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 걸린 공자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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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3.04.22 14:23
최근연재일 :
2023.08.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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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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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각자의 역할 (6)

DUMMY

“카일. 왔구나?”


악질도 이런 악질이 없다.

돌아가도 환영받지 못할 사람.

그렇기에 엘프들의 기억에 남으라 숲에 묻어줬던 시체. 알폰소 자르온이 좀비가 돼 자르온 공작성을 밟고 있었다.


까득.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형을 위한 검으로 살다

형을 위한 방패로 죽은

비운의 사나이.

그런 불쌍한 남자를 죽어서도 쉬지 못하게 만들다니.


“이...쪽..으로?”


알폰소의 고개가 45도로 기괴하게 꺾였다.


서걱.


망설임은 없었다.

알폰소의 목이 차가온 바닥을 굴렀다.

시체를 처리한 후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며 주변을 살폈다.


부서진 벽.

훼손된 그림.

온전치 못한 문.

사방에 널린 시체와 그곳에 꼬이는 구더기들.

씁쓸했다.


공작가의 주인이 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고 잠 못 이루며 기반을 쌓아놨던가? 근데 그 기반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미래의 자르온가를 이끌 수도 있었던 인재는 결국 메피스토의 꼭두각시가 돼 능멸당했다.


끼익.


예상대로였다.

녀석은 그곳에 있었다.

샤를이, 아들레인이, 에드가가 앉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던 그 의자의 주인은 다름 아닌 메피스토였다.


“조금 오래 걸렸군.”


메피스토가 턱을 괸 채 나를 바라봤다. 신기한 일이었다. 문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녀석의 얼굴에 지금 당장 레텐토를 휘두르려 했는데 마음이 도리어 차분히 가라앉았다. 내가 녀석의 눈을 살폈다.


오묘한 눈이었다.

그의 눈엔 삶에 대한 지루함이 보였고

이 전투에 대한 열망이 보였으며

그 끝에 어떤 결과가 있을지에 대한 호기심이 보였다.


“손님이 온다고 나름의 준비를 해봤는데 어땠나?”


“장소 선정부터 접객까지 최악도 이런 최악이 없지. 덕분에 머리가 차분하게 식었어.”


“그로마가 말했지. 카일 자르온. 너는 마왕성을 무너트릴 균열이라고. 그래서 이곳으로 정했다. 이곳이 무너져도 결국 너의 성이니 난 잃을 게 없거든.”


“너 바보야? 걔가 그 뜻으로 말했을 리가 없잖아.”


“농담이었는데 재미없었나 보군.”


‘미친놈인가?’


머리는 차갑게.

그러나 가슴은 점점 활활 타올랐다.


“......”


“장소는 어디로 하겠나?”


“연무장으로 하지.”


“가지.”


메피스토가 인파니아를 들었다.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샤를의 방을 나가 연무장까지 걸었다. 내가 녀석의 기세를 살폈다. 녀석은 지금 당장 인파니아를 뽑아 기습할 기세는 보이지 않았다.


‘여유라는 건가?’


그렇게 숨 막히는 정적이 가득 채우고 있을 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녀석이 정적을 깼다.


“대답해줘야 하나?”


“그렇게 어려운 질문은 아니니까.”


“뭔데?”


“왜 날 죽이려 하지?”


“질문의 의도가 뭐지?”


“말 그대로다. 날 죽이려는 이유. 성스러운 임무? 숭고한 사명? 그것도 아니면 제이 파치노의 짐을 짊어지기 위해? 나는 그게 궁금할 뿐이다.”


질문을 고민하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연무장에 도착했다. 녀석과 내가 마주 보고 섰다. 처음 키 작은 율리안을 상대했던 이 연무장에서 난 그 누구보다 거대한 메피스토를 상대해야 했다.


“시간이 더 필요한가?”


녀석은 자기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라는 듯 인파니아를 꽂은 채 팔짱을 끼고 나를 충분히 기다려줬다. 반대로 나는 레텐토를 뽑아 녀석에게 겨눴다.


“숭고한 사명? 성스러운 임무. 그런 건 모르겠고.”


나의 대답에 녀석의 눈이 빛났다.


“잡아먹히기엔 내가 너무 성질 더러운 맹수라서. 어떻게 대답이 됐나?”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흡족한 표정으로 인파니아를 들어 올렸다.


“훌륭한 대답이었다.”


그렇게 레텐토와 인파니아가 충돌했다.


***


척!


왕도 앞.

진군하던 마물이 일제히 발을 멈췄다.

그리고


휙.


일제히 몸을 돌려 퇴각하기 시작했다.


‘퇴각이라고?’


탈론은 당황했다.

녀석들은 유리한 위치에서 농성 중이다.

조금만 시간을 더 끌면 우리는 스스로 분열한다.

손 안 대고 코 풀기 일보 직전인 이 상황에서 병사를 물린다고.


“녀석들이 퇴각한다!”


“와아아아!”


“녀석들이 퇴각한다!!!!”


병사들은 환호했다.

모두의 환호 속,

탈론만인 이 상황을 해석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었다.


***


군사 회의실은 말 그대로 축제의 장이었다. 모두가 자신이 살아남았음을 환호했고 카일이 마왕을 무찔렀다 설레발치는 이도 제법 많았다. 탈론은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이 뜨거운 환희 속 자신이 홀로 찬물을 끼얹어야 한다.


“녀석들은 퇴각하는 게 아닙니다.”


탈론이 마나를 담아 소리쳤다.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모두가 힐난의 눈으로 탈론을 봤다.

심지어 국왕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퇴각이라 하기엔 그 기세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마물들은 왕국을 뚫지 못해 절망한 것이오. 그래서 저렇게 도망치는 중이고. 굳이 도망치는 적을 섬멸해야 할 이유가 있소?”


론다가 반박했고


“지금 카일은 특작대를 이끌고 마왕의 본진을 타격 중입니다. 만약 녀석들이 향하는 곳이 마왕군의 본진이라면 특작대는 포위되고 맙니다.”


“카일이 이미 마왕의 목을 벤 거라면?”


귀족 대부분이 거들었다.


“카일이 점찍은 장소는 자르온 공작령. 거점에서 하루 만에 돌파해 마왕의 목을 베기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거리입니다.”


탈론이 귀족들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그럴 때마다 귀족들의 눈빛은 화살이 돼 탈론의 가슴을 찔렀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럴수록 더욱 단단해야 한다.’


귀족들의 시선 속, 그들의 눈엔 확신이 아닌 소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의 눈을 본 순간, 탈론은 확신할 수 있었다. 메피스토가 이 상황을 노렸다는 걸.


“녀석들은 도망치는 게 아니라 카일 자르온을 포위하기 위해 움직이는 겁니다. 성문을 열어 우리가 놈들을 붙잡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카일에게 걸리는 부담이 너무 커집니다.”


“탈론 경. 지금 경이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이오? 저쪽에 세작이라도 있소?”


“없습니다.”


“허면 대체 어떤 근거로 성문까지 열어가며 그들을 붙잡자 하는 것이오?”


“근거는···. 제 감입니다.”


귀족들이 혀를 찼다.

감이란 참 어려운 감각이다.

때로는 보이는 수치보다 한 사람의 경험에서 나온 날카로운 감각이 옳은 선택을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귀족들을 설득하기에 ‘감’이란 근거는 너무나 가볍게 들려왔다.


‘제기랄!’


탈론은 지금 당장이라도 병력을 이끌고 성문을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군의 최고 책임자. 군법과 규율이 최고인 이곳에서 왕의 명령 없이 나가는 건 반역이었다. 그때였다.


“이봐 국왕.”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에 주인인 철강왕 파이톤에 쏠렸다.


“무슨 일인가? 철강왕 파이톤.”


“성문을 열 생각이 있나?”


드워프이기에 할 수 있는 막힘없는 질문. 모두의 시선이 이번엔 국왕에게 쏠렸다. 결국 여기는 왕정 국가. 이들이 아무리 침 튀어가며 싸워봐야 왕이 열라면 열고 닫으라면 닫아야 하는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국왕에게 쏠린다.

국왕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건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성문을 열 수는 없네. 우린 마물의 시선을 끄는 것보다 국민을 지키는 게 우선이니까.”


모두가 납득할만한 이유에 철강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마법사는 빌려줄 수 있나?”


“마법사는 왜?”


“우리는 녀석의 시선을 끌 생각이거든.”


파이톤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지금 나가면 전멸일세.”


헬리온의 말대로였다.

지금 가면 전멸이다.

너무 무모한 일이다.

어쩌면 메피스토가 노린 전략일 수 있다.


“네슬레. 자네라면 어쩔 거지?”


철강왕이 자기 신하에게 물었다.

네슬레는 씩 웃었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드워프가 담금질을 쉰 적이 있던가?”


귀족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적이 떠나고 있다.

근데 구태여 적을 잡겠단다.


“성문이 닫혀있으면 텔레포트 마법이 필요하겠네요.”


그리고 또 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페름 노아.


“딸이 적진 한복판에 있거든요. 아비 된 자로서 마물 바짓가랑이라도 잡으라면 잡아야죠.”


국왕이 페름 노아를 바라봤다.

굳은 표정.


‘막을 순 없겠군.’


귀족들이 국왕을 바라봤다.

이건 자칫 잘못하면 반역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국왕은 그저 왕좌에 앉아 말없이 이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더 없나? 있으면 따라오라고. 우린 지금 갈 테니.”


신속한 이동이었다.


“죽으러 가는 거야.”


론다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 말에 문을 열고 나가려던 파이톤이 걸음을 멈췄다.


“아. 근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파이톤은 시선을 론다에게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만약 탈론의 말이 맞다면? 그래서 카일이 죽게 된다면? 그다음은 너희 아니냐?”


아무도 철강왕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


왕궁 뒤편, 페름이 텔레포트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드워프 인원이 몇 명이나 됩니까?”


“자세히는 모른다. 그래도 1,000명 이상은 된다.”


페름은 의문이었다.

자신이야 딸을 위해서라지만

드워프는 무엇을 위해 이 사지에 뛰어드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죽으러 가는 길입니다.”


“아까도 말했잖아. 카일이 죽으면 우리도 죽어.”


“정말로 저들이 퇴각하는 걸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인간들의 종족 특성인가?”


“네?”


“벌어진 일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벌어졌으면 하는 일을 생각하는 거. 우리는 담금질할 때 절대 그러지 않는다.”


페름의 가슴을 울리는 한 마디였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자신의 마음이 들끓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메피스토는 강하다. 그렇기에 대륙이 이 모양이 됐겠지. 우리가 카일에게 얼마나 도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움이 안 되진 않겠지.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였다.


“함께 싸우게 됐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국왕의 만류를 뿌리친 탈론이 합류했다.

그다음


“여기 부상자도 봤나? 귀족들 보고 있으니 화딱지 나서 몸 좀 풀어야 할 거 같은데”


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베인이 합류했고


“여기가 자살하러 적진에 뛰어드는 부대 맞습니까?”


카일과 함께 전장을 누볐던 병사들이 합류했다. 그 뒤로도 지원자가 하나둘 늘어났다. 릴리와 함께했던 마법사들, 엘프로드와 함께 싸우겠다는 엘프 궁수 그리고 왕실 근위대까지.


“귀족들의 말보다 탈론 님의 감이 조금 더 설득력 있더라고요.”


그들이 찾아온 이유였다.

모두가 전의를 다졌다.

그리고 눈빛을 빛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만에 하나일지 몰라도 자신의 선택이 카일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그들은 지금 마법진에 서 있는 것이다.


“시작하겠습니다.”


“잠깐.”


그때, 마법진 앞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나타났다. 론다였다.


“혹시 이거 필요 없습니까?”


탈론이 론다가 가져온 선물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있으면 좋지.”


***


마물들은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두.


“쿠엑?”


후방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마물들이 고개를 돌렸다.

모래 먼지가 거세게 올라왔다.

그리고 잠시 후


핑~~


하늘에 올라간 한 발의 화살이 태양을 가릴 만큼 분열했다.


“쿠엑!”


“키엑!”


등을 보이고 달리던 오크와 구울들이 쓰러졌다. 하지만 공격은 쉬지 않았다. 하늘에서 낙뢰가 꽂히고 화염 비가 쏟아지며 땅이 갈라졌다. 마물들이 진군을 멈췄다. 그들은 고민했다. 저들을 죽여야 하는가? 주군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가?


“놈들이 보인다!!!”


탈론이 오러 블레이드를 빛내며 달려왔다.


“키에에에엑!!”


녀석들이 침을 뚝뚝 흘리며 포효했다.

마왕의 명령은 절대적.

하지만 그 명령을 뛰어넘는 허기짐과 식욕의 본능이 그들의 몸을 돌렸다.


“모두 무기를 들어라!!!”


기마대에 올라탄 기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뽑았다.


“이미 국왕 폐하를 떠나는 순간 죄인이 된 몸. 헬리온이란 이름을 입에 올리는 건 안 될 말이겠지.”


탈론이 숨을 삼켰다.

그리고 모든 병사가 들리도록 웅혼하게 외쳤다.


“카일 자르온을 위해!”


그가 선창하자


“카일 자르온을 위해!!!”


뒤따라오던 병사들이 후창했다.

탈론의 흑빛 오러 블레이드가 적진을 휘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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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에필로그 +1 23.08.12 231 5 14쪽
122 돌아가자 23.08.11 215 4 12쪽
121 절공(切空) 23.08.10 211 4 12쪽
» 각자의 역할 (6) 23.08.09 189 4 12쪽
119 각자의 역할 (5) 23.08.08 186 4 11쪽
118 각자의 역할 (4) 23.08.07 192 4 12쪽
117 각자의 역할 (3) 23.08.06 195 5 13쪽
116 각자의 역할 (2) 23.08.05 195 5 13쪽
115 각자의 역할 (1) 23.08.04 193 4 12쪽
114 돌격 23.08.03 198 4 12쪽
113 약속 23.08.02 203 5 13쪽
112 스승과 제자 (5) 23.08.01 204 4 12쪽
111 스승과 제자 (4) 23.07.31 204 4 12쪽
110 스승과 제자 (3) 23.07.30 198 4 12쪽
109 스승과 제자 (2) 23.07.29 193 4 12쪽
108 스승과 제자 (1) 23.07.28 202 4 13쪽
107 영웅 (4) 23.07.27 204 4 13쪽
106 영웅 (3) 23.07.26 200 4 12쪽
105 영웅 (2) 23.07.25 207 4 13쪽
104 영웅 (1) 23.07.24 212 4 12쪽
103 시험 (4) 23.07.23 204 4 13쪽
102 시험 (3) 23.07.22 199 4 12쪽
101 시험 (2) 23.07.21 205 4 12쪽
100 시험 (1) 23.07.20 216 4 13쪽
99 너라는 변수가 (4) 23.07.19 223 3 13쪽
98 너라는 변수가 (3) 23.07.18 217 4 12쪽
97 너라는 변수가 (2) 23.07.17 220 3 12쪽
96 너라는 변수가 (1) 23.07.16 225 3 12쪽
95 모래성 23.07.15 235 3 13쪽
94 내 집 마련 (4) 23.07.14 23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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