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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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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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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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3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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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생활2

DUMMY

오후 1시가 되자 그는 어떤 강의실로 들어갔다.



학생들이 20명 정도 수업 받는 강의실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가 수업을 시작했는데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교수였다.



강의 내용으로 보아 수학을 전공하는 듯했다.



어려운 공식들이 칠판에 적혀지고 노교수는 약간 무심한 표정으로 열심히 말을 하는 듯 했는데 전혀 들리지는 않았다.



칠판을 비추던 화면은 책상 위의 노트도 간간히 비췄는데, 칠판의 공식 중 일부를 받아 적는 것 같았다.



가끔 노트에 메모를 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알아보기 힘든 악필이었다.



뭔가 강의실에서 위급상황이 발생할 거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점심을 먹으면서 묵묵히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그는 수업내용에 흥미를 잃었는지 약 30분이 지나자 핸드폰 화면이 보였다.



소리는 끈 채로 유튜브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내용은 연예 가십거리부터 브이로그, 먹방 등 추천하는 내용을 그냥 랜덤으로 보는 듯했다.



수업이 마치자 그는 캠퍼스 내에서 아무도 안 찾을 만한 공간에 있는 벤치로 향하더니 거기에 앉았다.



벤치에서 보이는 풍경은 어떤 학과 건물의 뒤편이었는데, 간혹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학생이 한두명 보일 뿐 인적이 매우 드문 장소였다.



갑자기 핸드폰 화면 수신화면이 떴다.



[박인정 교수님]이라고 저장된 수신화면이었는데 그는 통화 거절을 눌렀다.


교수님 전화를 왜 안받지?



학과 교수님인가?




근데 무슨 일로 그에게 전화를 하셨을까?



여러 가지 궁금점들이 머리에 맴돌았지만 난 모니터링에만 집중했다.



오후에 그는 수업 하나를 더 들으러 갔다.



이번에는 물리학이었다.



역시나 내가 알 수 없는 내용들로 칠판은 가득 채워졌다.



그는 노트필기를 간혹가다가 했는데 역시나 알아 볼 수 없는 필체였다.



이번 수업은 흥미를 느꼈는지 그는 휴대폰을 보거나 딴짓을 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 그는 캠퍼스 밖으로 빠져나왔다.



캠퍼스 정문을 보고야 나는 여기가 서울대란 것을 알아챘다.



학교 정문을 빠져나온 그는 버스를 타고 원룸이 많은 주택가에서 내렸다.



그러고선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어떤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어느 원룸건물에 다다르자 그는 1층에 있는 우편함을 뒤적였다.



그는 몇 가지 우편물들을 확인했다.



봉투의 맨 밑에 ‘김창인 귀하’라고 써있는 걸 보니 그의 이름인 듯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 그는 걸어올라갔다.



그가 사는 공간은 약 7-8평 되는 1.5룸 정도 크기의 원룸이었다.



피곤했는지 가방을 책상에 던진 후 바로 불이 꺼지고 모니터에는 침대 천장이 비쳤다.



카메라는 어두운 곳에서는 적외선 카메라로 변경되어 작동하는지 천장 및 주변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눈을 감아도 카메라는 항시 켜져 있기 때문에 그가 잠을 자는지 그냥 누워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가 뒤적거리는지 카메라는 방의 한쪽 벽과 맞은 편 책상부근을 번갈아가며 비췄다.



그렇게 뒤척이기를 30분



모니터는 천장의 한 부분에 고정됐다.



나는 저녁을 먹으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오랫동안 꿀잠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랬다. 그리고 예상대로 퇴근시간인 12시까지 천장을 비추는 화면은 바뀌지 않았다.



간혹 이쪽저쪽을 비추었지만 느낌상으로 잠에 든 것 같았다.



인터폰이 울리고 나는 퇴근을 위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확실히 이번 모니터링은 저번의 테스트와는 사뭇 달랐다.



나는 뭔가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훔쳐보고 있는 것이다.



정신이 혼미하고 이게 도대체 무슨 환자를 내가 모니터링하고 있는 건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나는 애써 아르바이트에 대한 생각을 안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어두운 낯빛의 공대생인 것 같았다.



근데 그가 무슨 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터놓고 이야기를 하고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 온라인에 물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비밀유지에 대한 강박으로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할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여보세요”



“그래 우리 아들 일은 할 만 하니?”



“아 그럼요,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업무라서 정신이 없어요, 엄마”



“그렇구나, 뭐 반찬 필요한 거 있으면 엄마가 부쳐줄게. 친구랑 같이 먹으렴.”



“아니에요, 요즘 잘 먹고 다녀요”



“그래도 엄마가 멀리서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해서 그래”



“괜찮아요, 엄마. 제가 7월 중에 한 번 찾아뵐께요”



“그래 그러렴. 항상 응원한다”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보니 어머니한테서 부재중 전화가 2통 와 있었다.



나는 모니터링에 정신이 팔려서 전화가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지현은 오늘 가족들과 함께 강원도 속초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내일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집에서 쉬어야 겠다.


#


내가 모니터링하는 김창인은 학교와 원룸을 오고 가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사실 평범하지는 않게 느껴진다.



일단 친구가 별로 없다.



강의실에서 그냥 인사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취미 생활은 웹툰이나 유튜브 동영상을 보는 것 외에 야외 활동이나 모임을 즐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한 달에 3-4 차례 신경정신과 전문의를 만나서 상담을 받았다.



모니터링할 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아 무슨 말이 오고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고 있었다.



전문의는 그가 말할 때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가 양손의 제스처를 이따금 취하는 거로 봐서 말을 하고 있다고 짐작했다.



그리고 그가 말을 끝내면 전문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뭔가를 말했다.



하지만 무슨 상담이 오고 가는지 전혀 알 수는 없었다.



한 번은 그가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샀는데, 처방전을 자세히 보지 않아서 그게 무슨 약인지 알 수는 없었다.



아마 ‘환자’라고 면접 때 알려준 게 신경정신과 환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바로는 김창인은 그렇게 위험한 인물 같지는 않아 보였다.



상대방에게 해를 가할 거 같지도 않았고, 본인이 뭔가 위험한 일에 처할 것 같지도 않았다.



적어도 내 눈에는 말이다.




하루는 그가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원룸에서 일기장을 꺼내 들었다.



그의 생활에 깊게 파고들기 싫어서 그냥 위기 상황이 올 거 같을 때만 집중하고 원룸에 돌아왔을 때는 건성으로 모니터를 보곤 했는데 일기장 내용이 화면에 잡힐 때마다 나는 최대한 집중해서 읽어보았다.



[ 2019년 5월 12일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엄마한테 꾸지람을 들었다. 엄마는 내 성적에 매우 집착한다. 내가 좋은 성적을 내야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고 항상 말씀하신다. 하지만 난 이런 학교 과목들이 너무 배우기 싫다. 짜증난다. 대 때려치고 싶다. 그냥 가출이나 해버릴까?...]




5년전의 일기 내용이다.




아마 중학생 때의 일기 내용인 듯싶다.



중학생때 부모님이 어느 정도 학업에 관심이 있는 경우라면 성적으로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런데 김창인은 중학생 때 그런 학업 압박이 유독 심했던 모양이다.



일기장을 뒤척이다가 어떤 페이지에 멈췄다.



[2019년 11월 8일


오늘은 재수 오지게 없는 날... 엄마가 오늘도 나를 닦달했다.

너무 화가 치밀어서 쌍욕을 하면서 문을 박차고 집밖으로 나왔다.

피씨방에서 게임을 하다보니 어느새 밤 12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집에 들어가자 아버지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또 그놈의 고리타분한 잔소리를 새벽 1시까지 들어야만 했다.


나를 좀 내버려둬!!!

너네들은 내 진짜 부모도 아니잖아!!!! ]




아... 김창인의 부모는 양부모구나.



그런데 입양한 아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학업에 집착하는 듯 보였다.



일기 내용으로 보아 김창인은 양부모에 대한 분노가 많이 쌓여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어쨌든 양부모는 그의 교육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지금 서울대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만약 서울대에 들어갔다면 울 어머니는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니셨을 거다.




[2020년 1월 14일


친구들이 나를 벌레보듯이 한다.

나 들으라는 듯이 나에 대에 안좋은 이야기를 한다.

그 흑주먹파 양아치들이 점점 더 나를 괴롭힌다.

어제는 체육시간에 대놓고 내 머리에 공을 던졌다. ]


일기의 내용으로 봐서 학폭을 당했던 것 같다.



간혹 학교에서 외톨이로 보이고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표적이 되곤 한다.



김창인은 아마도 외모적인 특징이나 내성적인 성향으로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일기장을 뒤척이다가 탁 덮었다.



한동안 모니터는 책상 주변을 비추었다.



책상은 좀 어질러져 있었는데 노트북, 여러 가지 대학교 서적들 – 주로 물리학이나 수학, 통계 – 위주였다.



그리고 한 켠에는 조그만 액자에 사진이 있었는데 부모님과 창인이 함께 찍은 가족 사진인 듯 했다.



사진 속에서 부모님은 앞쪽을 보며 웃고 있었고. 창인은 뒤편 그들 가운데서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속의 창인은 뭔가 멍한 표정에 창백해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지금의 얼굴보다는 앳돼 보였다.



갑자기 창인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박인정 교수

내가 저번에 메일로 보내줬던 프로젝트 참석여부 알려주게나.

가능하면 참여했으면 좋겠네.

첫 미팅은 공대 건물 2층 회의실에서 진행할 예정이니 와줬으면 하네]



저번에 창인이 전화를 받지 않은 그 교수였다.



창인은 이번에도 문자만 확인하고 휴대폰을 침대에 던져버렸다.



아마도 프로젝트에 관심이 없나보다.



그는 저녁은 배달시켜 먹었다.



조그만 1인용 피자였는데, 사이드 메뉴로 치즈스틱과 콜라를 같이 주문했다.



그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웹툰을 보기 시작했다.



직장인들의 연애 관련 유치한 웹툰이었는데, 나는 웹툰을 즐겨 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니터에서 웹툰이 보이는 동안 간식으로 라볶이를 주문해서 느긋하게 먹었다.



창인은 피자를 먹는 내내 웹툰을 봤다.



나로서는 다행인 듯 싶었다.



그가 느긋하게 방안에 있는 동안 비상 상황은 발생할 일이 없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은 그는 여느 때처럼 샤워를 했다.



왜소한 체구에 근육이 없는 마른 몸으로 보아 그는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가 거울을 보며 양치를 할 때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것 같아서 잠깐 놀라기도 했다.



나는 그때 카메라가 어디쯤 위치했는지 알아보려고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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