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르바이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SF, 일반소설

새글

키코다
작품등록일 :
2024.05.29 11:17
최근연재일 :
2024.09.18 00:25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564
추천수 :
1
글자수 :
102,180

작성
24.09.11 00:15
조회
7
추천
0
글자
12쪽

면접 준비를 하다

DUMMY

나는 국가과학정보국 홈페이지를 통해 이력서를 작성했다.



내가 평생 다닌 직장은 한 곳이고 별다른 아르바이트나 경험은 있지 않아서, 이력서는 간결했으나 자기소개 및 지원 동기를 적을 때 대학원 석사 논문과 제약회사 업무 내용 위주로 성실하게 작성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처음 취업의 문을 두드릴 때, 나는 지원서를 많이 넣지 않았다. 내 석사 지도 교수님의 추천으로 넣은 곳이 된 것이었다.



“우리 지훈이는 여기 회사에 내가 아는 인맥이 있으니 한 번 지원해 보게나”



교수님은 석사 마지막 학기가 끝나갈 무렵인 11월 중순에 나를 연구실로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내 알겠습니다”



그 회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제약 회사 가운데 한 곳이었다. 우리 학과 박사 선배 두 명도 이미 거기서 일하고 있다고 들은 바 있었다. 학교에서 들은 소문으로는 일은 엄청 많이 시키지만, 보수는 웬만한 대기업 대리 연봉보다 높다고 들었다.



거기는 우리 석사생들 사이에 가고 싶은 기업 중에 하나로 항상 입에 오르내리는 회사였다.



그런 회사를 우리 지도 교수님이 나를 따로 불러내서 지원해 보라고 권유를 하다니 그런 영광이 있을 수 없었다. 실제로 회사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입사지원 마감이 그해 12월 7일이었다.



아무런 일 경력도 없고, 단지 교수님과 함께 낸 국내 논문 한 건이 전부였지만 교수님의 추천서의 위력은 대단했다. 서류 전형에서 바로 합격 통지가 문자로 날아왔다. 며칠 뒤 나간 면접 자리에서는 더 놀라웠다. 면접관 세 명이 나를 마주 보고 앉았는데, 시종일관 웃으면서, 내 사적인 이야기만 몇 가지 묻더니 나가라고 했다.



말할 것도 없이 나는 당연히 이틀 후,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나를 추천해 주신 교수님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슬렁슬렁 일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첫 직장인 연구소에서의 업무는 시작되었고, 그만두기까지 온 힘을 다해 일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파트 타임 행정 보조는 사정이 다르다.



나는 물론 과로로 쓰러지긴 했지만, 내면의 큰 울림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퇴사를 했다. 심지어 팀장은 나가지 말라며 나를 붙들기까지 했다. 게다가 나는 거의 3년을 일했지만, 꽉 채우지는 못했다. 한 직장에서 3년도 못 버티는 인간들에 대한 회사의 멸시와 적대감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단순 행정보조 파트 타임이지만 나는 지원서를 쓰면서 고치고 또 고쳤다. 뭔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의 진정성과 그동안의 노력을 국가과학정보국에서 알아주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거의 5일 동안 지원서와 씨름했다.



나름 멋지고 그럴싸하게 썼다고 스스로 뿌듯해하면 잠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읽어보면 너무 가식적이거나 감정적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근거 없는 자신감, 그리고 내 업무에 대한 시시콜콜한 면까지 다 들춰내는 것 같아서 부끄러워졌다.



아, 나는 여기에 왜 이렇게 목매다는가!



석사까지 힘들게 딴 내가 이런 단순 행정보조 업무에 목매는 게 우습게 느껴졌다. 아무리 국가과학정보국이라고 하지만 거기서 연구하는 것도 아니다. 정직원조차도 아니다. 마치 법원에서 단순 행정보조 알바가 판사 임용이나 될 것처럼 너무 진지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나는 6일째 원래 써놨던 가식적인 자기소개와 지원 동기를 그대로 복붙해서 지원해버렸다.



아싸 끝났다!



뭘 그리 고민했나. 그냥 행정 보조 나부랭이일 뿐인데...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과 과자 두 봉지를 사왔다. 다 먹고 나니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지 관자놀이가 후끈 달아올랐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넷플릭스에서 추천 영화를 보다가 바로 잠들어버렸다.



#



한 일주일 후, 나는 오후 3시경에 문자를 한 통 받았다.



[서류 전형 합격.

1차 면접 안내:

0월 0일 0시까지 국가과학정보국 별관 3층 세미나실 입장]



얼떨떨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역시 우수한 기관은 인재를 알아보는군! 나는 자신감이 넘쳐 거울을 쳐다보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거울 속의 내가 새삼 스마트하게 보였다. 그러다가 이렇게 기분 좋아하는 내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나 원 참, 석사 학위를 갖고 있는 내가 이딴 행정보조 ...그것도 서류 전형 합격했다고 이렇게나 좋아하다니..“



갑자기 쓴웃음이 나왔다.



나는 3분 동안 말할 자기소개를 세심히 작성했다. 너무 튀지도 않지만 너무 상투적이지도 않은 간결하고 임팩트 있는 자기소개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3분 자기소개말을 만드는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



거울 앞에서 나는 이미 외운 3분 자기소개를 해보았다.



나는 갑자기 쓴웃음이 나왔다. 내 전 여친이 왜 내가 무슨 말을 할 때 ‘영혼이 가출한 거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고 말했는지 이제야 알 거 같았다. 흐리멍덩한 표정에 나는 거의 로봇처럼 외운 말을 내뱉고 있었다.



아, 이게 아니야....



나는 감정을 더 실어서 자기소개를 해보았다. 강조를 해야할 부분은 힘주어 말하며 제스처도 가미해 보았다. 처음에는 너무 어색해서 거울 속 내 자신을 보는 것이 민망할 정도였으나, 몇 번을 반복하다보니 점점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하루종일 거울 앞에서 자기소개 연습을 하다보니 뭔가 말을 하는데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거울 속의 내 자신에게 살짝 윙크를 해 보일 정도로 자신만만해졌다.



이제 남은 건 하나



예상질문들을 뽑아 대답하는 것이다. 나는 이미 석사 때 대학원 선배로부터 취업 면접 때 받을 수 있는 질문과 예상 답변들이 적힌 족보를 받은 적이 있다. 그것을 밤새 달달 외우다시피 하고 면접에 갔었다. 물론 쓸데없는 잡담만 나누고 끝나버린 면접이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다르다. 교수님이 추천해준 자리도 아니고 연구원 자리도 아니다. 파트 타임 행정 보조이지만 워낙 사람들에게 알려진 유명한 국가 기관이기 때문에, 면접에서 무슨 질문이 나올 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족보로 받은 질문들 외에도 인터넷에서 예상 질문을 뽑아 거의 암기할 때까지 되뇌어 보았다.



#


면접일이다.



나는 평생 양복을 입어 본 적이 손에 꼽는다. 지인의 결혼식 아니면 지인 부모님의 장례식 그리고 대학교 졸업사진 찍던 날과 제약회사 면접 날...



그 외에는 양복을 입은 날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연구소에서는 당연히 자유복장으로 근무했다. 요즘은 여름에 반바지를 입어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어떤 연구원은 츄리닝에 슬리퍼 차림으로 연구한다. 하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옷장을 열어보니 작년 가을 친구 결혼식 이후로 안 입은 양복이 하나 걸려 있었다. 짙은 네이비색 양복인데 항상 67-68 kg을 유지하는 나로서는 5년이 지났지만 사이즈는 여전히 꼭 맞는다. 이 양복은 대학교 졸업할 때 아버지가 회사에 면접 보러 다니라고 사주신 양복이다. 내 일생의 첫 양복이자 지금까지 유일한 양복이다.



나는 양복을 한 번 입으면 드라이클리닝을 맡겼다. 왜냐면 자주 입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옷장에서 꺼낸 네이비색 양복은 올해 샀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깔끔하고 흠집 하나 없었다. 천천히 양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무슨 색 넥타이가 어울릴까?



제약회사 면접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끈을 당겨서 간단하게 매는 싸구려 검정색 넥타이를 맸다가 입사하고 한 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다. 무슨 상가집에 조문왔냐고 빈정거림을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헤어졌지만 내가 제약회사 다닐 때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생일 선물로 준 하늘색 넥타이를 찾았다. 전 여친은 내 코디에 무척이나 신경을 써줬다. 항상 깔끔한 최신 유행 스타일로 옷을 잘 입던 그녀는 나와 첫 소개팅에서 내 모습을 보고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어제 밤샘 근무하고 오신 거 아니죠?“ 그녀는 이 한마디를 던져놓고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나의 초라한 몰골을 보고 크게 웃은 것이었지만, 나는 그 순간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마치 동화 속의 요정이 지겨운 책 속의 세상에서 뛰쳐나와 맞은 편에 앉아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지만, 첫날에 대화 내용은 하나도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나는 그녀의 입술과 눈웃음과 하얀 피부에서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첫 데이트는 백화점 남성 의류 층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백화점에서 데이트를 한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내 생일은 한참 멀었고, 나는 누구를 위해 백화점에서 뭘 사본 적이 없었다. 백화점은 내가 볼 때 뭔가 특별한 날에 잠깐 비싼 물건을 사러 가는 곳이었다.



그런데 나의 행운의 요정 그녀가 백화점 4층 남성 의류 층에서 나를 보자고 했다. 그날 하루 나는 인간 마네킹이 되었다. 수없이 이 옷을 입어 봤다가 저 옷을 입어보고.... 와이셔츠를 입어 봤다가 자켓을 입어보고...바지도 7-8번은 갈아 입었다.



수없이 갈아 입은 옷들은 내 눈에는 그냥 재질과 색깔, 모양만 다른 옷들이었다. 뭘 입어도 거울 속의 난 어수룩해 보이고, 내가 입은 건 그냥 옷....그저 옷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의 요정 그녀에게 옷은 뭔가 식재료의 질을 완전히 뒤바꿀 양념과 소스였다. 무엇을 첨가하느냐에 따라 나는 저질 분식집 돈까스가 될 수도 있었고, 호텔에서 나오는 최상급 돼지고기 스테이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날 그녀는 4시간 동안의 쇼핑 끝에 나에게 위아래 옷 한 벌과 자켓 한 벌, 그리고 하늘색 넥타이를 골라주었다. 물론 돈은 내가 계산했다. 그녀는 골라만 준 것이다. 백화점 쇼핑 후 맨 위층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면서 그녀는 내게 말했다.



”다음 데이트 때는 이것들 입고 나와요~“



나는 내 요정이 원하는 걸 했다. 그녀와 데이트 때 이 옷들을 매번 입고 나갔다. 평소에는 전혀 안 입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날 때는 거의 이것들만 입었다.



네이비색 양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자 나는 전 여친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번 면접 때는 이 넥타이 매고 가요~“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하늘색 넥타이를 집어 들었다. 거의 넥타이도 양복만큼이나 착용할 일이 없다 보니 유튜브에서 매는 방법을 찾아봤다.



넥타이까지 매고 나자, 나는 다시 내 모습에 도취한 채 잠깐 동안 거울을 바라보았다. 머리에 스프레이를 조금 뿌리고 스타일링을 마쳤다. 나는 이제 나갈 준비가 다 됐다.



신발장에서 검은색 구두를 신을까, 아니면 갈색 구두를 신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도 무난한 검은색이 나을 것 같아서 검은색 구두를 신었다.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나는 3분 동안 자기소개 때 할 말들을 되뇌어 보았다. 막힘이 없다. 예상 질문도 한 열 개 정도 답변을 준비해 두었다. 나는 이제 국가과학정보국 행정 보조로서 일할 모든 준비를 마친 것처럼 느껴졌다.



버스에서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버스 안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나는 버스가 국가과학정보국에 도착할 무렵 평화로운 기분마저 느꼈다. 버스가 정류소에 멈추고 나는 버스에서 내려 잠시 기지개를 켰다.



국가과학정보국은 서울 외곽의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다. 현대식으로 지어진 정보국 건물은 층수는 높지 않지만, 불가사리 모양으로 사방으로 뻗어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미국의 펜타곤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이 건물이 불가사리를 닮아서 starfish라고 불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어떤 아르바이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앞으로 수요일만 연재합니다. 24.08.27 12 0 -
24 면접을 보다 NEW 14시간 전 2 0 12쪽
» 면접 준비를 하다 24.09.11 8 0 12쪽
22 아르바이트를 접하다 : 두번째 이야기 24.09.04 11 0 11쪽
21 24.08.28 16 0 11쪽
20 쪽지 남자의 모니터링 대상 24.08.25 15 0 9쪽
19 등산 24.08.21 13 0 8쪽
18 늦은 밤 술자리 24.08.17 18 0 8쪽
17 통화 24.08.14 16 0 7쪽
16 쪽지를 발견하다 24.08.07 19 0 12쪽
15 바뀐 시간대 모니터링 24.08.04 22 0 8쪽
14 시간 변경 제안 24.07.30 19 0 12쪽
13 미팅 그녀와의 데이트 24.07.23 22 0 12쪽
12 2대2 미팅 24.07.17 27 0 10쪽
11 사고 후 24.07.13 22 0 7쪽
10 사고가 터지다 24.07.05 28 0 10쪽
9 그의 사생활2 24.06.30 27 0 11쪽
8 그의 사생활1 24.06.25 26 0 8쪽
7 아르바이트는 이제부터 시작 24.06.22 30 0 10쪽
6 첫 아르바이트를 마치다 24.06.20 29 0 11쪽
5 첫 아르바이트 24.06.13 32 0 11쪽
4 비밀유지계약서 24.06.10 31 0 8쪽
3 면접을 보다 24.06.05 32 0 7쪽
2 면접 제안을 받다 24.06.01 39 0 8쪽
1 아르바이트를 접하다 +1 24.05.29 55 1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