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르바이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SF, 일반소설

새글

키코다
작품등록일 :
2024.05.29 11:17
최근연재일 :
2024.09.18 00:25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551
추천수 :
1
글자수 :
102,180

작성
24.07.30 11:15
조회
18
추천
0
글자
12쪽

시간 변경 제안

DUMMY

오늘도 평소처럼 무사히 알바를 끝마쳤다.



별 일은 없었다.



창인은 다혜와 톡을 주고받았지만 다혜는 답장이 항상 1-2 시간 후에나 왔고 창인은 카톡 보내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창인은 휴대폰으로 ‘여자친구 선물’ ‘여친 이벤트’ ‘깜짝 이벤트’ 이런 것들을 검색해서 알아 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유다혜는 전혀 관계에 대해 진지해 보이지 않았다. 만약 창인이 내 친동생이었다면 뜯어 말렸을 거다.




밤 12시가 되자 어김없이 인터폰이 울렸다.



“수고했습니다. 퇴근하세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주차장 구석에 주차돼 있는 검정색 밴에 올라탔다.



밴에 올라타자 나를 면접 봤던 중년사내가 타고 있었다.



“오랫만입니다. 주원호씨”

그가 웃으면서 악수를 건냈다.



“네...”



“오늘은 월급날이오. 열심히 수고한 보답이니 받으시게”



그가 두툼한 봉투를 나에게 건냈다. 안에는 5만원권 100장이 들어있었다. 차 안에서 100장인지 정확히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집에 가서 세어 봤을 때 금액은 정확했다.



중년의 사내는 옆에 있는 간이 냉장고에서 병맥주 두 병을 꺼냈다.



한 병을 따서 나에게 권한 후 자기 병도 따서 건배를 청했다.



“자.. 업무하느라 수고하는데 한 잔 들어요”



맥주는 시원했다.



평소 생맥주나 카스, 테라만 즐겨먹는 나에게는 생소한 수입맥주였다.


그는 간이 서랍에서 비닐포장된 육포를 꺼냈다.



“맥주에는 육포만한 안주가 없더라고 허허허”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비닐을 뜯어 큼직한 육포 한 조각을 나에게 권했다.



“난 주원호씨가 입이 무겁고 묵묵히 일을 해줘서 고마워” 그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봤다.



순간 나는 여자친구 지현의 베프인 민지를 통해 김창인에 대해 몰래 알아봤던 일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나는 나도 모르게 맥주병을 꽉 움켜쥐었다.



“지금처럼만 해주면 나는 오케이~”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나는 그의 표정을 곁눈질로 살폈는데 나를 떠보거나 하는 의도는 없어 보였고, 내가 하는 일에 흡족해하는 듯 보여서 안심이 됐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걸요” 나는 침을 삼키면서 대답했다.



“단순한 일이기도 하지만 흔한 일도 아니어서” 그가 웃으면서 대꾸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씩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았다.



그리고 내가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닐까 여러 번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니 이제는 조금 익숙해 진거 같기도 하다.



병맥주를 다 비우고 육포 세 조각을 거의 다 먹었을 무렵에 차는 구로디지털단지 앨린빌딩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나는 이번에 받은 월급으로 지현이랑 어디서 무슨 데이트를 할까 즐거운 고민을 하며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 때 중년의 사내가 나에게 말했다.



“주원호씨, 다음 알바부터는 말이야, 시간을 좀 바꾸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지금까지는 오후1 2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하지 않았나. 다음 알바부터는 밤 12시부터 낮 12시까지 하라고. 그게 다야”



“네? 시간대를 바꾸자는 말씀인가요?”



“그래, 시간대 변경” 그가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나는 그의 일방적인 지시에 얼떨떨했다. 하지만 안하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럼 모니터 대상은 동일한가요?”



“그야 당연하지”



내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자 그가 내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어이,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요. 주원호씨가 지금까지 고생해서 편한 시간대로 바꿔주려는 거야. 낮부터 밤 12시까지는 집중해서 모니터링 계속해야 하잖아? 깨어있고 돌아다니는데, 뭔 일이 언제 터질지 어케 알아? 근데 밤에는 사람들이 대개 자잖아. 안 자도 4-5시간은 잔다고. 그럼 모니터링도 그렇게 빡세게 할 필요가 없는거야.”



나는 밤낮이 바뀐 올빼미 생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학교 4학년 때 행정고시를 준비하느라 잠깐 그런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삶의 리듬이 깨지니 생활이 피폐해졌다. 이때 나는 밤에 자고 낮에 깨어있는 생활이 건강에 좋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 아르바이트는 격일제다. 밤낮이 바뀌어도 어차피 하루는 쉰다. 데이트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네 좋습니다” 내가 대답을 하자 중년사내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고맙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말인데...........자네에게 휴가를 좀 주려고”



“네?” 내가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뭐 길게 줄 순 없고, 오늘이 목요일이니깐 금,토,일 쉬고 다음주 월요일 밤 11시에 출근하라고. 장소는 똑같이 여기로 오면 돼”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크게 대답했다.



“허허 젊은 친구들은 쉬는 걸 너무 좋아해. 큰일이야. 허허허” 그가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아 근데 말이야, 방은 바뀌었네. 가운데 방으로 가게. 원래 사용하던 맨 끝 방 말고”



나는 왜 그런지 궁금했으나 묻지는 않았다. 중년사내가 또 귀찮아할 거 같아서 질문하려다 그만두었다.



“자 그럼 주말 푹 쉬고, 다음 주 월요일 밤 11시까지 여기로 출근하는 거 잊지 말게나”



“네 알겠습니다” 나는 대답하고 차에서 내렸다.



나는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어찌보면 밤에 모니터링하는게 더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창인이 올빼미만 아니면 중년사내 말대로 5-6시간은 잠을 잘테니. 잘하면 6-7시간은 거의 편하게 모니터링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아침 기상부터 낮 12시까지만 집중해서 보면 된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연속해서 이틀을 쉬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4일간의 휴가가 꿈만 같이 느껴졌다.


#


주말 휴가는 정말 순삭이었다.



하루하루가 그렇게 빨리 지나갈 수 있다는 걸 그전엔 왜 몰랐을까



지현과의 부산 주말여행은 우리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주었다.



광안리 해변 근처에 숙소를 잡고 낮에는 태종대, 서면, 자갈치 시장 등을 구경했다.



이미 가을에 접어선 날씨여서 돌아다닐 때 그렇게 덥게 느껴지진 않았다.



우리는 저녁에 숙소에 횟감을 포장해와서 맥주 한 패트병과 소주 두 병 그리고 마른 안주들과 같이 먹었다.



여러 가지가 섞인 모둠회였는데 방금 막 떠서 그런지 서울에서 먹을 때보다 회들이 더 쫀득하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오빠의 아르바이트를 위해 건배!” 지현이 외쳤다.



나도 지현의 마지막 학기와 졸업을 위하여라고 외치며 잔을 들었다.



“근데 아르바이트도 휴가가 있네?” 지현이 물었다.



나는 이제 일하는 시간이 변경된 것에 대해서 지현에게 말해야 될 때가 온 것이다.



“그게 말이지....”



“내가 일을 그동안 묵묵히 열심히 잘해줘서 주는 특별 휴가라고.....”



“아..” 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다음주부터 아르바이트 시간대가 변경돼”



“어?....” 지현은 약간 놀란 듯이 되물었다.



“똑같이 12시간 격일제 근무인데.....이제는 밤 12시부터 낮 12시까지 하래”


나는 되도록 간결하게 설명했다. 지현이 별로 많이 안묻기를 바라면서...



“어? 오빠가 하는 일이 시장조사인데 왜 그 타임에 일하는 거야?”



나는 뭐라고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딱히 대답을 생각해 놓은 게 아니었다.



내가 우물쭈물하자 지현이 말이 없어졌다.



“오빠 나한테 뭐 숨기는거 있어?”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잠시 바라봤다.



해변가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돗자리가 몇 군데 보였고 각 돗자리에는 커플이나 서너명 인원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파도는 잔잔해 보였다. 해안을 따라 조깅하는 사람도 보였다.



어떤 돗자리에서는 일행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목소리가 커서 우리 숙소까지 들렸다.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고 소주와 맥주를 거의 반반 비율로 섞어서 한 번에 마시고 잔을 내려놨다.



비밀유지계약서에 대한 압박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는데, 여기서 내가 거짓말을 계속하면 나는 속이는게 미안해서 지현을 도저히 더는 만날 수 없을 거 같았다.



이 아르바이트가 단순작업에 돈은 많이 주지만, 명백히 내가 커리어를 쌓고 전공에 부합하는 일은 절대 아니었다.



열심히 알아보면 돈은 덜 주더라도 내가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직장을 구할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때문에 지현을 잃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어디서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고개를 들어보니 지현은 나를 의아한 눈빛 반 초조한 눈빛 반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하는 말을 믿어 줄 수 있겠니?”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지금까지 아르바이트 자리를 보고 연락한 것부터 면접을 본 것, 비밀유지계약서, 모니터링 등에 대해서 최대한 차근차근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근무지는 지하주차장에서 밖이 안보이는 밴을 타고 이동해서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마치자 예상한대로 지현은 놀라운 듯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빠 지금 장난치는거 아니지?” 지현이 놀란 듯이 가슴에 손을 대며 물었다.



“아니야”



“당장 그만둬. 그리고 신고해”



지현은 뭔가 굉장히 불길하다면서 빨리 경찰서에 신고하라고 했다.



“근데 뭘로 신고하지?”



“내가 볼 땐 사생활 침해 아니야? 근데 말이 안돼”



지현은 사람의 얼굴에 아무리 초소형이라도 카메라를 어떻게 이식하냐고 의아해했다.


김창인이 거울을 볼 때마다 나는 카메라를 찾기 위해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지만 그의 얼굴 어디에도 카메라가 숨겨져 있을 만한 곳은 없었다. 처음에는 안경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세수하려고 안경을 벗어도 모니터는 거울의 비친 창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나는 김창인이 환자여서 내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알려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몇 차례 이미 보수를 받았고, 이걸 경찰에 신고하면 비밀유지계약도 파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로 인해 내가 감수해야 할 게 너무 많아 보였다. 내 주변에는 이런 걸 상의할 만한 변호사도 없었다.



나의 상황을 설명하자 지현은 말이 없었다. 한참 곰곰이 생각하는 듯 눈을 깜박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 오빠, 다음 주에 가서 일 그만둔다고 하고 손 떼”



나는 지현에게 한 달만 더 해보면 안 되겠냐고 설득했다.



그동안 필요한 돈도 모으고 여러 군데 입사 지원도 같이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지현은 걱정스럽지만 내가 빨리 그 아르바이트를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새벽 1시가 넘어 있었다.



지현은 잠이 들었고 나는 잠시 해변을 걷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머릿속에 엉키고 복잡해진 느낌이었다. 나는 해변가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괜히 지현에게 사실을 말한 거 같아서 후회됐다. 최대한 둘러대고 아르바이트를 더 지속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하지만 더 걱정되는 건 혹시나 내가 지현에게 말한 사실이 QB테크에 알려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KTX에서 나는 지현에게 신신당부했다. 이 일은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다행히도 지현은 전날보다 좀 편해보이긴 했고, 그러겠다고 나에게 굳게 약속했다. 그 대신 무슨일이 생기면 자기에게 즉시 알려달라고 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짐도 안풀고 침대에 드러누워 잠에 빠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어떤 아르바이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앞으로 수요일만 연재합니다. 24.08.27 12 0 -
24 면접을 보다 NEW 13시간 전 2 0 12쪽
23 면접 준비를 하다 24.09.11 7 0 12쪽
22 아르바이트를 접하다 : 두번째 이야기 24.09.04 11 0 11쪽
21 24.08.28 15 0 11쪽
20 쪽지 남자의 모니터링 대상 24.08.25 15 0 9쪽
19 등산 24.08.21 12 0 8쪽
18 늦은 밤 술자리 24.08.17 17 0 8쪽
17 통화 24.08.14 16 0 7쪽
16 쪽지를 발견하다 24.08.07 18 0 12쪽
15 바뀐 시간대 모니터링 24.08.04 22 0 8쪽
» 시간 변경 제안 24.07.30 19 0 12쪽
13 미팅 그녀와의 데이트 24.07.23 21 0 12쪽
12 2대2 미팅 24.07.17 27 0 10쪽
11 사고 후 24.07.13 22 0 7쪽
10 사고가 터지다 24.07.05 28 0 10쪽
9 그의 사생활2 24.06.30 26 0 11쪽
8 그의 사생활1 24.06.25 25 0 8쪽
7 아르바이트는 이제부터 시작 24.06.22 29 0 10쪽
6 첫 아르바이트를 마치다 24.06.20 28 0 11쪽
5 첫 아르바이트 24.06.13 32 0 11쪽
4 비밀유지계약서 24.06.10 30 0 8쪽
3 면접을 보다 24.06.05 32 0 7쪽
2 면접 제안을 받다 24.06.01 38 0 8쪽
1 아르바이트를 접하다 +1 24.05.29 54 1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