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작가 천재 작가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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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6.1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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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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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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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설득

DUMMY

지한은 아침 아홉 시가 되기 전에 FN 회사의 작가 작업실로 출근했다. 널따란 작업실의 탁자를 차지한 작가는 아직 없었다. 단지 남자 한 명만이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지한이 작업실 문을 닫자 남자는 뒤로 돌았다. 마치 회사원처럼 단정히 양복을 차려입은 명준수였다.


“안녕하세요, 명 작가님.”


지한은 전혀 동요하지 않은 평온한 목소리로 먼저 인사를 했다. 명준수는 주저 없이 성큼성큼 걸어와 지한 앞에 섰다. 그는 은은한 광택이 도는 회색 양복을 입고 샤넬 로고가 살짝 보이는 넥타이를 메고 있었다.


“어제 회사와 계약을 했다면서요?”


전날 지한과 부딪친 것을 잊기라도 준수는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지한은 준수가 자신에게 이를 갈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준수는 입가에 가는 미소마저 띠고 있었지만, 눈빛은 깨친 유리 조각처럼 날카롭고 차가웠다.


“그렇습니다. 앞으로 명 작가님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게 되었네요.”


지한은 평온한 표정과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준수가 그 어떤 도발을 하더라도 감정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생각은 없었다.


“그럼, 내 후배 작가가 되는 거네. 말 놓아도 되죠?”

“그럼요.”

“같이 한 회사에서 일하게 된 걸 축하해야 하는데. 아쉽게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어. 이제 막 회사에 들어온 신인 작가에게 이런 부탁을 해야 해서 미안하긴 한데......”


부탁이라는 말과 달리 준수는 지한에게 명령하듯이 말했다.


“아는 지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와 FN 소속사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우리 회사는 컨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FN 소속사는 쓸만한 연예인 지망생들을 발굴하고 키우고 있거든. FN 소속사에서 필요한 컨텐츠는 이곳에서 전부 맡고 있지. FN 소속사에서 한정현 배우의 진로를 넓히기를 원해. 영화만이 아니라 공중파 드라마로 무대를 넓히고 싶은 거지. 이번에 내가 한정현 배우가 공중파 드라마에 나가도록 설득을 맡았는데 급한 일이 생겨서 유 작가가 먼저 그를 설득했으면 해.”

“한정현 배우가 공중파 드라마에 나가는 것을 싫어합니까?”


준수는 슬쩍 입가를 끌어올려 사무적인 미소를 지었다.


“싫어한다기보다 얕본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은데. 한 배우는 시나리오에 아주 까다로워. 단순히 재미있는 시나리오는 쳐다도 안 보거든. 한 배우가 소속사에 들어온 초창기에는 상업 영화는 무시하고 예술 영화 출연만 고집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한 마디로 예술병에 단단히 걸렸다고나 할까.”

“그런 배우에게 굳이 상업성이 강한 드라마에 나가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디에 나가건 한 배우의 자유 의지일 텐데.”

“사실 한 배우의 형이 그러길 원하고 있으니까.”

“유명한 피디라는 한정현 배우의 형이요?”

“자신의 작품에 출연시키고 싶은데 한 배우가 거절하고 있거든. 웃기지도 않은 상업 영화 타령하면서. 회사에서는 한 배우의 활동 무대를 넓히는 것과 함께 유명한 피디에게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기회거든.”


지한은 FN에서 정현에게 신경 쓰는 이유가 그의 집안과 인맥 때문인 것을 알아차렸다. 물론 한 배우 그 자체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지한은 한정현이 나온 예술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사회 문제를 다루는 단편 영화에서 그는 인간이 어디까지 밑바닥으로 떨어지는지 실감 나게 연기해 대중과 평론가의 호평을 얻은 적이 있었다.


“한정현 배우가 미니 시리즈에 나가도록 설득해줬으면 해.”

“설득요?”


지한의 질문에 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배우가 원할 만한 미니 시리즈 시나리오를 이쪽에서 써야 하니까.”


지한은 의아했다.


“한정현 배우가 상업성 짙은 미니 시리즈에 나오려고 할까요?”

“한 배우가 그런 미니 시리즈에 나오고 싶게끔 만들 시나리오를 알아 오면 되잖아.”


지한은 준수가 시나리오 작가를 자신의 이득 때문에 휘두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한이 말이 없는 동안 준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 유 작가가 잠시 한정현 배우와 같이 다닐 필요가 있어. 한 배우가 어떤 취향이 있으며 무엇을 기준으로 시나리오를 고르는지 알아내면 혹하지 않고는 못배길 만한 시나리오를 쓸 수 있지 않겠어?”


지한은 준수가 자신에게 이런 제안을 왜 하는지 궁금했다. 바로 며칠 전 얼굴을 붉힐 정도로 싸운 상대에게 좋은 기회를 준다는 게 미심쩍었다. 그러나 지한은 준수가 하자는 대로 해볼 생각이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기회가 생길 지도 몰랐다.


“언제부터 일을 시작하면 됩니까?”

“뭐, 내일 당장 한 배우와 같이 하면 돼. 지금 한 배우는 연극에 출연 중이거든. ‘연리지’라는 소극장에서 <늘근 그대>라는 극의 칠십 대 중반 노인을 연기하고 있어. 한 배우의 연기도 보면 시나리오를 쓸 때 도움이 될 거야. 그러면서 미니 시리즈 설득을 했으면 해.”

“알겠습니다.”


준수는 지한의 대답이 끝나자 작업실 문으로 향하다 우뚝 멈춰 섰다.


“그런데 유 작가. 이 일은 회사에 아주 중요한 일이야. 만약 유 작가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회사에서 입장이 곤란해질 거야. 어쩌면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별다른 일을 맡지 못할지도 몰라. 만약 그렇게 돼서 곤란하면 언제든지 도와주지. 문제없이 회사를 그만두도록.”


준수는 지한을 한 번 차갑게 노려본 뒤 작업실 문을 벌컥 열고 나갔다. 지한은 준수가 이 일에 자신을 끌어들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한의 차가운 비웃음을 지은 뒤 중얼거렸다.


“네가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


유빈과 이천수는 오늘 재택 근무를 하는지 회사 작업실로 출근하지 않았다. 지한은 아는 얼굴 없는 생경한 작업실에서 오전을 보낸 뒤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야기 상대를 찾아 어슬렁거리다 지한은 황 피디를 생각해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2층 편집실로 가니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살짝 열린 문틈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지한은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렸고 편집실 안에서 황 피디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황 피디가 노트북을 앞에 두고 작업하는 모습이 보였다.


“황 피디님, 혹시 바쁘십니까?”


황 피디는 지한을 두고 놀란 눈치였다.


“어, 지한 씨. 오늘은 어떤 일로 오셨나요?”


황 피디는 장난치듯 말했다.


“저도 여기서 일하게 됐습니다. 어제 계약했거든요.”

“그래요? 이거 한 식구가 됐네.”

“혹시 바쁘신데 제가 방해를 한 건 아닌가요?”

“아, 이거요.”


황 피디는 노트북 화면을 힐긋 본 뒤 대답했다.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죠.”

“드라마 시나리오요?”

“슬슬 차기작을 준비해야 하니까......”


지한은 황 피디가 쓰고 있던 시나리오가 궁금해 슬쩍 노트북 쪽으로 몸을 숙였다. 그러자 황 피디가 몸으로 화면을 가리며 약간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시나리오를 쓰는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아요. 안 좋은 소리라도 들었다간 더 못쓰거든.”

“예에.....”


지한은 아쉬움을 느끼고 몸을 뒤로 뺐다. 그런 지한과 노트북 화면을 번갈아 쳐다보던 황 피디는 헛기침을 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시나리오 작업이 끝나면 좀 봐줄 수 있어요? 지한 씨 안목이 좋으니까 평가를 받고 싶긴 한데......”

“에이, 평가라니요. 아직 저는 배우는 입장입니다. 피디님이 시나리오 보여주시면 기거이 보겠지만......”

“지상파 드라마는 물론 웹드라마 두 개를 대박 낸 작가님께서 겸손이 지나친데요?”


황 피디의 말에 지한은 씨익 웃고 말았다.


“<해킹으로 정의 실현> 보니까 초반인데도 조회수가 높던데요?”

“그렇죠? 아마 <모두의 학교>보다 더 대박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말하니 태민이가 부러워서 끙끙대더군요.”

“아, 어떤 상황일지 안 봐도 알 것 같아요.”

“그 때문에 태민이 녀석이 재현이에게 더욱 심술을 부리더라고요. 참, 아이돌이면서 무슨 연기 욕심이 그리 많은지.”

“그래도 활발해서 보기 좋은데요.”

“지한 씨처럼 다 받아주는 사람이 함께 있으면 태민이 녀석은 더 기어오를 겁니다.”


황 피디의 말을 듣고 지한은 준수가 지시했던 일이 떠올렸다.


“황 피디님, 혹시 한정현 배우에 대해 아십니까?”

“한정현 배우요? 형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 피디님 동생분이죠? 무엇 때문에 그래요?”

“제가 내일부터 한정현 배우를 따라다녀야 하거든요.”


지한은 황 피디에게 준수가 한 지시를 이야기했다. 황 피디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약간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지한 씨. 이거 잘못 걸린 것 같은데.”

“잘못 걸린 것 같다뇨?”

“사람들이 한정현 배우를 좋지 않게 이야기하지만,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어서 그렇지 사실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물론 성격이 예민하고 사람을 막 대하는 데가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명 작가가 유 작가에게 그런 일을 제안했다는 겁니다.”


황 피디는 잠시 말이 없다가 마지못해 이어 말했다.


“.....일이 실패했을 때 명 작가와 같이 한 사람이 책임을 진 일이 있었거든요.”


지한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에도 준수가 자신을 실패에 대비한 보험으로 일을 맡겼을 가능성이 컸다.


“거기다 이예지 배우와 관련해 의심 가는 구석이 있기도 하고......”


그 말에 지한은 눈을 크게 뜨고 황 피디를 쳐다보았다.


“이예지 배우와 관련해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뇨?”

“지한 씨가 이예지 배우에 대해 관심 있는 것 같아서 방송국에 들어간 김에 최 피디를 만나봤죠. 최 피디는 <한낮의 밀회>를 연출한 피딥니다. 이예지 배우가 느닷없이 주연을 맡은 일을 물었죠. 백 실장과 명준수 작가가 적극 이예지 배우를 주연으로 추천했답니다. FN 회사가 투자를 하는 드라마라 두 사람의 입김이 원래부터 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한 가지 묘한 일이 있었답니다.”

“묘한 일이요?”

“액션 연기를 논의하려 이예지 배우 차량으로 찾아갔다가 그녀가 명준수 작가와 이야기 나누는 것을 얼핏 들었답니다. 이예지 배우가 명 작가에게 3월 24일 5시경에 집까지 스토킹 한 걸로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다고 해요. 두 사람이 은밀히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 최 피디가 자리를 피했다고 합니다. 최 피디는 두 사람을 어려워해서 개인적인 대화를 엿들었다고 비난받을까 무서웠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예지 배우가 서현수 작가가 자신을 3월 24일 오후 5시경에 스토킹했다고 신고를 한 거죠.”


황 피디의 말을 듣고 지한은 누군가가 망치로 자신의 머리를 내려친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황 피디가 해준 말대로라면 서현수는 이예지 배우를 스토킹한 게 아니라 모함을 당한 것이다. 그것도 피해자인 이예지 배우와 명준수가 짜고 서현수를 거짓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다. 지한은 가슴 속에서 분노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뛰었다. 황 피디는 지한의 얼굴이 창백해지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한 씨, 왜 그래요?”

“아, 아니 그게......”


지한은 서현수가 자신의 형이라고 아직 밝힐 수 없기에 황 피디의 질문에 곤란해졌다. 그래서 급히 유빈이 했던 말을 황 피디에게 들려주었다.


“권 작가님이 공동 대표로 있는 회사니까 작가들 대우가 좋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도구로 쓰이다니 마음이 안 좋네요.”

“권 작가 라인의 작가라면 좋은 대우를 받죠. 비단 작가뿐만 아니라 피디나 배우도 좋은 입지인 건 마찬가지지만. 권 작가가 실력이 좋아 그쪽 라인 사람들이 그 덕을 보고 있어요. 그와 함께 세력도 점차 커지고.”

“그들이 이익을 얻는 만큼 그쪽 라인이 아니면 불이익을 받고 있네요.”


지한의 말에 황 피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해도 이렇게 대놓고 불공평한 곳도 그렇게 많지 않죠.”


황 피디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한은 편집실을 나온 뒤 벽에 기대섰다. 황 피디에게서 들은 정보로 여전히 마음속이 들끓고 있었다. 지한은 이를 갈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결국 형에게 일어난 불행은 처음부터 조작되어 있었다는 거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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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꼼수 24.06.16 4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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