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 걸린 공자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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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3.04.22 14:23
최근연재일 :
2023.08.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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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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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너라는 변수가 (1)

DUMMY

처음엔 기분 좋은 고단함이었다.


“파치노님. 해냈어요!”


우노아가 웃었다.

이마가 찢어져 피가 철철 나고 있음에도 그녀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야 눈앞에 발록의 시체가 떡하니 누워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카일님.’


마지막 순간, 발록은 자기 가슴을 교묘하게 공격하게 유도했지만 제이 파치노는 속지 않았다.


- 가슴에 있는 마석은 본체가 아닙니다. 본체는 복부입니다.


정보의 불균형.

만약 제이 파치노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지금 바닥에 누워 있는 시체는 그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렇게 죽은 건가?”


‘지척에 올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고?’


제이 파치노가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누구냐?”


“너희들이 모인 이유이자 대척점에 서 있는 자.”


제이 파치노는 당황했다.

처음 보는 마왕의 모습.

그는 동화나 신화에 나오는 묘사와 전혀 달랐다.


찰랑거리는 금발.

타오르는 붉은 눈.

새하얀 피부.

호리호리한 육체까지.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아니었다면 성기사라해도 믿을 만큼 메피스토의 모습은 고고했다.


“왜 발록을 죽인 거지?”


“우리를 죽이려 했으니까.”


“죽이려 했기에 죽였다?”


“그래. 마물들은 언제나 침략하고 약탈하며 죽이지. 그걸 막기 위해 죽였다.”


메피스토는 차분했다.

발록이 죽었음에도 감정적 동요가 전혀 없는 모습.


‘꼬리를 흔들며 쫓아오던 들개가 죽어도 저런 표정은 짓지 않을 텐데.’


한참이나 발록을 바라보던 메피스토가 자리에서 일어나 제이 파치노를 바라봤다.


“마물이 인간을 잡아먹는 것은 본능. 우리는 그저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게 잘못인가?”


“너희 때문에 수많은 인간이 죽었어!”


“잡아먹기 전에 죽이는 건 당연한 일. 그러는 너희는 어떻지? 소, 닭, 돼지까지. 잡아먹기 전에 죽이는 건 똑같은 거 같은데?”


“인간과 가축이 같나?”


“마물과 인간은 같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가슴에 분노가 솟아올랐다. 하지만 메피스토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나도 너희도 모순덩어리일 뿐이다. 사명이니, 숭고한 목적이니. 아무리 좋은 단어들을 붙여봤자 추악함을 가리기 위한 포장일뿐.”


“너와는 대화가 통할 거 같지 않구나.”


“동족 혐오겠지.”


제이 파치노가 성검을 들었다.

그는 느꼈다.

더 얘기해봐야 소용없다.


“자신 있나?”


메피스토의 말에 그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기분 좋은 고단함은 근육과 정신을 압박하는 피로로 물들었다.


“자신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야. 네 말도로 우리는 숭고한 목적과 사명이 있어서.”


제이 파치노가 성검을 들고 메피스토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패했다. 만약 뒤에서 텔레포트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던 샤를이 아니었으면 원정대는 그 자리에서 모두 죽었을 거다.


“......”


원정대가 떠난 자리.

메피스토가 발록의 시체를 아공간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제 내 차례다.”


-메피스토 님. 만약 제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카일 자르온. 그자를 제일 먼저 처리해야 합니다.


***


생각지도 못한 변수였다.

갑자기 메피스토라고?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마음이 요동친다.

그가 어째서 내 영지에 나타났단 말인가?


“카일. 침착해라.”


다리아가 내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정신을 차려야 지금 이 위기를 대처할 수 있다.


“그대가 카일 자르온인가?”


메피스토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왔다.


“다시 한번 묻겠다. 그대가 카일 자르온인가?”


“알면서 온 거 아니었나?”


“그렇군. 자네가 카일 자르온이군.”


메피스토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다. 하지만 나도 꼿꼿하게 그의 눈을 마주 봤다. 감정을 읽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의문.’


그는 지금 나를 보며 의문스러워하고 있다.


“그로마가 내게 말했다. 제이 파치노보다 너를 더욱 경계해야 한다고. 어째서일까? 성검을 들지도 않았고, 경지고 높은 것도 아니며 머리가 비상해 보이지도 않는데···.”


메피스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와 다리아의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로마를 언급하면 이곳에 찾아왔다면 이유는 하나다. 녀석은 날 죽이러 왔다.


탁.


“!”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나와 다리아가 검을 뽑기도 전에

녀석의 손이 우리의 발도를 막았다.


“절공검이라면 알고 있다. 휘두르지 못하면 결국 공간도 찢어지지 않겠지.”


절공검의 파훼법은 쉽다.

휘두르기 전에 막으면 그만이지만

그걸 실제로 할 수 있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눈앞에 괴물은 그걸 너무나 손쉽게 해버렸다.


팡! 팡!


탈리아의 지원 사격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화살은 메피스토에게 닿지 못했다.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우리는 휘두르기 위해 노력했고

메피스토는 우리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


“제자야 안 되겠다.”


다리아와 내가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퍽!


검이 막혔다.

하지만 그 틈에 발차기를 찔러 넣었다.


“......”


전혀 들어가지 않은 데미지.

반대로 내 발은 얼얼하기만 했다.

하지만 소득도 있었다.


“도망가!!!”


발차기하며 벌린 거리를 이용해 우리는 순식간에 세 방향으로 흩어졌다. 뒤를 돌아봤다. 메피스토는 날 쫓아오고 있었다. 차라리 잘된 일.


“도망쳐봐야 소용없다.”


호흡이 턱 밑까지 차오르도록 달렸다.

하지만 녀석은 평온하게 내 옆으로 붙었다.


“장소를 선택할 기회를 주겠다.”


그가 말하고 있었다.

어차피 도망가봐야 잡힌다.

차라리 싸움을 선택하는 게 나을 것이다.

말 그대로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루 종일 달리기를 할까?

은근슬쩍 나인데일 백작가로 유도할까?

지금 이 순간 원군을 요청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많은 방법을 생각해봤지만 써먹을 수 있는 작전은 하나도 없었다.


‘도망칠 수 없다.’


결국 돌고 돌아 나온 답변이다.


“조금만 더 달리면 넓은 평야가 나온다. 거기서 싸우도록 하지.‘


그렇다고 이길 수 있는 싸움도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영지민이 무사히 대피할수록 있도록, 싸움에 휘말리지 않도록 녀석을 최대한 붙잡을 수밖에.


“고맙다. 배려해줬다고 해야 하나?”


마음이 편해졌다.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내가 녀석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의 눈은 마른 대지처럼 삭막하기만 했다.


“죽음을 각오한 눈빛이구나.”


“아직 미련은 남지만.”


“더 도망칠 수도 있었다. 나에게 살려달라 애원할 수도 있고. 헌데 너는 그러지 않는구나.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가?”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거냐?”


“죽는 게 제일 무서운데?”


녀석이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입은 거짓말할 수 있지만 눈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듯.


“신비한 눈이구나. 사선을 몇 번이고 넘었던 눈과는 다른 눈이다. 조금 더 깊다고 해야 하나?”


“그럴 수밖에. 이미 2번이나 죽었으니까.”


“인간은 한번 죽으면 살아나지 못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말하자면 길다.”


“재밌구나.”


메피스토가 웃었다.


“그로마가 말했다. 제이 파치노가 날 찌를 검이라면 너는 마왕성을 무너트릴 균열이라고. 녀석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구나.”


“그냥 내가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방해하니까 화난 거 아니었나?”


“그로마의 눈은 정확하다. 너는 확실히 다르다. 숭고한 사명을 짊어진 용사도, 대륙을 휘어잡을 왕의 기백이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너는 특별하다.”


마왕에게 칭찬받았다.

곧 나를 죽일 녀석에게.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렇게 5 분여를 더 달리자 드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척.


우리는 대척점에 서서 서로를 바라봤다.


“그대에게 묻겠다. 왜 마물들을 죽였지.”


“마물과 똑같은 이유겠지.”


“마물과 똑같다?”


“결국 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이러는 거 아니겠어?”


메피스토의 눈에 광채가 지나갔다.

지금까지 계속 건조하기만 했던 녀석의 얼굴에 하나의 표정이 떠올랐다.


‘탐욕.’


“너에게 제안할 게 있다. 나의 수하가 돼라. 그러면 살려주겠다.”


“그로마가 반드시 죽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봤자 수하가 한 말. 듣기 싫으면 안 들으면 그만.”


“내가 네 옆에서 기회를 지켜보다 암살하면?”


“너로서는 불가능하다.”


“그건 맞지.”


인생 참 쉽지 않다.

삶은 고난의 연속이라더니.

아니 이건 고난이 아니다.

지옥 길을 걷는 성지순례 길이다.


“당연히 거절이다.”


메피스토가 씩 웃었다.

이미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면서 물어본 질문이니까.


“너는 무엇을 위해 싸우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죽으면 모든 것이 소용없기 마련.”


“죽기에 소중한 것이다.”


“우문이었군.”


정적이 감돌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제는 싸울 때다.


스릉.


내가 다시금 레텐토를 뽑았다.

낼 수 있는 최대 출력의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냈다.

반대로 메피스토는 한없이 차분했다.

공격 자세도, 방어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략할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시작할까?”


“시작하자.”


***


“모두 이쪽으로. 뛰지 마세요. 오히려 넘어집니다. 괜찮으니까 천천히! 천천히 오세요!”


길버트와 알베르토, 마을에 치안을 담당하는 경비병들이 끊임없이 시민들을 유도했다. 그 자리엔 이자벨라의 모습도 있었다. 아이를 안고 뛰어가는 엄마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의 시선이 카일이 날아간 방향에 머물렀다.


-이자벨라. 잘 들어. 만약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영지는 네가 관리해야 돼. 알았지?


-만약 공자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저도 그 자리에 있겠죠!


-아니! 이제는 안 돼. 우리는 책임져야 할 게 생겼으니까. 그러니까 대답해줘. 내가 무슨 일이 생기면 영지는 네가 관리하는 거야? 알았지?


-알겠어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거라고.

하지만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카일.’


지금 당장이라도 날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카일과의 약속.

그 야속이 이자벨라를 괴롭게 만들었다.


“이자벨라. 정신 차려라.”


흔들리는 그녀의 옆으로 길버트가 다가왔다.


“죽음의 위기를 뚫고 죽음마저 극복한 남자가 카일이다.”


“알겠어요.”


“힘든 건 안다. 하지만 믿어라.”


“맞습니다. 카일님은 이자벨라님을 믿기에 가장 중요한 일을 맡기신 겁니다. 그 일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카일님의 얼굴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영지민의 피난 유도를 끝낸 알프레도가 합류했다.


“알겠습니다.”


이자벨라가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다.

카일이 시킨 일을 제대로 수행하며 그가 무사하길 비는 일.


“이걸로 마지막입니다!”


모든 영지민의 대피가 끝난 후, 이자벨라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차라리 그곳에서 함께 싸울 수 있었다면!’


카일에게 위기의 순간이 온다면 그녀는 몸을 날려서라도 카일을 지켰을 것이다. 하지만 보지도 들을 수도 없는 이 상황에서 영지민을 지켜야한다는 책임감이 그녀의 마음을 짓눌렀다.


그때였다.


솨아아아아.


영지의 중앙 광장에 거대한 마법진이 펼쳐졌다.


팟.


그리고 나타나는 인물들.


“당신들이 여길 어떻게?”


처음엔 놀람.

그다음엔 안도감.

마지막엔 희망의 불꽃이 타올랐다.


“카일은 어디 있느냐?”


샤를이 이자벨라를 보며 소리쳤다.

제이 파치노 일행이 나타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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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 걸린 공자로 환생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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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에필로그 +1 23.08.12 231 5 14쪽
122 돌아가자 23.08.11 215 4 12쪽
121 절공(切空) 23.08.10 210 4 12쪽
120 각자의 역할 (6) 23.08.09 188 4 12쪽
119 각자의 역할 (5) 23.08.08 184 4 11쪽
118 각자의 역할 (4) 23.08.07 192 4 12쪽
117 각자의 역할 (3) 23.08.06 194 5 13쪽
116 각자의 역할 (2) 23.08.05 194 5 13쪽
115 각자의 역할 (1) 23.08.04 193 4 12쪽
114 돌격 23.08.03 197 4 12쪽
113 약속 23.08.02 202 5 13쪽
112 스승과 제자 (5) 23.08.01 204 4 12쪽
111 스승과 제자 (4) 23.07.31 203 4 12쪽
110 스승과 제자 (3) 23.07.30 197 4 12쪽
109 스승과 제자 (2) 23.07.29 192 4 12쪽
108 스승과 제자 (1) 23.07.28 202 4 13쪽
107 영웅 (4) 23.07.27 203 4 13쪽
106 영웅 (3) 23.07.26 199 4 12쪽
105 영웅 (2) 23.07.25 207 4 13쪽
104 영웅 (1) 23.07.24 211 4 12쪽
103 시험 (4) 23.07.23 203 4 13쪽
102 시험 (3) 23.07.22 199 4 12쪽
101 시험 (2) 23.07.21 204 4 12쪽
100 시험 (1) 23.07.20 215 4 13쪽
99 너라는 변수가 (4) 23.07.19 222 3 13쪽
98 너라는 변수가 (3) 23.07.18 216 4 12쪽
97 너라는 변수가 (2) 23.07.17 219 3 12쪽
» 너라는 변수가 (1) 23.07.16 224 3 12쪽
95 모래성 23.07.15 234 3 13쪽
94 내 집 마련 (4) 23.07.14 231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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