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 걸린 공자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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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3.04.22 14:23
최근연재일 :
2023.08.12 22:00
연재수 :
1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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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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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각자의 역할 (1)

DUMMY

“전군 돌격!”


이 열기

이 광기

이 기세

카일이 모든 것을 끌어안은 채 외쳤다.


“와아아아아아!!!


대지가 무겁게 울렸다.

말발굽이 땅을 박찼고

병사들의 함성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리고 그 속에 릴리가 있었다.


‘이것이 전장의 열기.’


릴리는 떠올렸다.


"전쟁이라고 다 같은 전장이 아니다. 얘야."


문득 아버지의 걱정스러운 모습이 떠올랐다. 당신께서는 이런 전쟁의 압박을 걱정하셨던 걸까? 아직은 여물지 않은, 여인의 몸으로는 버티기 힘든 광기를 염려해서.


“아시잖아요. 저 한번 정하면 마음 안 바꾸는 거. 누구 닮아서.”


릴리가 페름 노아를 보며 씩 웃었다.


“덕분에 네 엄마가 맘고생 많이 했지.”


“그거 다 돌아오는 거예요.”


“그래. 그런 업보라면 내가 다 받을 테니까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알았지?”


“물론이죠.”


페름이 릴리를 껴안았다.

페름의 품에 안긴 릴리가 회의 내용을 떠올렸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지형지물의 활용입니다. 그걸 위해서는 고위급 마법사가 반드시 돌격대에 합류해야 하고요.”


탈리아가 자연스레 인원을 추렸다.

후보는 셋.

7서클인 네스뵈와 릴리.

6서클의 페름이었다.


“나는 왕궁 마법사를 지휘해야 하네.”


네스뵈는 탈락.


“그럼 내가 가지.”


페름이 손을 들었고


“아니요. 제가 갈게요.”


그의 딸인 릴리도 손을 따라 들었다.


“그러면 릴리가 가는 걸로.”


탈리아의 선택에 망설임은 없었다.


“잠깐. 탈리아!”


“이의제기는 받지 않겠어요. 합류할 마법사의 서클이 높을수록 돌격대의 생존 확률이 높아집니다. 당연히 릴리가 참여하는 게 옳은 겁니다.”


딜레마였다.

이곳은 전쟁터.

부성애는 먹히지 않는다.

하지만 아비가 어찌 자식에게 위험한 전쟁터로 가라 등 떠밀 수 있단 말인가? 안전한 후방이라면 모를까.


“릴리. 명심하거라.”


페름이 릴리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성벽 위의 공기와 들판의 공기는 차원이 다르다. 그걸 먼저 인지하거라. 그러면 침착해질 수 있다.”


“만약 그럼에도 침착하지 못하면요?”


“옆을 둘러봐야. 마법사의 옆에는 항상 전우가 있으니까. 무섭다면 무섭다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달라 말하거라. 인정하고 대비하는 게 생존의 첫 원칙이다.”


릴리는 전쟁터를 얕봤다.

마물들이라면 얼마든지 봤고

자신을 습격하는 와이번을 직접 토벌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격과 수성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차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꽉.


몸에 힘이 들어갔다.

단지 돌격하는 것뿐인데.

심장이 요동쳤다.

호흡이 가빠지고

주변 사물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와이번이다! 와이번이 나타났다!”


선두의 외침이 아래로 빠르게 내려왔다.

릴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수없이 봐 온 마물인데

이미 자신이 잡아본 마물인데

하늘에서 날개를 펼친 와이번이 오늘따라 유독 커 보였다.


“릴리님. 준비···.”


돌격대의 중앙.

길버트가 릴리를 바라봤다.

그는 단번에 눈치챘다.


‘마법사는 안 된다.’


길버트가 빠르게 작전을 수정했다.


“엘프 궁수들 준비.”


길버트의 외침에 릴리를 호위하고 있던 엘프들이 화살을 장전했다.


“발사!!!”


한 발의 화살이 100발이 됐다.

하지만 와이번이 날개를 휘두르자

화살은 무기력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윽고 반격이 시작됐다.

와이번이 아가리를 벌렸다.


“모두 대비하라!”


와이번의 아가리가 병사를 물고

발톱이 병사를 잡아끌었으며

날갯짓은 돌풍이 돼 돌격 진로를 막았다.


“어이 마법사! 뭐해!”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뭐하냐고!”


“마법사! 으악!!!”


용병들이 소리쳤다.

눈앞에서 동료들이 사냥당한다.

하지만 마법사는 전장에 처음 온 초짜처럼 광기에 짓눌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야생에선 공포가 그 무엇보다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카오오오오오!”


와이번 한 마리가 릴리를 포착했다.

그녀는 공포에 바들바들 떨었다.

너무나도 먹음직스러운 먹이.

녀석이 군침을 흘리며 하강했다.


“릴리!!!”


길버트가 소리쳤다.

엘프들이 와이번의 접근을 막았지만

녀석의 날갯짓에 화살은 무용지물이었다.


“어?”


누군가 자신을 불렀다.

고개를 들어봤다.

그곳에 태양을 가리는 거대한 날개가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콰직!


허리에 뜨거운 고통이 올라왔다.


“꺄아아아악!”


와이번이 릴리를 낚아챘다.


후웅.


길버트가 날았다.

하지만 녀석은 길버트의 공격을 피해 자신의 영역으로 상승했다.


‘마법을 써야 하는데.’


릴리의 몸이 굳었다.

지금 당장 마법을 난사해야 한다.

하지만 머리가 백지였다.

술식도 영창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마법사가 잡혔다!”


비보는 빠르게 선두에게 전달됐다.


“제가 갈게요.”


정령화를 한 채 독을 살포하며 길을 뚫는 이자벨라가 말했다.


“아니. 이자벨라. 여기 있어.”


“하지만.”


“네가 선두를 서지 않으면 희생은 더 커진다.”


이자벨라가 군말 없이 선두를 지켰다.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면 됩니다.”


카일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레텐토에 녹빛 오러 블레이드를 두른 채 이자벨라가 처리하고 남은 잔존 병력을 써는 데 집중했다.


“탈리아가 말하지 않았느냐. 이번 작전의 핵심에 마법사가 있다고.”


보다못해 다리아가 나섰다.

하지만 카일은 멈추지 않았다.

돌격대는 속도가 생명.

지금 멈추면 피해는 더욱 커진다.


“괜찮습니다.”


“우리가 목표 지점에 도달한다 한들 릴리가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다리아는 의아했다.

뭐가 괜찮단 말인가?

릴리가 와이번 무리에 납치당했다.


‘설마 릴리를 버리고 작전을 수행할 생각인가?’


다리아가 카일의 등을 바라봤다.

그의 등은 여전히 의문이었다.

그는 돌격대를 이끄는 돌격대장.

병사의 희생이야 당연한 일이었고

낙오도 각오했기에 이렇게 망설임이 없는 것일까?


“안전장치를 하나 더 준비했습니다.”


그런 다리아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카일이 달리는 말에 올라타며 얘기했다.

한편, 길버트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요격한다면? 방법은? 엘프 궁수들이 활을 잘 쏜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일반 병사. 정령의 힘을 두르지 못하면 와이번은 뚫을 수 없다.’


판단은 빠르게 내려졌다.


“마법사는 버린다.”


이곳은 전장이다.

자기 몸을 지키지 못하면 죽는 게 상식인 장소다.


“아니. 아직 구할 수 있어요.”


그때였다.

길버트의 옆으로 안대를 맨 채 말을 몰고 있는 순례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불가능하다.”


순례자가 오러를 두른 길버트의 검을 바라봤다.


“절 날려 보내주세요.”


“뭐?”


길버트가 귀를 의심했다.

날려 보내라니?

어떻게?


“기회는 한 번뿐. 타이밍은 알아서 맞춰주세요.”


순례자가 말 안장에 두 발을 올리고 일어섰다.

그리고


탓.


순식간에 허공으로 도약했다.


‘설마?’


길버트가 자신의 검을 바라봤다.

그녀의 의도가 읽어졌다.

자신의 도신을 발판 삼아 공중으로 도약하려는 것이다.


‘미친 여자가 따로 없군.’


하지만 길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상식적인 작전으론 릴리를 구할 수 없다. 길버트가 검을 눕힌 채 타이밍을 쟀다. 그리고 순례자의 발이 자신의 눈앞에 오는 순간


틱.


검신으로 그녀를 받쳤다.

그리고


“하아아압!”


근육에 마나를 주입해 있는 힘껏 그녀를 날렸다.


팡!


순례자의 몸이 하늘로 솟구쳤다.


“큭.”


바람의 저항이 매서웠다.

하지만 순례자는 집중했다.

파공성 속 그녀가 와이번의 날개에 귀를 기울였다.


푹.


이윽고 상공에 도달했을 때

순례자가 곡도를 뽑아 와이번의 몸에 쑤셔 넣었다.


“카오오오오!!!!”


와이번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몸을 360도 회전하고

지그재그로 날았으며

종국에는 자신의 등을 벽에 박으려 했다.


서걱.


하지만 순례자가 와이번의 목을 자르는 게 더 빨랐다.


“키에엑!”


녀석의 비명이 점점 아래로 추락했다.

상승하던 와이번의 몸이 멈췄다.

날갯짓이 멈추고

릴리를 잡고 있던 발톱에 힘이 풀렸다.


“꺄아아아아악!”


릴리가 상공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탓.


순례자가 와이번의 몸을 박찼다.

빠르게 하강하는 육신.

릴리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릴리가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쉽지 않았다.

순례자와 릴리를 노리고 와이번들이 접근해왔다.


‘낙하한다. 마법을 써야 하는데? 마법이 뭐였지?’


몸이 수시로 회전하고

주변으로 와이번이 날아다녔다.

마법을 써 몸을 피해야 하는데 여전히 머리는 백지였다.


“카오오오오!”


그때 또 한 마리의 와이번이 아가리를 벌리며 릴리를 노렸다.


서걱.


하지만 순례자가 목을 베는 게 더 빨랐다.


500미터.

450미터.

400미터.

350미터.

지상과의 거리가 300미터가 됐을 때 순례자가 릴리를 안았다.


릴리의 몸으로 따듯한 체온이 느껴졌다.


“진정하세요.”


앞이 보이지 않을 거다.

그 누구보다 순례자가 잘 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인도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꺄아아악!”


정신이 든 릴리가 소리쳤다.


“진정하세요.”


“우리 떨어지고 있어요! 떨어지고 있다고요!”


릴리가 아래를 바라봤다.


“알아요.”


순례자의 표정은 평온했다.

릴리는 이 장면이 환상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저리 평온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숨 쉬어요.”


순례자가 등을 토닥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릴리는 즉각 순례자의 말을 따랐다.

지금 당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니까.


“후우~ 후우~~~”


순례자가 릴리의 몸으로 따듯한 마나 한 줄기를 흘려보냈다. 긴장이 풀리고 굳었던 근육이 풀렸다.


핑.


다음은 차가운 마나를 머리로 흘려보냈다.


“아!”


릴리의 머리가 띵해졌다.

하지만 잠시 후,

뿌옜던 시야가 돌아오고

머리가 상쾌해졌다.


“정신이 들어요?”


자신의 눈앞에 안대를 착용한 여인이 보였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끌어안은 채 함께 낙하하고 있었다.


“네.”


“할 수 있겠어요?”


많은 것을 생략한 물음.

하지만 그녀는 순례자의 뜻을 단번에 이해했다.


“침착하게. 천천히.”


순례자가 릴리를 더 꼭 안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격하게 뛰던 릴리의 심장이 안정을 찾았다.


‘생각났다!’


릴리가 술식을 구축하고 영창을 외우기 시작했다.


“할 수 있어요.”


순례자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녀였기에 가능했다.


200미터.

100미터.

50미터.

10미터.


이제는 시간 싸움이었다.

추락 전에 술식을 만드느냐 못하냐의 싸움.

순례자가 릴리의 머리를 보호하듯 앉았다.

여차하면 자신이 희생할 기세.

릴리는 쉬지 않고 영창을 읊었다.


‘제발!’


그녀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자신이 구축한 술식이

자신이 외운 영창이

실수 없이 마법을 발동하기를.


“워프!!!”


릴리의 목소리가 대지를 울렸다.

하지만 허공 그 어디에도 마법진이 생기지 않았다.


‘실패한 거야?’


릴리가 울상을 지었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

이대로 자신들은 땅에 처박혀 몸이 터지는 거다.

그때였다.

순례자의 낙하지점에


솨아아아아아.


푸른 마법진이 생겼다.


쏙.


두 여인이 다이빙하듯 마법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털썩.


릴리와 순례자는 어느새 달리고 있는 말 안장 위에 있었다.


“마법사가 돌아왔다!”


“마법사가 돌아왔다!!!”


마법사의 호위를 맡았던 병사들이 외쳤다.


“마법사가 돌아왔다!!!!!!!”


이 소식을 누구보다 기뻐한 길버트가 목청에 마나를 가득 실어 외쳤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병사들이 환호했다.

순례자의 기지에

릴리의 극복에

그리고 작전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기쁨에.


“알고 있었나?”


돌격대 최선두.

다리아가 카일의 옆으로 붙었다.


“그럼요. 제가 믿는 사람들인데 그 정도는 해야죠.”


카일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하지만 다리아는 보았다.

카일의 뒷덜미를 타고

먼지에 몸을 숨긴 채

흐르는 식은땀 한 방울을.


“속도를 올린다! 작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카일이 치고 나갔다.

그의 말대로였다.

작전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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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에필로그 +1 23.08.12 231 5 14쪽
122 돌아가자 23.08.11 215 4 12쪽
121 절공(切空) 23.08.10 211 4 12쪽
120 각자의 역할 (6) 23.08.09 189 4 12쪽
119 각자의 역할 (5) 23.08.08 186 4 11쪽
118 각자의 역할 (4) 23.08.07 192 4 12쪽
117 각자의 역할 (3) 23.08.06 195 5 13쪽
116 각자의 역할 (2) 23.08.05 195 5 13쪽
» 각자의 역할 (1) 23.08.04 194 4 12쪽
114 돌격 23.08.03 198 4 12쪽
113 약속 23.08.02 203 5 13쪽
112 스승과 제자 (5) 23.08.01 204 4 12쪽
111 스승과 제자 (4) 23.07.31 204 4 12쪽
110 스승과 제자 (3) 23.07.30 199 4 12쪽
109 스승과 제자 (2) 23.07.29 193 4 12쪽
108 스승과 제자 (1) 23.07.28 202 4 13쪽
107 영웅 (4) 23.07.27 204 4 13쪽
106 영웅 (3) 23.07.26 200 4 12쪽
105 영웅 (2) 23.07.25 207 4 13쪽
104 영웅 (1) 23.07.24 212 4 12쪽
103 시험 (4) 23.07.23 204 4 13쪽
102 시험 (3) 23.07.22 199 4 12쪽
101 시험 (2) 23.07.21 205 4 12쪽
100 시험 (1) 23.07.20 216 4 13쪽
99 너라는 변수가 (4) 23.07.19 223 3 13쪽
98 너라는 변수가 (3) 23.07.18 217 4 12쪽
97 너라는 변수가 (2) 23.07.17 220 3 12쪽
96 너라는 변수가 (1) 23.07.16 225 3 12쪽
95 모래성 23.07.15 235 3 13쪽
94 내 집 마련 (4) 23.07.14 23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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