서는 기이한 빛이 새어 나왔고, 그 너머에는 불가능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학자가 경고했다. "이 문을 지나면 알렉산드리아의 진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하지만 얻게 될 지식은 역사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를 뒤흔들 수도 있습니다."


K 박사와 마리안느는 계시의 문턱에 서 있었고, 수세기의 무게가 그들을 짓눌렀다. 그들의 선택은 자신들의 운명뿐 아니라 시간의 본질 자체를 바꿀 힘을 지니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리안느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K 박사는 그녀의 손을 더욱 강하게 잡았다. "우리는 답을 찾기 위해 여기까지 왔어. 저 너머에 무엇이 있든... 함께 맞서자."


굳은 결의를 담아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은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었고, 문은 우주의 한 장을 넘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닫혔다.


그들이 들어선 알렉산드리아는 상상과 달랐다. 과거, 현재, 미래가 지식과 무한한 가능성의 소용돌이 속에서 융합된 특별한 공간이었다. 그 중심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지닌 수정체가 맥동하고 있었다. 인류의 집단무의식을 여는 열쇠였다.


수정체에 다가가자 그 표면이 액체 별빛처럼 일렁였다. K 박사와 마리안느는 그 면에 비친 자신들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모습을 보았다. 의식의 탄생부터 이어진 인류 경험의 총체였다.


"너무나... 경이롭네요," 마리안느가 숨을 내쉬며 손을 뻗었다.


K 박사가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조심해! 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


그 순간 수정체에서 빛줄기가 뻗어 나와 그들의 팔과 마음, 영혼을 감쌌다.


마리안느는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의식에 이미지들이 밀려들었다. 불타는 도서관, 히파티아의 마지막 숨결, 도시 지하 묘지에 숨겨진 비밀들...


K 박사의 눈이 뒤로 넘어갔고, 그의 몸은 수천 년의 잊혀진 지식을 받아들이며 굳어졌다. "보이니치 필사본... 안티키테라 기계장치... 이제 모든 게 명확해져..."


수정체가 더욱 강렬하게 맥동하며 그들을 끌어당겼다. 마리안느는 그 무한한 지혜에 굴복하고 싶으면서도 저항했다.


"K!" 그녀가 자아를 지키려 애쓰며 외쳤다. "우리... 벗어나야 해요!"


하지만 K 박사는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수정체의 에너지가 그를 관통하는 동안 그의 얼굴은 환희에 찼다. "알겠어, 마리안느? 이것이 바로 우리가 찾던 거야! 모든 답이 우리 손끝에 있어!"


마리안느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그들이 마주한 진정한 위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육체적 위협을 넘어, 그들의 존재 자체가 위태로워졌다. 그녀는 눈을 감고 K의 손을 잡은 감촉과 자신을 이루는 기억들에 집중했다.


"K," 그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 목소리가 혼돈을 가르며 울렸다. "우리가 이 여정을 시작한 이유를 기억해요. 단순한 지식이 아닌 이해를 위해서죠. 우리 자신을 잃는다면 모든 것이 헛될 거예요."


찰나의 순간, 그녀의 말이 그에게 닿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하지만 서서히 K 박사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왔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진정으로 그녀를 보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강인한 의지로 그들은 수정의 포옹에서 빠져나왔다. 그 순간 수정의 완벽한 표면에 균열이 생겼다.


학자가 그들 곁에 나타났다. 그의 표정은 경외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거요? 봉인이 깨졌소!"


균열은 점점 벌어져 거미줄처럼 수정 표면을 뒤덮었다. 빛이 틈새로 쏟아져 나와 방 전체를 눈부신 광채로 채웠다.


"도망치시오!" 학자가 간곡히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시간의 울림과 함께 수정이 산산조각 났다. 시간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분출되어 K 박사와 마리안느, 그리고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의식이 흐려지는 순간, 마리안느는 혼돈 속에서 나타난 세 번째 인물을 희미하게 보았다. 전기 파란색 에너지로 눈이 번쩍이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어둠이 그들을 덮쳤고, 그들이 알던 세계는 허무 속으로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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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화 : 시공간의 춤 24.08.09 4 0 15쪽
24 24화 : 기억의 미로 24.08.08 7 0 12쪽
23 23화 : 시간의 파편 2 24.08.07 6 0 14쪽
22 22화 : 시간의 파편 24.08.06 9 0 13쪽
21 21화 : 시간의 장막 너머 24.08.05 8 0 13쪽
20 20화 : 숨겨진 지식의 문 24.08.05 6 0 13쪽
19 19화 : 시간의 수호자들 24.08.05 5 0 12쪽
» 18화 : 시간의 균열 24.07.30 7 0 11쪽
17 17화 : 알렉산드리아의 비밀 24.07.24 8 0 15쪽
16 16편 : K 박사의 위험한 발견 24.07.18 10 0 15쪽
15 15편 : 폐허에 숨겨진 비밀 24.07.18 8 0 16쪽
14 14편 : 오메가7 23.03.16 12 0 14쪽
13 13편 : 점성술사 23.03.15 10 0 15쪽
12 12편 : 비밀클럽 23.03.15 17 0 12쪽
11 11편 : 토레몰리노스 23.03.13 16 0 11쪽
10 10편 : 안나2 23.03.12 15 0 10쪽
9 9편 : 안나1 23.03.12 12 0 11쪽
8 8편 : 흐릿한 행성2 23.03.10 13 0 10쪽
7 7편 : 흐릿한 행성1 23.03.09 17 0 12쪽
6 6편 : 마법시계 23.03.07 18 0 21쪽
5 5편 : 오카방고 삼각주 23.03.04 16 0 9쪽
4 4편 : 단절된 남자 23.03.04 1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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