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 걸린 공자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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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3.04.22 14:23
최근연재일 :
2023.08.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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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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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약속

DUMMY

약속


“하하하하하하! 쿨럭. 우웩.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실로 기괴한 장면이다.

얼굴엔 금이 가고

관절은 사방으로 뒤틀렸으며

여전히 피는 멈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리아는 웃었다.


“탈리아님은?”


탈리아의 상태도 좋진 않았다.

입에서는 연신 피가 흘렀고

왼팔은 으스러졌으며

의식은 있지만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괜찮다면 거짓말이지. 근데 저 미친년부터 조금 조용히 시켜줄 수 있을까? 저년 때문에 더 힘들어.”


***


다리아.

그녀의 모습은 기괴했지만

이룬 업적은 실로 창대했다.


“그게 정말인가?”


국왕이 기함하며 회의실로 달려왔다.

라플레아스의 제거.

언데드 발록 제거.

암흑 기사가 된 타르칸의 성불.

단둘이 이뤘다고 하기엔 실로 믿기지 않는 업적이었다.


“그럼. 이 난리를 쳤는데 그 정도 성과는 얻어야지.”


국왕의 표정은 볼만했다.

처음엔 축제장이었다.

하지만 다리아의 모습을 봤을 땐

그가 입장한 곳은 축제장이 아니라 초상집이었다.


“자네···. 괜찮은 건가?”


“이 꼴을 보고도 그렇게 묻는 건가?”


표면상으로 다리아는 인간이다.

그것도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리따운 여인. 그런 다리아가 아랫사람 대하듯 국왕에게 반말로 대답했지만, 그 누구도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 그만큼 꼴이 말이 아니었으니까.


“미안하네. 하지만 잘 해줬어.”


국왕도 넘어가긴 마찬가지.

적진 한 가운데 침투해

임무를 완수하고 생환했다.

그깟 반말이 대수랴.


“알겠네. 왕궁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줄 테니 푹 쉬게.”


“가시죠. 다리아님.”


나는 속으로 튀어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이자벨라에게 끌려가는 모습이라니. 탈리아가 병상에서 일어나면 얼마나 놀릴지.


“교황을 불러와 주겠나?”


대주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뒤,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유바르교를 이끄는 수장.

교황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의외로 평범하네.’


교황의 모습은 수수했다.

넘치는 후광도

따듯한 인자함도

대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없는

그저 평범한 종교인이었다.


“탈리아님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제가 힘을 쏟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격렬한 전투는 무리지만 오늘 밤이면 거동은 가능할 거 같습니다.”


파격적인 대우였다.

이 세계에서는 사제가 귀할 뿐만 아니라 대사제급 사제가 치료해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거금이 필요하다. 헌데 교황이 직접 나서다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다시 가보겠습니다.”


역시 종교 국가다웠다.

교황은 자신을 불러낸 것에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진 않았지만, 국왕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인물은 아니었다. 이 전시 와중에도 종교와 국가 간의 묘한 줄다리기가 있는 것일까?


“마물들의 상태는?”


“현재는 진군을 멈춘 상태입니다.”


그렇겠지.

이제 메피스토에게도 남은 수가 얼마 없을 거다. 설마 와이번을 타고 쳐들어가 발록에 라플레아스 타르칸까지 죽일 거라고 예상이나 했겠는가?


“적기구먼. 왕궁에 비치된 술과 고기를 풀게.”


“폐하. 성에 비축된 식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론다 후작은 T일까?

그에게 감성은 없었다.

그저 묵묵히 나라 곳간만 걱정할 뿐.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게. 손에 든 걸 너무 꽉 쥐면 으스러지기 마련이네. 기뻐할 일이 있으면 기뻐하는 게 맞아. 불안에 떠는 국민들에게 빵보다 희망이 더 배부를 때도 있는 법이야. 왕명이네.”


치트키가 나왔다.

왕명이라는 데 지가 어쩔 건가?


***


그날 밤, 소소하게 축제가 벌어졌다.

모두가 다리아와 탈리아를 칭송했다.

그들에게 두 여인은 영웅이었고 희망이었으며 팍팍한 삶을 위로해주는 작은 안식이었다.


“좋겠습니다. 개국공신에 이어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되셔서.”


“검성에겐 어려운 일도 아니지.”


다리아는 지금 내 옆에 올라타 있었다.

일명 다리아 미니미 모드.

자기도 축제에 참가하겠다고 땡깡을 땡깡을 어휴···.


“영혼 이동 술이요? 골렘처럼 복잡한 육체는 모르겠지만 인형 크기의 작은 몸에 넣는 거라면 할 수 있어요.”


릴리의 괄목할 만한 성장이 없었다면 많이 피곤할 뻔했다.


“공자님. 먹을 것 좀 챙겨왔어요.”


“스승님 거까지 챙겨왔어?”


“그럼요.”


“이 몸은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알아요. 우리가 먹으려고 챙겨온 거예요.”


“몸이 이렇게 되자마자 기어오르는구나.”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과 사소한 장난을 치며 시간을 채웠다. 우리 모두가 느끼는 것이다. 이 사소한 장난이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공자님이 선봉에 서겠죠?”


“영웅이라는 데 어쩔 수 없지.”


“차라리 보리의 수호자 때가 좋았는데.”


“그러게나 말이야.”


“그래. 그땐 그랬지. 고블린 로드한테 줘 터져서 내가 아니었으면 이기지도 못했던. 그땐 나름 열심히 하는 맛이라도 있었는데.”


그렇게 우리는 한참이나 함께했던 추억을 공유했다.


이자벨라가 시녀에게 치도곤을 당하고 온 날, 다리아가 꼴값 떤다며 나섰던 일. 처음으로 그녀가 시녀가 아닌 파트너가 된 날. 다리아가 육체를 되찾은 날. 그리고 엘프의 숲까지.


“무슨 얘길 그렇게 재밌게 해?”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 우리 여정에 빠질 수 없는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탈리아와 조이 그리고 릴리였다.


“몸은?”


“괜찮아.”


“아니. 내 몸은?”


“조금만 참아! 병상에서 이제 막 일어난 엘프한테 일 시키고 싶니?”


“고약한 성질만 보면 이미 다 회복된 거 같은데.”


이제는 안 보면 섭섭한 두 여인의 만담 쇼가 지난 후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릴리가 자연스럽게 자리에 합석했다.


“릴리 기억나요?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오우거가 잡아먹으려고 철창 뚜껑을 여는데···.”


“카일. 거기까지. 그때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


“저는요? 저는 어땠어요?”


이제는 안경을 벗은 맨얼굴에 궁수 복장이 익숙해진 조이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조이님이요? 조이님을 처음 보는 순간, 마치 태양이···.”


이자벨라가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


“나 빼놓고 무슨 얘길 그렇게 재밌게 해?”


사람은 끊임없이 몰려왔다.

당최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안 건지.


“베인! 용병단은 어쩌고?”


“알아서 술 퍼먹고 잘 놀겠지. 오늘은 용병단 단장이 아니라 여자로서 여기 온 거야.”


베인이 특유의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이자벨라가 내 옆에 더욱 찰싹 붙었다. 그녀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뽀뽀는 안 돼.’


베인은 그런 이자벨라가 귀엽다는 듯 도리어 내 옆이 아닌 그녀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왜... 왜 이래!”


역시 베인은 이자벨라를 잘 다룬다.

얼마 만인가?

이자벨라가 이렇게 당황하는 모습이.


“이자벨라. 오늘 많이 귀엽네. 평소 카일 앞에서도 이렇게 당황해봐. 어필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걸.”


“어···. 어필은 무슨!”


적당한 술.

따듯한 불.

따듯한 사람.

아름다운 추억까지.

술자리는 점점 무르익었다.


“아! 다들 여기 있었구먼! 한참을 찾지 않았나!”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얼굴이 모닥불보다 무르익은 전 철강왕 현 해머와 마크가 우리 무리에 합류했다.


“저. 저. 건물에 균열 생긴 것 좀 보라고. 도대체 처음 건물을 지을 때 어떻게 지은 건지 원.”


“파이톤님. 술에만 집중해요. 건물 보면 속 터져서 취한 술도 깹니다.”


“마크. 내가 몇 번을 얘기했나! 나는 이제 철강왕이 아니라니까. 제발 술 좀 끊어! 안 그러면 자네 단명할걸세.”


“술을 마시면 단명하지만, 술을 끊으면 자살할 겁니다.”


다소 살벌한 농담이 오간 후 드워프들이 착석했다. 그들의 참석은 술자리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변화시켰다.


“마크! 좀 적당히 마시라고!”


“탈리아. 너는 재미없다. 술을 마시지 않는 엘프라니. 이해할 수가 없다. 술만큼 사람을 솔직하게 만들어주는 게 없는데.”


처음에는 잔잔하게 시작했던 술자리가 어느새 동창회를 넘어 대학교 MT를 방불케 했다. 여기저기 취한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고 드워프들의 데시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다.


“내일부터 다시 전툰데 잘하는 짓이다.”


다리아가 혀를 끌끌 찼다.


“스승님. 그냥 솔직해지십시오. 나도 끼어달라고.”


“닥쳐라.”


그때였다.


“오라버니!”


저 멀리서 팔을 활짝 벌리고 나에게 다가오는 천사.


“레이첼!”


마나를 이용해 순식간에 술기운을 몸에서 밀어냈다.


“오라버니!!!”


내가 레이첼을 안아 올렸다.


“우리 레이첼. 여긴 어쩐 일이야?”


“오라버니. 보고 싶어서 왔지.”


레이첼이 내 품에 그 작은 얼굴을 묻었다. 따듯했다. 그리고 신비했다. 저 어린 체구에서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있다 생각하니 삶이란 참으로 복잡하면서도 경이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호오~ 카일이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다니. 신기하구나.”


탈리아가 레이첼을 보며 눈을 빛냈다.


“안녕~?”


조이가 레이첼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레이첼도 엘프의 미모에 반한 것일까?

그녀는 조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것도 잠시, 레이첼이 다시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쑥스러워?”


“아니. 집에 돌아가고 싶어.”


레이첼의 말에 일순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그래. 돌아가야지.”


“애기야. 걱정하지 말렴. 반드시 집에 돌아가게 해줄 테니까.”


베인이 레이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구야?”


레이첼은 베인에게서 풍기는 야릇한 향기에 거부감이 드는지 나에게 몸을 더 밀착했다.


“나? 음~ 너희 오라버니랑 뽀뽀한 사람?”


아~ 얘가 또 짓궂게.


“어! 안 되는데!”


레이첼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졌다.

모두가 그런 레이첼을 귀엽다는 듯 쳐다봤다.

이 볼살 탱탱한 5살 아이의 얼굴에 어찌 이리 깊은 수심이 자리 잡는단 말인가?


“왜 안 돼?”


베인의 질문에 모두가 레이첼의 입을 주목했다.


“경쟁자가 늘어나니까.”


“경쟁자?”


“응! 나는 커서 오라버니랑 결혼하려고 했는데 이러면 경쟁자가 느는 거잖아. 오라버니도 그러면 안 돼.”


우리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겨우 참았다. 우리에겐 귀여운 해프닝이지만 레이첼에겐 세상 심각한 일이었으니까.


“레이첼. 커서 이 오라버니랑 결혼하려 그랬어?”


“당연하지!”


아.

이래서 아빠들이 딸 바보가 되는 건가?


“근데 쉽지 않을 거 같아.”


“왜?”


“영웅은 미인을 좋아한다잖아. 근데 여기 도대체 미인이 몇 명이야?”


레이첼의 근심 어린 고민에 여기 있는 이들이 모두 함박웃음을 지었다.


“레이첼도 크면 엄청난 미인이 될 텐데 뭐가 그리 걱정이야?”


“그래도. 내 경쟁자는 이자벨라 언니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누구랑 결혼할 거야? 당연히 레이첼이지? 아니면 이자벨라 언니야?”


술자리 분위기가 다시 조용해졌다.

레이첼.

실로 무서운 아이였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분위기가 롤러코스터 움직이듯 위아래로 요동쳤다.


“응?”


레이첼이 나를 압박했다.

뿐만 아니었다.

이자벨라.

그녀도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씨익.


나는 웃었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그때였다.


“카일님은 저랑 결혼할 건데요?”


분위기를 치고 나온 것은 맑은 눈의 광인 조이였다.


“어?”


“아닌데. 나랑 할 건데? 카일은 나랑 뽀뽀도 했으니까.”


“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레이첼을 놀리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레이첼이 내 품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오라버니는 나쁜 남자야!”


뭐가 그리 억울하고 분한지 레이첼은 그 조막만한 손으로 내 가슴을 연신 두드렸다. 나는 레이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레이첼. 울지마. 오라버니는 커서 레이첼이랑 결혼할 거야.”


“정말?”


고새 눈물범벅에 얼굴이 빨개진 작은 숙녀가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다.


“그러면 약속.”


그녀가 새끼손가락을 나에게 내밀었다.


“약속.”


나는 약속했다.

레이첼을 반드시 집에 돌려보내 주기로.


“이자벨라. 어떡해? 정적이 한 명 더 늘었네.”


“하지 말라니까요! 그리고 오늘따라 왜 이리 붙어요!”


새삼 느끼게 된다.

성준오 시절, 내가 잃은 건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사람과의 교류와 인연.

나는 고작 머리카락이 없단 이유로 그 모든 기회와 권리를 내 손으로 내팽개친 거였다.


중요한 건 머리카락이 아니다.

걸어온 길을 추억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런 소중한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것.

사람들은 나를 영웅이라 불렀지만, 나의 영웅은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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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에필로그 +1 23.08.12 231 5 14쪽
122 돌아가자 23.08.11 214 4 12쪽
121 절공(切空) 23.08.10 209 4 12쪽
120 각자의 역할 (6) 23.08.09 187 4 12쪽
119 각자의 역할 (5) 23.08.08 184 4 11쪽
118 각자의 역할 (4) 23.08.07 191 4 12쪽
117 각자의 역할 (3) 23.08.06 193 5 13쪽
116 각자의 역할 (2) 23.08.05 194 5 13쪽
115 각자의 역할 (1) 23.08.04 192 4 12쪽
114 돌격 23.08.03 197 4 12쪽
» 약속 23.08.02 202 5 13쪽
112 스승과 제자 (5) 23.08.01 204 4 12쪽
111 스승과 제자 (4) 23.07.31 202 4 12쪽
110 스승과 제자 (3) 23.07.30 196 4 12쪽
109 스승과 제자 (2) 23.07.29 191 4 12쪽
108 스승과 제자 (1) 23.07.28 202 4 13쪽
107 영웅 (4) 23.07.27 202 4 13쪽
106 영웅 (3) 23.07.26 198 4 12쪽
105 영웅 (2) 23.07.25 206 4 13쪽
104 영웅 (1) 23.07.24 211 4 12쪽
103 시험 (4) 23.07.23 202 4 13쪽
102 시험 (3) 23.07.22 198 4 12쪽
101 시험 (2) 23.07.21 204 4 12쪽
100 시험 (1) 23.07.20 214 4 13쪽
99 너라는 변수가 (4) 23.07.19 222 3 13쪽
98 너라는 변수가 (3) 23.07.18 216 4 12쪽
97 너라는 변수가 (2) 23.07.17 218 3 12쪽
96 너라는 변수가 (1) 23.07.16 223 3 12쪽
95 모래성 23.07.15 234 3 13쪽
94 내 집 마련 (4) 23.07.14 230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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