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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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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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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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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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2 미팅

DUMMY

그 사건 이후로 거울에 비친 창인의 모습은 더욱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러한 창인에게도 동성의 단짝 친구가 있다.



그의 이름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수업을 들을 때 종종 옆에 나란히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건 학교에서 창인이 유일하게 대화를 나누는 인물이란 것이다.



그는 외모적으로 보면 키는 중키 정도에 상당히 말랐다.



안경을 낀 모습은 상당히 학구적으로 보였는데 특이한 점이라면 웃을 때 뻐드렁니가 두드러져 보인다는 것이다.



그 창인의 단짝은 창인보다는 밝아 보였고, 수업 때 질문도 꽤 하는 듯했다.



어느 날은 창인이 옷을 빼입고 거울 앞에서 평소보다 매우 길게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러더니 편의점에서 왁스를 사서 평소에 하지 않는 스타일로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물론 거울 앞의 그의 모습은 부자연스럽고, 머리 스타일은 어설픈 90년대 헤어 스타일 같아 보였다.



왜 이렇게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아마도 미팅이나 소개팅이 있는 자리인 거 같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창인이 향하는 곳은 학교 캠퍼스가 아니라 신림역 인근의 어떤 카페였다.



창인은 커피숍 안쪽에 있는 룸으로 들어 갔는데 중앙에 큰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아무도 없는 테이블에 그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평소처럼 휴대폰으로 뭘 보는 대신 그는 주변을 산만하게 두리번거렸다.



시계는 오후 1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2시에 가까워 지자 그의 단짝이 룸으로 들어왔다.



그는 세미 정장 차림으로 빼어 입고 왔는데, 헤어스타일은 펌 가르마를 했지만 왠지 어색해 보였다.



그 단짝친구는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창인과 대화를 나눴는데, 주로 그가 이야기를 했다.



2시가 조금 넘자 여자애 둘이 들어왔다.



둘 다 대학생이었다.



한 명은 단발머리에 모자를 쓰고 폴로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앞머리를 내렸는데 거의 비슷한 셔츠에 통 넓은 와이드 레그 바지를 입고 있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두 여자가 자리에 앉았다.



창인이 쑥쓰러워 하는지 모니터의 방향은 테이블 중앙을 향하고 있었지만 여자들의 표정이 들어왔다.



다들 음료를 같이 주문했다.



여자애 둘은 자몽에이드와 스트로베리 스무디를 시켰고, 단짝친구는 아이스 라떼, 그리고 창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창인의 단짝 친구가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인지 말을 많이 하는 듯 보였지만, 단발머리에 모자를 쓴 여자는 한 20분 정도 지나자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나중에는 거의 앞머리 기른 여자애와 창인 단짝 친구만 대화하는 분위기가 됐다.



한 1시간이 흘렀을 무렵 다들 자리를 일어났다.



모자를 쓴 여자애는 손을 흔들며 가볍게 웃은 뒤 자기 갈 길을 갔고, 앞머리 기른 여자와 창인, 그리고 단짝 친구는 근처 술집으로 이동했다.




세 명은 수제 맥줏집에서 소세지와 맥주를 시켜서 먹기 시작했다.



여기서도 대화는 주로 단짝친구와 앞머리 내린 여자가 했다.



아직 오후라 그런지 술집 내부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1시간 정도 흘렀을까..



창인의 단짝친구가 화장실을 가는 듯 자리를 떴다.



테이블에는 침묵이 흘렀다.

물론 나한테 아무소리도 들리지는 않는다.



여자는 잠시 테이블 옆을 두리번거리더니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창인이 무슨 말을 걸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앞머리 여자는 어디에 전화를 하는 듯했다. 1-2분 정도 통화를 하더니 웃으면서 창인에게 뭐라고 말한다.



창인이 앞머리 여자에게 자기 휴대폰을 건내자, 거기에 어떤 전화번호를 저장해서 줬다.



[유다혜 010-XXXX-XXXX]



창인은 자기 폰에 저장된 그 번호와 이름을 한동안 바라봤다.



그 사이 창인의 단짝이 돌아왔다.



앞머리 여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창인 단짝 친구와 이전처럼 웃으면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저 앞머리 여자애가 번호를 저장해 준 ‘유다혜’는 누굴까?



앞머리 여자 본인인가?



아니면 아까 자리를 뜬 단발머리에 모자를 쓴 여자?



확실하지는 않지만, 창인의 단짝이 화장실 간 사이 창인이 앞머리 기른 여자애에게 누군가의 번호를 물은 것 같다.



앞머리 여자가 잠시 어디에 통화를 한 거로 봐서 좀전의 단발머리 여자애에게 번호를 줘도 되냐고 물은 게 아닐까 생각됐다.



하지만 이건 내 추측일뿐 확실하진 않다.



이들의 술자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오후 5시가 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집 근처 버스정류장 부근에서 앞머리 여자애는 창인과 그의 단짝 친구와 웃으면서 악수를 하고 바로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다.



둘은 신림역 근처 피씨방에 들어갔다.



나란히 앉아 게임을 하기 시작했는데, 둘은 상당히 오랜 시간 거기에 있었다.



게임에 별 흥미가 없는 나는 저녁을 느긋하게 먹으면서 모니터링 했다.



저녁은 탕수육과 굴짬뽕이었다. 중식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여기 짬뽕은 적절히 매운맛에 감칠맛이 느껴져서 한 그릇을 서둘러 다 먹었다.


#



지현은 이제 인턴을 마쳤다. 어차피 여름방학 두 달 간의 인턴이었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한다.



“오빠, 난 이제 인턴 끝났어. 졸업하고 자기네 회사 지원하면 받아줄 수 있데”



“아 그거 잘 됐다. 역시 울 자기는 야무지네~”

나는 지현이 대견스럽고 고맙기도 했다.



“난 이제 졸업하면 여기 저기 언론사 지원해서 기자로 일 할거야”



나는 그녀가 기자란 직업에 잘 어울다고 생각한다.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뭔가를 알아가는 것을 흥미있어 했다.



게다가 남의 말도 귀 기울여서 잘 들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근데 나 있잖아. 오늘 민지 만날거야”



민지는 지현의 베프다.



“내가 얼마전에 말 했었지? 걔 남친 새로 생겼다고”


“으...응, 그랬지.. 기억나”



“내일 민지가 남자친구에 대해 상담할거 있다고 나보고 저녁에 만나재.”



“아 그래?”



“남친이랑 얼마전에 말다툼했나봐...그래서 나한테 상담받는다고...무슨 내용인지는 나도 아직 몰라.”



나는 문득 서울대에 다니는 김창인이 생각났다.



“남친이 물리학과라 그랬나?”



“어 맞아. 오빠 기억 잘하네”



나는 창인에 관해 물어볼까 잠시 고민했다. 이건 나의 업무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지현의 베프인 민지의 남자친구가 창인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거다.



그런데 이런 고액 아르바이트를 나의 섣부른 행동으로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나의 궁금증은 그냥 쓸데없는 단순한 호기심일 뿐이다.



커피잔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나를 보며 지현이 말했다.



“오빠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



“어, 아냐” 난 웃으면서 대답했다.



“요즘 뭐 고민 있어?”



“아무것도 아냐. 걱정하지마” 나는 다시 미소지으며 답했다.



나는 태연하게 커피를 마셨다.



시간은 어느덧 5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지현은 이제 베프 민지를 만나러 가겠다며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무슨 생각에서 였는지 갑자기 지현에게 말했다.



“혹시 민지가 만나는 남친 있잖아...”



“어 ...” 지현은 나의 말에 눈을 둥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그 친구한테 서울대 김창인 아냐고 물어봐 줄 수 있어?”



“어?... 김 누구?”



“김. 창. 인. 이라고.....울 회사 인턴 지원했었나봐... 근데 사장님이 궁금해하던데....어떤 앤지...서울대 물리학과였나, 수학과였나 좀 헷갈리네....”



갑자기 나온 거짓말에 나는 말을 더듬거리고 목소리는 긴장에 떨렸다.



“그걸 오빠한테 알아봐 달라고 했다고?” 지현은 궁금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아니, 그런건 아니구....그냥 인턴으로 뽑을지 고민하시더라구”



“어 그래? 한 번 물어볼게...오빠가 원하면”



“어 그래 고마워”



나는 괜한 걸 부탁했나하는 생각에 후회가 갑자기 밀려왔다.



우리는 저녁에 통화하기로 하고 지현은 민지를 만나러 카페를 나섰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보쌈을 포장 주문하고 근처 편의점에서 소주를 샀다.



요즘에는 저녁에 늦게까지 마셔도 부담이 없다. 어차피 아르바이트가 정오부터 시작이라 나는 최소 아침 9시까진 푹 잘 수 있다.



이제는 모니터링에 여유가 생긴 거 같기도 하다.



보쌈을 싸들고 가자 장현이 나를 반겼다.



“워~~ 내 베프, 통이 커졌어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야, 뭐 보쌈 3인분 가지고 뭘 그래?”



내가 웃으면서 대꾸했다.



우리는 스포츠 하이라이트를 보며 보쌈과 소주를 먹기 시작했다.



“근데 거기는 정규직이나 계약직으로는 전환시켜 주지는 않는데?”



장현이 티비에 눈을 고정한 채로 뜬금없이 물었다.



“몰라...해주면 하는거고”



나는 사실 그런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이건 그냥 돈 많이 주는 알바일 뿐 내 전공하고 관련도 없고 커리어가 쌓이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장현은 내가 지금 하는 알바가 시장조사라고 둘러댔기 때문에 정규직이나 계약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 같다.



“요즘 취업 시장도 어려운데 인턴 하던 데서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다니는 게 좋을 거 같긴 해. 물론 뭐 100프로 다 해주는 건 아니지만...”



“어 ...두고 봐야지”

맞는 말이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이 모니터링을 정규직이 돼서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보쌈 마지막 한 점까지 사라지고, 소주 3병째 끝났을 때 시간은 벌써 11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장현은 먼저 샤워하러 들어가고 나는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앉은뱅이 테이블을 닦아서 접은 후 부엌 한 켠에 두고 쓰레기를 버리러 밖으러 나왔다.



그 때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현이다.



나는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오빠 저녁 먹었어? 민지가 남친한테 물어봤는데 남친이 물리학과 모든 학년 학생을 아는 건 아니지만 물리학과에 그런 이름 들어본 적이 없다는데...?”



“어.....알았어.... 그렇구나...알아봐 줘서 고마워”



우리는 안부 인사를 짧게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순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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