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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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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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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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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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를 발견하다

DUMMY

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한 달쯤 되었을 때 나는 우연히 다른 아르바이트생을 복도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인터폰 호출을 받고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장 트러블이 생겼다. 웬만하면 참고 지하철이나 집에 가서 볼 일을 보려고 했지만 그 날따라 참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나는 다시 인터폰을 들고 사정을 이야기했다.



인터폰 너머로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러시죠. 밑에 기사에게 말해두겠습니다”



나는 최대한 빨리 용변을 보고 나가려고 했으나, 저녁에 먹은 낙지볶음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너무 매워서 그런지 장은 요동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



태어나서 화장실 변기에 10분 이상 앉아 있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날은 아마 15분 이상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볼 일을 마치자마자 나는 손도 대충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부랴부랴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바로 그 때 엘리베이터에서 바로 나온 한 남자와 복도에서 맞닥뜨렸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나도 놀라서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그 남자는 원래 머리색이 그런지 아니면 염색을 한 건지 밝은 갈색톤의 머리에 턱수염과 콧수염을 짧게 기르고 있었다.



수염을 기르고 있었지만 나이는 나하고 비슷하거나 많아도 20대 후반처럼 보였다.



짖은 색 후드티에 블랙진과 흰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 턱수염 사내는 내 방 옆인 중간에 위치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지하주차장에는 내가 항상 타던 검은색 밴 외에 다른 차는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로 한동안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밤 시간대로 모니터링 업무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출근하면서 막 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에 방에서 나오는 그를 마주쳤다.



중년 사내의 지시로 나는 밤 시간대로 옮기고 나서 복도의 가운데 방을 사용했고, 그는 원래 내가 사용하던 복도 맨 끝방에서 나왔다.



우리는 몇 달 전에 서로를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보고 서로 놀라지 않았다.



그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살짝 고개 인사를 했다. 나도 무심결에 그의 그런 모습에 고개를 살짝 까닥했다.



예전의 밝은 갈색머리는 그대로였고, 수염도 콧수염과 턱수염은 예전보다 더 짧게 다듬은 상태였다.



나는 처음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복도에 방이 세 개 있는 것을 보았고, 그래서 나 말고도 다른 2명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다고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그 턱수염 사내를 우연히 마주치기 전까지 한 번도 누구를 본 적이 없어서 다른 알바생이 있다고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 마주친 이후로 몇 달 동안 그 턱수염 사내를 못 봐서 한동안 그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가 쓰던 방을 쓰고 있고, 그는 내가 쓰던 방을 사용한다.



모니터링하는 시간대는 서로 다르다.



예전에는 그가 밤에 했었고, 이번에는 내가 밤에 한다.



일을 시작하고 다른 아르바이트생에 대해서 별 관심도 없고 몇 명이 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지도 궁금하지 않았는데, 막상 그와 마주치자 다른 아르바이트생의 존재가 문득 궁금해졌다. 이 건물에 나와 턱수염 사내 말고 누가 또 일하는 것일까?



#


어느 날



아르바이트가 거의 다 끝날 무렵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볼 일을 봤다.



시설이 깔끔한 화장실에는 전에도 말했다시피 볼 일을 보면서도 일 할 수 있도록 소형 모니터가 옆 벽에 달려있다.



나는 평소대로 용변을 보고 물을 내리고 손을 씻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뭔가 두루마리 휴지가 내가 원래 사용하던 방의 화장실에 있던 두루마리 휴지보다 뻑뻑해서 잘 안 돌아간다고 느껴졌다.



여기 화장실에 비치된 두루마리 휴지는 공공장소 화장실에서나 볼 수 있는 종이 자체는 매우 얇지만 롤 자체는 상당히 두껍게 말려서 오래 쓸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나는 혹시 두루마리 휴지가 원래 위치에 제대로 걸리지 않아서 뻑뻑하게 돌아가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 두루마리 휴지를 감싸고 있는 플라스틱 커버를 잡아 당겨보았다.



커버는 잠겨있지 않아서 쉽게 열렸다.



두루마리 휴지는 원래 크기에서 반 정도 줄어들어 있었다. 나는 두루마리 휴지롤을 다시 끼워보기 위해 롤을 고정대에서 뺐다,



그 순간 두루마리 휴지롤 안쪽에서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은 두 번 접힌 흰 종이였다. 나는 종이를 바닥에서 집어들어 펼쳐봤다.



[연락주세요. 010-XXXX-XXXX]



A4 용지를 4분의 1로 찢은 듯한 흰 종이에는 휴대폰 번호와 함께 연락달라는 한 마디가 타이핑되어 있었다.



이게 도대체 뭐지?



나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누가 이런 쪽지를 남긴 것인가? 바로 생각나는 사람은 이 방을 원래 사용했던 턱수염을 기른 갈색머리 사내였다.



그가 이 쪽지를 남긴 것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메모가 적힌 그 흰 종이를 들고 나는 화장실에 한동안 서 있었다.



화장실의 작은 모니터로 보니 김창인은 소파에 누워 과자를 먹으며 티비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인터폰이 울렸다.



헉!



내가 두루마리에 휴지 커버를 뜯어 무슨 수상한 종이를 집어 든 것을 들킨 걸까...



나는 부랴부랴 자리로 돌아가 인터폰을 들었다.



“퇴근하십시오” 익숙한 목소리였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인터폰을 끊자마자 부리나케 화장실로 돌아가서 두루마리 휴지 커버를 원래 상태대로 부착했다.



그리고 흰 종이를 바닥에서 주었다. 내가 인터폰 소리에 놀라서 바닥에 떨어뜨린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종이를 원래대로 두 번 접어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다가 생각을 바꿔 종이를 꺼내서 양말 속에 넣었다.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면 지하주차장에서 운전 기사에게 출입증을 꺼내주다가 종이가 실수로 같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집에 도착했는데 머리가 복잡했다.



이 쪽지는 도대체 누가 남긴 것일까?



이전에 중간 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갈색 머리 턱수염 사내란 말인가?



만약 그가 남긴 쪽지라면 그는 왜 이런 쪽지를 남겼을까?



자리가 변경될 것이란 걸 알았던 걸까?



그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침 7시에 제공 받은 아침식사 후 지금 오후 3시가 다 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은 걸 깨달았다.



부엌으로 가니 장현이 남긴 메모가 식탁에 있었다.



[원호, 요새 3교대 하느라 정신 없지? ㅋㅋㅋ 어제 저녁에 내가 사 온 족발 세트 먹고 기운 차리시게 ^^]


어제 장현이 저녁에 포장해 온 족발이 냉장고에 남아 있었다.



족발을 다 먹고 지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오빠”



“어, 별 일 없지? 지금 바쁘니?”



“아니 지금 강의 끝나고 쉬는 시간이야. 얘기해 오빠”



“있잖아... 오늘 아침에 아르바이트 끝날 무렵에 거기 화장실을 썼는데, 두루마리 휴지가 잘 안 돌아가고 뻑뻑해서 커버를 들어냈는데,,,,,”



나는 말하면서 숨이 턱턱 막혔다.



“어 거기 뭐가 있었어?” 지현이 놀란 듯 물었다.



“두루마리 롤 안쪽에서 종이 쪽지를 발견했어”



“어?? 그게 뭔데?”



“펼쳐보니 휴대폰 번호랑 연락 달라는 한마디 말만 있었어”



“다른 말은 없고?...”



“어 없어. 근데 누가 손으로 쓴 게 아니고 프린트 한 거야”



“이상하다...혹시 그것도 테스트 아닐까? 회사에서 오빠 시험해 보려고 일부러 숨긴 거 아냐?”



“그...그럴까?” 나는 순간 이전에도 실제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에 모의 모니터링을 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냥 문자 하나 넣어봐. ‘누구세요?’ 이렇게”



“그냥 ‘누구세요’만? 쪽지 봤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고?”



“어, 이게 테스트일 수도 있으니깐 그냥 한 번 모른 척 보내봐. 아니면 내가 공중전화로 한 번 해볼까?”



“아냐 아냐, 그러지마. 공중전화로 하더라도 내가 할게”



“알았어, 오빠”



“영 찜찜하면 그 쪽지 그냥 찢어버려. 어차피 오빠 이 알바 오래 안 할 거잖아?”



“음 ...그래. 내가 고민 좀 해볼게”



나는 지현과의 통화 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지현의 말대로 진짜 회사에서 나를 테스트해보려는 것일까?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복도에서 마주친 갈색머리 턱수염 사내가 내 방을 이전에 썼던 걸 나는 알고 있다.


그의 범상치 않았던 인상과 최근 마주쳤을 때 눈인사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한 시간 정도 침대에 누워서 뒤척이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일어나 보니 이미 밤 9시가 넘어 있었다.



거실로 나가보니 장현이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고 있었다.



“굿 모닝~~ ” 장현이 나를 보자 장난스럽게 외쳤다.



나는 장현 옆에 앉아서 한동안 같이 티비를 시청했다.



장현은 요즘 프로젝트 때문에 집에 늦게 오는 날들이 많다. 그는 대학교 시절보다 7-8 킬로는 더 쪘는데 앉아서 일하고 저녁도 늦게 많이 먹다 보니 몸무게가 찐 거라고 한다.



간혹 주말에 소개팅 약속이 잡혀 나가기도 했지만, 차만 마시고 한두 시간 이내로 들어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데 최근에 9급 공무원 여자를 소개 받은 후 벌써 2주째 연락을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장현이 이제 꽃길 걷네” 내가 농담을 하자 장현이 정색을 했다.



“꽃길은 무신......이제 알아가는 단계야” 그가 콧방귀를 꼈다.



“야 간만에 소주나 한 잔 하자”



나는 장현의 부탁으로 근처 편의점에 소주와 마른 안주를 사러 나왔다.



나는 편의점 가는 길에 문득 바지에 손을 넣었다가 화장실에서 발견한 쪽지가 잡히는 걸 느꼈다. 편의점 옆에는 낡은 공중전화 한 대가 놓여 있었다.



몇 분을 망설이다가 나는 편의점에서 소주와 안주를 현금으로 결제한 후 잔돈으로 받은 동전들을 들고 공중전화 앞에 섰다.



문자를 보내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내 번호가 노출될 테니까...



공중 전화니깐 내가 누군지 모를거야.



주변을 둘러봤는데, 밤 10시를 넘긴 시간이라 인적이 드물었고,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 둘이 잡담을 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공중전화에 동전을 넣었다.



뚜~~~~~~~~~~~~



신호음이 들리자 쪽지에 적혀 있는 번호를 천천히 눌렀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전화기 통화연결음이 한참 동안 울렸다. 나는 순간 긴장해서 팔에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후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받지 않는다.



대체 뭘까? 혹시 지금 알바중이라서 전화를 못 받은 게 아닐까?



이따 밤 12시 이후에 다시 해볼까?



나는 일단 소주와 안주를 갖고 집에 다시 들어갔다.



장현과 술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새벽 1시를 훌쩍 넘겼다. 장현은 출근을 위해 자러 들어갔고 나는 거실에서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를 다 마치고 나니 시간은 거의 새벽 2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술에 취해 얼떨떨했지만, 후드티를 입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방이 적막에 둘러싸여 있었고, 주변에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편의점 내부에서는 알바생이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쪽지에 적힌 번호로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통화연결음이 두 번 정도 울리자 수화기 너머로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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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통화 24.08.14 16 0 7쪽
» 쪽지를 발견하다 24.08.07 19 0 12쪽
15 바뀐 시간대 모니터링 24.08.04 22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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