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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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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접하다 : 두번째 이야기

DUMMY

2019년 3월



내 이름은 전지훈



대학원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했다. 그 후 서울에 있는 제약회사 신약개발 연구소에서 3년 정도 일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일은 그만둔 이유는 연구소 생활에 염증이 났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협소한 공간에서 수많은 시약과 샘플들, 그리고 수없이 반복되는 실험들....나는 약 1년 정도 일을 했을 때 내가 평생 연구원 생활을 할 수는 없겠다고 느꼈다.



하지만 막상 일을 그만두자니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1년을 더 다녔다. 2년이 넘자 나는 내면에서 뭔가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원초적인 느낌이었다. 박차고 나가야 한다는 내면의 커다란 울림은 나를 거의 불면증으로 몰아넣었다.



같은 연구원들은 매우 친절하고 나이스했다. 내가 실험하다가 실수하거나 뭔가를 서투르게 해도 이해해주었다. 팀장님은 거의 보살급 인재이셨다. 화를 내는 법은 절대 없었고, 뭔가 내가 헛소리를 해대도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들어주셨다. 물론 다 친절한 것은 아니었다. 옆 연구팀의 안 박사는 내가 지나갈 때 혀를 끌끌 차곤했다.



“아이고, 저렇게 얼빵하게 실험해서 회사에 뭔 도움이 된다고...”



안 박사는 연구실 사람들에게 틈만 나면 내 흉을 보고 다녔다. 나는 기분이 나빴지만 안 박사 외에는 나를 대놓고 갈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왜냐면 나는 성실하게 내 할 일을 했기 때문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8시 10분이면 (정식 출근은 9시다) 항상 제일 먼저 연구실에 도착해서 오늘 할 실험을 세팅했고, 8시 이전에 퇴근한 건 (정식 퇴근은 6시다) 일 년에 5번 안에 들었다. 한 달에 두 번은 토요일에 무조건 나와서 6시간 이상씩 근무했다.



연구원 사람들은 그런 내 성실성을 인정했다. 나처럼 부지런하게 연구소에 나와서 남들보다 더 많이 일하는 연구원은 거의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나는 연구에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다. 사실 연구소장을 비롯해 본사에서도 나에 대한 평판이 매우 좋다고 우리 팀장님이 귀띔해줬다.



팀장님은 어느 날 야근하는 내게 와서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안 박사는 신경쓰지마. 그 사람은 자네가 평판이 좋으니까 배가 아픈 거야. 뭔 사람이 속이 그렇게 좁아가지고 원...”



“저는 괜찮습니다. 별로 신경 안 씁니다”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실험을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자네 건강도 챙기게. 그렇게 막 달리면 나중에 지쳐서 나가떨어질 수도 있다구” 팀장님은 진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걱정해주셨다.



나는 그때 이 충고를 깊게 새겨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나는 연구소에서 2년이 넘어서부터 불면증과 씨름하기 시작했다. 얼굴은 점점 퀭해졌고, 어지럼증으로 점심을 먹고 바로 토하는 날이 늘어만 갔다. 일을 시작한 지 거의 3년쯤 된 어느 가을 오후, 나는 플라스크 통들을 들고 이동하다가 복도에서 쓰러져버렸다.



깨어보니 나는 입원실에 누워 있었고, 내 팔에는 수액 주사가 꽂혀 있었다. 나는 상태가 괜찮은 듯 느껴져 퇴원하고 싶다고 했지만, 의사가 만류했다. 지금 이러한 상태로 일을 하면 건강에 매우 안 좋다고 했다.



약 1주일의 입원 기간 후, 나는 연구소에 복귀했지만 그때 이미 나는 내면의 목소리에 압도당한 후였다. 연구소에 복귀하고 이틀 뒤, 나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왜 그런가? 더 휴식이 필요하면 더 쉬게나” 팀장은 내 사직서를 보고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닙니다. 연구소 일이 저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팀장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뭔가를 생각하다가 말을 꺼냈다.



“자네 상황은 충분히 이해하네. 워낙 열심히 일했고, 그렇게 달리다가 몸에 탈이 났으니 말일세. 허나 그렇다고 해서 남들은 들어오고 싶어도 못 오는 이 좋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겠다고? 이건 내가 일단 갖고 있을 테니, 오늘 휴가는 쓰지 말고 집에서 쉬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위에는 내가 잘 말해 놓을 테니”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팀장님의 만류에 나는 일단 물러섰다. 내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해서다.



같은 팀 연구원들도 나에게 그동안 너무 무리했으니 좀 쉬엄쉬엄하라고 말했다.



한 일주일 정도 더 휴가를 가진 후 나는 연구소에 돌아왔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주변 연구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내가 사직서를 제출했었다는 소문과 팀장이 나에게만 너무 특혜를 준다는 이야기가 연구소 내에서 퍼지고 있었다. 몇 명은 내가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도 않았다.



내 책상은 청소도 안 했는지 점점 먼지가 쌓여가고 있었고, 누가 버렸는지 구겨진 티슈가 몇 조각 버려져 있었다.



팀장의 면담 요청으로 팀장실로 들어갔다.



“몸은 좀 좋아졌는가?” 그가 나를 반가운 표정으로 맞이하며 물었다.



“아 네, 이전보단 훨씬 나아졌어요”



“다행이구만”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이마를 한 번 쓱 닦았다. 깊이 앉아 있던 의자에서 허리를 펴며 고쳐 앉은 후, 두 손을 맞잡으며 그가 내게 말했다.



“아시다시피 우리 연구소가 빠듯한 인력으로 타이트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이지 않나?”



“네...”



“자네가 피치못할 사정으로 2주 정도 휴가를 가지는 바람에...” 그는 말을 머뭇거리더니 잠시 창밖을 쳐다보았다. 바람이 불어서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자네 업무는 우리 팀의 오 대리가 맡게 되었네. 그리고 오 대리 업무는 최근 새로 뽑은 연구원이 맡고 있고...”



“그렇군요..”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상부의 지시로 자네는 충남 당진에 있는 공장으로 발령이 났다네”



“그럼 언제부터?” 내가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팀장이 대답했다.



“바로 내일부터 거기 근무 시작이니, 오늘 여기에 자네 짐 정리하고 일찍 퇴근하게” 그는 말을 마치면서 나를 쳐다보지 않고 딴 데를 보았다.



“그럴 필요 없을 거 같습니다. 저는 오늘부로 그만 두겠습니다”



“나도 이렇게 되어서 유감일세” 그는 이미 내가 그만두리란 걸 예상하고 있었다.



책상에 내 짐이라곤 탁상 시계, 무선 마우스, 책 몇 권이 전부였다. 나머지 노트와 필기구, 노트북, 실험 관련 모든 물품은 연구소에서 제공받은 것이었다. 그래서 내 백팩에 다 담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연구실을 나와 복도를 걷다가 안 박사와 마주쳤다.



“가시는구만. 새로운 데로. 거기는 일도 별로 없다는데 심심해서 어쩐데?” 그가 빈정거리면서 말했다.



“저 퇴사합니다” 나는 짧게 대답하곤 그를 지나쳤다.



“행운을 빌어요” 그가 내 뒤에서 웃으면서 소리쳤다.



나는 그렇게 연구소를 관두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간 너무 고생했으니 어디 여행이라도 다니면서 좀 휴식을 가지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휴가를 내더라도 나는 집에서 멍하니 아무것도 안 하면서 하루를 보내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나는 내면에서 이 일을 관두라는 큰 울림을 느끼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내면의 소리를 처음 들은 건 중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때였다.



당시 나는 내년이면 고등학생이라 독서실을 끊고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12월 어느 날, 그날따라 왠지 공부가 손에 잡히질 않았다. 나는 공부가 안되면 운동을 하거나 게임을 하는 친구들과 달리 딱히 뭔가를 하지 않고 그냥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곤 했다.



잠을 얼마나 잤을까.



나는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걸 느꼈다.



‘여기서 나가라. 지금 당장’



잠에서 깬 나는 눈을 비비적거리고 잠깐 멍한 상태로 앉아있었다. 방금 들은 목소리가 또렷이 기억은 났지만 꿈을 꾼 것으로 생각해서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1분 정도 후 그 목소리는 다시 내 귓가에서 들렸다. 이번에는 저번보다 더 크게 들렸다.



‘여기서 나가라. 나가야 한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복도로 갔다. 뭔가 탄 냄새가 났다. 3층에 있는 열람실에서 나는 비상계단을 통해 바로 빠져나왔다.



내가 나오고 약 5분 후, 불길이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건물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곧 119 소방차가 도착했지만, 불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이 화재로 건물 전체가 불에 탔고 6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4명은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 중고등학생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9시 뉴스에도 나왔는데, 부모님은 불길이 커지기 직전 내가 빠져나온 게 천만다행이라고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이 사건이 있었던 후로 나는 내면의 목소리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


회사를 관두고 나는 되도록 연구소 업무는 피하고 싶었다. 나한테 맞지 않는 업무라는 확신이 들어서이다. 그런데 대학원을 졸업한 뒤 유일하게 일한 곳이 연구소여서 막상 다른 데를 알아보자니 덜컥 겁이 났다. 연구밖에 모르는 나를 과연 써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렇다고 아직 30대 초 젊은 나이에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자니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다. 여기저기 채용 사이트를 뒤지다 보면 하루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어느 날 나는 채용 사이트에서 파트 타임 사무보조 업무를 찾았다.



[국가과학정보국, 생명과학팀, 단순 행정 보조, 요일 및 시간 협의 가능]



국가과학정보국이라....

우리나라에서 최첨단 과학기술의 저장고로서, 산업체와 대학교 및 국가 산하 연구기관들의 거의 모든 연구의 결과 및 정보를 관리하는 기관으로 알고 있다.



또한 정보국 산하 연구소가 있는데 거기는 우리나라 온갖 인재들의 집합소로 알고 있다. 신입 연구원이라도 웬만한 대기업 책임 연구원급 보수가 주어지고, 자리가 날 때마다 이미 정년이 보장된 국내 최상급 대학 교수들도 가고 싶어서 지원할 만큼 연구자로서는 최고봉의 자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만큼 보안도 철저한 곳이라 출입하려면 직원들도 홍채, 지문, 음성 등 여러 가지 생체 지표를 인증받은 후에 들어갈 수 있다. 또한 회사에서 별도로 마련한 노트북과 휴대폰을 써야 한다. 퇴사를 하려면 3개월 전에 미리 알려야 한다. 어떠한 파일이나 정보 유출도 할 수 없게끔 종이 인쇄는 절대 금지라고 들었다. USB나 외장 하드는 안 쓰고, 인트라넷을 통한 이메일과 쪽지로만 의사소통한다.



더 특이한 점은 산하 연구소에서 논문이나 특허 발표를 전혀 하지 않는 연구팀이 별도로 있다. 보통 연구자들은 실적을 쌓기 위해 논문이나 특허에 목매는 게 당연한데, 그 연구팀에서는 모든 최첨단 연구들을 진행하면서 모든 결과물은 국가 1급 기밀에 부쳐둔다고 한다. 물론 이건 내가 석사 과정 때 귀 너머 들은 소문일 뿐이다.




이러한 곳에서 나같은 석사 나부랭이를 뽑을 리가....



하지만 이건 정규직이 아니고 파트 타임 행정보조다. 그리고 더 유리한 점은 채용하려는 팀이 생명과학팀이고 나는 생명공학 석사학위가 있다. 일단 지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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