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 걸린 공자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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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3.04.22 14:23
최근연재일 :
2023.08.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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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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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3)

DUMMY

메피스토가 일주일간 한가롭게 대륙을 유랑하며 신선놀음을 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외부에서 쳐들어오는 것만이 전략이 아니다. 내부에서부터 적을 서서히 와해시키는 것 또한 전략.


“녀석의 사역마 중 하나네. 아니 하나라곤 할 수 없지.”


탈론이 지휘하던 동부 군대가 패한 원인이기도 했다. 동부는 마왕군이 진군하지 못하게 틀어막은 유일한 방패였다. 하지만 그들이 패배한 이유는 방패의 내부가 녹슬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쥐 몇 마리가 돌아다닌다고 생각했네. 놈들이 메피스토의 사역마라는 걸 알았을 땐 이미 군량미가 반 이상 사라진 뒤였지.”


탈론은 ‘탐욕쥐’가 사역마 중 가장 까다로운 존재라 했다. 곡식을 쉼 없이 갉아먹고 번식 속도는 일반 쥐와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는 게 놈들의 무서운 점.


“일단 가보시죠.”


식량 창고는 처참했다. 밀과 쌀, 귀리 등 각종 곡식을 포장해 놓은 포대는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있었고 이미 텅텅 비어버린 포대도 여럿 보였다. 게다가


찍찍 찍.


이 쥐새끼들은 우리가 왔음에도 보란 듯이 바닥을 기어 다니고 벽을 타며 나무를 갉아 먹고 있었다.


“생각보다 심각하군요."


탈론은 이미 경험해봤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탐욕쥐는 확실히 까다로운 상대였다. 식량의 고갈은 생각보다 큰 문제다. 밥을 먹지 못한 병사들은 예민해질 테고 그것은 결국 폭동까지 일어날 수 있다. 그때였다.


“이리 온.”


이자벨라가 손 위에 해바라기씨를 든 채 탐욕쥐들을 불렀다.


“이자벨라?”


이자벨라가 잠시 기다려 보라는 듯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댔다. 그리고 잠시 후 탐욕쥐들이 코를 벌름거리며 이자벨라의 손으로 모여들었다. 처음엔 1마리였던 것이 5마리 10마리 그리고 20마리가 됐다.


“먹어.”


이자벨라의 말에 탐욕쥐가 달려들었다. 녀석들은 동족들끼리도 노골적으로 식탐을 경쟁했다. 몇몇 놈들은 동족의 목을 물어뜯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탐욕쥐구나.”


녀석들의 식탐은 가히 상상 이상이었다. 이자벨라의 손 위에 있던 해바라기씨는 채 5초를 버티지 못했다. 감칠맛을 느낀 걸까? 탐욕쥐들이 주변을 둘러봤다.


“안 돼! 이자벨라님. 지금 이게 무슨!!”


탈론이 구멍 난 포대로 달려드는 탐욕쥐들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조금만 지켜보세요.”


이자벨라는 여유로웠다.

탐욕쥐는 맹렬히 달렸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 속도가 줄고 녀석들은 구멍 난 포대에 도달하기 전에 절명했다. 탈론이 이자벨라를 바라봤다. 설명해달라는 눈빛.


“독은 아군의 피해 없이 적을 죽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잖아요.”


이자벨라가 우리를 보며 싱긋 웃었다.


“제자야. 이자벨라에게 잘해줘야 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스승님. 요리도 가끔 제가 합니다.”


“내가 이자벨라를 너무 혹독하게 가르친 건 아닌지 문득 후회되네.”


나와 다리아, 탈리아가 각각 이자벨라를 보며 농담을 던졌다.


“이자벨라님. 어디 있다 오신 겁니까? 동부에 이자벨라님이 있었다면 우리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진 않았을 텐데.”


탈론이 이자벨라를 바라보는 눈빛이 온화해진 것도 순식간이었다.


“이해해주세요. 저도 파루무투랑 싸우느라 바빴거든요.”


이자벨라가 싱긋 웃었다.

우리의 표정이 일치했다.

그녀만이 탐욕쥐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


해답이 나온 즉시 힘을 쓸 수 있는 모든 사람이 빠르게 움직였다. 우선 왕은 국민을 모아놓고 공표했다. 이 한마디면 충분했다.


“곳곳에 쥐가 출몰해 곡식은 물론 무, 고구마까지 갉아 먹고 있습니다. 우리가 힘을 모아 쥐를 잡아야 합니다.”


이자벨라와 왕궁 마법사들이 독이 든 쥐약을 만들면 엘프들이 가구별로 약을 나눠줬다. 그들의 미모에 사람들은 별 거부감 없이 약을 받아들였다. 왕국에 있는 식량은 모두 한곳에 모았다. 그래야 쥐들을 더욱 쉽게 잡을 수 있으니까.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하면 어떻습니까?”


카일이 낸 아이디어는 쥐의 꼬리를 잘라 오면 작은 상품을 주는 것이었다.


‘글리셰 대륙 식 새마을 운동이 되겠구나.’


카일은 성준오 시절 공부했던 새마을 운동을 떠올렸다. 거기에는 ‘쥐를 잡자!’라는 포스터와 함께 학교에서 쥐의 꼬리를 잘라 오라는 숙제를 내줬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어떤 상품을 주면 되겠습니까?”


행정 업무에 대표로 참여한 귀족은 론다였다. 이미 우리에게 순종적이고 다른 귀족들에게 입김이 통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


“그건 나랏일 하는 너희들이 생각해야지. 그것까지 나한테 맡긴다고?”


탈리아는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왕국의 행정 업무에 기여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론다는 욕심 많은 귀족이지만 무능한 귀족은 아니었다. 그는 꼬리의 개수에 따라 상품을 차등 분배하는 내용을 공표했는데 효과는 엄청났다.


“여기 꼬리 5개 잘라 왔어요.”


“저는 6개에요.”


“야! 밀지 마! 내가 먼저야!”


꼬리 자르기 운동은 아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번져갔다. 때가 때인 만큼 부모들은 아이들을 밖에 나가 놀지 못하게 했고 억눌려 있던 아이들은 쥐잡기 운동을 하나의 놀이로 생각한 것이다.


“저기 저는 이 책 받고 싶은데 어떡하면 되나요?”


한 아이가 표지가 고급스러운 책을 보며 말했다.


“그럼 꼬리 7개는 더 잘라 와야 한단다.”


“야. 그럼 내 거 줄게. 나는 그냥 나무 목검이면 되거든.”


“나는 이 목걸이.”


아이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은 작은 액세서리 아니면 나무로 만든 검과 방패였다. 그 와중에 꼬리를 많이 모아온 아이에게는 왕실의 문양이 박힌 종이 혹은 지금처럼 책을 주기도 했다.


“정말 다 퍼주고 있군요.”


“어차피 왕국이 망하면 무용지물 아닌가.”


이번 정책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카일과 국왕이었다.


“정작 돌봐야 할 백성은 안 돌보고 정치 싸움에만 매몰돼 있었구나.”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났을 때 국왕은 더욱 파격적인 상품을 내걸었다. 꼬리를 20개 이상 모아오면 태양성 견학을 허락한 것이다.


“내 살아생전 태양성에 들어갈 수 있다고?”


“여보. 아이를 위해서라도 우리 힘내봅시다.”


쥐를 잡는 운동은 아이들을 넘어 어른들에게도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귀족이 아인 평민들도 왕궁을 밟을 수 있는 희망과 목표가 생긴 것이다.


“쥐 끈끈이 팝니다~ 과일, 작물, 밀가루, 쌀, 가리지 않고 받습니다.”


“쥐덫 팝니다. 쥐덫!”


잡상인들에게 때아닌 호황기가 찾아왔다. 부모들은 쥐 꼬리를 얻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식량 창고를 지켰다. 그렇게 5일 차가 됐을 땐


“쥐 안 보이나?”


“그러게, 말이오. 아주 씨가 말라버렸어.”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번식시킨 다음에 죽일걸.”


이런 얘기가 나돌 정도로 탐욕쥐는 왕궁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자벨라의 독과 왕궁의 행정력,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얻어낸 승리였다.


***


글리셰 대륙의 명운을 건 전쟁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태양성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기쁨이 넘쳐흘렀다.


“우와! 왕국 근위대 아저씨다!”


“아저씨! 아저씨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운동 열심히 하면 된다.”


“정말 그거면 돼요?”


“물론 키가 더 크면 수련도 열심히 해야겠지.”


근위대를 동경해 온 아이들의 눈은 반짝였고 그 반짝임을 본 근위대는 자신이 품고 있던 사명감을 다시금 되새겼다.


“전쟁 하루 전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풍경이네요.”


“그건 아는 사람만 알고 있으니까. 괜히 말해봐야 혼란만 초래하지.”


나와 이자벨라도 느긋하게 왕궁을 돌아보고 있었다. 우리는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지금, 이 순간을 천천히 음미하며 최대한 즐기려는 마음으로.


“어! 카일 자르온이다!”


“카일 자르온? 대륙의 영웅 카일 자르온?”


“옆에 포이즌 슬레이어도 있어!”


우리가 영웅이 된 건 국왕의 전략이기도 했다. 용사가 죽은 지금 사람들은 마음을 의지할 영웅이 필요했다.


-자네를 화살받이로 세울 걸세.


설마 그 화살받이가 여기까지 사용될 줄은 몰랐지만.


“얘야. 혹시 다리아 카르밀이란 미녀 검객 소문은 듣지 못했니?”


우리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자 다리아가 짐짓 모른 척 우리에게 다가왔다. 내심 자기의 명성도 과시하고 싶었던 모양. 하지만


“다리아 카르밀이요? 그게 누군데요?”


“풉!”


“표정 관리해라. 죽이기 전에.”


“다리아님. 안 돼요. 제가 카일 살리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럼 너부터 죽여야겠구나.”


다리아가 장난스럽게 칼데아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아줌마 그러면 안 돼요!!!”


앞니가 빠진 꼬마 아이가 다리아를 막아섰다.


“이분은 우리 왕국의 영웅이에요.”


“내가?”


이자벨라가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꼬마 아이를 바라봤다.


“네. 우리 엄마가 얘기했어요. 여기, 이 예쁜 누나가 독을 만들어주지 않았으면 지금쯤 우린 굶어 죽었을 거라고. 포이즌 슬레이어는 북부의 영웅이자 헬리온 왕국의 영웅이에요!”


“얘야.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왜 이자벨라는 누나고 나는 아줌마인 것이냐?”


“누나니까 누나고 아줌마니까 아줌마죠.”


나는 보았다.

대륙을 발아래 둔 검성이 이빨 빠진 작은 소년에게 지는 것을.


“꼬마야. 고마워. 이름이 뭐니?”


이자벨라가 앞니 빠진 남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녀석의 볼이 발그레 변했다. 짜식. 너도 남자구나.


“밀리언이에요. 밀리언 밀리오.”


이자벨라가 움찔했다.

나도 움찔하긴 마찬가지.


“북부에서 왔다고?”


“네.”


“그렇구나.”


“누나와 마찬가지로 우리 아빠도 북부의 영웅이에요. 밥 밀리언!”


밀리오가 눈을 빛내며 그녀에게 말했다.


“밥 밀리언. 알고 있지.”


“우리 아빠를 만났어요?”


“그럼. 너희 아버지는 흑성에 있는 그 누구보다 용맹하고 멋있었단다.”


이자벨라가 깊은 눈으로 밀리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카일.”


이자벨라가 나를 바라봤다.


“갔다 와.”


분명 만나고 싶었을 거다.

밥 밀리언의 가족을.

여행을 다니는 와중에도 잊지 못했으니까. 그러고 보면 삶이란 참 신기하다. 절대 이어질 거 같지 않은 인연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오기도 하니까.


“저리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으로 떠나면 내가 뭐가 되나.”


도리어 당황한 것은 다리아였다. 하긴 그녀는 자세한 내막을 모를 것이다. 흑성에서 우리가 어떤 전투를 치렀었는지.


“미녀 검객 다리아 카르밀님. 저랑 같이 구경하시죠.”


내가 궁중 예법으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됐다.”


아줌마라는 말이 큰 타격이었을까?

다리아는 피곤해 쉬겠다며 방으로 돌아갔다.

거짓말.

골렘이 무슨 피곤하다고.

그때였다.


“저기요.”


한 아이가 내 바지춤을 잡아끌었다.


“응?”


누구지?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우리 언니 좀 찾아주세요?”


“언니?”


내가 주변을 둘러봤다.

왕궁은 그 어느 때보다 북적였다.

귀족들이 연회를 열어도 북적이는데 일반인에게 개방했으니 오죽할까? 아이가 길을 잃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 우리 천천히 찾아볼까?”


보기에 레이첼과 같은 또래.

그런 아이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는 내가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왕궁 홀을 배회하고 있을 때


“엘사. 어딨니? 엘사?”


평상복을 입은 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검은 사제복은 입지 않았지만, 눈을 천으로 가린 안대가 그녀가 순례자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언니!”


엘사가 내 손을 놓고 순례자에게 뛰어갔다.


“엘사!”


순례자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무릎을 꿇고 팔을 활짝 벌렸다. 엘사가 순례자의 품에 안겼다.


“어디 갔어. 언니가 손 꼭 잡으랬잖아.”


“미안해.”


“감사합니다. 우리 엘사를 찾아주셔···.”


나를 발견한 순례자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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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돌아가자 23.08.11 215 4 12쪽
121 절공(切空) 23.08.10 210 4 12쪽
120 각자의 역할 (6) 23.08.09 188 4 12쪽
119 각자의 역할 (5) 23.08.08 186 4 11쪽
118 각자의 역할 (4) 23.08.07 192 4 12쪽
117 각자의 역할 (3) 23.08.06 194 5 13쪽
116 각자의 역할 (2) 23.08.05 195 5 13쪽
115 각자의 역할 (1) 23.08.04 193 4 12쪽
114 돌격 23.08.03 198 4 12쪽
113 약속 23.08.02 203 5 13쪽
112 스승과 제자 (5) 23.08.01 204 4 12쪽
111 스승과 제자 (4) 23.07.31 204 4 12쪽
110 스승과 제자 (3) 23.07.30 198 4 12쪽
109 스승과 제자 (2) 23.07.29 193 4 12쪽
108 스승과 제자 (1) 23.07.28 202 4 13쪽
107 영웅 (4) 23.07.27 204 4 13쪽
» 영웅 (3) 23.07.26 200 4 12쪽
105 영웅 (2) 23.07.25 207 4 13쪽
104 영웅 (1) 23.07.24 212 4 12쪽
103 시험 (4) 23.07.23 204 4 13쪽
102 시험 (3) 23.07.22 199 4 12쪽
101 시험 (2) 23.07.21 205 4 12쪽
100 시험 (1) 23.07.20 216 4 13쪽
99 너라는 변수가 (4) 23.07.19 223 3 13쪽
98 너라는 변수가 (3) 23.07.18 217 4 12쪽
97 너라는 변수가 (2) 23.07.17 220 3 12쪽
96 너라는 변수가 (1) 23.07.16 225 3 12쪽
95 모래성 23.07.15 235 3 13쪽
94 내 집 마련 (4) 23.07.14 23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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