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 걸린 공자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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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3.04.22 14:23
최근연재일 :
2023.08.12 22: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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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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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회수하지 못한 떡밥 (1)

DUMMY

카일 자르온의 몸에 빙의하고 꼬박 1주일이 지났다.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다.

그렇다면 받아들여야지.


"공자님. 왜 그렇게 거울을 보세요."


"이자벨라가 볼 때 내 머리 어때?"


"아직 자르긴 이른 거 같아요."


"아니 그런 거 말고. 어디가 비어 보인다거나 그런 거 없어?"


"도련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니까. 빨리 앉으세요."


이자벨라의 검은 머릿결은 비단결 같고 탄력적이었다.

평소에는 머리를 뒤로 바짝 묶고 다녔는데 머리카락이 저렇게 붙어 있어도 숨을 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빽빽하게 나 있었다.

그런 그녀이기에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거다.

이래서 풍성충들이란.


"어제 자르온의 가계에 대해 말씀드렸죠? 듣고 기억 돌아온 거 있어요?"


"아니.“


이자벨라에게 기억 상실을 핑계로 이것저것 질문하며 이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물론 지금도 착실히 진행 중인 상태.


"그러면 오늘은 무슨 얘길 해드릴까요?“


"첫째 에드가 자르온 있잖아.“


"네.”


"혹시 머리가 많이 빠졌나?"


이자벨라가 왜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왜 하냐며 나를 꾸짖었다.

질문에 대한 답은 본인도 모른다고 했다.

내 옆에만 붙어 있어서 다른 사람을 볼 틈이 없다나?


"다른 질문은요?"


"자르온가가 몰락하고 있는 이유."


이자벨라가 나를 보며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난 괜찮으니까 아는 거, 주워들은 거, 뜬 소문 다 말해줘. 그리고 이자벨라. 진지하게 묻는 건데 진짜 머리 어디 비어 보이고 그러지 않아?"


"시작할게요."


자르온의 초대 가주 글라타르 자르온은 글리셰 대륙에 있는 강대국, 신성 왕국 헬리온을 세운 개국공신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어디든 잘나가는 집은 자식들이 말썽이었다.

초대 가주와는 달리 후대 가주들은 사치와 향락으로 재산을 탕진했고 이걸 갚아 보겠다고 도박에 손을 대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래서 내 아버지 샤를 자르온이 가주가 되고 알짜배기 땅들을 영지로 대신 갚았다?"


"그런 셈이죠."


"하~ 부자는 망해도 3대까지 간다는데 나는 하필 4대에 태어났네."


"도련님! 쉿!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정작 몰락한 가문의 자제는 바로 내 앞에 있었다.

카일을 모신 지 5년이 된 시녀 이자벨라 브라운.

브라운 남작가가 몰락하자 이를 딱하게 여긴 카일의 친모가 브라운가의 생계를 챙겨주기 위해 이자벨라를 데려왔다고 했다.


"오늘까진 먹기 싫어도 약 꼭 챙겨 드시고요!"


이자벨라는 한 살 터울의 동생이 있는데 나를 보면 동생이 생각난다며 밥에 고기 한 점이라도 늘 더 챙겨주려고 노력했다.


"아버지는? 내가 깨어났다고 얘기하지 않았나?"


"3번이나 시녀장님을 통해 전해드렸는데···."


"그래. 얼굴 볼 면목이 없겠지."


샤를 자르온이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진 인간이라면 절대 카일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 몸에 빙의하는 날, 카일 자르온은 죽었어야 했다.


[난 죽어서도 카일의 얼굴을 볼 수 없네. 그 아이의 목숨을 대가로 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


독자 성준오의 입장에서 보면 샤를의 선택은 옳았다. 가문은 점점 몰락해가고 새로 얻은 공비 가문은 호시탐탐 공작성을 노렸다. 초대 가주의 헌신이라 불리는 샤를이 태어났지만 세가 너무 기울었다. 재능이 있지만 지원해줄 여력이 안 되는 상황이랄까?


[시간을 앞당겨 8 서클에 도달했네. 카일의 목숨과 재능을 대가로. 날 경멸해도 좋고, 모욕해도 좋네. 하지만 난 공작가의 가주일세. 내 아들 하나의 목숨으로 공작가의 이름과 식솔들을 구할 수 있다면 싼 거지.]


샤를의 존재는 자르온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초석이자 공비 세력의 계획을 좌초시킬 암초였다.

공비 세력은 호시탐탐 공작가를 노렸고 시간이 부족했던 샤를은 결국 가문에 위기가 찾아오면 사용하라는 초대 가주의 비기를 사용했던 것.


똑똑똑.


"오라버니! 괜찮아? 일어났어? 오라버니!"


문 너머로 노크 소리와 함께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레이첼 공녀님이에요."


카일의 생모가 죽으며 자르온가의 안주인을 차지한 새 공비와 샤를의 사이에서 태어난 넷째와 막내.

레이첼은 그 중의 막내였다.


"오늘도 그냥 돌려보낼까요?"


"아니. 들어오라고 해."


이자벨라가 문을 열자 볼살이 토실토실한 예쁜 여자아이가 보였다.

샤를 자르온보다 공비의 피를 물려받은 듯 백금발 머리에 바다를 머금은 푸른 눈을 갖고 있었다.


"오라버니?! 괜찮아?! 레이첼이 얼마나 걱정했는데. 으앙!!"


이자벨라가 문을 열자마자 침대에 누워있던 내 품에 달려와 눈물 콧물을 다 쏟아내는 레이첼.

내가 빙의하기 전 생모의 죽음으로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있던 카일의 유일한 친구였다고 한다.


"왜~ 오자마자 울어. 오라버니 봤는데 웃어야지."


후계 구도를 방어하기 위해 넷째 동생과 척을 진 장남과 차남.

그런 장남과 차남을 뛰어넘기 위해 죽어라 노력하는 넷째.

그렇기에 가문 정쟁에서 떨어진 셋째와 막내가 가까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공녀님. 그렇게 갑자기 달려드시면 안 돼요. 공자님도 회복 중이라서."


"괜찮아. 이자벨라."


"이제 아프면 안 돼! 레이첼이 호 해줄까?"


"괜찮아. 레이첼이 찾아와서 다 나은 거 같은데!"


"진짜?!"


레이첼이 다시 한번 내 품에 폭 안긴다.

그녀의 투명하고 맑은 눈동자를 보자 왜 삼남인 카일이 재물로 선택됐는지 알 거 같았다.

후계를 이어갈 장자와 힘없는 장자를 지키기 위한 둘째. 새 공비의 친가인 백작가의 위세를 등에 업은 넷째. 그렇다고 이 작고 소중한 막내를 제물로 삼자고?


"암~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암."


"뭐가?"


"아니야. 레이첼 오늘은 뭐 하고 놀까?"


"정원으로 산책가자!"


레이첼의 작은 손이 내 손을 이끈다.

저 조그마한 몸에서 어찌 이리 큰 힘이 나오는지. 레이첼의 작은 손을 보며 나는 느꼈다.


천국은 이곳에 있었다.


***


식당 내부.


"흠~흠~흠~"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스테이크를 오물거리는 레이첼.


"......"

"......"


말없이 음식을 씹는 공비 아들레인과 넷째 아들 율리안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다.


"제 진짜 오라비가 여깄는데 팔푼이같이 쪼르르 삼남에게 달려가는 꼴이라니."


율리안이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레이첼을 노려보자


"메~~~“


레이첼이 혀를 빼꼼 내밀며 맞받아쳤다.


"놔두려무나. 이제 고작 4살인데."


올해 34살이지만 20대 후반으로 보일 만큼 젊고 아름답게 보이는 아들레인이 율리안의 손을 따듯하게 잡아줬다.


"그래봤자 방구석에만 틀어 박혀있던 소심한 놈이다. 놈은 우리 위협이 못 돼. 중요한 건 아비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첫째와 그런 첫째를 위해 기꺼이 충신으로 살아가는 둘째지."


교양 있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와는 달리 한없이 차가운 내용. 하지만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아들에게만은 한없이 따듯한 눈빛을 보내는 아들레인.


"호위 기사에게 들었다. 검에 재능이 있는 거 같다고."


"둘째 형님에 비하면 한참 멀었습니다."


"알폰소와 너는 7살 차이다. 알폰소도 그 나이에 너처럼 검을 잘 다루진 못했어."


"첫째 둘째 형님이 이번 원정에 아버지와 함께 출진한다고 들었습니다. 두 형님이 그곳에서 공적을 쌓는다면 제가 검에 오러를 담는다 한들 아버지가 절 보기나 하겠습니까?"


"공적이란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공적을 쌓은들 그건 전장에서 살아남았을 때 일이란다."


아들레인의 말에 율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샤를 자르온이 전장에 나갔다 돌아올 때면 기사의 수가 반절은 사라진 채 돌아온 때도 있었으니까.


"조급할 필요 없다. 뒤에 든든한 어미의 집안이 있는데 뭘 그리 조급해한단 말이냐."


"그치만."


"지금 중요한 건 앞서가는 게 아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준비된 능력이지. 조급할 필요 없단다. 우선은 차근차근 실력을 쌓으려무나."


"알겠습니다."


아들레인이 애정 어린 손으로 율리안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 아들. 이 어미가 반드시 너를 공작가 주인의 자리에 앉힐 테니. 너는 그저 이 어미가 시키는 대로, 깔아놓은 길을 걸으며 준비된 과일만 잘 따먹으면 된다.’’


샤를 자르온이 초대가 남긴 비급서에 손을 댔다는 얘긴 들었다.

그렇게 얻은 힘으로 에드가와 알폰소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계획도 알고 있었다.


‘선택 한번이 당신을 이렇게 벼랑 끝으로 모는군요. 그날 밤 전 공비가 아닌 저를 선택했다면 이렇게 힘들게 발악하지도 않았을 텐데.’


***


유전으로 빠지는 건 막을 수 없다.

그건 신이 코딩한 바꿀 수 없는 시스템과 같은 것.

그렇다면 내가 탈모를 관리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바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흐흐흐~ 너무 부드럽다~ 요 볼살 봐."


레이첼은 내 스트레스를 없애주는 인간 비타민, 청량음료 그 자체였다.


"그만 만져! 볼 빨개졌잖아!"


볼을 구겼을 때 톡 튀어나오는 입술.

갓 나온 빵처럼 빵빵한 볼.

그런 레이첼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나온다.

그렇게 오늘도 해가 떨어지는 줄 모르고 놀고 있을 때 행복의 종말을 알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어. 밥을 먹을 시간이다. 오라버니. 레이첼 내일 또 올게. 내일은 숨바꼭질하자!"


"그래~ 기다릴게."


"가자. 레이첼."


나와 엮이기 싫다는 듯 문을 등지고 용건만 말하는 율리안.

저... 저... 어린놈이 벌써부터 싹수없이.

나도 이제 꼰대가 다 돼가나 보다.

12살밖에 안 된 녀석의 눈빛이 저리도 표독해서야.


"끼익. 탁."


인사 한마디 없이 문을 닫고 떠나는 율리안.

율리안의 태도는 이해할 수 있다.

공비 때문일 터.

저 나이 때는 엄마의 말이 절대적이다.

그러니 전 공비의 배 속에서 낳은 형님들은 멀리하라 들었겠지.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소설 속 샤를 자르온 공작가는 주인공의 딜레마를 자극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마왕의 최측근인 발록을 토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 없던 용사가 발록을 추격하고 있던 때,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자르온가가 마물들에게 습격당했습니다. 선택하셔야 합니다. 구원과 토벌 둘 중 하나를]


내가 성년이 되고 1년 뒤.

자르온 공작가는 멸망한다.


"이번엔 내가 막는다."



이 집에는 내 모발만큼 소중한, 레이첼과 이자벨라가 있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선 힘을 길러야 한다. 요 며칠, 그 습격을 대비할 방법이 없을까 골머리를 앓았다.

그리고 마침내 떠올렸다!


"석영아. 네가 멍청이라 다행이야."


-야. 너 이 떡밥 회수 안 하냐? 나중에 주인공 각성할 때 쓴다며.

-뭐? 아 맞다. 씨발! 근데 이미 각성해 버렸는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고, 아직 하늘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미리 대비하면 그만이다.


"이자벨라."


"네. 공자님."


이자벨라가 땀을 뻘뻘 흘리며 레이첼이 어지른 방을 청소하고 있었다.

그 잠깐 사이에 눈 밑 다크서클이 찐해졌다.

역시 육아란 힘든 일이다.


"우리 같이 바람이나 쐴까?"


작가의 역량 부족으로 회차 속 어딘가에 묻혀버린 비운의 떡밥.

그 떡밥.

이번에 내가 회수해 아주 야무지게 쓸 예정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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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 걸린 공자로 환생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3 에필로그 +1 23.08.12 231 5 14쪽
122 돌아가자 23.08.11 215 4 12쪽
121 절공(切空) 23.08.10 211 4 12쪽
120 각자의 역할 (6) 23.08.09 189 4 12쪽
119 각자의 역할 (5) 23.08.08 186 4 11쪽
118 각자의 역할 (4) 23.08.07 192 4 12쪽
117 각자의 역할 (3) 23.08.06 196 5 13쪽
116 각자의 역할 (2) 23.08.05 195 5 13쪽
115 각자의 역할 (1) 23.08.04 194 4 12쪽
114 돌격 23.08.03 198 4 12쪽
113 약속 23.08.02 203 5 13쪽
112 스승과 제자 (5) 23.08.01 204 4 12쪽
111 스승과 제자 (4) 23.07.31 204 4 12쪽
110 스승과 제자 (3) 23.07.30 199 4 12쪽
109 스승과 제자 (2) 23.07.29 193 4 12쪽
108 스승과 제자 (1) 23.07.28 202 4 13쪽
107 영웅 (4) 23.07.27 204 4 13쪽
106 영웅 (3) 23.07.26 200 4 12쪽
105 영웅 (2) 23.07.25 207 4 13쪽
104 영웅 (1) 23.07.24 212 4 12쪽
103 시험 (4) 23.07.23 204 4 13쪽
102 시험 (3) 23.07.22 199 4 12쪽
101 시험 (2) 23.07.21 205 4 12쪽
100 시험 (1) 23.07.20 216 4 13쪽
99 너라는 변수가 (4) 23.07.19 223 3 13쪽
98 너라는 변수가 (3) 23.07.18 217 4 12쪽
97 너라는 변수가 (2) 23.07.17 220 3 12쪽
96 너라는 변수가 (1) 23.07.16 225 3 12쪽
95 모래성 23.07.15 235 3 13쪽
94 내 집 마련 (4) 23.07.14 23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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