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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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다
작품등록일 :
2024.05.2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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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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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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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우리는 그렇게 대화하다 보니 어느덧 정오가 다 돼가고 있었다. 산에는 사람들이 아침보다 많아지긴 했지만 그렇게 붐비는 것은 아니고 두세명 정도가 간간히 지나가는 정도였다.



“배고프지 않아요?” 내가 곽민수에게 물었다.



사실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등산하는 동안 에너지바 하나밖에 먹지 않아서 어지럽고 배에서는 꼬로록 소리가 계속 들렸다.



“헉,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군요”



내가 하산해서 인근 식당으로 가자고 했더니 그는 안된다고 했다.



“원호씨, QB테크는 아르바이트생을 허술하게 내버려 두지 않아요. 아마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을 겁니다. 행여나 아르바이트생이 비밀을 누설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배가 고픈데 어떻게 하냐고 내가 묻자,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버거 세트를 사서 자기 차에서 먹자고 했다. 거기에서 먹으면 누가 들을 일도 없이 안전하게 대화할 수 있다고 그랬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차에서 이야기를 하지 왜 힘들게 산을 탄 거냐고 내가 약간 짜증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주원호씨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랬어요. 힘들게 했다면 죄송해요”



그래서 곽민수는 일단 산에서 이야기를 하자고 한 거라며 공손히 사과했다.



“좋아요. 일단 내려가죠” 내가 말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산을 많이 오르지 않았지만, 나는 매우 허기진 탓에 발에 힘이 풀리고 점점 집중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 성격이었으나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나서는 쉬는 날에 지현과의 데이트 외엔 어떠한 활동도 하기 귀찮았다.



지하철역에 이르자 햄버거 가게가 하나 보였다.



햄버거 가게에 들어서자 깔끔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키오스크가 벽면에 세 개 있고, 내부의 테이블과 의자는 막 닦은 것처럼 윤기가 흘렀다. 내부에 사람들은 3-4명 정도 있었는데, 다 우리 또래 젊은 사람들이었다.



“뭐를 먹을까요? 배고프면 라지 사이즈를 시켜요. 내가 살게요.” 곽민수가 친절하게 말했다.



나는 큼지막한 더블치즈버거 세트와 콜라는 큰 사이즈로 주문했고, 곽민수는 일반 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한 10분 정도 기다리자 우리가 주문한 세트가 포장되어 나왔다. 포장된 버거세트는 묵직했고, 막 익힌 듯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르자 나는 아까보다 더 배고파졌다.



우리는 주문한 음식이 담긴 봉지를 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은 지상에 있는 공영주차장이었는데, 차들이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았다. 다 합쳐도 10대 미만 정도만 주차돼 있는 것 같았다.



곽민수의 차는 주차장 구석에 있는 하얀색 기아 K5 차량이었다. 산 지 얼마 되지 않는 듯 그의 차에서는 새 차의 광택이 나고 있었고, 얼핏 봤을 때 잔 기스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차 앞과 옆 유리창은 진하게 선팅이 되어 있어서 내부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운전석에 타고 나는 조수석에 탔다. 우리는 각자의 음료를 컵홀더에 넣고 봉지를 뜯어 버거 세트를 말없이 먹기 시작했다.



차 안도 방금 막 내부 세차를 마친 듯 매우 깔끔했다. 뒷좌석은 거의 누가 타지 않는 듯 쓰레기나 물티슈 같은 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앞자리에도 방향제 하나가 끼워져 있을 뿐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언젠가 나도 차를 뽑는다면 이렇게 깔끔한 차를 탈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거 혹시 렌트카 인가요?” 내가 차량이 너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며 물었다.




“아니요. 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래요. 올해 4월에 구매한 거죠”




먹으면서 주차장을 둘러보니 우리 주변에 주차된 차는 없었고, 오고 나가는 차량도 없었다. 단지 주차장 주변에서 후드티를 입은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조깅을 하며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래서 그 김창인이란 학생의 2:2 미팅은 어떻게 되었나요?” 곽민수가 다 먹은 후 티슈로 입 주변을 닦고 자기 쓰레기를 봉투에 넣으면서 물었다.



나는 2:2 미팅 때 있었던 일 그리고 김창인이 다른 여자에게 유다혜의 번호를 물어봐서 연락처를 알아낸 뒤 그녀에게 연락했고, 처음에는 유다혜가 시큰둥했는데 김창인이 장문의 문자를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연락을 해서 둘이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다가 지금은 어느 정도 사이가 가까워진 것 등에 대해서 이야기해줬다.



“아 그래요? 아마 1:1 소개팅은 당사자들이 많이 어색해하니, 재원이라는 베프를 통해 2:2 미팅으로 바꾼 거 같네요” 곽민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쪽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네요”



내가 대답하자 그는 둘 사이의 관계를 궁금해하며 계속 물어봤다.



“그래서 그 둘은 어느 단계까지 발전했나요?”



그래서 최근에 밤늦게 김창인과 유다혜가 술자리를 가졌었다고 알려줬다.



“아 그래요? 둘이 밤늦게까지 있었다고요?” 곽민수가 놀라면서 물었다.



“네...그런데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곽민수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나는 잠시 두 눈을 감고 그 날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그날 새벽, 유다혜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김창인이 뭔가를 유다혜에게 말했고, 유다혜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김창인은 유다혜가 사는 원룸 밖으로 나갔는데 편의점으로 향하는 듯하더니, 택시를 타고 바로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김창인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샤워도 하지 않고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도중과 집에 돌아와서도 유다혜한테서 전화가 계속 왔지만, 창인은 확인만 할 뿐 전화를 받지는 않았다.



그 이후에 오고 간 문자의 내용을 보면 유다혜가 김창인에게 왜 그날 그냥 가버렸냐고 힐책을 하는 내용이었고, 김창인은 ‘미안하다. 몸이 안 좋았다. 다음에는 밤새 같이 있자’라는 내용으로 유다혜를 다독였다.



아마 유다혜의 집에서 나갈 때는 잠깐 편의점에 다녀오거나 바람을 쐬고 오겠다고 그녀에게 말했는데 나오자마자 곧장 자기 집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이건 내 짐작이다.



이러한 사실을 곽민수에게 말하자 그는 미간을 잠시 찌푸렸다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거 참 이상하군. 아마 여자 경험이 전혀 없고, 그 상황이 너무 부끄러워서 그랬나 보군요” 곽민수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그래도 적극적으로 전화해서 대시하는 거 보면 연애 경험이 있는 거 같기도 해요.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컵에 담긴 콜라의 마지막 모금을 빨대로 마시자, 얼음만 든 컵을 빨대로 흡입할 때 나오는 후르륵 소리가 났다.



“다 먹었으면 내가 쓰레기를 버리고 화장실 좀 들렀다가 올게요. 먼저 갔다가 올래요?” 그가 내 쓰레기 봉지를 집어 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다녀오세요” 내가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차에서 나오지 말고 기다려요. 선팅이 잘 된 차여서 밖에서는 잘 안 보여요” 곽민수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대답하자 그는 쓰레기 봉투들을 오른손에 든 채,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주차장을 가로질러 우리가 햄버거를 주문했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한 10분 정도 흘렀을까?



검은색 제네시스 차량이 주차장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무심코 쳐다봤는데 그 차

는 주차장을 한 바퀴 빙 돌더니 내가 타고 있는 차와 차 한 대 공간을 두고 옆에 주차했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 차량은 주차한 후 아무도 차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햄버거 가게의 문이 열리고 곽민수가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걸어오다가 검은색 제네시스 차량을 발견하고 그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의 차량으로 걸어왔다.



본인의 차인 흰색 K5에 이르자, 그는 운전석의 뒷자리 문을 열고 뒷좌석에 앉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말했다.



“방금 우리 차 오른쪽에 저기 검은색 제네시스 차량이 주차했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고 그대로 있어요”



그는 고개를 수그리고 양손을 깍지낀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미행당한 건가요?” 나는 그에게 재차 물었다.



순간, 그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내가 그에게 왜 웃냐고 물으려는 찰나 운전석 문이 열리고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곽민수 차의 운전석에 탔다.



“악!”



나는 순간 놀라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는 나를 면접 본 중년의 사내였던 것이다.



나는 온몸이 얼어붙고 두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는 선글라스를 벗고 나를 뚫어질 듯이 무서운 표정으로 노려봤다. 예전에 검정색 밴에서 친절하게 맥주를 권하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주원호 씨, 오랜만이요”



“.................”



“그런데 이런 데서 이렇게 만나게 돼서 매우 유감일세” 그는 얼굴이 분노로 붉게 물들었고, 입술이 씰룩거렸다.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나를 계속 노려보더니 화가 나서 소리쳤다.



“왜 알바 새끼들은 다들 이 모양이야! 올해 2차 테스트를 통과한 놈이 하나도 없어!”



아뿔싸!



나는 난 테스트에 보기 좋게 걸려든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곽민수를 쳐다보니 그는 나를 보며 찡긋 웃어 보였다.



“내가 이러니 알바 새끼들을 믿지 못하는 거지. 다들 아무 소용없는 것들이라니깐!” 중년 사내는 화가 나서 계속 소리쳤다.



나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이, 주원호 씨. 비밀유지계약서 생각 안 나?”



그가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코를 씩씩거리며 물었다. 그의 땀에 쩐 얼굴에서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하관에 살이 많고 큰 눈은 심술궂게 생겨서 밤에 절대 마주치기 싫은 스타일의 얼굴이었다.



내가 말이 없자, 그는 양복 속주머니에서 종이를 하나 꺼내 나에게 들이 밀었다.



“생각나. 안나? 이거 주원호 씨가 사인한 거잖아!”



내가 면접 볼 때 사인했던 비밀유지계약서였다.



“여기 제 5조 한 번 읽어봐!” 그가 종이를 내 코앞에 내밀었다.


거기에는 아르바이트생인 ‘을’이 비밀유지를 위반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계약서에 서명하는 날 계약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얼떨결에 사인을 했었다. 게다가 나는 계약서 원본은커녕 사본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주원호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생긴 거 답지 않게 당돌한 면이 있네. 과묵하고 일 열심히 하는 친구인 줄 알고 상부에도 칭찬 일색으로 보고했는데, 이거 영 아니었네!”



중년 사내는 화가 덜 풀린 듯 씩씩거리며 말했다.



“우리가 소송을 걸면 지금까지 받은 돈 다 토해내야 해!” 그가 소리쳤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맺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눈앞이 캄캄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지 지금 상황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생각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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